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ADA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나라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YADA
작품등록일 :
2023.11.22 15:06
최근연재일 :
2024.04.03 17:0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343
추천수 :
3
글자수 :
344,696

작성
23.11.22 15:21
조회
10
추천
1
글자
13쪽

자장가

DUMMY

소우는 있는 힘껏 골패를 끌어안았다.


불쌍한 인간들은 이 붉은 날개의 광인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유족들은 그런 인간들에게 성을 내며 게으른 소를 보채듯 그들을 결박한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쇠사슬이 철컹철컹하는 소리와 인간들이 비틀거리며 내는 작은 비명에 골패는 아예 펄쩍 뛰기까지 했다.


골패의 괴성과 인간들의 신음, 유족과 교족들의 욕설이 난무했다. 소란은 골패의 광증을 더욱 부추겼고, 결과적으로 상황은 악화하였다.


결국 짜증을 이기지 못한 교족 하나가 골패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일구가 나서지 않았다면, 주먹에 맞는 것은 골패가 아니라 소우였을 것이다.


일구는 그의 주먹을 한 손으로 막은 채 점잖은 표정으로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 사이 소우가 고개를 뒤로 돌이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몸이 불편하십니다.”


그 사이 골패가 잠잠해졌다. 갑작스러운 위협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력이 쇠한 탓이었다.


‘분명 온 동네를 돌아다니셨겠지.’


소우는 골패를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교족은 일구에게 주먹이 붙들린 채 엉거주춤 서서 멀어지는 소우와 골패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뭐라도 한마디 하겠다는 듯 입술을 씰룩댔다.


그러나 소우는 교족의 대꾸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는 골패를 질질 끌고 사람들에게서 떨어졌다. 골패의 두 발이 버둥거리며, 긴 도랑을 만들었다.


교족은 소우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기생오라비 같은 게······”


그를 향해 일구가 말했다.


“이해하시오.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오.”


“당신네 마을에 미친 놈이 있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어.”


교족이 땅에 침을 퉤, 뱉었다.


“근데 저놈은 뭐요? 유족도 아니고, 난 생전 저런 되다 만 날개는 본 적이 없어.”


멀어진 소우는 이제 손톱만큼 작아졌지만, 그 멀리서도 그의 보라색 날개는 선명히 보였다. 일구가 말했다.


“서천강에서 주웠소.”


그 말에 남자는 더 할 말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는 몸을 돌이켰다. 그러나 일구는 한동안 멀어지는 소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걸어서 이각이면 충분한 거리를, 소우와 골패는 반시진이나 걸려 겨우 집에 도착했다. 안뜰을 청소하던 바림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아버지! 서천강에 가지 말라고 제가 몇 번을 말했어요? 왜 또 말을 안 들어서 소우를 힘들게 만들어요? 아버지 찾느라고 소우가 온 동네를 다 쏘다녔다고요! 밥 먹을 때 지난 지가 언제인데, 진짜 이러실 거예요?”


“난 괜찮아. 바람도 쐬고 좋지. 덕분에 상단 구경도 하고······”


소우가 손사래를 치며 바림을 말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주 골패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싹 들이미는 모양새가 코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아니, 정말로 물어뜯겠어······’


소우는 골패의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며 겨우 바림을 뜯어냈다.


“옷이 홀딱 젖으셨잖아. 감기 걸리셔.”


그 말에 바림은 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물에 들어가셨어요? 또?”


인간들에게 달려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골패는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한껏 움츠러들어서 바림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소우는 골패를 데리고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림은 그런 두 사람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픽 내쉬고는 마저 안뜰을 쓸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가도록 바림의 잔소리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밥상머리 앞에서 또 싫은 소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아버지를 묶어둬야 할까 봐.”


깜짝 놀란 소우가 얼른 골패의 눈치를 봤다. 다행히 골패는 바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밥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음식을 입안에 쑤셔 넣고 있었다.


그 우악스러운 모습에 바림의 얼굴에 수심이 더욱 깊어졌다.


“교족들이 적어도 보름은 마을에 있을 텐데······“


소우는 골패가 듣지 못하고 소리 죽여 말했다.


“내가 잘 돌볼게. 오늘 일은 내 실수야. 후발대가 온다는 걸 깜빡했어.”


바림이 소우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네 탓하는 거 아니야. 혈육인 나도 버거운 짐을 어떻게 전부 너에게 맡기니?”


“어쩔 수 없지. 너는 시해 어르신 집에서 잔치 준비를 도와야 하잖아. 그리고······”


소우는 저도 모르게 자기 손을 잡고 있는 바림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바림이 얼른 손을 치웠다. 소우는 그 손을 다시 잡는 대신 빙그레 웃었다.


“혈육은 아니지만 가족이잖아. 그렇지?”


바림은 가만히 있더니 이내 마주 웃었다.


“맞아.”


그녀는 골패의 밥그릇 안에 반찬을 옮겨주며 말했다.


“답답하겠지만 교족들이 돌아갈 때까지는 집 안에 있어 줘. 필요한 건 내가 다 가져다줄게.”


소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골패를 돌아봤다. 얼굴이며, 턱 아래 옷이며, 음식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 모습이 마치 가축 같았다.


그러나 이 사리 분별 못하고, 알아보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뿐인 딸밖에 없는 광인은 소우의 목숨을 건진 생명의 은인이다.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골패는 늘 그렇듯 바림의 말을 어기고 서천강을 거닐고 있었고, 그러다 물살에 밀려온 어느 요괴 소년을 발견한 것이다.


사리 분별 못하는 골패는 사람 목숨이 귀한 줄도 몰랐지만 무슨 변덕이었는지, 그는 소우의 다리를 들고 짐짝처럼 그를 질질 끌며 서천강변을 돌아다녔다. 그 꼴을 바림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소우는 어느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거나, 멍청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바림은 그를 들쳐업고 마을로 향했다.


바림과 골패가 머무는 단조마을은 유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이다. 유도는 물론, 마계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거상이 살고 있고, 그 덕에 온 천지의 희귀한 물건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그런 마을 주민들도 소우의 낯선 모습에는 난색을 보였다.


그들은 바림에게 소우를 상인에게 값비싸게 받고 팔라고 조언했다. 다른 가족 없이 혼자서 미치광이 아버지를 돌보는 바림을 걱정하여 한 말이었지만, 웬일인지 바림은 그들의 조언을 물리쳤다.


바림은 소우를 살뜰히 보살폈다. 강물에 젖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몸을 이불 몇 겹으로 둘둘 싸매고 불을 땠으며, 때마다 따뜻하게 데운 약을 먹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키며, 이마에 땀방울이라도 맺힐라치면 따뜻한 헝겊으로 닦아주었다.


제 자식을 돌보는 정성으로 간호한 덕에, 소우는 기력을 찾을 수 있었다.


소우는 빚진 목숨값을 갚기 위해 어느 집의 종이라도 될 생각이었지만, 바림은 그를 기꺼이 자기 집으로 들였다.


이웃들은 그런대로 잘 되었다고 말했다. 어린 여자 혼자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를 건사하며 평생 남자도 모르고 살 팔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라도 집안에 볕이 든 것이 아니겠냐며.


바림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소우는 말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우는 바림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무슨 염치로 그녀에게 진심을 묻는단 말인가. 바림은 그저 순전한 동정심으로 소우를 들였을 것이다.


“내가 못 살아, 정말.”


온 상을 침과 씹다 뱉은 음식물로 뒤덮어버리는 골패를 참지 못한 바림은 결국,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손수 밥술을 떠먹였다.


바림은 선한 사람이다.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없는 형편에도 기꺼이 남에게 손을 내민다.


소우는 바람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녀가 그에게 베풀어준 마음은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다.




“아저씨!”


소우는 서천강변을 뛰며 골패를 불렀다. 골패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했다. 강바람을 타고 소우의 주변을 귀신처럼 맴돌며 그를 약 올렸다.


그러나 사방 천지 어느 곳에도 골패는 없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강변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소우는 그 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그러다 지쳐버린 소우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는 고개를 돌려 강물을 바라봤다. 강물이 넘실거리며 소우의 발끝까지 기어들어 왔다.


소우는 뒷걸음질치고는 다시 골패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소우를 괴롭히는 골패의 목소리 뒤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소우는 이제 거의 엎드려 기다시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그의 등 위에 업혀 있기라도 한 듯, 그의 등은 죽어가는 노인처럼 구부정했다.


아니, 정말로 누군가 그의 등에 업혀 있었다. 골패가 노래를 부르며 두 발로 그의 다리를 채찍질했다.


“달려라, 달려라!”


소우는 개처럼 네발로 기어야 했다.


겨우 도착한 곳에는 인간 노예들이 있었다. 쇠사슬로 손발이 결박된 그들이 뒤뚱거리며 줄지어 걷고 있었다.


유족들은 고함치며 불쌍한 노예들에게 주먹질을 해댔고, 교족들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헉헉거리며 웃었다.


골패는 없었다. 그는 어느새 소우의 등에서 내려와 저 멀리 서천강에서 멱을 감으며 놀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골패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소우의 귓가에 쟁쟁했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바람이 분다, 강이 운다.

비가 온다, 강이 넘친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그것은 인간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 앙상하게 마른 시체 같은 몸들이 소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노래했다.


가던 걸음도 멈추고, 그들은 소우를 향해 몸을 돌이켰다. 소우를 둘러싸고 있었다.


골패는 물장구를 치며 멱을 감고, 교족들은 침을 뚝뚝 흘리며 웃는다. 유족들은 인간 노예의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고, 인간들은 피를 흘리며 소우를 향해 노래했다.


소우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노랫소리는 여전했다.


골패가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마치 아기를 재우는 어머니처럼, 골패는 눈을 내리깔고 소우 옆에 가지런히 무릎을 모으고 앉아 그의 가슴을 어루만지듯 두드렸다.


“아저, 아저씨······”


소우는 잠긴 목소리로 골패를 불렀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은 탓인지 골패는 대꾸하지 않았다. 소우는 몸을 반쯤 일으켰지만 어쩐지 골패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자장가 불러 주시는 거예요?”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소우가 웃었다. 골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저씨.”


‘덕분에 잠이 다 깼네요.’ 물론,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골패를 달래 일으켜 세웠다.


그를 침상에 눕히고 나서야 자장가가 멈췄다. 하지만 골패 역시 진작에 잠이 깬 듯 눈을 감지 못했다.


소우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그의 가슴을 가만히 두드리며.


“아가야, 아가야. 잘도 잔다, 아가야.”




바림은 다음 날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아직 해가 채 뜨지도 않아 어두컴컴한 시간, 바림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소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부릅뜨고 바림을 배웅했다. 바림은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다녀올게.”


“아저씨는 걱정하지 마.”


그 말 한마디에 바림의 미소가 굳어졌다.


“대신 내가 맛있는 거 잔뜩 얻어 올게.”


소우가 그녀 대신 웃었다.


바림이 집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떠올랐다. 골패는 누가 깨우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서는 바림을 찾기 시작했다.


“바림아! 바림아!”


소우는 바림이 미리 차려놓은 상 앞에 골패를 앉혔다. 배라도 채워놓으면 얌전해질까 싶어서였다.


골패는 밥을 먹으면서도 눈을 좌우 사방으로 힐끗대며 바림을 찾았다. 소우는 자꾸 맨손으로 밥을 먹으려는 골패의 손에 억지로 숟가락을 쥐여주며 말했다.


“바림은 일하러 갔어요. 저녁에 맛있는 거 잔뜩 가지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계세요.”


골패는 갑자기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물었다.


“······없어?”


“시해 어르신 집에 갔어요. 거기서 잔치를 열 거래요. 오랜만에 멀리서 큰돈을 벌어왔잖아요. 손님들도 많이 왔고요. 어제 서천강에서 봤던 교족 사람들 기억하시죠?”


골패는 소우의 말을 정말로 알아듣기라도 한 듯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개처럼 짖으며 바림을 찾기 시작했다. 소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골패가 집어던진 숟가락을 다시 골패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46 g548
    작성일
    23.12.06 16:20
    No. 1

    글이좀 쌓이면 그때와서 봐야겠네요.... 본곳까지 좋아요하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동쪽의 나라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명 변경 24.02.02 3 0 -
공지 연재 일정 24.01.12 7 0 -
공지 수정 사항 안내 24.01.07 6 0 -
62 변하지 마 24.04.03 2 0 11쪽
61 내 꿈 24.04.01 5 0 12쪽
60 누명 24.03.29 5 0 12쪽
59 딱 하나만 24.03.27 4 0 12쪽
58 얼룩이 24.03.25 4 0 12쪽
57 괜찮아 24.03.22 4 0 12쪽
56 백곡의 심기(2) 24.03.20 5 0 13쪽
55 백곡의 심기(1) 24.03.18 5 0 12쪽
54 이서의 꿈(2) 24.03.15 5 0 12쪽
53 이서의 꿈(1) 24.03.13 4 0 11쪽
52 재회 24.03.11 4 0 12쪽
51 수명의 판 24.03.08 4 0 13쪽
50 죽은 듯이 24.03.06 4 0 12쪽
49 죽지도 못하고 24.03.04 5 0 12쪽
48 24.03.01 5 0 12쪽
47 유일한 무기 24.02.28 5 0 12쪽
46 다시 꿈 24.02.26 4 0 11쪽
45 꿈을 꾸는 죄인 24.02.23 5 0 13쪽
44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24.02.21 5 0 13쪽
43 남 걱정할 처지냐? 24.02.19 4 0 13쪽
42 분수대로, 얌전 24.02.16 4 0 12쪽
41 결의 24.02.14 6 0 13쪽
40 정신 나간 여자, 귀신 보는 남자 24.02.12 5 0 12쪽
39 각자의 일념 24.02.09 4 0 12쪽
38 소래와 융의 사정 24.02.07 5 0 12쪽
37 효부인의 침소 24.02.05 5 0 12쪽
36 추명의 사정 24.02.02 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