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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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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41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4.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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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내 꿈

DUMMY

“꿈을 꿨습니다.”


맥의 어깨가 움찔, 흔들렸다. 소우는 찢어진 편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논밭에 홍우 아저씨 혼자서 벼를 거두고 계셨어요. 그렇게 벼를 거둬서 소에게 바쳤죠.”


“소?”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큰 뿔을 가진 소였어요. 홍우 아저씨가 그 소에게 무릎을 꿇고 벼를 바치자, 소가 한 번 크게 울고는 벼를 먹었어요.”


“······그게 뭔 개꿈이야?”


“깨자마자 알았죠. ‘아저씨가 살겠구나. 황제에게 돌아가 다시 어주를 따르겠구나.’”


“그래서, 그 꿈을 홍우에게 알려줬냐?”


“네. 아저씨가 석방된 그날 밤이요.”


“그럼, 내 꿈은?”


하고 묻는 맥은 어느새 소우의 뒤에 서 있었다. 어둠에 묻힌 탓인지, 소우는 그의 얼굴도, 눈도 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입이 벌어질 때마다 언뜻 보이는 썩은 이빨들뿐이었다.

소우가 대답했다.


“봤어요.”


“어떻더냐?”


“아저씨가 음식을 한 소쿠리 머리에 이고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셨어요. 그러자 들개들이 달려들어서 그 음식을 죄다 먹어버렸죠.”


“깨자마자 무슨 생각이 들더냐?”


“아저씨는 곧 죽을 겁니다.”


“이놈—!”


맥의 손이 소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손에 어깨가 붙잡힐 때까지도, 소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맥은 굶주린 짐승처럼 씩씩거리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소우의 목을 물어버렸다.


썩어 절반은 빠졌고, 절반은 문드러진 그 이빨이 용케도 소우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윽!” 하며, 소우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맥은 있는 힘껏 턱을 다물었다. 비릿하고 뜨거운 피가 맥의 혀끝을 간질였다.


“으아악!”


소우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맥의 이빨이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소우는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철컹!


옥방 문이 열렸다. 그러나 물어뜯는 데 여념 없는 맥도, 물어 뜯기는 소우도 눈치채지 못했다.


맥이 소우의 목을 문 채로 죽고 나서야 겨우 소우만 눈치챌 수 있었다.


거학이 맥의 등에 꽂은 칼을 뽑고는 소우에게 말했다.


“죽었냐?”


“아뇨······”


소우가 자기를 깔고 죽은 맥을 옆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 거학은 소우의 목에 난 상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웬 짐승 새끼랑 가둬 놨어?”


소우가 무심코 목을 만졌다. 침인지 피인지 모를 끈적한 것이 손바닥을 적셨다. 고개를 들자, 칼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거학과 그 뒤에서 사색이 된 얼굴로 엉거주춤 서 있는 간수들이 보였다. 거학이 소우에게 말했다.


“일어나.”


거학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맥이 도련님의 소중한 꿈쟁이를 물어뜯어 죽이려 했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소우는 재빨리 거학의 눈치를 살피고는 목을 부여잡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학은 그를 데리고 옥방을 나섰다. 뒤늦게 간수에게 소식을 들은 간수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대체 무슨 짓이오, 이게!”


거학이 대꾸도 없이 지나치자 간수장이 그를 붙잡았다.


“무슨 짓이냐고!”


거학이 거칠게 간수장의 손을 뿌리치고는 말했다.


“어차피 뒈질 거 미리 죽였소. 뭐가 문제야?”


“이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간수장이 얼굴이 금세 벌겋게 물들었다.


“이 무식한 작자를 봤나! 아무리 역모를 저지른 죄수라도 엄연히 폐하의 명이 있어야 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시오? 코흘리개도 다 아는 사실을······!”


거학이 핏, 웃었다.


“그래, 내가 남들은 엄마 치마폭에 쌓여서 코나 찔찔 흘리던 시절부터 돌 주워먹으면서 도둑 새끼 소리 듣고 사느라 코흘리개도 아는 것도 모른다. 그래서 뭐? 정 고까우면 폐하께 아뢰시던지.”


“뭐요?”


간수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섰지만, 거학은 몸을 돌이켰다. 그가 멀어지며 말했다.


“아니면 당장 도련님께 아뢰시오. 그렇지 않아도 도련님께 갈 참인데 같이 가겠소?”


간수장은 주먹만 부르르 떨다 이내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이켰다. 멀어져가는 소우의 귀로 간수와 간수장이 “이제 어떡합니까?”, “자진했다고 해야지.” 하는 대화가 얼핏 들리다 사라졌다.




지하감옥을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도 거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우는 목을 붙잡은 어깨가 무거워지고, 손가락 끝이 빳빳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쳐다보니 처음부터 붉게 태어난 사람처럼 손끝까지 붉은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거학이 말했다.


“그놈한테 뭐라고 했냐?”


“네?”


“뭐라고 했길래 그런 짓을 당했냐고.”


소우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거학이 별안간 소우의 멱을 잡았다. 지하의 어둠과 등불의 빛이 거학의 눈 위에서 미친 사람처럼 춤을 췄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 곱게 죽고 싶으면 바른대로 말해. 한 번 더 같잖은 수작 벌였다가는, 이번에는 내가 네놈 살점을 모조리 뜯어먹을 테니까.”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그것이 위기인지, 그저 생각지 못한 변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소우는 명에게 아주 중대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금세 멀어지는 거학을 소우가 재빨리 따라잡고는 말했다.


“곧 죽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거학이 소우를 힐끗 쳐다봤다.


“사실이야?”


“네.”


“그래서, 그놈이 내 손에 죽은 게 실은 네가 그런 꿈을 꿔서 그렇다는 말이야?”


“저는 그저 꿈을 꿀 뿐입니다. 그게 장래를 미리 알려주는 꿈일 뿐인지, 아니면 생시를 바꾸는 꿈인지 저는 모릅니다. 며칠 전에 그자가 죽는 꿈을 꿨고, 그대로 알려줬을 뿐입니다.”

“그래,” 하며 뭐라고 중얼거리던 거학은 이내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거학은 소우를 이서보의 어느 작은 처소로 데려갔다. 그 사이 소우가 거학에게 환약을 먹으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는 것인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거학은 말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소우는 아주 오랜만에, 사시사철을 모두 보낸 것 같은 아득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드디어 지상을 밟았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시커먼 구름이 하늘 곳곳에서 빠르게 몸을 불리며 꿈틀대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바람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휘몰아치고 있었다.


곧 비가 쏟아질 날씨였다.


거학은 남종 둘을 불러 말했다.


“깨끗하게 씻기고 옷도 갈아입혀. 목에 난 상처도 치료하고. 반 시진 뒤에 올 거야.”


종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처음 효부인의 노리개로 팔려 왔을 때 그를 씻기고 갈아입혔던 여종들만큼 세심하거나 살뜰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둘이 한 몸인 것처럼 그들의 손놀림은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약속대로 반 시진 만에 돌아온 거학은 소우를 데리고 처소를 나섰다. 예상대로 완전히 시커멓게 물든 하늘에서는 억수 같은 비가 내리치고 있었다.


명의 처소는 그가 농명보에서 지내던 곳보다 좀 더 크고 한편으로는 고즈넉했다. 있는 것이라고는 삭막한 박석과 그보다 더 삭막한 고목 한 그루가 전부였던 농명보의 처소와 달리, 이곳에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 가꾸고 지켜온 것이 분명한 아름다운 정원이 소우를 맞이하고 있었다.


곧이어 태풍까지 몰아닥칠 듯 험악하게 울부짖으며 어슬렁거리는 비바람 앞에서도 정원은 마치 옥석으로 조각한 신상처럼 우아하고 깨끗했다.


그 정원 너머 명은 정방 한 가운데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명은 소우를 제 앞에 세워 둔 채로 말했다.


“해몽도 한다고 들었다.”


소우가 대답하지 않자 거학이 주먹으로 그의 등을 후려갈겼다. 소우의 몸이 휘청 흔들리며 저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네, 네.”


“왜 내 꿈은 해석하지 않았지?“


‘내 꿈.’ 소우가 명의 말을 되뇌었다. 그것은 명백히 소우의 꿈이었지만, 이서의 말대로 명이 소우의 꿈을 훔치려 했다면, 그리고 소우가 제 꿈을 그려 명에게 준 것으로 그것이 성취되었다면, 명이 ‘내 꿈’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해몽할 줄 몰랐습니다.”


명이 빈 찻잔을 채웠다.


“이서가 뭐라고 하던가.”


습관처럼 입을 다문 소우는 거학의 눈치를 살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씨 가문이 이서의 살을 먹고 있다고······.”


“내 부친에 대해서도 말하던가?”


“아니요.”


명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원 너머 어딘가를 바라봤다.


“내 부친이 죽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겠군. 이서의 살을 먹었으니까.”


그러고는 소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만약에 이서의 살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면, 먹을 텐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명을 바라보던 소우의 일순 시선이 흔들렸다. 그는 바닥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거학이 그를 재촉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지만, 명이 고갯짓으로 제지했다. 그도 모른 채 소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서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구역질이 났다. 온몸이 썩어 들어가면서 나는 그 지독한 악취에 몇 번이고 잠식당했던 그 경험을, 소우는 되도록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기억에서 지우고도 싶었다.


소우가 대답했다.


“아니요.”


“왜?”


명이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소우는 여전히 땅을 쳐다보며 말했다.


“비위가 상합니다.”


“하하!”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우는 물론 거학까지 놀라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웃던 명은 숨을 길게 내쉬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찻주전자 옆에 있던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종이 한 장이 곱게 접혀 있었다.


종이를 펼치자, 소우가 일전에 그려주었던 그림이 나타났다. 명과 그를 아우르고 있는 짐승들. 치마폭처럼 명의 허리춤을 빙 두른 채로 언제든 앞으로 뛰쳐나갈 수 있게 앞발을 치켜들고 있는 짐승들. 그것들 한가운데 서서 명은 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억나나?”


“네.”


“이제는 이 꿈을 해석할 수 있겠군.”


“······네.”


명이 종이를 짚은 채로 소우에게 내밀었다.


“뭐가 보이지?”


소우는 당장이라도 대답할 것처럼 입을 벌렸다. 그러나 곧 이내 다물었다. 거학이 검의 손잡이 끝으로 소우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야.”


그런 거학을 무시하고, 소우가 명에게 말했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다른 꿈들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그 전에 부탁이 있습니다.”


명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옳은 선택이다.”


“네?”


“거래를 해야지.”


생각지도 못한 명의 대답에 거학이 눈을 크게 뜨고 명과 소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나 명 역시 거학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명이 말을 이었다.


“난 명확하지 않은 것을 싫어해. 꿈, 환상, 예언, 점복 같은 것들. 하지만 난 그 명확하지 않은 것 중 하나를 손에 넣는 방법을 익혔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익힐 차례야. 그전에는 네 것을 훔쳤지만, 이제는 가르침을 받는 위치가 됐으니, 마땅히 값을 내야지.”


그러고는 두 손을 모아 그 위에 제 턱을 고였다.


“그럼, 이제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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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 내 꿈 24.04.01 5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5 0 12쪽
48 24.03.01 4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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