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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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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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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696

작성
24.03.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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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간수장이 열과 성을 다해 부하들을 독려한 덕에 흰둥이와 얼룩이가 서로에게 물리고 뜯기는 일은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저놈 저거 왜 저래? 털이 더 빠진 것 같은데? 싸움 난 거 아냐?”


“저희가 밤새도록 지켜봤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저것들 코가 터지기라도 하면 너희 코라도 떼어서 붙여놓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간수장이 유난스럽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간수들은 없을 것이다.


“괜히 소우 놈이 속을 들쑤셔 놔서 저래.”


“내 말이 그 말이다. 흰둥이를 그렇게 죽어라 팰 때는 아무 소리도 않더니······”


그러나 그들의 불평이 소우를 향하는 일은 없었다. 소우는 간수장에게 그러하듯 간수들에게도 깍듯했다.


“올해 우리 누이가 시집을 가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사돈 집안이 수상쩍더라고. 말로는 풍주에서 제일 비싼 예물을 해다 바칠 거라는데, 진작에 집안이 쫄딱 망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이제 와서 결혼을 무를 수도 없고 말이야.”


“그럼 그냥 결혼시키려고?”


“아니, 그래서 계속 고민하던 차에 소우가 결혼을 물리라고 딱 말해주더라고. 그 집안 쌀독이 동이 나는 꿈을 꿨다는데, 참 신통하지. 얼마 안 가서 정말로 신랑 될 놈이 봉두난발하고 와서 아버지가 도박 빚을 진 바람에 예물 마련할 돈이 없다고 하잖아.”


소우가 간수들에게 간섭하는 방법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누가 한밤중 소우를 몰래 찾아와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영몽을 꿔 달라고 부탁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소우는 그때마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꿈인지라. 대신 꿈을 꾸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대답으로 거절했다.


처음에는 간수마다 소우가 간수장의 총애를 등에 업고 비싸게 군다며 불평했지만, 소우는 꼬박꼬박 약속을 지켰다. 꿈은 늘 임의로 그를 찾아왔고, 따라서 그 혜택을 받는 간수 역시 임의로 정해졌지만, 간수들은 도리어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우는 죄수들의 꿈만큼은 꾸지 않았다. 꾸지 않은 것인지, 꾸지 못한 것인지 소우가 아니고서야 알 턱이 있겠냐마는, 어쨌든 소우를 향한 죄수들의 불만은 점차 적개심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 말이라도 되는 대로 해.”


그것이 맥의 조언이었다. 소우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죠.”


“야, 이거 봐라. 사람 죽인 놈이 할 소리냐, 이게?”


맥은 걸핏하면 소우가 살인죄를 저질렀음을 걸고넘어지며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소우가 그 시비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홍우의 성질머리 덕분이었다.


“역모를 저지른 주제에 말이 많다.”


“누명이라니까!”


“누명은 내가 누명을 쓴 거지! 네놈은 평소 행실만 봐도 역모를 저지르고도 남을 놈이야!”


“젠장할, 난 그릇에 국을 옮겨 담았을 뿐이야! 그릇에 독을 바른 년이 육시랄 년이지, 왜 나까지 잡아 가두냐고!”


황제의 상에 올릴 국그릇에 독을 바른 혐의를 받은 궁녀는 진작에 사형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정말 맥의 원대로 육시까지 당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 그릇에 국을 담은 맥은 아직 살아있었고, 그것이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희망을 붙잡는 날이 길어질수록 그렇지 않아도 가느다란 희망은 이제 실낱이 아니라, 바람 줄기만큼이나 더욱 희미해졌다. 그럴수록 또한 맥의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소우 저놈, 아주 영악한 놈이야. 꾸지도 않는 꿈 얘기를 하면서 똥구멍을 살살 닦아주니 누군들 안 좋아해? 게다가, 저놈 얼굴 좀 봐라. 이제 좀 살만해졌다고 얼굴에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처음 봤을 때는 몰골이 하도 사나워서 효부인이 왜 저딴 놈한테 홀렸나 했는데, 응? 이제 보니까 웬만한 기생보다도 볼만하잖아. 그, 그 날개도 아주 볼만해. 아주 밤에는 눈이 부셔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넨장 할 것, 다 뽑아 버려야지.”


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우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홍우에게 그에 관한 험담을 늘어놨다.


“날 붙잡고 할 게 아니라, 저놈한테 직접 말해. 코 앞에 두고 이게 뭔 웃기지도 않는 짓이야?”


언제부터인가 소우에게 완전히 신경이 쏠려버린 맥은 이제 홍우는 시비 대상에도 끼워주지 않고, 종일 소우만 씹어댔다. 그러면서도, 홍우의 말처럼 소우를 직접 상대하는 일은 꺼렸다.

홍우가 생각하기에 맥은 말로는 소우의 꿈을 헛것으로 취급할지언정, 실은 누구보다 소우를 영험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괜히 답답한 마음에 그러는 거야. 너한테 시비를 걸자니, 괜히 재수 없어질까 봐 무서워서 나를 빌려서 화풀이는 하는 거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꿈쟁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홍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홍우는 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얌전하고 예의 바른 소우가 마음에 들었기에, 소우가 꿈을 꿔주지 못한 데도 큰 불만은 없었다.


맥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진한 홍우는 언젠가 소우가 길몽을 꾸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누명을 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역모의 주범이 누굽니까?”


모두가 잠든 밤, 맥이 코골이와 잠꼬대를 번갈아 해대는 통에 오던 잠도 달아나 그저 맥없이 앉아있을 때였다.


“뭐라고?”


소우가 홍우의 말을 알아들었음에도 되물은 이유는, 이제껏 소우가 홍우의 누명에 관심을 가진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모의 주범이 누구냐고 여쭸습니다.”


“그자는······”


하고 은연중에 입을 연 홍우는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는 소우를 옥방 구석으로 끌고 가 앉았다.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자는 공의란이란 자인데, 음··· 황명을 대신 받아 적고 전달하는 일을 맡은 자란다.”


홍우는 주억거리는 소우의 고갯짓만으로도 힘을 얻었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내뱉었다.


“공의란이 바로 나를 황성으로 데려간 자야. 원래는 아버지께서 가셔야 했지만, 노환으로 몸이 성치 않으신지라 내가 대신 가겠다고 했지. 사실, 그 일로 말이 많았어. 과연 아들이 아버지의 몫을 할 수 있겠냐는 거였지. 난 그때까지도 아버지께 배우는 처지였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조장을 이끌 능력은 아직 부족했으니까.


나도 반박할 말이 없었어. 그래서 공의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그자가 한사코 반대하면서 무슨 수를 쓰든 나를 폐하 곁에 두겠다고 하는 거야.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저 과분하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런데 그게 빌미가 되어서 공의란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 거다. 공의란이 관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날 주사(酒師)로 앉힌 이유가 내 손을 빌려 황제를 독살하기 위해서였다는 거지. 맹세코 나는 그자의 사특한 계획에 조금도 가담한 적이 없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폐하께 아뢨을 거야.”


“그간 이만저만 마음고생 하신 게 아니겠습니다.”


“말도 못 한다.”


홍우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벌게진 눈으로 말했다. 그 모습이 꼭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역모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다. 처자식은 모두 종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얼마 되지도 않은 가산과 주조장은 몰수됐지.”


“공의란 그자는요?”


“그자는 진작에 참형당했다. 끝까지 내 무고함을 밝히지도 않고 말이야!”


홍우는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참았다. 그러더니 소우의 손을 부여잡았다.


“나는 꼭 여기서 나가야 한다. 지아비 잘못 만난 죄로 고초를 당하는 처자식들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소우는 제 손을 잡은 채 부르르 떠는 홍우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때,


“소우.”


간수가 그를 불렀다. 깜짝 놀란 홍우가 재빨리 눕는 시늉을 했지만, 간수는 신경 쓰지 않고 소우만 찾았다. 홍우는 힐끗 소우를 쳐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평온한 소우의 눈빛이 온전히 보였다.


소우는 오늘이 가기 전 간수가 자기를 찾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꿈을 꾼 덕이 아니라, 매일 내려오던 보약이 오늘은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간수는 소우를 이끌고 감옥 끝, 고문실로 데려갔다.


간수는 아무 말이 없었고, 잠든 죄수들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거친 숨소리와 이상한 울음소리, 그리고 족쇄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우도, 간수도 그것이 짐승들의 소리임을 알았다.


고문실 문을 연 간수가 저도 모르게 “엇.” 하고 놀랐다. 백곡이 문 앞에 서서 소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백곡을 쳐다본 소우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보시지요.”


백곡이 간수에게 말하자, 간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소우가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는데 백곡이 그의 손을 붙잡고는 던지듯 고문실 안으로 휙 밀어 넣었다.

용케 넘어지지 않는 소우를 보고 거학이 낄낄 웃었다.


“신수가 훤해졌다?”


백곡은 소우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두 팔을 의자 팔걸이에 묶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 의자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건 도련님의 자비다. 그래도 널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도련님의 은혜다.”


그녀는 소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의 턱을 잡고 입에 약을 한 움큼 부어 넣었다. 이어 그녀는 입 안에 바가지로 물을 쏟아부으며 말했다.


“그런데 넌 그 은혜를 감사히 여기기는커녕, 간사한 술수로 간수장의 환심을 사고, 제집 안방처럼 옥방 안에 드러누워서 호사를 누리고 있더구나.”


물이 코로 넘어간 탓에 소우가 연신 기침을 해댔지만, 백곡은 또 어디서 물을 떠 와서는 아예 소우에게 물벼락을 퍼부었다. 소우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대며 발버둥 쳤다.


소우는 순식간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 꼴이 되었다. 거학이 백곡을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물벼락을 맞다 죽은 채로 끌려 나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아주 죽여라, 죽여.”


거학은 백곡에게서 바가지를 빼앗아버렸다. 성이 풀리지 않은 백곡은 소우의 뺨을 몇 차례 올려붙이고는 말했다.


“도련님은 언제 어디서나 널 지켜보고 계신다.”


우크미의 약은 영특하기 짝이 없었다. 얼음장 같은 물벼락을 수십차례나 맞고, 양 볼이 벌겋게 부어오르다 못해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따귀를 맞았는데도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졸음이 소우를 저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소우는 속절없이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 백곡을 쳐다봤다. 눈까지 물에 젖은 탓에 백곡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제는 정말 쓸데없는 꿈을 꿨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다.”




소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끌려간 소우가 또 얼마나 모진 고초를 당할지, 홍우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곧 머지않아 소우는 꿈쟁이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맥의 발길질에 힘없이 굴러다니는 그 산송장 같은 신세로 돌아갈 것이다.


홍우는 그때까지도 쥐고 있던 주먹을 슬쩍 열었다. 거기에는 겹겹이 접힌 작은 종이가 들어있었다. 맥이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홍우는 그를 등지고 누워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는 “放”이라는 아주 작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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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5 0 12쪽
» 24.03.01 5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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