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40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3.04 17:00
조회
4
추천
0
글자
12쪽

죽지도 못하고

DUMMY

하얀 개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백견족은 개의 습성과 특성을 고루 갖고 있다. 눈이 조금 어두운 대신 귀가 밝고 냄새 맡는 데도 능하다.


저택 지하를 오갈 때면, 명은 백곡이나 거학의 손에 등을 들리고 앞세워 길을 안내하게 했지만, 실은 등이 없더라도 혼자서 그 어두운 길을 오갈 수 있었다.


악취. 미로 같은 지하를 틈틈이 가득 메우는 이 더럽고 고약한 악취를 더듬는 것만으로도 명은 얼마든지 방향과 위치를 분간할 수 있었다.


명이 지하에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거니와 오더라도 그 목적은 언제나 우크미를 만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수행 없이 혼자서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약실을 지나쳐, 더 깊은 곳으로 지독한 악취의 근원으로.


문 앞은 깨끗했다. 백곡이 수고한 덕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시체 세 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들로부터 빠져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소우는 그 웅덩이 한복판에서 구토하며 울었다.


—쾅쾅쾅!


명이 문을 세 번 세게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장정 둘이 있는 힘껏 잡아당겨야 겨우 한 짝이 열릴 만큼 거대한 문이었지만, 문 너머에서 명을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악취는 봇물 터진 듯 터져 나와 명을 덮쳤다. 그러나 명은 코를 막지도, 콧잔등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진창 속에서도 품위를 지키겠다는 듯 그는 묵묵히 문지방을 넘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 너머는 여전히 어둡기만 한 지하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은 이를테면 지하 암반으로 만든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도저히 다물 줄 모르는 그 아가리는 과연 주인의 심상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썩은 시체를 먹은 것인지 악취가 코를 비틀어 댔고, 공기는 습하게 젖어 무겁게 명을 짓눌렀다.


‘그렇다면 저건 목젖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동굴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은 침상은 효부인의 것과 똑 닮아 있었다. 그 위에 어떤 무더기가 누워 있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까 봐 겁에 질린 사람처럼 겹겹이 옷을 걸치고 침대 위에 쭈그리고 누워 간신히 눈만 뜨고 있었다.


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서.”


그의 건조한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명이 다시 불렀다.


“이서.”


재촉하는 음성이 아니었지만, 이서는 명이 한 차례 더 자신을 부르기 전에 얼른 일어났다. 그러나 옷이 너무 무거운 탓인지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보였다.


이서는 뒤뚱뒤뚱 헐레벌떡 명에게 달려갔다. 악취는 이제 명의 콧구멍을 지나 그의 뇌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서는 뒷짐을 지고, 고개를 모로 비틀어 그를 올려다봤다. 이서가 움직일 때마다 쩔렁쩔렁 금붙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오늘은······. 오늘은 명이 뭘 주려고 왔을까?”


“아직 약효가 남았을 텐데.”


명의 대답에 이서가 눈을 크게 치뜨더니,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제 행동에 깜짝 놀라서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때까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명을 보며 이서가 천천히 손을 떼고 말했다.


“맞아, 그렇지. 난 명 덕분에 늘 건강하고 살 만해.”


“다행이군.”


“그럼, 그럼, 왜 왔을까? 혹시, 혹시······ 약 말고 다른 걸 주려는 게 아닐까?”


이서는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 양 자꾸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곁눈질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


이서가 명의 말을 따라 하며 입맛을 다셨다.


“소우가 드디어 미래를 보기 시작한 것 같아.”


그 말에 이서가 손뼉을 치며 겅중겅중 뛰었다. 그러나 옷이 너무 무거운 탓에 그리 높이 뛰어오르지 못했다. 쩔렁쩔렁 다시 금붙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잘됐다! 축하해!”


“너에게도 잘된 일이지.”


“그래? 그렇지?”


손뼉을 치던 이서는 그것만으로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명은 뒷짐을 진 채로 그녀가 미치광이처럼 땅을 밟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녀의 춤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못 가 지쳐버린 그녀는 구부정히 허리를 숙이고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명이 말했다.


“이제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이서가 헐떡이면서도 웃었다.


“그래? 그렇구나. 하지만 내가 가버리면, 음······ 서운할지도 모르고······”


“약속이니까.”


그 말에 이서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지! 약속이니까! 약속은 꼭 지켜야지······”


그러고는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며 침상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녀를 명이 불러 세웠다.


“소우가 영몽을 꾼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이서가 우뚝 멈춰 선 채로 고개만 휙 돌렸다.


“이서는 다 안다고······ 다 안다고 말했는데······”


“매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겠지.”


침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이서가 결국, 다시 명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명을 향해 눈만 치떴다.


“이서는 다 아는데······ 땅속에 있으면······ 땅을 밟는 것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는데······”


“추궁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명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했지만, 그 말 한마디로도 이서는 마음이 풀렸는지 이내 빙긋 웃었다. 명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네 말대로 소우가 정말 꿈을 꿨으니까.”


“그럼,”


하며 이서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명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기는?”


명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는 뒷짐을 진 채로 이서의 처소를 거닐며 말했다.


“내가 최근에 소우를 어디서 만났는지 알아? 바로 문 앞이었지.”


“고기는!”


이서가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며 재촉했지만, 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지하로 내려오려면 이서보로 와야 하는데······ 하지만 소우는 쭉 농명보에 있었지.”


“고기! 고기!”


명은 이서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듯 걸었다. 그의 시선은 이제 땅을 향해 있었다.


“물론, 농명보에도 입구는 있지만, 그건 아무나 열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런데 웬일이지 입구가 열려 있더군.”


“고기 줘, 제발······ 고기 좀······”


풀썩, 이서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악취가 점점 더 심해져 더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소우는 영몽을 꾸니, 그 꿈으로 뭐든 알아낼 수 있겠지. 주술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통로를 찾아낼 수도 있을 테고······ 네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명은 이서의 뒤, 그러니까 이서와 침상 사이에 멈춰 섰다. 이서는 무릎을 꿇은 채 땅에 한쪽 뺨을 대고서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고기라는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명이 그녀의 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꿈을 훔치려 한다는 것도.”


“맞아······”


이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꿈으로 본 거야. 전부······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다 꿈으로 본 거야. 나는 몰라. 나는 그냥 걔가 꿈을 꾼다는 것만 알아. 제발 고기 좀 줘.”


명이 피식 웃더니, 빠른 걸음으로 이서를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이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기!”


“약기운 아직 남았잖아.”


쾅쾅쾅! 문을 세 번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이서가 발악했다.


“맞아! 내가 알려줬어! 내가 걔 꿈속으로 들어가서 알려줬어! 말했잖아! 이제 고기 줘! 아아악!”


이서가 갑자기 배를 붙잡고 온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명은 품 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뒤로 던졌다.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면서 그 안에 들어있던 환약들이 굴러 나왔다.


이서가 벌벌 떨며 기어가 약들을 마구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명은 그런 그녀를 뒤로한 채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서는 명을 보며 이를 갈았다.


늙은 맹수의 이빨 같은 문이 닫혀버렸다.


문이 닫히고서도 이서는 여전히 이를 갈며 울었다. 그러나 운다고 저 두꺼운 문 너머로 사라져 버린 명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듣더라도 문을 열고 돌아와 달래며 ‘고기’를 줄 위인도 아니었다.


분이 풀릴 만큼 우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이서는 울음을 뚝 그치고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그 겹겹이 입은 옷소매로 야무지게 눈물을 닦고는 입을 열었다.


“융!”


그러자 침상 뒤에 숨어있던 융이 후다닥 뛰쳐나왔다. 뒤로 틀어 올려 묶었던 머리는 어깨 위까지 짤막하게 잘려져 있었다.


융은 양손에 고이 담은 것을 이서에게 내밀었다. 머리카락이었다. 이서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한 줌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두 다리를 쭉 뻗고 몸을 길게 뒤로 기대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살겠다.”


융이 조심스레 물었다.


“눈치 못 챘겠죠?”


“당연하지! 그놈은 개코거든.”


“네?”


융이 알아듣지 못하자, 이서가 씩 웃었다.


“여긴 내 냄새로 가득해서, 코가 아주 피곤했을 거야. 네 냄새 같은 건 맡지도 못해.”


융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이서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머리카락이 많이 짧아졌네.”


융은 제 머리카락을 만지는 이서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서는 그 일에 흠뻑 취해서는 닳도록 머리카락을 주물럭거렸다.


융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이러니 냄새를 못 맡지.’


온 사방이 이서의 악취로 가득하고, 이제 융의 머리카락 한 올 한올마저 그녀의 냄새를 풍겼다. 이래서는 정말 이서의 말대로 명이 영영 융을 발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여자에게 잡아먹혀서 뼈만 남으면 그때는 별수 없이 발견될지도······’


그렇게 한참을, 머리카락을 만져대던 이서가 드디어 싫증이 났는지 일어나 침상으로 돌아갔다. 융은 누운 이서를 이불로 덮어준 뒤, 침상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서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장가. 전번에 가르쳐준 거 있잖아.”


“예.”


융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바람이 분다, 강이 운다.

비가 온다, 강이 넘친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이제 또 한동안은 보약 달일 일 없겠구나.”


우크미는 들통에 담긴 소금물에 깨끗한 천을 적신 뒤 비틀어 짰다. 소녀가 말했다.


“보약을 먹었으니 또 죽을 일은 없겠네요.”


우크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얼마 못 갈 거다. 억지로 영안을 뜨게 하는 짓을 계속하다가는 진짜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그땐 약도 소용없어.”


소년이 물었다.


“스승님의 보약을 먹고도요?”


우크미가 적신 천으로 소년의 상처를 닦으며 말했다.


“스승님이 아니라 스승님 할아버지가 달인 보약으로도 어림없어.”


쓰라린 통증에 소년이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했다. 소녀가 웃더니 말했다.


“그놈 때문에라도 수명을 얼른 죽여야겠네.”


우크미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그 입 좀 어떻게 안 되겠냐?”


그러자 청대는 들으라는 듯 더 크게 웃고는 말했다.


“어쩌겠어요? 멀쩡한 거라고는 입뿐인데······”


투레질하는 우크미를 향해 철현이 말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스승님. 다 낫는 대로 얼른 이곳에서 내보내 드릴 테니까요.”


그 말에 우크미는 더욱 시름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죽지도 못하고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명 변경 24.02.02 3 0 -
공지 연재 일정 24.01.12 7 0 -
공지 수정 사항 안내 24.01.07 6 0 -
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4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 죽지도 못하고 24.03.04 5 0 12쪽
48 24.03.01 4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