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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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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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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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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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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무기

DUMMY

소우의 꿈이 완전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를 엿보는 재주는 그 자체로 경외할 만큼 불가능한 일이니, 열에 셋이나 넷이 틀렸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죄수가 오리라는 소우의 예언은 맞아떨어졌지만, 그자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었다.


“그놈도 수괴랑 붙어먹어서 낳은 놈이라고? 말세군, 말세야.”


신입 죄수의 정체를 알자마자 간수들은 연신 혀를 찼다. 간수들은 물론, 다른 죄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사람과 수괴 사이에서 태어난 혐오스러운 생물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물며 그런 것들과 동고동락하게 생겼으니 과연 통탄할 일이었다.


죄인도 죄인 나름이다.


황제에게 역심을 품은 죄인이라도, 짐승과 같은 취급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 감옥 식솔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죄인은 죄인이다. 인격과 형편을 헤아려 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간수장은 부하들에게 아우성치는 간수들을 잔 단속하라고 이른 뒤, 죄수를 끌고 온 거학에게 말했다.


“이놈도 수명 장군께서 사신 놈입니까?”


“그렇소. 그러니 잘 관리하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만일을 대비해, 다른 죄수들과 떨어진 곳에 가둘 참이었습니다.”


“아니, 아니.”


거학이 간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그놈이랑 같이 가두시오.”


“그놈······” 하며, 말끝을 흐리던 간수장이 용케 거학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 짐승 놈 하고요?”


“짐승은 짐승끼리 둬야지.”


“방이 남아돕니다.”


간수장의 말대꾸에 화가 난 어학이거학이 쏘아붙였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장군의 명이 그러하니 그런 줄 아시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요? 말 못 하는 짐승 둘이 서로 시비라도 붙으면 어쩐단 말이오?”


거학은 간수장에게 손가락을 뻗치며 말했다.


“그러라고 거기 있는 거 아니오! 잔말 말고 장군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시오.”


간수장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상스러운 욕설들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래도 나라의 녹봉을 먹는 관리인데, 저 거학이라는 자는 그저 수명 장군과 붙어 다닌다는 이유로 간수장에게 무례를 범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직급도, 신분도, 가문도 없는 비렁뱅이 같은 놈이······’


명이 교위였던 시절부터 거학은 그의 오른팔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그가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심지어 그가 귀족인지 하다못해 노예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이 위장군의 반열에 오르는 동안에도 거학은 아무 직급도 받지 않고, 그저 명의 사환으로서 그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나 누구도 거학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명의 위세 덕분이었지만, 거학은 마치 자기가 명의 후광이라도 되는 양 제 주인보다 더 위세를 떨었다.


그렇다고 그가 패악질하거나 부당하게 남의 이득을 갈취하는 등 행패를 부린 것은 아니었지만, 위아래를 구분 못하고 아무에게나 시건방을 떠는 그 고약한 성미 하나만으로도 악명이 자자했다.


어질고 점잖으신 수명 장군이 이제껏 거학의 주둥이를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 그 악명이 거기까지는 다다르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알고서도 모른 척하거나.’


거학은 간수장이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기다릴 작정인지, 아예 팔짱을 끼고서 그를 꼬나봤다. 간수장은 죽었다 깨나도 저놈에게는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만족한 듯 웃으며 돌아서는 어학을거학을 향해 간수장이 물었다.


“저놈은 이름이 뭡니까?”


그 말에 거학은 고개를 모로 돌려 죄수를 쳐다봤다. 손과 발에 형구를 찬 죄수가 고개를 떨어뜨리고서 그르렁그르렁 심상찮은 소리를 냈다. 간수들은 마뜩잖은 표정을 간신히 숨기고서 양쪽에서 죄수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사람도 아니고, 이름은 지어서 뭐 해?”


거학이 혼잣말 같은 볼멘소리를 툭 내뱉었다.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짐승이 둘이나 되는데, 구분은 해야 하지 않소.”


그 말에 거학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방을 나서며 말했다.


“흰 놈은 흰둥이, 저놈은 뭐, 얼룩이.”


거학이 나가자마자 간수장은 기다렸다는 듯 혀를 차며 ‘얼룩이’를 쳐다봤다.


얼핏 보면 그 짐승은 요괴가 다를 바 없었다. 어깨 사이에 돼지머리를 얹었다 한들, 그 주둥이 양쪽에서 송곳니가 삐쭉 튀어나왔다고 한들, 수괴니, 짐승이니 수선을 떨 요괴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의 몸뚱이에 빳빳하고 시커먼 털이 수북하게 자라났다 하더라도, 온갖 종류의 요괴가 판을 치는 마계에서 이상할 일은 없다.


그럼에도 간수들이 마뜩잖은 표정을 짓는 이유는, 그리고 거학과 간수장이 얼룩이를 짐승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에게서 도저히 사람의 향취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룩이는 번뜩거리는 눈으로 간수장을 가만히 쳐다봤다. 흰자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눈동자만이 가득한 눈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적개심뿐이었다.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적개심 너머에서 얼핏 얼핏 얼굴을 비췄다 사라지는 공포심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중에 흉물스러운 짐승에게 그런 자비를 베풀 만한 사람은 없었다.


거학이 이 짐승을 얼룩이라 부른 이유는 흰둥이와 구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덮인 털은 분명 그 눈동자만큼이나 검었다. 그러나 곳곳에 난 깊은 상처 탓에 마치 한 주먹씩 뽑아 버린 군데군데 털이 숭덩숭덩 빠져 있었고, 얼핏 그 모습이 얼룩덜룩한 무늬처럼 보였다.


간수장은 여전히 그르렁거리는 얼룩이를 더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간수들에게 말했다.


“흰······ 흰둥이 방에다 가둬 놔. 잘 감시하고.”


얼룩이는 반항할 기운을 소진한 것인지, 간수장을 노려보면서도 순순히 옥방으로 끌려갔다. 절그럭절그럭 족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때쯤, 간수장이 다른 간수를 불렀다.


“소우를 불러와라.”


간수장의 부름을 받고 온 소우는 꾸벅 인사를 한 뒤, 간수장이 내준 자리에 앉았다. 간수장이 말했다.


“봤냐?”


“새로 온 죄수 말입니까?”


“너도 짐승이 올 줄은 몰랐던 거지?”


소우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만.”


“그래, 사람과 수괴가 붙어먹어 새끼를 낳는 게 어디 흔한 일이냐? 공문 한 장 없을 때부터 알아봤지.”


“그럼, 그 짐승도 수명 장군께서······”


“그래.” 하며, 간수장이 혀를 찼다.


“따로 가두셨습니까?”


“한 방에 가두면 서로 물고 뜯고 사달이 날 것이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더라. 어쩔 수 없이 한 방에 두기로 했다. 부하들에게 잘 감시하라고 했다마는······”


“어쩔 수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간수장은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한 방에 넣지 말라고 했을까? 옥방이 이렇게나 많은데······”


소우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간수장은 호응을 얻은 양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정말 저들끼리 싸우다 한 놈이 죽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은 전부 내 몫이 아니냐?”


애초에 새로 온 죄수를 짐승과 한방에 두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소우였다. 꿈에서 그 둘이 서로 다투다 하나가 죽는 것을 봤다는 이유였지만, 소우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던 간수장은 그의 꿈만으로도 근거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 근거는 이전부터 쌓여온 거학을 향한 불만에 더욱 불을 지폈고, 불길은 의심이라는 형태로 번져 나갔다.


“뭔가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


“무슨 속셈일까요?”


“거학 그놈이 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 괜한 꼬투리를 잡아서 날 골탕 먹일 속셈인 거야.”


“참 간사한 자로군요.”


간수장의 마음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그래! 너도 그놈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니 잘 알겠구나. 간사하기만 하냐? 안하무인에 무식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 여기 갇혀 있는 죄인들보다도 못한 놈이야. 여기 있는 놈 중에는 그래도 한때는 고관대작으로 위세를 떨치며 천하를 호령하던 자들도 있지만, 저놈은 근본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잡놈이지!”


그렇게 한바탕 열불을 토하며 성을 내던 간수장은 한결 속이 시원해진 모양인지 누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됐다. 어떻게든 네 말대로 해보려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걱정하지 마십쇼.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본래, 흉한 일과 길한 일은 번갈아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간수장은 이제 소우가 꿈을 꾸지 않는데도,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곧이 믿을 기세였다. 마음이 가벼워진 간수장은 소우를 몸소 옥방까지 바래다주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


간수장은 소우를 옥방에 들여놓기 전 한마디 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이미 베풀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맥은 소우의 겸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간수장이 자리를 뜨자마자 소우 옆에 바짝 붙어서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야, 필요한 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말해야지. 아니, 이렇게 꽉 막힌 놈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지?”


소우는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다행히도 간수장은 소우보다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우에게 간수들을 수시로 보내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 매번 확인하는 것은 물론, 소우가 요구하지 않는 것들까지 알아서 옥방에 넣어 주었다.


어떤 날은 맥이 간수장이 소우에게 준 이불을 온몸에 두르고서 콧노래를 불렀다.


“될 놈은 된다고, 옥방에서도 팔자 핀 놈은 처음 본다.”


“팔자는 소우가 아니라 네가 폈지.”


홍우가 보기에 재주는 소우가 부리고 돈은 맥이 버는 것 같았지만, 소우는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맥이 옆구리를 찌를 때마다 순순히 간수장에게 맥의 요구를 대신 전달하기까지 했다.


그래봤자, 맥이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고기와 술 조금이었다.


“그저 먹고 마시는 것밖에 모르지. 차라리 서책을 달라고 하든가.”


그렇다고 홍우는 덕 보는 것이 없냐면, 그도 소우를 통해 간수자에게 이것 저것을 요구했다. 그나마 그의 요구는 고상한 편이었는데, 대체로 읽을 거리나 가족들에게 줄 거라며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쓸 종이와 필기구 같은 것들이었다.


“술이나 빚는 놈이 무슨······ 글자 몇 개 찌끄리는 것 가지고 잘난 척하기는······”


홍우와 맥은 하나부터 열까지 들어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소우가 오기 전에도 그들은 시답잖은 일로 서로에게 시비를 걸다가 결국에는 주먹다짐까지 하기 일쑤였다.


맥은 산중을 쏘다니며 거추장스러운 것마다 들이받고, 먹을 것이 보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입에 쑤셔 넣고 보는 멧돼지 같은 사람이라면, 홍우는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목을 길게 빼고서 우아하게 물고기를 한 마리로 배를 채운 뒤 하늘로 날아가는 왜가리 같은 사람이었다.


‘멧돼지든 왜가리든 짐승은 짐승이지.’


소우에게는 우악스러운 맥을 괄시하는 홍우나, 그런 홍우를 유난스럽다고 씹어대는 맥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면, 한 사람씩 번갈아서 소우를 깨워 길몽을 꾸거든 알려 달라고 졸라댔다. 그들은 어느 날은 어르고 달래는 말로, 또 어느 날은 다그치고 물아치는 말로 소우를 괴롭혔다.


그러나 소우는 그들에게 어떤 꿈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직 이렇다 할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설령 꿈을 꿨더라도 쉽게 발설할 생각은 없었다.


살인자로 취급받으며 기약 없는 자유를 갈망하는 이 암흑의 굴속에서 소우가 가진 무기라고는 오로지 꿈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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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4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4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4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4 0 12쪽
48 24.03.01 4 0 12쪽
»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4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4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4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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