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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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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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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344,696

작성
24.02.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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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DUMMY

청대는 벽에 귀를 댄 채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바닥에 앉아있던 철현이 무심하게 물었다.


“뭐가 들려?”


“아니.”


그러고서도 청대는 한동안 벽에 붙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철현은 그대로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검은 무명천을 몇 겹 뒤집어쓴 듯 어두운 막 너머로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천장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야, 일어나. 누워 있을 때야, 지금이?”


하며, 청대가 철현을 재촉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납도록 크고 시원시원한 눈은 어둠을 만나자, 노란빛을 띄었다. 철현은 신선이 거느린다는 도깨비의 눈이 저럴까 싶었다.


철현은 드러누운 채로 대꾸했다.


“소용없어. 내가 여기 길을 모를 것 같아?”


“죽다 살아나느라 잊어버렸나 보지.”


그 말에 철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청대는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여기서 길을 아는 것 너뿐인데! 생각할수록 괘씸한 놈일세! 살려주겠다는 걸 제 스승 구하겠다고 하도 고집부려서 별수 없이 데려와 줬더니!”


청대가 발까지 굴러가며 성질을 내자 철현은 별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청대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청대는 씩씩대면서도 발 구르기를 멈추고 철현의 말을 기다렸다.


“스승님과 내가 이 집안에서 수장군의 약을 짓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집안의 어른들뿐이야. 그나마도 효부인이 죽었으니 이제 둘뿐이지. 이 집에 이런 지하 통로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스승님과 우리를 제하고는 그 둘뿐이고. 그 말은 아무나 여기를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빙빙 돌지 말고 간단하게 말해.”


철현은 한숨을 터져 나오려는 걸 참고 말을 이었다.


“스승님은 이 통로에 아마도 도술이 걸려있을 것이라 하셨어. 누구든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그게 어떤 도술인지는 몰라. 다만 그게 약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것만 알지. 하지만 난 죽은 사람이 됐으니, 이제는 그 도술이 날 걸러내지 못하는 것 같아.”


“으으으!” 하며 청대가 어금니를 앙다물고 성질을 부리더니 철현에게 물었다.


“그 도술이 뭔데?”


“모른다니까.”


“원래 같았으면 말이야, 약실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 맞지?”


“응.”


철현의 대답을 듣자마자 청대가 재주를 넘었다.


“넌 여기서 수를 세고 있어.”


토끼로 변한 그녀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왔던 길로 돌이켜 뛰어가기 시작했다. 청대는 빨려 들어가듯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철현은 참아왔던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속으로 서른둘쯤 세었을 무렵,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청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얼마나 걸렸어?”


“서른둘까지 셌어.”


그러자 청대가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이번에는 백을 세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청대가 걱정된 철현이 몸을 일으킬 때쯤 청대가 갔던 길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백을 지나고서는 수를 세는 것을 잊어버렸기에 철현은 되는 대로 대답했다.


“백··· 백열둘.”


그러고는 청대에게 물었다.


“더 멀리 가니 뭐 다른 게 있어?”


청대는 대답하지 않고 훌쩍 재주를 넘었다. 철현이 눈을 질끈 감자 청대는 “어차피 어두운 거 제대로 뵈지도 않으면서”하고 투덜거리고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자기 옷을 주워 입었다. 그녀가 말했다.


“다른 거 하나 없어. 아무튼 빙빙 도는 것만은 확실해.”


그러고는 철현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철현이 중얼거렸다.


“죽으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청대가 비웃었다.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나 철현은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이내 무기력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있다 보면 사람을 볼 일은 없지만, 사람이 아닌 것은 간혹 보게 돼. 만약 약을 제때 먹지 않았다면 더 많이 봤겠지.”


그 말에 청대가 저도 모르게 주변을 휙 돌아봤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사람이 아닌 것이 보일 리 없었다.


철현이 말을 이었다.


“수씨 가문에서 저지르는 짓. 그게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필요로 하는지 너도 스승님께 들어서 알지? 그 말은 여기에 억울하게 죽어 원한에 사무친 혼들이 많다는 뜻이야. 개중에는 일찌감치 원한을 풀고 제 갈 길로 가더라마는, 대부분은 이 안을 떠돌며 살아생전 했던 일을 반복하지.”


청대가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에도 있어?”


“몰라. 지금은 약효가 돌아서 내 눈에도 안 보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혼들에게 부탁해 보자.”


‘언제 그 말이 나오나 했다.’


철현은 청대의 말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그것 외에 그가 생각할 만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귀신 보는 팔자를 피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군.’


“조금만 기다려.”


철현은 괜히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청대가 따라서 납작 엎드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철현은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청대의 황금빛 시선을 느끼며 눈을 감아버렸다.


“나도 몰라.”


고깝게 여기는 말투에도 청대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저 이 답답한 굴속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떠서는 웃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래. 피곤할 텐데 잠이라도 자. 내가 눈 부릅뜨고 나쁜 놈들이 해코지 못하도록 지켜줄 테니까.”


철현은 이제 대꾸할 마음도 없는 듯 아예 청대를 등지고 돌아누워 버렸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는 이렇게 물어봐라. ‘생인이면 나오고 귀신이면 물러가라.’”


아버지는 어린 철현의 어깨를 간절히 붙잡고 말했다. 그래서 어린 철현이 묻기를,


“그래서 생인이면요?”


하면은


“멀쩡한 사람을 귀신 취급했다고 성을 내겠지.”


라고, 대답했다.


“귀신이면요?”


또 어린 철현이 이렇게 물으면,


“귀신이면 내가 준 부적을 내밀어라. 그럼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칠 거야.”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린 철현의 품속에는 늘 아버지가 준 부적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린 철현은 단 한 번도 그 부적을 쓴 일이 없었다.


“왜 귀신을 쫓아내요?”


어린 철현이 그렇게 물으면 아버지는 철현을 한 번 꼭 끌어안고는 말했다.


“귀신보다 산 사람이 무섭다고들 하지? 사실은 산 사람만큼 겁이 많은 것도 없다. 그래서 죽은 것과 비슷한 것만 봐도 지레 겁을 먹고 패악하게 구는 거야. 너도 산 사람이지만,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에 한 발씩 걸치고 있었단다. 그래서 산 사람들이 널 무서워하는 거야. 그러니까 죽은 것에서 발을 빼는 연습을 해야 해.”


어린 철현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약초 냄새와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좋을 따름이었다.


어린 철현은 아버지의 말을 자장가 삼아 그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제 말을 다 못 알아듣는 아들을 채근하지 않고 아들이 깊이 잠들기를, 평온함 꿈을 꾸기를 그 작은 몸을 거친 손으로 조용히 토닥였다.


어린 철현은 그런 아버지의 품을 놓칠세라 채 자라지 않은 손으로 아버지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아야야야!”


청대의 비명에 철현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양손으로 한가득 빳빳한 털을 움켜쥐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가 입을 뻐끔거리자, 이번에는 수북한 털이 그의 입속으로 무찔러 들어왔다.


퉷! 뭐야!”


철현은 발버둥을 치며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으나 털 무더기에 온몸이 파묻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아이고······ 깼어?”


청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커다란 호랑이의 얼굴이 철현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우와악! 와아아악!”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러대던 철현은 곧이어 고개를 숙이고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그를 품고 있던 청대는 깔깔 웃으며 그제야 그를 풀어주었다.


청대가 제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철현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청대는 이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나는 네가, 푸흐흐··· 찬 바닥에 누워서, 키힉! 입 돌아갈까 봐 그랬지이이이히히히······”


“고맙다······”


철현의 목소리가 땅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청대는 그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결국, 배를 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사이 수치심을 이기는 데 극적으로 성공한 철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청대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청대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뭐가 좀 보여?”


철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한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 철현은 서두르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아아아ㅇ ㅏㅏ ㅏㅏ······.이윽고 소리가 들렸다. 철현은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빼쭉 내밀었다.


—아아······ ㅇ ㅏ ㅇㅏㅏ ㅏㅏ······.빈 항아리에서 의미 없이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저 먼 어둠 속에서 작은 돌개바람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가까워지기도 했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가자.” 청대가 벌떡 일어났다. “어디야?”


그러나 철현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괜찮을까? 다른 혼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야!”


청대가 철현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헤맸는지 넌 가늠이 되냐? 난 이제 아주 미쳐버릴 지경이야. 뒷간에 가서 일도 보고 싶고! 그리고 네 스승! 이대로 내버려둘 거야?”


“알았어.” 하며 철현이 청대의 손을 떼었다. 청대가 쑤셔 놓은 귀가 쟁쟁 울렸다.


‘정신 나간 여자. 스승님만 구하면 다시는 보지 말자.’


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소리는 철현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더 분명하게, 그리고 더 구슬프게 울었다.




거학은 효부인의 침상 주변을 빙빙 돌았다. 침상 위에는 소우가 연 구멍이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백곡이 그런 그를 꾸중했다.


“정신 사납다. 얌전히 있어.”


거학은 백곡을 무시하고 명에게 말했다.


“명령만 하십쇼! 지금 당장 내려가서 그놈을 낚아채 대령하겠습니다.”


백곡은 구멍 아래까지 늘어뜨린 줄을 잡고는 말했다.


“한 놈이 아닙니다.”


“도련님!”


거학이 재촉하자 명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백곡. 이부자리로 침상을 덮어 구멍을 막아라.”


“예.”


백곡이 이부자리를 찾으러 간 사이 명은 거학에게 명령했다.


“지하로 가서 숨어든 자들을 찾아라. 백곡과 나도 곧 따라가마.”


거학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곧장 효부인의 침소를 나섰다.


명은 멀찍이 서서 눈만 돌려 구멍을 내려다봤다. 구멍 너머에서 어둠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언제든 구멍 밖으로 넘쳐흐를 기세였다.


명은 어둠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다가가지도 않았다. 어둠은 여전히 구멍 속에 있었고, 그는 그 밖에서 어둠을 관망했지만, 어째서인지 명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른 사람처럼. 차가운 물 속에 갑자기 내던져져 온몸이 굳어버린 채 몸이 가라앉지 않도록 발끝으로만 자맥질하는 사람처럼.


잠시 후 백곡이 여분의 이부자리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차분하고도 재빠른 동작으로 침상 위에 요와 이불을 덮고 그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후우······”


명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백곡이 감긴 눈을 뜨고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감고 제 할 일을 마무리했다.


“가시지요.”


백곡의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명이 침소를 나섰다. 그를 따라나서기 전, 백곡은 뒤돌아 침상을 한 번 쳐다봤다. 언제라도 효부인이 잠을 청할 만큼 침소는 깨끗하고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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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4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4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4 0 12쪽
48 24.03.01 4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4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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