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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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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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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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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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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백곡의 심기(1)

DUMMY

풍주의 시장은 소란스러웠다. 땅을 디디며 걷는 소리는 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고, 에누리하느라 성화를 부리는 사람들과 지지 않고 들레는 상인들의 목소리는 편경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고기를 훔쳐 달아나다 잡힌 들고양이가 매맞으며 우는 소리는 아쟁 뜯는 소리요, 나무 그늘 밑에서 장기 노름을 하는 남자들의 탄식 소리는 피리부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맞춰 술에 취한 노인이 춤을 추며 노래하고 있으니, 연희패가 없더라도 이곳은 이미 잔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백곡은 소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정원에 깃든 벌레가 울거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전부인 농명보가 좋았다. 이따금 종들이 저들끼리 모여 시비하느라 소란을 피우거나 뒷담화하며 낄낄대기는 했지만, 거슬릴 만큼 오래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여가 몰고 다니던 쥐새끼들이 사라지고 나서는 적막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여하튼, 시끄러운 것을 영 좋아하지 않는 백곡은 시장통에 가야 할 때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여종인 나시가 그 일을 맡았다.


“오늘 마침 돼지를 잡았는데, 보고 가시지요!”


“이 비단 좀 만져 보세요!”


“생선 좀 보십쇼! 잡자마자 염장한 거라 아주 맛이 좋습니다!”


나시가 지나는 길마다 상인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새로운 냄새가 풍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콧구멍을 벌렁거렸지만, 용케도 상인들에게 눈 하나 마주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대로를 통과한 나시는 그 끝에 있는 골목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을 활보하던 그녀의 발은 어느새 약방 거리에 다다랐다. 맛 좋은 고기 냄새와 음식 냄새가 그치고, 텁텁하고 시큼한 약초 냄새와 탕약 냄새가 그녀의 예민한 후각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킁!”


나시는 콧바람을 크게 불고는 좌우를 살피며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약방 하나하나를 다 돌아다니며 감로수에 관해 물었다.


“여기에는 없소. 풍주가 아무리 커도 감로수 열매는 찾기 어려울 텐데······”


“그래도 파는 곳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요?”


네 번째 방문한 약방에서도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한 나시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방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정 급하면 내가 알아봐 드릴까?”


“됐습니다.”


하며, 나시는 약방을 나왔다.


누군가 흔하지 않은 감로수 열매를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나서 좋을 것 없다는 게 나시의 생각이었다.


‘백곡 님은 괘념치 말라고 하셨지만······’


나시는 거리에 줄지어 서있는 약방들을 쳐다보다 이내 다시 거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수를 쓰든 감로수 열매를 구해오라 명했으니, 나시는 무슨 수를 쓰든 그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빨리 이곳에 또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일구가 융선왕문 안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그 옆에 선 주구가 주변을 휙휙 돌아보더니 말했다.


“묵을 곳부터 찾읍시다.”


“내가 잘 아는 곳이 있지. 여기 올 때마다 묵던 곳이야.”


하며, 앞장서던 일구가 갑자기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자.”


주구가 의아한 듯 쳐다보자, 일구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거긴 너무 비싸. 상단주를 모실 때나 갔던 곳이지, 지금 우리 처지로는 어림도 없어. 더 싸고 좋은 곳도 많으니 그리로 가세.”


“노숙해도 상관없습니다.”


주구의 말에 일구가 혀를 찼다.


“그러다 날치기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여긴 상인부터 해서 뜨내기들까지 드나드는 사람이 많네. 외지인이 많으니 그만큼 날치기나 강도도 많고. 이런 데서 돈 아낄 생각 말고 내 말대로 하게.”


“돈 아끼자는 게 아니라 시간을 아끼자는 겁니다.”


그 말에 일구가 잠시 멈춰 섰다.


“애타기로는 나도 자네 못지않아. 아니, 따지자면 내가 가장 애타는 사람이지.”


주구가 입을 다물었다. 일구가 못 박듯 말했다.


“내 말대로 하게.”


주구는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을 지나는 동안 상인들이 일구에게 아는 척을 하며 손을 흔들고, 농담을 던졌다.


“아니, 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 왔어? 상단주는 잘 계시는가?”


일구는 별말 없이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뒤에서 주구는 그렇지 않아도 험상궂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서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웃는 낯으로 일구를 맞이하던 상인들이 하나둘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일구가 주구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적당히 좀 해라, 이놈아.”


“네?”


“그 인상 좀 풀라 이 말이야. 누가 보면 원수 멱 따러 가는 중인 줄 알겠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목구멍 아래로 내려갔다. 어쨌든 제 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알 리 없는 주구는 일구의 잔소리에도 여전히 낯을 굳힌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얼마쯤 가다가 일구가 객잔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서 묵자.”


시장에 있는 객잔 중 가장 허름하고 볼품없는 곳이었지만, 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주구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그가 걸음을 멈췄다.


“왜, 너무 허름해? 다른 곳으로 가?”


일구가 물었지만, 주구는 별말 없이 어딘가를 빤히 쳐다봤다. 일구가 그 시선을 따라갔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저긴 약방 거리 쪽이다.”


일구가 말했다.


“네.”


주구가 대답했지만, 일구는 그것이 의미 없는 대답임을 눈치챘다. 일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또 시작이군.’


주구는 사냥개답게 냄새를 분별하는 데 능할 뿐 아니라, 몇 척 거리에 있든 한 번 냄새를 맡으면 끝까지 쫓아갈 만큼 냄새에 민감했다. 그러다 보니, 멀쩡히 길을 걸어가다 우뚝 멈춰 주벽을 휙휙 둘러보거나 납작 엎드려 바닥 냄새를 맡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일구는 이런저런 말로 주구에게 묻거나 그를 재촉했지만, 그때마다 주구는 실없이 대답하기만 할 뿐 꼼짝하지 하지 않고 냄새 맡는 일에 집중했다.


“내가 너라면 사람 냄새, 음식 냄새, 술 냄새에, 진작에 기절했을을 거다.”


“네.”


냄새만큼이나 소리도 기가 막히게 듣는 주구는, 이럴 때만큼은 쓸데없는 소리 하나만큼은 또 기가 막히게 흘려들었다.


일구는 “어린놈의 자식이” 어쩌고저쩌고하며 구시렁거리고는 혼자 객잔으로 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구는 약방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냄새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진작에 바닥에 코를 바짝 대고 냄새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냄새는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주구는 잠자코 냄새의 정체가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그 정체는 뜻밖에도 나시였다.


약방 거리에서 나온 민소매가나시가 주구를 지나쳐 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구는 그녀의 냄새에 홀린 듯 이끌려 멀어져가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본대도 저 새빨간 머리를 가진 여자는 주구에게 그저 낯선 사람일 뿐이었다.


그 사이 일구가 객잔 밖으로 나와 주구에게 소리쳤다.


“해 지기 전에는 돌아와라!”


주구가 일구를 쳐다봤다. 일순 일구의 붉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것보다도 빨갰지.’


주구가 다시 뒤를 돌이켜 여자를 찾았지만, 여자는 잔치 자리 같은 시장통으로 사라진 뒤였다. 냄새도 더는 나지 않았다.


주구는 미련 없이 일구에게 돌아갔다.




어찌 됐든, 나시는 감로수 열매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우크미의 말대로 풍주는 크고, 일구의 말대로 풍주를 드나드는 사람은 상인부터 뜨내기까지 많기도 많거니와 천차만별이다. 거기에 풍주의 약방이란 약방은 모조리 뒤진 나시의 끈기까지 더해져 감로수 열매는 결국, 백곡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주도면밀하고 신중한 제 상전을 닮은 나시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정말 감로수 열매가 맞을까요?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


“그림으로 봐서는 맞는 것 같구나.”


“그래도요. 비슷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약방에서는 감로수 열매가 확실하다고 했니?”


“네.”


나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제가 가져온 감로수 열매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감로수 열매는 쌀알보다 조금 크고, 자줏빛을 띤 열매였다.


“우크미에게 가져가 봐야지.”


“그자를 믿어도 될까요?”


나시는 우크미의 약실로 가려는 백곡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백곡은 그녀의 손에 등을 들렸다. 나시가 말할 때마다 등을 든 그녀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도련님을 속이고 철현을 내보내려 했다면서요? 도련님은 너무 관대하세요. 그런 놈을 그냥 살려두시다니. 저라면 혀뿌리를 뽑아버렸을 거예요.”


“도련님의 결정에 함부로 말을 얹지 말거라.”


백곡이 조용히 타일렀지만, 나시는 좀처럼 입을 멈추지 못했다.


“우크미에게 먼저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


나시는 백곡이 맞장구 치차 기꺼운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그러다 저를 사납게 쏘아보는 백곡의 가운데 눈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는 입술을 삐쭉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조용히 할게요.”


백곡이 웃었다.


약실에 도착한 백곡은 나시를 밖에 세워 두고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네 말대로 안심해서는 안 되니까.”


나시가 싱글벙글 웃으며 밖을 감시하는 동안 백곡은 우크미에게 감로수 열매를 건넸다.


“감로수 열매가 맞나?”


“맞습니다.”


우크미는 열매의 냄새를 한번 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맞습니다.” 백곡이 대답했다.


“그럼 어서 만들게.”


“자백제 말씀이지요?”


우크미는 그렇게 묻고는 미리 준비한 약재를 꺼냈다. 그는 약재 하나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건 치자입니다. 이건 향시이고, 이건 황련입니다. 그리고 이건······”


“됐으니 알아서 만들게. 얼마나 걸리나?”


“두 시진 정도 걸립니다.”


“그래.”


백곡은 의자 하나를 가져와서는 그 위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나는 여기서 눈 좀 붙일 테니, 그동안 일 보게.”


“아니, 어찌 편히 주무시지 않고······” 하며, 우크미가 중얼거리더니 탕약실로 쑥 들어가 버렸다. 백곡은 감았던 가운데 눈을 뜨고 탕약실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말했다.


“철현의 일은 안 됐네.”


“예?”


우크미가 알아듣지 못한 듯 대꾸하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철현 말일세. 자네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지 않았나? 자네의 뒤를 이어 수씨 가문을 섬길 아이였는데, 아깝게 됐어. 새 제자를 곧 들여야겠지.”


약재를 막 물에 담근 우크미가 손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왔다.


“예?”


백곡이 가운데 눈을 떴다.


“자네가 늙긴 늙었나 보군.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말이야.”


“알아들었습니다.”


약재를 물에 불리는 시간 동안 웅크리는우크미는 다른 약재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백곡이 말했다.


“그것도 원래는 철현이 하던 일 아닌가?”


“예, 맞습니다.”


우크미는 그야말로 겨우 대답하고 있었다. 백곡을 상대할 기분이 도저히 나지 않을 텐데도 그는 성실하고 우직하게 백곡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그래서, 새 제자를 들일 생각인가?”


“쇤네가 직접 골라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자네의 제자가 될 사람인데, 자네가 고를 것이 맞지.”


그 말에 우크미가 웃었다. 소의 표정을 분간할 수 없는 백곡이라도, 오래간 함께 지낸 우크미의 표정은 얼마든지 분간할 수 있었다.


우크미가 말했다.


“철현만 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백곡은 길다면 길 두 시진이 금세 지나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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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4 0 12쪽
48 24.03.01 4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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