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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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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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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2.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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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효부인의 침소

DUMMY

“이번이 마지막이야.”


융이 말했다. 그러나 소래는 대답이 없었다. 융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다시 말했다.


“응?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소래, 대답해.”


소래가 고개를 돌려 슥, 쳐다보더니 겨우 입을 뗐다.


“응, 마지막.”


그러나 융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때까지 이 부질없는 약속을 몇 번이나 했던가. 융은 한숨을 내쉬고는 앞장섰다. 소래가 그런 그를 어르듯 덧붙였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이번에도 못 찾으면 그만둘게.”


융은 생각했다. ‘퍽이나 그러겠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면 소래가 의기소침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아니므로, 융은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새벽은 아직 칠흑같이 어두웠고, 맥박처럼 들리는 풀벌레 소리를 제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는 소리를 잠든 사람의 숨소리로 착각할 만큼 새벽의 농명보는 고요했다.


융은 소래를 이끌고 좁은 골목 골목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 길은 저택에 사는 사람 중에서도 허드렛일하는 가장 하찮은 종들이나 아는 샛길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다닐 법한 좁고, 어떤 것은 험한 길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납작 엎드려 네발로 기다가도 벽을 타고 올라가 발 하나 겨우 디딜 만큼 좁은 벽 위를 내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발소리 하나 나지 않는 모습은 마치 공이 굴러가는 모습 같았다.

수씨 집안에 팔려 온 이래, 그들은 몇 번이고 이 길로 다녔다. 밤이면, 아직 동틀 기미도 안 보이는 새벽 같은 칠흑이면 그들은 어김없이 도방을 몰래 빠져나와 농명보의 샛길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오늘의 밤 산책은 그 어느 때보다 수월했다. 더는 자기들을 감시할 효부인의 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마다, 벽 아래마다 세워 놓은 경비병들의 눈은 여전히 삼엄했으나, 소래와 융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돌아다닐지 모르는 쥐들을 피하는 것보다야 눈에 보이는,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경비들을 피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원숭이처럼 담벼락과 처마 밑을 넘나들며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조서원이었다.


주인을 잃은 몇 주 사이에 조서원은 말도 못 할 만큼 엉망이 되어버렸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정원 곳곳에는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모를 잡초의 씨들이 움트고 있었다.


융은 버릇처럼 주변을 휘 둘러보고는 소래를 데리고 효부인의 처소 안으로 쏙 들어갔다. 사람의 열기를 잃어버린 텅 빈 처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창백한 달빛뿐이었다.


“이제 어디부터 살피지? 웬만한 곳은 다 찾아봤는데······”


소래가 묻자, 융이 곧장 어딘가를 가리켰다.


“침소.”


그가 침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소래가 먼저 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말릴 새도 없이 움직이는 소래를 보며 융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소래는 효부인의 침소를 샅샅이 살폈다. 장을 하나하나 죄다 열어보더니, 그다음에는 벽에 귀를 바싹 붙이고 주먹으로 툭툭 두드려봤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융도 바닥에 귀를 대고는 두드려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는 바닥에 귀를 댄 채로 말했다.


“허탕 아니야?”


그러나 소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뿐이야. 이제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았어.”


“농명보다 얼마나 넓은데.”


“하지만, 다들 효부인과 있다가 사라졌다고 했잖아. 여기 말고 또 어디를······”


하며, 벽에 붙어 있던 소래가 고개를 번쩍 들고 융을 돌아보다 말끝을 흐렸다. 융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앞에 소우가 나타났다.


소우가 침소 문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씨팔······”


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뒷걸음질 치는 소우의 팔을 재빨리 붙잡아 침소 안으로 패대기쳤다. 소우의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그대로 얼굴부터 바닥에 곤두박질했다. 소래가 깜짝 놀라 소우에게 달려갔다.


“오빠!”


융은 침소 문을 닫고는 일어나려는 소우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는 소우의 두 팔을 뒤로 꺾어 정강이로 짓누르고는 품에서 칼을 꺼냈다. 소래는 눈을 부릅뜨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 뭐야? 누가 보냈어? 도련님이냐?”


“아뇨! 윽······”


어깨가 뒤틀리고 팔이 부서지는 것 같은 통증에 소우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융은 더욱 소우의 몸을 짓누르며 칼끝을 그의 목에 바싹 가져갔다.


“바른대로 말해. 뒈지기 싫으면······”


소우는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채로 소래를 쳐다봤다. 소래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우와 융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소우가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뭐?”


“나도 몰래 왔다고요.”


“그걸 어떻게 믿어.” 하며 융이 칼끝으로 소우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소우는 눈을 부릅뜨고 소래를 쳐다보며 분명한 투로 말했다.


“뭔가를 찾으러 온 거죠? 나도 찾는 게 있어요!”


융이 칼을 거두지 않았지만, 소우는 주눅 들지 않고 제 할말을 계속했다.


“어쩌면 당신들이 찾는 게 내가 찾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잖아요!”


“오빠.” 하며 소래가 부르자 융은 소우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이 새끼 말 듣지 마. 그래, 소여가 흘리고 간 콩고물 주워 먹으러 왔다. 주인 없는 방에 쥐새끼들이 드나드는 소리를 듣고 도련님이 보냈나 본데, 보낼 거면 경비을 보냈어야지.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 놈을 뭘 믿고······”


“물건이 아니잖아요.”


소우가 융의 말을 가로막았다. 소우는 제 목을 찌르는 칼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물건을 찾는다는 사람들이 왜 벽에 귀를 대고 두드립니까? 내 말 믿어요. 나도 도련님 몰래 왔어요. 나도 여기서 찾는 게 있다고요.”


융은 그제야 소래를 쳐다봤다. 소래는 여전히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융과 소우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융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융이 소우에게 물었다.


“네가 찾는 게 뭔데?”


“내가 찾는 건 여기 없어요. 하지만 여기에 분명, 실마리가 있을 거예요. 내 말 믿어요. 우린 서로 같은 처지예요. 서로 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라고요. 그리고 또 모르잖아요? 우리가 실은 같은 것을 찾고 있을지도······”


융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더는 말하지 않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한 손에 칼을 든 채로 남은 손으로 소우의 두 팔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찾아봐. 네가 뭘 찾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고.”


소우가 융을 돌아보며 대꾸했다.


“양팔이 다 붙잡혔는데, 어떻게 찾으라는 겁니까?”


융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우의 팔을 풀어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칼끝으로 그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허튼짓 하지 마.”


소우는 대꾸 없이 곧장 효부인의 침상으로 향했다. 그는 침상 위에 그대로 남아있는 이부자리를 다 걷어치우고는 침상 위를 살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소래와 융은 우두커니 서서 서로를 힐끗 쳐다보고는 소우가 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봤다.


‘여기에 있어야 해.’


소래와 융의 눈에는 소우의 행동이 거침없어 보였지만, 정작 소우는 오금이 저려 부들부들 떨리고, 양손에 땀이 흥건하여 바닥에 뚝뚝 떨어질 만큼 두려워하고 있었다.


꿈으로는 도저히 그 여자를 만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소우는 작심하고 효부인의 침소로 왔다.


이 저택에서 처음 꿨던 꿈, 그 꿈속에서 소우를 부르던 목소리는 분명 효부인의 침상 밑에서부터 들려왔었다.


효부인이 죽은 이후, 그녀의 침소에 들릴 일이 없었던 데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괴이한 일들을 한꺼번에 겪은 탓에 소우는 잠시 효부인의 침상에 관해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를 만날 방도를 고민하던 와중에 문득 효부인의 침상이 떠오른 것이다.


‘그 늙은 개처럼 생긴 수장군도 꿈에서 효부인의 침상 위에 누워 있었지.’


그러나 정말로 효부인의 침상에 여자를 찾을 실마리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백곡과 거학에게 영안을 뜨게 하는 약을 몰래 먹여가며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왔으나,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방도가 당장 떠오르지 않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정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었다.


소우는 소래와 융이 무슨 이유로 효부인의 침소에 숨어들었는지 관심 없었다. 융의 말대로 정말 효부인의 패물을 훔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소우가 위기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인지.


“허튼짓하면 가만 안 둔다고 했어.”


소우가 침상 아래로 내려오자 융이 반사적으로 칼을 꼬나 들고 그를 위협했다.


“기다려요.”


소우는 짐짓 태연하게 대꾸하며 이번에는 침상 아래를 살펴봤다. 전면부터 오른쪽, 왼쪽까지 전부 살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뒤쪽을 보려면 벽에 붙은 침대를 앞으로 끌어내야 하지만, 소우 혼자서는 못 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융이 순순히 도와줄 것 같지도 않았다.


소우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손을 놓자, 융이 버럭 화를 내며 소우의 멱을 잡아챘다.


“다 놀았냐?”


“오빠, 설마 진짜······”


소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자, 융이 그녀를 뒤로 물렸다. 그러고는 소우에게 말했다.


“얌전히 놔줘 봤자, 어차피 도련님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우리가 한 짓을 전부 고할 테지?”


소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융은 유구무언이라 생각하고, 정말로 소우를 여기서 죽이는 편이 나은가 하고 고민했다.


그러나 소우의 고민은 영 동떨어진 것이었다.


‘침상이 아닌가? 그러면 대체 어디지? 여기가 맞기는 한 건가?’


“그래, 깔끔하게 여기서 끝내자.”


하며 융이 칼을 든 손을 뒤로 가져갔다. “안 돼, 오빠······” 하며 소래가 중얼거렸다. 융의 칼이 소우의 옆구리를 찌르려는 찰나, 소우가 그의 칼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칼이 소우의 왼손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융이 깜짝 놀라 칼을 든 채로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칼이 손을 관통하지는 않았으나, 손바닥에 깊은 상처가 났다. 소우가 부들부들 떠는 손을 침상 위로 가져갔다. 침상 위에 소우의 더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저 새끼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융이 중얼거렸지만, 소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놀란 눈치였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설마······’ 하며, 융이 소우를 쳐다봤다.


잠시 후, 효부인의 침상에서 급한 바람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 결에 소우의 몸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거대한 새의 날갯짓에 바람이 일어났다 사라지듯, 효부인의 침소는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저게 뭐야······?”


융의 말에 소우가 얼굴을 가리던 팔을 내리고, 침상을 내려다봤다. 침상에서 시작된 구멍이 저 아래, 바닥 깊숙한 곳까지 시커먼 목구멍을 드러내고 있었다. 목구멍 안쪽에서는 창백하고도 검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소우는 코를 찡그렸다.


구멍 속에서 악취가 흘러나왔다. 옅은 먼지 냄새와 살덩이에서 나는 남새. 마치 오물더미에서 뒹굴다 나온 사람에게서나 날 법한 지린내.


여자를 만난 날 맡았던 그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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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내 꿈 24.04.01 4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4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4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4 0 12쪽
48 24.03.01 4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4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4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5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4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4 0 12쪽
»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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