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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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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50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2.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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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자의 일념

DUMMY

소래와 융의 눈은 등불보다는 반딧불에 가까웠다. 그 빛으로는 세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어둠을 몰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눈 덕분에 소래와 융은 어둠 속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야?”


두 식경쯤 걷자 융이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체감상으로는 두 식경이 아니라 한 시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융이 뒤따라오는 소우를 노려보며 또 말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냐고.”


소우는 반딧불 같은 융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좀 더 가봐요.”


다행히 냄새가 더 진해지고 있었던 터라, 소우는 자신 있게 두 사람을 재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우가 무슨 자신으로 재촉하는지 알 턱이 없는 융은 마음은 조바심을 지나 이제 짜증으로 치닫고 있었다.


“오빠, 소리 좀 죽여. 우리 몰래 숨어 들어온 거야.”


소래가 없었다면 융은 진작에 소우의 멱을 붙잡고 욕지거리를 마구 쏟아내거나 아예 그를 바닥에 메다꽂고는 혼자 왔던 길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애초에 이놈을 따라 들어오지도 않았겠지.’


융은 혀를 찼다.


“하다못해 쥐새끼라도 나오든가. 뭔 놈의 길을 이렇게 길게도 뚫어놨는지······”


“쥐새끼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하며 소래가 샐쭉 웃었다. 그러고는 소우에게 말을 걸었다.


“너 정말 귀태 맞니? 기억을 잃었다고 했잖아.”


“그건 그냥 시해가 한 말이야.”


“널 사 온 장사꾼 말이지? 그 사람도 참 못됐다. 추명 말로는 유족들이 널 돌봐줬다며. 선심을 베풀 거면 끝까지 베풀든지 말이야.”


소우는 자신의 사정을 모두 알 리 없는 소래가 수선을 떨며 제 편을 들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난 서천강에서 왔으니까. 서천강 너머를 오가는 유족들도 서천강은 두려워해. 오히려 지척에 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 추명이라는 사람······ 나와 함께 팔려 온 인간을 말하는 거지?”


“응. 너도 몇 번 봤잖아. 어째 아는 척을 한 번도 안 하던데······”


“그럴 만한 사이는 아니니까······” 하며, 소우가 말끝을 흐렸다. 슬기가 불현듯 떠오른 탓이었다.


“그래? 하지만 추명은 종종 네 걱정을 하던걸.”


“······ ······”


소우가 별말이 없자, 소래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가족을 찾고 싶지는 않아?”


“글쎄······”


“넌 아주 특이한 날개를 가졌으니까,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야. 너와 같은 날개를 가진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보지 않겠어?”


그 말에 소우는 고개를 힐끗 돌려 제 날개를 쳐다봤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보라색 날개가 어둠에 잠겨 시커먼 그림자처럼 보였다.


“유족들 틈에 있을 때는 누가 봐도 눈에 띄었지만, 마계에는 유족 말고도 날개를 가진 요괴들이 많을 거야. 그 틈에서는 이런 거무튀튀한 날개 따위 보이지도 않을걸.”


그 말에 소래와 융이 동시에 소우를 쳐다봤다.


“거무튀튀?”


융이 기가 차다는 듯 내뱉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겸손도 정도껏 하지. 네가 여기 팔려 온 이유가 그 날개 때문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소래도 거들었다.


“그래, 난 생전 이렇게 예쁜 날개는 처음 봐. 사방이 이렇게 어두운데도 날개에서 윤이 자르르 흐르는 게 다 보이는걸. 꼭 밤하늘을 떼나 붙여 놓은 것 같아. 그런 말 한 번도 못 들었니?”

소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단조마을에서 지낼 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었더라도 소우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소우가 보기에 그의 날개깃이 띤 색은 그저 맑은 물에 먹물을 쏟은 것처럼 시커멓고 납덩이처럼 맥없는 색일 뿐이었다.


소우가 영 자기 말을 믿지 못하자 소래는 작정하고 소우의 날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은하수를 박아 넣은 것 같다는 둥, 바람이 불면 별 가루가 쏟아질 것 같다는 둥. 융은 돌아보지도 않고 소래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칭찬도 알아들을 줄 아는 놈이나 고마워하지,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뒤나 살펴. 이상한 놈이 따라붙지는 않는지.”


“쥐새끼 같은 건 없어.”


소래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융이 멈춰 섰다. ‘뭐야, 삐쳤나?’ 하며, 소래가 그를 달래려는데, 그가 갑자기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오빠?”하고 묻는 소래의 손을 융이 낚아채고는 소리쳤다. “뛰어!”


소우는 곧장 뒤돌아 뛰기 시작해다. 소래와 융도 손을 잡을 채로 허겁지겁 뛰었다.


“왜 그래?” 하며 소래가 뒤를 돌아보자, 시커먼 무더기가 세 사람을 향해 밀려드는 것이 보였다.


“꺄아아악!”


쥐 떼였다.


쥐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고, 그저 땅을 박차는 소리만 내며 세 사람을 향해 무수히 달려들었다.


세 사람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달렸다. 그러나 한 몸을 이룬 수만 마리의 쥐 떼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들은 열 걸음은 넘게 달려야 했다.


쥐 떼는 가장 뒤에 있는 소래를 향해 앞발을 길게 뻗었다. 융은 있는 힘껏 소래를 앞으로 밀며 그녀의 뒤를 가로막았다.


“아악!”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소래를 소우가 용케 붙들었다. 하지만, 융이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빠—!”


융은 소래의 부름에 대답도 못하고 쥐 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빠아아—!”


소래는 소우의 손을 뿌리치고 융에게 달려갔다. 소우가 뒤에서 자기껴안자 소래는 발버둥 치며 더욱 큰 소리로 융을 불렀다.


이미 배를 불린 쥐 떼는 더 욕심부릴 필요 없다는 듯 다시 입을 다물고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때까지도 발버둥 치던 소래가 결국, 소우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제야 소우는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소래는 일어나지도, 융을 찾아 달음박질하지도 못했다.


“나 때문이야!”


소래는 곧 숨이 넘어갈 듯 말했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하고 엉엉 울던 소래는 별안간 소우의 멱을 잡았다.


“너 우릴 속였어! 처음부터 우릴 소여에게 팔아넘길 속셈이었지!”


“아니야!” 하며, 소우가 소래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 가녀린 손아귀에 언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소래는 소우의 옷을 찢어버릴 기세로 그에게 매달렸다.


“그럼, 저 쥐새끼들은 뭐야!”


“나도 몰라!”


“아니면, 그래. 명 도련님이구나! 융 오빠 말이 맞았어. 저 끝으로 가면 명 도련님이 있는가 보지? 응? 말해, 이 파렴치한 새끼야!”


하며, 완전히 울음이 터져버린 소래는 소우의 멱을 잡은 채로 그의 가슴에 제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했다. 소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 팔을 어정쩡하게 벌리고서 소래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소우는 별수 없이 그녀를 떼어냈다.


“난 계속 갈 거야.”


소래가 고개를 숙인 채로 훌쩍이며 겨우 대꾸했다.


“······정말 아니야?”


“뭐, 소여와 손을 잡았냐고? 아니야. 명 도련님도 절대 아니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


소래는 고개를 들어 소우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눈을 본들 그 마음에 어떤 속내를 품었는지 어찌 알랴마는, 소래는 소우의 다음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난 그 사람이 내게 호의적일 거로 생각했어.”


“그 사람? 너를 안다는 그 사람?”


“그래, 내가 바보 같았지. 그 사람이 누군지나 알고······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를 판인데······”


소우가 저도 모르게 이를 부드득 갈았다.


“대체 누구를 만나러 간다는 거니? 우리가 괜히······ 괜히 벌집을 쑤신 건 아니겠지?”


“모르겠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애초에 나를 먼저 부른 게 그 여자였어. 어쩌면 그 여자가 날 부른 순간부터 덫에 걸렸는지도 몰라.”


“저렇게 어마어마한 쥐 떼를 마음대로 부리는 건 소여도 못해······”


소래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울음은 완전히 그친 듯, 어느새 목소리가 제 자리를 찾았다.


“어쩌면 소여와 같은 돌족일지도 몰라. 돌족들은 원래 쥐를 잘 부리기로 유명하니까······ 도사라거나······”


‘그럴까?’


소우의 생각에도 그 여자가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렇게 어마어마한 도술을 부릴 힘이 있는 사람이 왜 명의 눈치를 보며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는지, 소우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소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난 계속 갈 거야.”


“오빠를 구하겠다는 말이야?”


“······어떻게든 찾아내야지. 그때까지 무사해야 할 텐데······”


소래도 일어났다.


“오빠가 저지른 무례는 용서해 줘. 날 지키겠다고 그런 거야. 그리고 아까 내가 너한테 했던 짓도......”


멋쩍게 말하는 소래를 보며 소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만약 소래가 사과하지 않았더라도 소우는 융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되도록 그를 구하려 애썼을 것이다.


‘내게 그럴 힘이 없다는 게 문제지.’


소우가 말했다.


“넌 돌아가.”


“뭐? 안 돼. 나도 같이 가.”


“너라도······” 저도 모르게 내뱉은 소우는 겨우 다음 말을 집어삼켰지만, 소래가 그다음 말을 모를 리 없었다. 소래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는 네 일을 해. 그 사람을 꼭 만나야겠다면 그렇게 해. 난 융 오빠를 구할 거야. 이건 내 일이니까, 네가 도와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애초에 함께 가겠다고 나선 건 나였고, 오빠는 내 고집 때문에 화를 당한 거니까.”


하며, 소래는 소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척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우는 그녀를 붙잡을지 했지만, 무슨 말로 그녀를 더 설득할 수 있을지 싶었다.


소우가 우두커니 서 있자 소래가 뒤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뭐 하니? 넌 눈도 어둡잖아.”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것이었다.


소우는 그녀를 따라가기 전 뒤를 돌아봤다.


소래의 말대로 어둠 속에서는 눈이 어두운 소우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갑자기 닥친 재난으로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소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서둘러 소래를 따라갔다.


저 자그마하고, 비쩍 마른 여자애도 그럴 것이다. 소우보다 더 겁을 집어먹었으면 집어먹었지, 태평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얼마나 더 치명적인 덫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융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르자, 소우는 이제 와서 그 여자를 만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어떻게든 융을 구하자. 지금은 그게 우선이다.’


소우는 이제 오직 그 생각만 하기로 했다.




거학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안 보입니다.”


백곡은 머리를 조아린 채로 명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명은 약에 취한 탓에 소우가 침소를 비우는 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던 백곡과 거학에게 지금 당장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명은 조금 전 백곡에게 받은 우크미의 약을 쳐다봤다. 소우는 볍씨보다 조금 큰 이 약을 잘게 빻아 백곡과 거학이 먹을 석반에 섞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두 사람은 소우와 달리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거학이 분을 못 참고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새끼가 갑자기 답지 않게 알랑방귀를 뀌면서 치대더니······”


명은 품에 넣어 두었던 소우의 마지막 그림을 펼쳐봤다. 괴물을 호령하는 명이 명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백곡, 거학.”


명의 부름에 두 사람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도련님.”


명이 그림을 다시 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해가 뜨기 전에 찾아라.”


시커먼 하늘은 이제 조금씩 푸른 기운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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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5 0 12쪽
60 누명 24.03.29 6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5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5 0 11쪽
52 재회 24.03.11 5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5 0 12쪽
48 24.03.01 5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5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 각자의 일념 24.02.09 5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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