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35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2.07 17:00
조회
4
추천
0
글자
12쪽

소래와 융의 사정

DUMMY

소우는 홀린 듯 구멍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구멍 안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야!”


융이 그를 붙잡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구멍 밑으로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그제야 소우는 칼에 찔린 손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야말로 살을 찢는 고통이 삽시간에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소우가 신음하며 손을 붙들자, 소래가 나섰다. 그녀는 제 옷자락을 찢어 급히 붕대를 만들어 소우의 손에 힘껏 감았다.


그렇지 않아도 백지처럼 하얀 소우의 얼굴은 주검처럼 질려버렸다.


“난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런 와중에도 소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뭐? 저 안에 뭐가 있는데.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따져 묻는 융에게 소우가 되물었다.


“당신들은 뭘 찾으려는 겁니까?”


융이 소우의 멱을 잡았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이 새끼야.”


“나도 몰라요. 그게 뭔지 확인하려는 거예요. 아무튼 확실한 건······ 수씨 집안 저택 지하에 뭐가 있다는 거죠.”


“알아듣게 말해. 말장난하지 말고.”


“난 기억이 없어요. 이름도 부모가 지어준 게 아니고······ 난 고향이 어딘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 밑에 날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융이 버럭 화를 냈다.


“네가 수씨 가문과 무슨 연이 있다고? 저 구멍을 여는 법은 또 어떻게 알았는데? 너 정말 명 도련님과 아무 상관 없이 온 거냐?”


“추명이 그랬잖아. 유족들이 서천강에서 데려와 기억도 없는 소우를 돌봐줬다고. 추명이 거짓말은 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며, 소래가 융에게 속삭였다.


“거짓말은 안 했어도 사실을 다 아는 건 아니겠지.”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소우에게 들리는 말이라고는 추명이니 서천강이니 하는 단어 몇 개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꿈에서 본 것들과 생사를 헤맬 때 만났던 여자에 대해 전부 말하고 싶었지만, 소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오히려 융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여기서 저 둘을 설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여기서 소우가 해야 할 일은 여자를 찾는 것뿐이었다. 애당초 그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그것뿐이었다. 백곡과 거학이 언제 정신을 차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난 갈 겁니다. 원한다면······ 소래 네 오라비도 함께 찾아볼게.”


“잠깐”하며 소래가 앞으로 나서려는데, 융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의 뭘 믿고? 저 밑이 어디로 통하는지 어떻게 알아? 저 길로 도련님에게 가서 우릴 일러바칠지 누가 아냐고!”


소래가 융의 손을 잡았다.


“오빠. 돌아가.”


융이 씩씩대며 대답했다.


“저놈부터 처리하고.”


“오빠라도 돌아가.”


융이 눈을 부릅뜨고 소래를 쳐다봤다. 소래는 어느새 넋을 놓고 구멍을 바라보고 있었다. 융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안 돼.”


“저기에 있을지도 몰라.”


“소래.”


소래가 융을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포기해? 이제부터는 나 혼자서 갈게. 오빠는 돌아가. 여기까지 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융이 소래의 어깨를 붙들었다.


“너 저놈을 어떻게 믿고······!”


“소우를 믿는 게 아니야. 뭐라도 하겠다는 거야. 죽을 각오로 여기까지 왔는걸. 다만 내 고집으로 오빠를 끌고 와 정말 미안할 뿐이야.”


가느다란 소래의 목소리에서 융은 굳은 심지를 느꼈다. 융은 마른세수하더니 누그러진 투로 소우에게 말했다.


“우린 소래의 오라비를 찾으러 왔어. 효부인의 종으로 팔려 갔다가 병으로 죽어버렸지.”


그 말에 소우는 일전에 소래에게 들은 말을 퍼뜩 떠올렸다.


“내가 오기 전에 왔다가 병으로 죽었다는 그 사람이 네 오라비였어?”


소래는 소우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 우리 오빠도 있겠지.”


그러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상이라도 치를 수 있게 시신을 달라고 했는데, 전염병에 걸려 태워버렸다고 했어. 그래서 유골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다른 종들과 함께 태워서 그런 건 없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어. 수씨 가문 집에 팔려 가서 연통 한번 없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니······ 동네 어른들은 효부인에게 잡혀간 남자들은 살아 돌아오는 법이 없다고만 하고······”


융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소래를 대신해 말했다.


“소래에게는 다래 그놈이 유일한 가족이야. 내게도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고. 소래가 다래 그놈을 찾겠다며 혼자 수씨 가문으로 들어간다기에 나도 따라왔지. 그리고 여기 들어와서는 종마다 붙잡고 다래에 관해 물어봤어. 그런데 그놈 얼굴을 본 사람은 있어도 그놈 죽은 모습을 본 사람은 없더군. 시체를 봤다 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더 캐물어 보니, 효부인에게 팔려 갔다 하는 남자들은 다 그렇게 병에 걸려 죽었다더라. 다래까지 10명이 그렇게 죽었다고.”


소우가 소래에게 물었다.


“오라비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소래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 정말 죽었을까······? 죽어도 좋으니 오빠 시신만이라도 찾고 싶어. 하다못해 유품이라도······ 하나뿐인 동생 먹여 살리겠다고 팔려 간 불쌍한 오빠······ 상이라도 치러주고 고향 땅에 묻어줘야지.”


소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기어코 참아냈다. 융이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보다 말했다.


“우리가 다닐 수 있는 곳은 고작해야 농명보뿐이야. 이서보에는 얼씬도 못 해. 그나마 효부인이 죽고 소여가 떠나고 나서는 조서원이라도 마음껏 뒤질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여태 다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못 찾았어.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온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소우를 침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침상 기둥을 붙잡고서 고개만 쭉 내밀고 구멍을 살펴봤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상한 구멍이었다. 그저 끝도 없이 깊은 구멍이라기에는 구멍 안쪽에 자리 잡은 어둠이 마치 수면처럼 일렁거리는 듯도 보이기도 했다.


융은 조심스럽게 구멍 안쪽으로 칼을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칼은 멀쩡했다.


뒤로 물러난 융은 갑자기 이불을 북북 찢기 시작했다. 융의 속셈을 알아챈 소래가 그를 도왔다. 소우도 도우려 했지만, 손이 성하지 못한 탓에 걸리적거리지 말라며 융에게 잔소리만 들었다.


융과 소래는 길게 찢은 이불 홑청을 줄줄이 엮어 길게 이었다. 융은 그 줄을 구멍 밑으로 천천히 내려뜨렸다. 줄이 얼마 남지 않자, 그는 침상 기둥에 줄을 단단히 묶었다.


줄을 잡아당겨 풀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크게 심호흡하고는 줄을 잡고 구멍 안에 한 발씩 차례로 제 몸을 밀어 넣었다. 서늘한 기운이 다리를 감싸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래가 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조심해, 오빠.”


융이 씩, 웃었다.


“도착하면 줄을 잡아당길 테니까 따라 내려와.”


그러고는 구멍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이따금 줄이 팽팽하게 움직이는 것을 제하고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 괜찮아?”


하고 소래가 융을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가 구멍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으려 하자, 소우가 말리고는 대신 제 얼굴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바깥에서 본 것과 다름없는 어둠이었다. 물속에 들어온 듯, 소우의 눈에 어둠의 흐름이 보였다. 어둠은 창백한 푸른 빛을 이따금 발하며 향방 없이 좌우 사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줄이 팽팽하게 연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융!


소우가 외쳤지만 목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먹먹하게 사라졌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줄만 연달아 움직일 따름이었다.


소우가 얼굴을 꺼내자, 소래도 줄의 움직임을 본 듯 긴장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는?”


“모르겠어. 우선 내려가 보는 게 좋겠어.”


하며, 소우가 왼쪽 손목에 줄을 한 바퀴 감았다. 줄은 아무 저항 없이 흔들렸다.


구멍 바깥에 한 발을 걸친 채 소우가 소래에게 말했다.


“신호가 올 때까지는 섣불리 내려오지 마. 너무 오래 걸린다 싶으면······ 속으로 천까지만 세. 그래도 소식 없으면 도방으로 돌아가.”


소래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우는 그제야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정수리까지 어둠 속에 잠기자, 그때까지도 잠잠하던 어둠이 소우의 몸 주변으로 스멀스멀 기어 오지 시작했다.


어둠은 소우의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그의 몸을 옥죄거나 흔들지는 않았다. 어둠은 소우가 줄을 타고 내려가는 내내 그의 곁에 머물렀다. 마치 소우가 하는 일을 구경하는 듯 보였다.


줄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 소우는 고개를 들어 구멍 바깥을 쳐다봤다. 소래의 얼굴이 어둠 너머에서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괜찮아!


소우가 소리쳤지만, 역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우는 별수 없이 다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더 내려갔을까. 아마도 차 한 잔이 채 식기 전, 누군가 소우의 다리를 붙잡았다.


“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외친 소우는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융?”


“소래는?”


융이 아직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소우의 몸을 지지하며 물었다. 바닥에 발을 디딘 소우가 왼쪽 손목에 감긴 줄을 풀며 말했다.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뒤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또 어둠뿐이었다. 줄에 매달려 통과한 어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수면처럼 일렁이지도, 창백한 푸른 빛을 띠며 흐르지도 않고 그저 무겁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융이 줄을 잡고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눈에는 안 보이나? 사방을 벽돌로 막아 놨어. 양옆으로 긴 통로가 뻗어 있고. 여기가 네가 말한 그 지하야?”


“네.”


하며 소우는 융을 쳐다봤다. 노랗다 못해 하얗게 빛나는 눈으로 그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곳에는 일렁이는 어둠뿐, 소래의 얼굴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안 부를 거예요?”


소우가 물었지만, 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두고 가는 것이 소래에게 더 유익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소우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면 아마 늦게라도 우리를 따라나설지 몰라요. 차라리 셋이 함께 움직이는 게 나아요.”


융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러고도 남을 애지. 젠장할······”


융이 줄을 몇 번 잡아당겼다. 그러자 곧 줄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래가 줄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소우는 어둠 속에서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여자의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소래는 융의 도움 없이도 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그녀는 좌우를 휙휙 살펴보고는 물었다.


“어디로 갈까?”


소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냄새.”


“냄새? 무슨 냄새? 냄새가 나?”


소우의 말에 융이 킁킁거렸다. 그러나 그가 맡은 냄새라고는 쾨쾨한 곰팡내뿐이었다. 소래도 마찬가지였다. 셋 중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소우뿐이었다.


소우는 더 설명하지 않고 왼쪽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여자의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명 변경 24.02.02 3 0 -
공지 연재 일정 24.01.12 7 0 -
공지 수정 사항 안내 24.01.07 5 0 -
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4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4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4 0 12쪽
48 24.03.01 4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4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4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