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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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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87,164

작성
20.07.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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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23쪽

2장 61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에서 시발만이 남았다

DUMMY

하운의 방문이후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만 갔다. 제각기 목적을 이루었으니, 그에 맞춘 여러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발할 때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제 시간은 평소와는 몇 배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조등에게 협상의 내용을 전하고, 조조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더하고.


기막힌 입장의 변경이기는 하나 그래도 자신의 만들어놓은 협상에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받아들인 조조와 긍정적인 답신을 보낸 조등의 서찰을 읽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죽하면 조등의 보낸 서찰의 마지막에는 진짜 조가의 사람이 될 생각이 없느냐는 문구까지 곁들여져 있어 잠시 얼굴이 찌푸려지긴 하였지만, 그래도 저들이 저러한 반응을 보일 정도면 제가 정녕 조가를 위한 이득을 주긴 주었던 모양이다.


허나 평안하게 잘 처리가 끝이 난 조가와는 달리, 황문의 상황은 때 아닌 조가의 영향으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정국으로 빠져들었다.


조가에서 뽑아낸 칼이 그 영향을 발휘하니 마치 양 떼 몰이를 하듯, 연주와 예주 그리고 하동 등지에서 상경한 노 환관들의 인편과 서찰 그리고 재물이 황문의 안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곽승이 따로 서찰을 보내 자문을 구할 정도면 아주 대단한가 봐?”


“괜히 조가가 조가인 것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은퇴를 했던 노 환관들의 가치가 생각보다 크게 주효한 듯 싶습니다.”


“하긴 이쪽도 탁황의 이들을 상대할 때 노 환관들을 우선적으로 노렸으니까.”


과거를 추억하며 허유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생각보다 조등의 대처가 빠르고 감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들 모두 조가를 딱히 입에 담지도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다 같은 중도파벌에 속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황문의 통합을 위한 결정이라며 그 명분을 아주 제대로 세웠던 것이니까.


허나 사람이란 것이 일이 너무 잘 풀려도 의심을 같기 마련이고, 또 드러난 진실과 숨은 진실이 다르듯 다른 이도 아닌 하운에게로 탁황의 핵심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것도 별 다른 재물과 인력이 소모되기도 전에 하나둘 그에 반응하던 이들이 이제는 큼지막한 무리를 이루며 하나둘 하운의 밑에 복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장양이 단규와 조충을 움직여 하운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은근슬쩍 자신들 또한 하운에게 온전히 맡겨두었던 일을 하나둘씩 되돌려 받기를 제안했다.


허나 이러한 제안을 받은 하운은 뭉그적거리며 이를 거부하였고, 지난 날 약속한대로 대놓고 제 휘하에 새로운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그 움직임을 아주 노골화 하여 움직이니, 장양을 비롯한 이들은 급작스레 변절한 것과 다름이 없는 하운에 놀라 급히 대책을 마련하며 제 시선들을 황문 쪽으로 결집시키기 시작했다.


“허나 이미 늦었지.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고 봉서는 여전히 옥사에 있고. 또 어찌 동조한 것인지 황문감인 건석이 그 신병을 장양 측에 넘길 것 같으면서도 넘기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곽승이 언질을 준 것 아니겠습니까?”


“허면 곽승은 그 언질을.......”


“조가를 통해 받았겠지요.”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행동은 가히 치를 떨게 만들 일이다.


허나 상대가 이를 배신이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또한 배신이 아니게 된다.


장양의 영향력 아래 반독립 상태로 들기를 청했던 곽승.


또 그런 곽승과 애초부터 연수를 맺고 장양을 비롯한 이들의 수족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는 건석.


두 사람 모두 목적이 있어 장양을 이용할 뿐 딱히 그에 대한 충성으로 그를 추종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들 얽히고 설켜있다. 허나 그 실타래가 마주하여 엮이는 연줄마냥 딱히 부딪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쉽사리 보이지는 않는 법이지. 하늘에 떠있는 연은 보일지언정 그 연에 달린 연줄을 푸른 하늘 속에 녹아들어 쉬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사람이 연통을 쥐고 그 연통에 매달린 연줄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실을 봐야 연줄이 보이지, 그저 하늘 위에 떠 있는 연만 보고서는 그 아래에 자리한 연줄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거미줄마냥 습기가 있거나 가까이서 자세히 봐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연줄이다.


“조가에서 연을 제대로 띄웠다. 딱히 풍쟁(風箏)을 벌이지 않아도 그들이 날린 연들의 움직임으로 황문이 이리저리 쏠리고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태평도뿐이겠지.”


“사실 그 부분의 의아했습니다. 주공께선 딱히 별다른 목적이나 노림수 없이 그냥 그들을 넘겨주신 듯 보였으니까요.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를 알지 못하는데 대저 그 연유를 알 수 있겠나이까?”


허유는 제 행동에 대한 의문을 지적했다.


아니, 사실 이는 허유 뿐 아니라 황충과 과희 또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주장했던 바도 그렇고 제 주인이 원하는 바도 그러했다.


헌데 막상 저들을 취하고 난 이후, 딱히 손을 댄 것도 없고, 뜯어낸 것도 없이 그대로 넘겨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것이 꽤나 의문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어차피 양겸의 검을 지녔다는 그 복사라 하는 놈은 놓쳤질 않느냐? 또한 들이친 근거지에 딱히 저들을 옥죌만한 증좌가 자리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허나 위험한 것을 건드리고 들쑤실 때에는 필히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폐해에 대해서도 걱정을 해야 하는 법이다. 아직은 이를 견뎌낼 힘이 없지.”


“저희가 힘이 없다니요?”


“남양이라면 모를까? 도성에 자리한 세력들을 기준으로 하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황건적을 들쑤신 것도, 그러한 이들을 들쑤셔 저들에게 주기적으로 뇌물을 받아오며 저들의 포교를 용인한 것도.


막상 저들과 연수를 벌인 것이 들켜도 그것을 잡아떼며 저를 공격한 이들에게 그 누명을 뒤집어씌울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실 역사에서 영제와 동 태후를 비롯한 환관의 이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허나 작금의 저는 이런저런 곳들에 연달아 줄을 대고 있을 뿐, 그저 그런 시어사 직에 오른 인사에 불과하다.


정치적 세력도 없고 추종자들도 없으며 딱히 쥐고자하는 권력조차도 없다는 말이다.


“주공! 신 과희입니다.”


허유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과희가 저를 찾아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니 그는 품안에 꽤 많은 죽간과 문서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이게 다 무엇인가, 과 후배?”


“하 상시가 보낸 내관이 주공께 전해달란 것이었습니다. 헌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다수가 악질이나 다름없는 범법자들의 신상과 사건이 기록된 것들인지라......”


“시어사가 하는 일이 다 그런 일이긴 하네만. 왜 이리 많은 겐가? 어디보자, 이놈은 소금이나 팔던 놈이 관리도 모자라 제 동료인 다른 소금장수들을 죽인 놈이고, 이놈은 산적질 하다 현승 일행을 습격한 놈이고, 여기 이놈은 관리였던 놈이 다른 관원과 관병들을 이족에게 팔아넘겨......, 음?”


허유는 과희가 들고 오는 것들이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벌써 쟁반을 받아들고는 이를 상 위에 두고 하나둘 꺼내 펼쳐보고 있었다.


물론, 저야 하운에게 범법자를 소개해 달란 말을 하긴 했지만 이리 빨리 그가 사람을 보내올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그 신용이 괜찮은 인사가 아닌가?


“하운이 약속했던 것이다. 내 자리는 잡고 가치를 불려야 했기에 그쪽이 지원해준 것들이지.”


야견은 그답지 않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듯 과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허나 이를 지켜본 허유는 맞장구를 해주기는커녕 그 안색이 굳어진 상태로 조용히 저를 찾았을 뿐이다.


“저......, 주공.”


“왜 그러느냐?”


“지금 그것이 중한 것이 아닙니다.”


“뭐?”


“여, 여기에 이름이 오른 이들 전부가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자리한 이들입니다, 그것도 관리조차도 우습게 알고 죽여 대는 진짜 흉악한 놈들뿐입니다.”


촤라라락-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과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제 앞에 놓인 죽간과 문서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연주, 기주, 병주, 유주......., 거진 다수가 중원을 넘어 북변(北邊)에 다다른 이들입니다. 거기다 기록된 이들의 경우 다수가 군현 관리들을 납치하거나 습격한 경험이 있거나 그런 이들과 연이 닿아있는 부정한 관리들인데 이건 시어사가 아닌 그 경험이 풍부한 독우나 어사가 해야 할 일들이 아닙니까?”


허유에 이어 과희의 반응마저 심상치 않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야견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가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에 앞서 이미 세상은 저를 가만히 두지 않으려는 듯 또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저벅이는 발소리와 함께 제가 자리한 전각의 문이 활짝 열리며 들어온 것은 다름이 아닌 조조였다.


“조 공자?”


“오는 길로 들었네. 새로이 특임어사도 겸하게 된다지? 뭐, 시어사나 어사나 딱히 하는 일이 다른 것은 없으나 그래도 도성에서만 노는 것은 아니질 않은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조가를 대변해 하운과 체결한 약속. 그것으로 본가가 이득을 얻었기에 내 이리 그대를 찾을 게야. 자, 우선은 여기 특임어사도 겸한다는 임명장.”


조조는 별다를 바 없이 도장이 찍힌 종이 하나를 제게 던져주었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야견의 얼굴이 굳어졌음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변방이라 해봤자 뭐 얼마나 멀까 하겠지만 하운은 이참에 확실히 자네를 정리하려 했던 모양이야. 한 1, 2년 정도는 아예 도성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지. 거기다 여차하면 변방에서 도적을 비롯한 범법자들의 습격을 받아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터이니 그리되면 더 좋은 일이고.”


“조가의 끄나풀을 확실히 지우겠다는 겁니까?”


“끄나풀이라 하기엔 제법 영향력이 크니 조가가 새로이 세운 대들보 정도로 하세. 내가 하나, 자네가 하나. 뭐 그 정도면 지붕 쌓을 준비는 끝난 것 아니겠나? 그렇게 새로운 지붕이 세워지면 그만큼의 그림자 또한 드리워질 테니 제 영역을 빼앗긴 햇살은 이를 싫어하겠지. 달빛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된 야견은 그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운이 되었건 조가가 되었건 제게 어사의 직을 주었을 것이고 그 배경에는 하운이 저를 외방으로 돌려 도성에서 딱히 힘이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려 했을 것이다.


다만 이해가 가는 와중에도 열불이 나는 것은 생각보다 그 질이 좋지 않은 흉악한 범죄자들이 다수가 껴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딱히 태평도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로 말이다.


“우선 연수를 맺고 이쪽을 건들지 않는다 한들, 이쪽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셈이야. 이 맹덕을 비호하기 위해 보냄과 동시에 조가의 영향력을 넓힐 방패를 변방으로 치워버렸으니 이제는 맨몸뚱이인 이 맹덕 혼자서 조가의 영향력을 넓히고 다가오는 적들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참으로 훌륭한 노림수지. 자네를 치워버림으로 조가가 힘을 키울 시간을 늦췄고, 내가 여러 곳에서 설치지 못하게 나를 발가벗겼어. 앞에선 방패라 했지만 아무래도 갑주가 더 맞는 표현이겠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여유가 넘쳐보였다.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내 동맹이, 내 동료가 저 하나 살자고 내 갑주를 벗기고 내 방패를 빼앗으면 또 어떠한가? 정치가 벌어지는 곳은 전장일세, 정치는 전쟁이지. 전쟁 통에 시체 속으로 기어들어가 죽은 척하는 이들도 널렸고, 적군의 갑주를 걸치고 배신하는 이들은 널렸어. 그래도 나를 팔지 않고 내 칼도 빼앗지 않는데 이 정도라면 딱히 배신이라 해서 죽여줄 이유는 되지 못하지. 거기다 동맹에게 죄를 묻는 것은 전쟁이 끝난 다음이 되어야지, 그전에 이를 따지면 와해가 되는 법임은 자네 정도 되는 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 아니겠는가?”


“소인은 그리 대단한 자가 아닙니다.”


“차라리 개가 풀을 먹겠네. 내 말했었지? 이 옆의 자원이 그대를 따르는 것을 비롯해 나도, 내 형님도 또 할아버님마저도 그대를 좋게 보고 신경을 쓰는 것은 그대가 범부가 아니기 때문이야.”


허유가 제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조조는 야견을 추켜세워 주었다.


뭐 자신이야 그보다 다른 곳에 할 말이 있었지만.


해서 간간히 개가 풀을 뜯어먹는 일이 있다는 말이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조조는 턱하니 자신이 근무를 하는 자리에 앉아 방금 전까지 허유와 과희가 살폈던 죽간과 서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악적, 흉적, 관적, 민적 거기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부패한 관료까지. 딱 보아도 공무 중에 칼 맞고 비명횡사할 것으로 보이네만은......., 감당할 수 있겠나?”


“이리 대놓고 견제를 받을 줄은 몰랐기에 하운에게 청했던 일입니다. 일단 시어사라는 자리는 보존해야겠기에 또 합법적으로 공적을 쌓는 것이......”


“명성을 얻기에도 좋지. 또한 관로(官路)를 거니는 첫 벼슬자리이기에 매력도 있고. 일찍이 후세에 그 이름을 남긴 이들 중 다수가 시어사의 직을 받았었으니까. 그래도 작게나마 나름의 명성도 있다지? 오두(五蠹)를 제압한 일서부터 황명을 들먹인 환관과 부위의 입을 다물게 했던 일까지, 의외로 그대에 대한 입소문들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네.”


“좋은 겁니까?”


“야망이 있다면.”


조조의 뼈 있는 말에 야견은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 옆에 자원도 있는 마당에 친우끼리의 자리라 생각하고 솔직히 말하지. 대저 벼슬자리에 올라 이루고 싶은 바가 뭔지 내 좀 알았으면 좋겠네. 그대의 꿈, 그대의 대의, 그대의 목표 같은 것들 말이야.”


“맹덕!”


“본초 앞에서도 이러했나? 누군가가 무례한 언사를 던지면 아랫사람으로써 이리 나셨느냔 말일세.”


“그......, 그건.”


“친우라 했네. 친우와 다름이 없다 여기는 자리라 했어. 자네도, 나도 또 이 자리의 모두가 동등한 게야. 할 말이 있다면 스스로의 꿈을 품고 말하게. 스스로 나아갈 길에 대하여 말하게. 이 자리는 그런 자리야. 그리고 나는 조만간 떠나게 될 신임 시어사와 어사를 겸직하는 이 친구의 꿈을 듣고 싶네. 내 딱히 뭘 바라는 것은 아니질 않은가?”


아예 판을 깔아버린 조조의 언사에 허유는 기가 죽었는지 쉬이 운을 떼지 않았다.


아무래도 둘의 사이가 사이였던 만큼 또 조조라는 이가 내보인 기세가 대단했던 만큼 허유조차도 이를 가벼이 여길 수 없었던 것이다.


“바라는 것이 없어도 어찌 대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겠습니까?”


분위기가 싸해짐을 느꼈기 때문일까? 생각지 못했던 과희가 갑작스레 조조의 말을 받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대 또한 주인을 위한 충정으로 나선 것인가?”


“그렇습니다. 조가의 공자라는 위치에 계시는 분의 언사가 가볍게만은 여겨지지 않아서 말입니다.”


“어째 자네랑은 말 한마디를 섞기가 어렵군. 뭔, 의례(依例)가 이리도 많은가?”


조조는 뚱한 얼굴로 야견을 원망하듯 쳐다보았다.


허나 야견, 아니 자신 또한 딱히 그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송구합니다.”


“되었네, 되었어. 내 엎드려서 사죄를 다 받는구만. 다 자네에게 관심이 가서, 또 좋아서 벌이는 일인데 여기 이 사람들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모양이야.”


“어찌 그러하신 말씀을.....!”


“흐음-.”


“조, 조 공자! 아, 아니 맹덕 공!”


때 아닌 사죄로 고개를 숙이던 찰나, 조조는 급작스레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이를 제 눈앞으로 가져다 대었다.


“역시......, 자네도 있었어.”


“예? 무엇을 말이옵니까?”


“여기, 손바닥의 중심에 산등성이가 두 갈래인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 이들은 모든 것을 제 뜻 때로 행하고 살아갈 팔자이며 실제로 이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팔자라 했네. 뭐, 이러한 연유라면 굳이 친해지려는 이를 멀리하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하지. 그래도 뱀의 머리 아닌가? 용의 꼬리보다야 암, 스스로의 결정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네의 마음도 이해는 가.”


제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콕콕 누르는 조조의 행동에 이상한 촉감이 들었으나 조조가 가리킨 그곳에 자신의 손금이 있음을 깨달은 야견은 그제야 조조가 무엇을 언급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뭔가 했더니 M자 손금이로구나. 헌데 전생에 내겐 이러한 손금이 없었는데? 몸이 바뀌면서 많은 것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로군.’


사업가나 성공한 이들의 생을 증명한다는 M자 손금이 제 손바닥에 떡하니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을 이 시대에 그것도 조조에게 지적받게 되니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호오, 엄지는 또 두형문이고? 자네 정말 군왕이라도 꿈꾸고 있는 것 아니겠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거기다 이 손 좀 그만 좀 만지십시오! 느릿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뭔가 느낌이 이상하단 말입니다!”


“뭐라, 느낌이 이상해? 자네 설마 남색(男色)인가? 이런, 이런 그저 저자에 떠도는 점복 같은 것들이나 보려던 것인데 이를 느낄 줄이야. 실망일세.”


성희롱 아닌 성희롱에 얼굴이 벌게진 야견은 급히 조조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제 손을 빼며 이를 뒤로 숨겼다.


마치 아이가 제가 아끼는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 행동에 조조는 귀엽다는 듯 놀리는 추임새를 보이고 있었고 말이다.


허나 정작 이를 맞이한 야견은 미칠 지경이었는데 어째 유비도 아니고, 뭔가 끈덕지며 집착에 가까운 느낌을 다보여주니 있는 정 없는 정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 자네를 가끔 보면 우리 집안의 조카들이 생각나는 듯해. 그 덩치는 큰데 아직 어린 것이 귀여워서라도 놀려주고 싶단 말이지.”


“조 공자!”


“아, 아! 되었네, 되었어. 내 자네의 그 포부 하나 듣지 못해서 심술을 부린 것이니, 장난은 여기까지로 하고. 실은 겸사겸사 내 부탁이나 할까 해서 이리 자네를 찾아왔네. 임명장은 아까 주었으니 되었고 말이야.”


“부탁이라 하심은?”


“외방으로 도는 일이고, 그 다수가 토벌을 비롯해 변방을 떠도는 일이지. 해서 내 큰 도움은 주지 못해도 자네에게 호위 하나는 붙여 줄 생각이야.”


“소인은 이미 한승이라는 이가 있습니다만?”


“사방에서 수백이 달려들지, 그도 아님 병력을 분산시켜 자네 호위를 떨어트리고 자네를 암살할지도 모르는데 그 잘난 호위 하나가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북방은 보다 무서운 곳이야. 내 자네의 호위가 비범한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그래도 한 명의 사람일세. 사람 몸뚱이가 둘은 아니니 여러 경우에 대처할 수 없지 않겠는가?”


딱히 호위가 필요 없다는 가정을 깨면서까지 조조는 자신이 붙여줄 호위에 대해 언사를 높였다.


뭐, 구구절절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것이 바로 조조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게 고심에 빠지려는 찰나, 웅성대는 소리가 전각의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 제 아무리 일면식이 있다 해도, 이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소.


- 이거 안면이 있는 사이끼리 너무 한 것 아닌가? 내 아는 이가 저 안에 있고, 자네가 아는 이도 저 안에 있는데 무슨 상관인가?


- 그래도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소.


- 그래? 허면 힘으로라도 들어서봐야겠군그래. 그러면 승패를 알 수 있지 않겠나?


- 어딜 감히, 이 한승의 뒤로는 한 걸음도 들어설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두 사내가 실랑이는 벌이는 소리가 본격적으로 커지자 자신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황충과 조조가 보낸다는 호위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벌써 도착을 한 모양이로군.”


“호위를 이리 막무가내로 보내시면 어찌하십니까?”


“어쩌겠나? 저 이가 같은 집안사람이긴 해도 그 성정이 불같은 면이 있어 내 말도 쉬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집안사람......, 설마 저번에 그?”


척하면 척이라고 조조의 언사가 더해져 대저 황충을 앞에 두고 저리 나올 수 있는 이가 누군가 했더니 딱 떠오르는 자가 있었다.


“한승! 하후연, 그러니까 하후 묘재라는 이가 밖에 있는 이가 맞는가?”


- 그러합니다, 주공.


“하아-.”


내쉬는 한숨과 함께 미간을 짚은 자신이었다.


언뜻 보아도 감시역이다.


물론, 저 전각 밖의 하후 연은 제가 감시역인지조차 모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뭐, 그나마 노골적인 감시는 당하지 않으니 좋게 생각을 해야 하려나?


“거절하면 어찌 됩니까?”


“뭐, 나는 딱히 상관은 없네. 다만 저기 저 묘재가 자네의 일을 알고 난 이후, 관심을 보이더군. 해서 내 데려온 것이지. 뭐, 힘으로 말릴 수 있으면 알아서 조가에 데려다 놓으시게. 내 알기로 말 등에 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양이던데......”


고개를 돌리며 아닌 척 하는 가증스러운 연기에 열불이 올랐으나 그 얼굴에다 대고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참으로 처연하다 못해 원망스러웠다.


대충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아니한가?


하후연은 자신이 아니라 황충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조조는 머리를 굴린 것이고.


“하......., 시발(始發).”


그렇게 새로이 들어온 하후연을 뒤로하고 조조와 헤어짐을 가졌다.


전각을 나서는 길에 가벼운 미소를 보이는 그를 보며 이 또한 그의 생각이 녹아든 일임을 다시금 확인하였으나 왜 그토록 제게 신경을 쓰는 지에 대해선 여전히 알 길이 없다.


해서 남은 것이라고는 나자빠진 임명장과 수없이 쌓여있는 죽간과 문서들 그리고 저 뒤에서 황충만을 노려보며 은연중에 경쟁의식만을 표출하는 저 답답한 무인 하나인데 자꾸만 제 어깨에 쭉쭉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은 그저 느낌일 뿐이었을까?


서기 182년의 봄이자 후한 광화 4년의 초입.


새롭게 맞이한 새해의 변화 속에 누군가는 힘을 얻었고 누군가는 힘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새로이 기회를 노리고 누군가는 견제를 받으며 변화하고 있음을 자신은 알고 있다.


허나 정작 그 흐름의 속에 자신은 적응을 잘 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못하니 지금의 야견의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고, 자신의 현실은 원치 않는 장기짝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조등에게, 하운에게, 또 조조에게 말이다.


허나 세상일이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그것이 곧 제게 다가올 전화위복이자 또 다른 위험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야견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다가올 흐름의 중심으로 들어서기 위한 전조에 불과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2장 끝. 이어서 외전 2장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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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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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외전 2장 7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1) 20.07.17 337 10 17쪽
162 외전 2장 6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6) 20.07.16 335 8 18쪽
161 외전 2장 5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5) 20.07.15 321 9 19쪽
160 외전 2장 4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4) 20.07.14 354 9 16쪽
159 외전 2장 3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3) 20.07.13 342 6 17쪽
158 외전 2장 2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2) 20.07.10 373 12 22쪽
157 외전 2장 1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1) 20.07.09 380 8 18쪽
156 외전 2장의 서 – 동 태후 20.07.08 419 8 21쪽
» 2장 61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에서 시발만이 남았다 20.07.07 465 8 23쪽
154 2장 60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7) 20.07.06 410 7 28쪽
153 2장 59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6) 20.07.04 430 9 28쪽
152 2장 58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5) 20.07.03 400 9 30쪽
151 2장 57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4) 20.07.02 400 9 22쪽
150 2장 56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3) +2 20.07.01 427 9 27쪽
149 2장 55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2) 20.06.30 412 8 23쪽
148 2장 54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1) 20.06.29 434 9 17쪽
147 2장 53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5) 20.06.27 432 7 17쪽
146 2장 52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4) 20.06.26 427 8 28쪽
145 2장 51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3) +2 20.06.25 409 7 23쪽
144 2장 50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2) 20.06.24 418 9 16쪽
143 2장 49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1) +2 20.06.23 456 12 18쪽
142 2장 48화 – 알력의 예고와 연(3) 20.06.22 415 11 25쪽
141 2장 47화 – 알력의 예고와 연(2) 20.06.21 417 9 25쪽
140 2장 46화 – 알력의 예고와 연(1) 20.06.20 434 12 21쪽
139 2장 45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5) 20.06.19 444 8 20쪽
138 2장 44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4) 20.06.18 428 12 17쪽
137 2장 43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3) 20.06.17 429 12 25쪽
136 2장 42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2) 20.06.16 463 9 25쪽
135 2장 41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1) 20.06.15 458 11 17쪽
134 2장 40화 –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쉬이 알지 못한다(4) 20.06.14 459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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