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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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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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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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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

DUMMY

홍우와 맥은 소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는 먼저 나갈 일이 없다는 저 말이, 조만간 목이 달아날 자기 처지를 비관한 데서 나온 것인지, 결국 홍우와 맥이 자기보다 먼저 목이 달아나고 말 것이라는 뜻인지.


그 말 속에 담긴 가능성 중에 홍우와 맥이, 혹은 둘 중 하나가 드디어 누명을 벗고 빛 아래로 돌아갈 장래도 왜 없겠냐마는, 누명을 썼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두 사람도 막상 소우의 이 의미심장한 말 앞에서는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냐?”


맥이 겨우 물었다.


소우는 담담했다.


“저는 평생 여기 갇혀 지낼 거라고요. 그 뜻입니다.”


“그래, 그렇지. 그런 신통한 능력을 가졌는데 수장군이 순순히 놔줄 리가.” 하며, 맥이 멋쩍게 웃었다.


“누가? 아버지가? 아들이?”


홍우는 웃을 수 없었다.


“네가 효부인을 죽였다는 게 사실이면, 여기 들어올 것도 없이 진작에 죽었어야 하는데. 너를 다른 곳도 아닌 역모를 저지른 중죄인들만 모아 놓은 이곳에 가둬놨다는 것은, 내 생각에 말이다. 너를 꼭꼭 숨겨둘 작정이라는 거야. 수함조 장군은 맥의 말마따나 다 늙어빠진 노인네이고, 이제 수씨 가문의 주인은 수명 장군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계모였다고는 해도 아버지의 처를 죽인 놈을 그저 재주가 뛰어나다고 살려두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이지.”


“도련님을 잘 아십니까?”


그것은 소우가 이곳에 갇힌 이래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빠져 그 사실을 미쳐 눈치채지 못한 홍우는 순순히 대답했다.


“염국 백성 중에 수명 장군을 모르는 것은 말 못 알아듣는 짐승과 말 못 배운 갓난아이들 밖에 없다. 수명 장군이 어린 나이에 위장군에 오른 건 부모를 잘 만난 덕이 아니야. 함께 전장에서 싸운 무관들은 물론이고, 조정 관료들마저도 수명 장군이 진작에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었다고 말하지.


염제께서 물러나신 이후로 염국이 큰 전쟁을 치른 일은 거의 없지만, 어떤 변경 지역에서는 아직도 소수 부족이민가에 쳐들어와 백성들을 수탈하기 일쑤였지. 이것들이 나중에 가서는 저들끼리 손을 잡고 세를 불려서 남북부 지역을 점령한 거야. 그걸 일망타진한 사람이 수함조 장군이지. 그때 수함조 장군이 혼자서 죽인 적군의 수만 50이 넘었다고 하더라.


수장군은 부하들이 열흘은 족히 걸릴 거라는 전투를 이틀 만에 끝내고 적군의 항복을 받아냈지. 폐하께서는 이참에 서천강 북쪽 부족들을 모조리 장악할 생각을 하시고 수함조 장군에게 출전을 명령하셨는데, 아들 수명 장군도 그때 처음으로 전투에 출전하게 됐다더군.”


“열여덟이었지. 그때는 교위였다지?”


맥의 말에 홍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승전을 코앞에 두고 폐하께서 원정을 나가셨는데, 하필이면 그때 수함조 장군이 함정에 빠진 거야.”


“미인계에 걸렸다지?”


맥이 또 끼어들었다.


“뭐, 그런 건 모르겠고, 진영 주변에 매복한 적들에게 급습당했지. 그 전투로 우리 군은 완전히 괴멸 직전까지 갔다더군.”


“수함조 장군은 물론, 폐하까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 그때 폐하를 향해 달려드는 적장을 단숨에 베어버린 이가 바로 수명 장군이다, 이 말이야.”


맥은 듣고만 있기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인지 홍우의 말을 멋대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수명 장군이 부하들을 이끌고 매섭게 달려오는데, 그 모습이 수백 마리의 늑대 무리처럼 보였다더구먼. 수명 장군은 폐하를 구하고, 그 기세를 몰아닥치는 대로 적군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대. 그 하얀 머리털과 꼬리가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는데, 그 모습에 적군들이 기가 질려서 항복을 선언하더라는 거야.”


맥의 이야기가 점점 장황해지자 홍우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부하 50명을 데리고 무슨 수로 전세를 한 번에 뒤집었는지, 술이나 빚고 음식이나 하는 우리 같은 놈들은 알 길이 없지만, 하여튼 수명 장군의 공으로 폐하는 승리를 거두셨지.”


“그 덕에 위장군까지 오른 거군요.”


“그 공이 가장 크지.”


홍우는 갑자기 옥방 너머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수명 장군은 점잖고 고매한 사람으로 유명하지. 그가 화내는 꼴을 봤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그러나 그건 평화로울 때의 이야기고, 전쟁터에서는 그보다 살벌한 사람이 없다더라. 소우, 효부인을 죽이고도 네가 목숨을 건진 것은 순전히 너의 그 꿈꾸는 재주 덕이다. 절대로 수명 장군의 비위를 거스르지 마라. 그자는 먼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한 자기도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에 거치는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목을 물어뜯을 거다.”


소우는 어느새 제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홍우의 손을 힐끗 쳐다봤다. 문득 그 손이 바윗덩어리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순간 소우의 눈에 홍우의 손이 명의 어금니가 되어 목덜미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환상이 얼핏 떠올랐다 사라졌다.


“네.”


소우의 대답을 들은 홍우는 손을 거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맥이 분위기를 상기시키려는 듯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재주가 있으니, 장군의 비위만 잘 맞추면, 또 누가 아냐? 햇빛 볼 날이 올지.”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결국 맥은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우리야말로 아무 솟아날 구멍이 없다. 누명 썼다고 백날 하소연해봤자 들어주는 이도 없고······”


그 모습을 씁쓸히 쳐다보던 홍우가 짐짓 웃으며 소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너와 이렇게 말이라도 섞으니 그나마 살맛이 나는구나. 내가 좀 더 일찍 혼인했다면 너만 한 아들이 있을 텐데······”


“염병할, 아들이 다 뭔 소용이야. 언제 뒈질지 모를 팔자에······”


“꼭 초치는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지?”


홍우와 맥은 늘 그랬듯 좁은 옥방에서 티격태격 입씨름하더니 결국, 서로의 뒤통수를 한 번씩 갈기고는 이내 주먹다짐하기 시작했다. 소우는 벽에 기대앉아 아버지뻘 되는 사내들이 아이처럼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그의 손은 제 목덜미를 만지고 있었다.


그러다 소우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자장가 덕분이었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소우는 누워 있었다. 포근한 짐승의 털 위에 얼굴을 묻고서 그는 엎드려 있었다. 여자는 소우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노래했다.


바람이 분다, 강이 운다.

비가 온다, 강이 넘친다.


그러나 강이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아득히 멀어지다 가까워지는 여자의 노랫소리와 이따금 멀리서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말굽들이 땅을 박차며 소우의 몸을 가만히 흔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발굽 소리가 거세졌다. 땅이 요동쳤다. 누워있던 소우의 몸에도 그 진동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뒤이어 함성이 파도처럼 소우를 덮치더니 뒤따라 들리는 비명과 한데 섞여 거대한 바다가 되었다.


소우는 전쟁의 바닷속으로 내던져졌다. 기병들은 지축을 흔들며 도망치는 요괴들을 짓이겼다. 말이 앞발을 들 때마다 발굽에 묻은 피가 호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튀었다.

보병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베고, 찌르고, 물어뜯었다. 그들은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병기를 들었지만,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었다.


이리와 승냥이와 앞서 달리며 사람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면, 그 뒤를 따라와 독사들이 올가미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의 몸통을 조여 뼈를 으스러뜨리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를 짜냈다. 그러면 저 뒤에 있던 하얀 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짜낸 피로 목을 축였다.


소우는 허우적거리며 도망치려 했지만, 제자리에서 버둥거리기만 할 뿐, 그의 몸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늘에서는 까마귀와 온갖 맹금류들이 죽은 사람들의 살을 뜯어 먹기 위해 땅을 내려다보며 선회했다.


자장가는 들리지 않았다.


“소우!”


눈을 뜬 소우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껌뻑거렸다. 심장이 갈빗대를 두드리듯 뛰었다.


“가위눌렸냐? 영몽을 꾸는 놈도 가위에 눌리는구나.”


하며 맥이 실없이 웃었다.


“어어······”


소우 역시 실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간수들이 곤봉으로 창살을 두드리며 옥중을 왔다 갔다 했다.


우크미의 약을 먹고도 한동안 꿈을 꾸지 않아, 거학과 백곡이 그를 찾지 않은 지 스무날이 조금 지날 무렵, 소우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했다. 그럼에도 소우는 꿈속에서도 자기가 보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이틀에 한 번, 혹은 하루에 한 번, 그보다 많을 때는 하루에 세 번 소우는 질리도록 꿈을 꾸었다. 눈만 감으면 꿈을 꾸니 그의 몸은 잠을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그 사이 비몽사몽일 때나 진배없이 나른하고 무거웠다. 명이 꼬박꼬박 보내주는 보약 덕분에 그나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살다 보니 그놈이 고마울 때도 다 있구나.’


그러나 조만간 다시 우크미의 약을 먹어야 할 때가 오리라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소우는 명이 하사하는 보약이 썩 내키지 않았다.


‘어쨌든 꿈을 다시 꾸게 된 건 잘된 일이야. 환약을 먹고도 그 여자를 만나지 못했잖아. 그나마도 꿈을 못 꾸게 되어서 이젠 정말 방도가 없구나 싶었는데······’


소우는 여전히 그 여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여자가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소우에게는 그 여자를 만나는 것만이 현재 상황을 타개할, 적어도 타계할 실마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여자가 명을 꺼리는 것은 확실한 것 같으니, 잘하면 공적을 두고 한편이 될 수도 있어.’


소우는 꿈을 꿀 때마다 여자를 찾아 헤맸다. 여자를 부르기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답하지 않았고, 여자에게서 났던 그 악취도 맡을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는 꿈을 통해 몇 가지 쓸만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수씨 가문에 얽힌 이야기들.


꿈이 얼마나 정확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지, 또 환상 같은 상징들로 가득한 꿈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지는 소우 그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소우는 이때까지 수씨 가문 저택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차츰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또 한 가지 쓸만한 것들은 바로 감옥 식솔들의 환심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용한 꿈쟁이로 소문났던 터라, 간수들은 소우가 별안간 불러 세워서는 뜬금없는 소리를 해도 화를 내기는커녕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우의 말을 경청했다.


“오늘은 새로운 죄수가 들어오지 않습니까?”


“맞아!”


“간수장께 말씀 전해주십시오. 절대로 그자를 ‘짐승’과 한 방에 두지 마시라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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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5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5 0 12쪽
48 24.03.01 5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 다시 꿈 24.02.26 5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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