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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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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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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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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25쪽

2장 43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3)

DUMMY

“주인들의 의지라 함은, 궁주들께서 이를 원하신다는 말입니까?”


“상황을 따로 두고서라도 그간의 잠잠했던 것은 명분이 없어서일세.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거든. 물론, 군주는 무치라고 성상께선 별다른 명분 없이 쟁송을 확대하는 명을 내리심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보이셨으나 태후께서는 그러시지 못하였지. 허나 이번 일로 인하여 태후께선 의지를 보이실 것이야. 그리고 그 의지가 내놓을 결과가 무엇일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나, 이 늙은이의 눈에 얼추 보이는 것만 따져보자면 적어도 삼분지일은 거둬들일 생각이신 것 같구만.”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이해가 아니 가는가? 봉서를 비롯한 탁황은 황문의 약 사 할이야. 그러나 봉서에게 죄를 묻겠다 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지금, 봉서를 비롯해 그 사할에 속한 이들이 흔들리고 있네. 이는 도리어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헌데 생각을 해 봐. 애초에 중원을 벗어난 변방의 이들을 차별하는 지역색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과연 얼마 전까지 정쟁을 벌이던 자네의 주인인 곽승의 밑으로 들어가겠나?”


지역감정이란 것이 그리도 노골적인가 싶었으나 작금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더더욱 끄덕일 법도 했던 일이다.


무엇보다 일개의 주가 하나의 나라나 다름이 없었고 어찌 보면 이들의 지역색은 춘추전국의 국가형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에 유달리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후한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장비가 스스로를 연인이라 소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은가?


다만, 굳이 지역색을 나눌 필요가 없는 환관들조차 저리 지역색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람은 연고(緣故)를 벗어나기가 참으로 힘든 듯 싶었다.


그리고 이는 세월이 지나도 나라가 바뀌어도 쉬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뭐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내팽개치고 곽승의 휘하로 들어선다고 치세. 허면 과연 곽승을 따르던 청황의 이들은 그런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분 좋게 반길 것이라 생각하나? 아니,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부른다고 도리어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그들을 핍박하고 당한만큼 돌려줘야 한다 생각하기에 더한 난리를 피울 것이야. 그들은 아직 젊고 어리니까, 가져본 적이 없고 박해만 당하며 살아왔으니까. 감정적이며 충동적이고 충족치 못한 야망의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 그들을 앞에 두고 곽승이 욕심을 부려 제 세력과 원진(元嗔)에 자리한 이들이자 원수인 이들을 포용한다? 말이 아니 되지. 세력 하나 제대로 다스려본 적 없던 이가, 몰락이 두려워 홀로만의 독보를 걸었던 의심 많은 아해가 비록 소수일지언정 제게 충성하는 이들을 내버리고 세를 키우겠다며 분란거리를 받아들여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는 악수를 두진 않을 것 같은데?”


“허면 봉서를 비롯한 그들은 어찌합니까?”


“어찌하긴, 그래도 기존의 저들이 머물던 둥지이자 아비 그리고 어미가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야지. 그대도 알고 나도 알아, 내 누누히 말하지 않았던가? 청황도 탁황도 본디 장양과 조충을 비롯한 그들에게서 나온 어린 아해들이라고. 아마 장양, 그놈은 지금을 기회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엄밀히 말해 본보기로 봉서 하나만 쳐내고 그 어린 것들을 모조리 흡수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야. 가뜩이나 쟁송을 불러일으켰던 서봉이란 어린놈이 탁황의 젊은 환관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던 중에 그놈이 죽었으니 그들은 불안감 속에 맹목적으로 봉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 왜? 봉서 이외에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은연중에 그들을 쥐고 흔들던 머리가 그리 허망히 사라졌으니 꽤나 불안들 했을 것이야. 그리고 불안함은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해소될 수 없으니 더더욱 이들은 봉서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와중에 눈 앞에 펼쳐지지도 않은 일들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자 나름의 이해가 쉬워졌다.


“허나 쟁송에 이후 상황이 달라져 버렸네. 뭐,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 봉서는 제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튼실한 주인이기도 하고, 제아무리 누명을 뒤집어썼다 한들, 곽승에 비하면 서봉을 죽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 결국은 높은 분에게 죄인마냥 낙인이 찍혔지. 황문의 공적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이 상황에서 봉서 또한 그리 믿음직스러운 선택지는 아니야. 그 틈을 장양이 노리는 것이고. 봉서를 따른 죄를 사해주고 아무렇지 않게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이들은 그런 장양에게 감복하여 다시금 충성할 것이 빤하지. 본디 어린 것들일수록 시련을 격고 난 이후 부모의 품을 우선적으로 떠올리지 않은가? 말없이 출가를 나갔다 돌아온 자식을 따스히 맞아들이는 부모 앞에 불효를 저지른 자식은 눈물을 흘리며 제 죄를 뉘우칠 것일세.”


이미 조등은 확신에 차 있는 듯 보였으니까.


제가 보기에도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분석으로 보였고 말이다.


“허나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선택지를 제하고도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버렸네. 그리고 그 새로운 선택지야말로 어쩌면 탁황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가주님께서는 그것을 태후마마라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잘 알고 있군. 이쯤 되면 자네도 조금은 눈이 뜨였다 말할 수 있겠지.”


“그래서 하 상시 어른께서 움직이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아무래도? 긍정도 아니고 확언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시니 그 발언은 무슨 뜻이 있으신 것입니까?”


“......., 이 늙은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일세. 대체 어찌된 연유인지 몰라도 장양이 이를 받아들였거든. 그 말인 즉, 태후가 이미 탁황의 이들을 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이를 내버려두었다는 소리야. 서로 보는 것이 다른 것인지 그도 아님 노리는 것이 다른 것인지. 허나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장양이 단단히 잘못 보고 있는 것이 많아. 거기다 성상의 의중도 이상하시지, 해서 내 생각건대 그들의 초점이 잠시 다른 곳에 맞춰져 있는 듯 보이네. 서로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노리는 게 다른 게야. 애초부터 다른 것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야.”


가벼이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이는 조등은 이제는 조금 쉬어가야 함을 느꼈는지 잠시 눈을 감고는 하품과 함께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저 또한 그간의 집중에서 잠시 깨어나 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이리도 운치가 좋은 곳을 살피기는커녕 오직 그의 이야기에만 몰두한 채 제 주변에 자리한 풍광을 즐기지 못하였으니 그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물론, 조등의 이야기가 더 귀하기에 그리 안타깝진 않았으나 이리도 잘 꾸며놓은 정원을 어둠이 찾아들 무렵, 제때에 감상하지 못한 것이 그 나름의 아쉬움이 되어 저를 자극했던 것이다.


“음?”


그런 저와는 달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조등을 바라보며 뭔가 중얼대는 것을 보아하니 백덕은 이미 이 또한 배움이라 여겼던지 아주 무아지경이 다 된 듯 보였다.


마치 술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학당에 앉아있는 학생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저리 저만의 세계에 빠져 깨달음에 대한 성찰에 몰두하는 군자의 모습을 보니 절로 술맛이 다 떨어지고 있었으나, 이미 저 또한 이 자리라 술자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등의 논하는 것은 제게 있어 가장 중하다 할 수 있는 현 궁의 정세였고 그로 말미암아 저 또한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달리 제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 가지가 지금에 이르러 더더욱 저를 자극시키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저 또한 그 촉이라는 육감을 타고난 것 같았다.


만일 지금의 제 생각이 맞는다면 조등이 언급한 다른 것은 바로 오래전부터 제가 신경을 쓰고 있던 대상인 바로 그 종교가 될 것이다.


조등이 넘겨준 증좌에도 두건이 있었고, 실 역사를 알고 있는 자신은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궁을 비롯한 여러 이들에게 연줄을 대다 그것이 발각되어 변란을 일으켰던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태평도.”


딸깍-


혼잣말과 동시에 술잔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허, 이거 쉴 틈을 주지 않는구먼. 그리 이 늙은이를 부려먹고 싶은가?”


제 입으로 늙은이라 앓는 소리를 내곤 있지만 그 얼굴을 살피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도리어 어찌 알았느냐는 듯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저를 훑는 것이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이 눈빛도 두어 번 마주한 경험이 있어 이리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뭐라도 찔린 놈처럼 제 발을 저렸을 것이다.


“어떠하냐? 백덕아. 너는 저 이가 어찌 태평도를 언급했는지 아느냐?”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그는 전혀 짐작치 못했다는 눈치다.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한 듯 보였고.


하긴, 주어진 정보도 없이 그저 오가는 이야기만으로 이를 추론해 낸다는 것이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 않은가?


거기다 그저 총관의 직을 겸하며 상업적인 면에만 관심을 보였던 것도 그간은 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니 정보가 적을 것이며, 그쪽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쉬이 떠올릴 수 없었겠지 않겠는가?


“사실 이 할아비도 태평도에 대해 별다르게 아는 것은 없다. 양성현의 환난 때에도 그저 채 열이 되지 않는 그들의 표식인 누런 두건을 발견했을 뿐이지. 다만 충분히 사고를 열어두고 생각해보았을 때, 대체 왜 환관을 비롯한 수백의 시신들 속에 그들의 증좌가 남겨져 있었는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그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지.”


“그들을 조사하시고 나서 어떠하셨습니까?”


“제법이더구나. 진정 그 정도일줄 몰랐지. 환제 때에도 그 이전에도 요사스러운 사교(邪敎)는 제법 많았다. 허나 그 어느 것 하나 작금의 그 이교에 미치지 못하는 듯 싶구나.”


이제는 죽을 때만을 기다리는 늙은이라고 보기엔 그가 내보인 표정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마치 제가 발견한 것을 자랑하는 듯 보였으니까.


물론 그가 엄청 많은 부분을 알아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작금과 같은 시대에 정보처리나 전산기술이 발달하여 해킹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저들 세력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도 제대로 저술해놓았을지 조차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의 일면 정도는 들춰보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민초들에게 개방된 종교다 보니 조가의 세력권인 예주 바닥을 훑으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겠지.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파악하기 쉬운 것은 신도들의 수와 같은 드러난 규모일 것이다.


‘허긴 애초에 그 정도 규모의 조직이 제 세력을 개편하고 천하구주에 저들만의 지부를 두고 물경 수십만을 동원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지. 그 정도 규모로 움직이는 조직은 정부 부처를 제하고는 쉬이 찾아볼 수 없으니까. 그러나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아직 황건의 난까지는 못해도 두 해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저들의 인프라나 조직의 개편과 개혁은 이제 막 시작된 상황이라 볼 수 있을 터.


물론, 황건의 난 자체도 미리 발각되어 완전한 준비를 마치지 않은 채 들고 일어선 봉기라 볼 수 있으니 지금의 세력도 무시하지 못할 규모를 갖췄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장담컨대 이 정도 선에서는 절대로 봉기를 일으키지 못한다.


자신이 알기로, 기록된 역사에 의하면 아마 올해부터 방을 두어 방주를 임명하는 등 조직의 내실을 기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니 말이다.


“그 규모가 어찌되는지는 모르오나 할아버님께서 그리 표현하실 정도라면 참으로 대단하다 사료되옵니다.”


“바로 그 점이다. 규모가 거대하다는 것은 그만큼 조직력이 탄탄하다는 소리고 그 정도 규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금을 지니고 있단 소리지. 총관으로써의 너는 이를 어찌 해석하느냐?”


“가진 것이 많아 보입니다. 교류나 거래를 한다면 필히 얻을 것이 많을 것입니다. 허나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이 이교라는 것인데 세간의 눈에 오점을 남길 수 있으니 관계를 맺었다면 이를 숨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나선다면 필히 저들은 반발할 것이니 저들에게 받고자 하는 것들을 쉬이 받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우리 똥강아지가 참으로 좋은 점을 짚었구나! 이미 비 온 뒤의 땅처럼 그리 단단히 굳어진 이들이니 쉬이 그들을 와해시키진 못해. 가뜩이나 민심이 요동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지. 그러니까, 조정이나 황궁에서도 쉬이 그들을 와해시킬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야. 아, 조정은 아직 관심이 없는 듯 보이니 궁에서 움직일지도 모를 일이고. 크흠!”


잠시 목이 메어서였을까? 헛기침과 더불어 잔을 들어 한 모금의 목을 축인 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조등이었다.


“허나 힘 있는 자가 가장 잘하는 짓이 바로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의 것을 탐하는 것이니 어찌 그 욕심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 해서 저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선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가져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서 내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느냐? 국가도 아니니 영토도 내어줄 수 없을 것이고, 상공업자도 아니니 제가 생산한 상품으로 공물로 바칠 수도 없다. 지주가 아니니 쌀을 받아낼 수도 없지. 허면 종교니까 포교라도 하랴? 아니지, 사이하고 사특한 이교도가 아니냐. 한은 유교라는 국교가 있음에 다른 종교는 모두 이단이니 포교는 불가능한 바이지. 거기다 포교는 도리어 저들이 환영하는 바, 궁과 조정은 새로운 세력이 커가는 것을 두고 볼 이들이 아니다. 허면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인데, 의외로 그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또 가장 확실한 가치를 지닌 것이니 말이다.”


“재화(財貨) 말고서는 없겠군요.”


“바로 그것이다. 거기다 그들 또한 자신의 세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데 재화가 필요할 것이니 그 재화를 빼앗는 것으로 말미암아 꾸준히 그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가 있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재화를 빼앗아 가면 필히 그들은 반발할 것이니 뭐, 적정선에서 지금처럼 민초들에 한해 포교를 인정해주거나 그도 아니면 그들의 교주인 장각이란 자에게 벼슬자리를 내리는 등의 조건을 내걸 것이다. 저들에겐 어차피 빼앗길 재화라면 이를 내어주고 제 세력을 인정이라도 받는 것이 이득일 테니 이를 거부할 순 없겠지.”


미친 노인네다.


저처럼 전생의 삶을 살거나 종교쟁이로써 살아온 삶이 있던가?


저야 역사의 일면을 간접적으로 알기에 이런저런 추론이나 가능성을 생각해둔다고는 하지만 눈앞에 조등은 저와 같은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담긴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역사를 포함해 제가 추측하는 바와 비슷한 가능성이 담긴 미래를 말이다.


물론. 훗날의 태평도가 봉기를 하긴 하지만, 봉기의 전에 앞서 그들의 환관들에게 뇌물을 바친 사실을 잊으면 아니 된다.


장양을 비롯한 여러 환관들이 그들의 뇌물을 받고 또 그로 말미암아 황건의 난에 그들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추문으로 청류계 이들이 환관을 공격한 전례가 기록된 역사로 남아있지 않은가?


이를 해석하면 장양을 비롯한 여러 환관들. 그러니까 장양, 봉서, 서봉, 하운 등은 이미 이전부터 태평도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의 관계를 터놓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뇌물을 받았으니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런 환관들이 모시는 주인을 따라 올라가면 영제와 동 태후와 같은 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환관은 필히 주인을 두고 섬기는 자.


허면 환관의 행보는 주인의 뜻과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고 이는 직접적으로 태평도를 알고 그들에게서 주기적으로 상납금을 받아온 이들이 다름이 아닌 영제와 동 태후라는 소리가 된다.


그 때문에 장양이 황건의 이들과 결탁했다느니 하는 고발을 받고서도 그를 감싸며 이를 누명이라 취급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 이제야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다.


“성상께선 언제고 본연의 뿌리를 잊으면 아니 된다 하여 오수전 꾸러미를 품에 지니고 다니시곤 했다. 그 말인즉 상가에서 나고 자랐던 본연의 기억과 장점을 쉬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셨지. 아마 다른 이들이었다면 고결한 황실의 핏줄을 생각하여 그것이 뿌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나 바로 그러한 점이 성상께서 기존의 이들과는 다른 파격으로, 그것이 작금의 성상께서 그 누구보다 강대한 힘을 지니신 연유이기도 하다. 필히 재화를 논하고 이(利)를 따지시는데 능하신 성상의 시야에 태평도가 들었음이야. 장양은 그런 폐하의 의지를 받든 것이고. 물론, 장양 그놈은 의외로 재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저 또한 새로이 제가 얻게 될 재화를 거부할 인사는 아니니 이를 굳이 거부할 연유도 없겠지. 하지만 여기서도 께름칙한 게 있는데......, 그렇지 않은가?”


제 손주인 백덕과 함께 둘이 짝짜꿍이라도 하듯 저를 내팽겨 칠 땐 언제고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보는 조등을 보며 야견은 참 실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팔자에 없던 선생 노릇까지 해야 하다니.’


조등의 눈빛을 읽은 탓이다.


물론 그의 설명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고, 이를 굳이 지적하지 않았던 것은 저 둘의 사이가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또 제게 도움이 되는 이들이기에 또 제가 이용해 먹으려는 이들이기에 그들을 배려했었는데, 이 늙은이는 그와 상관없이 이참에 아주 뽕을 뽑으려나 보다.


“쟁송의 이후, 그대의 농간 덕에 이 늙은이의 어여쁜 손주인 맹덕이 그대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제법 고생을 했다고 들었네만. 자네는 정녕 이리 나오긴가? 자네가 이리 나온다면 이 늙은이는 더는 자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어요.”


“지금 뭐라고......! 크흐흠!”


저도 모르게 속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입술을 닫으며 참았다.


와, 진짜 배신감에 치가 떨릴 정도다.


어떻게 조등이 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지? 아니, 그것보다 더더욱 열이 뻗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조조의 태도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조는 어떠한가? 간웅이자 영웅이지 않은가?


근데 이십 대 후반의 성인이자 벼슬아치인 이 파파보이, 아니 그랜드 파파보이가 제가 그거 쪼금 고생했다고 제 할아비인 조등에게 자신으로 인하여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고대로 일러바친 모양이다.


“하하......, 하하하하하!”


정신 나간 이의 헛웃음이 드넓은 정원을 가득 채웠다.


어이가 없다 못해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한데 정작 웃기는 것은 눈앞에 이 늙은이다.


치사하다 못해 치졸하게 제 손주 교육하는 거 도와주지 않을까 봐 처음부터 저를 겁박하지 않는가?


뭣도 모르는 백덕은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제 동생의 일이라고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걱정을 드러내고 있고, 이를 눈치챈 늙은이는 은연중에 그리 순수한 백덕을 향해 곁눈질을 하며 어서 빨리 저 순수함을 검게 물들이는 교육에 참여하라는 눈치다.


제 입으로 그것 좀 이야기하면 어디 덧나나?


아니, 그것보다 동 태후와 하운에 대해여 제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았대?


“대공자, 그대의 할아버님이신 등 어르신께서 지적하신대로 께름칙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태후마마와 그 밑에 자리한 하 상시 어른에 대한 것이지요.”


새로운 선생의 등장에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제게 다가온다.


조조보다 나이도 많은 양반이 제 할아비 앞이라고 군자의 자태를 드러내는 순진무구한 어린 손주가 되니 뭐가 좀 불편했지만, 수염 그득한 늙은 학생을 앞에 두고 가르치는 것도 평생에 다시는 없을 일이 될 것 같아 그냥 체념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궁한 것도 저고, 을인 것도 저다.


“성상, 그러니까 폐하께서 상인 집안에서 나고 자라셨다고는 하나 그와 같은 삶을 살아오셨던 분이 동 태후마마시옵니다. 거기다 태후 마마께오서는 폐하보다 더 오랜 세월을 상가에 몸담으셨고 실질적으로 폐하보다 더 늦게 궁에 들어오신 분이시지요. 그 말인즉, 속칭 돈 냄새를 맡는 데에 있어 어쩌면 폐하만큼이나 아니, 폐하보다도 더 민감하고 예민하실지 모른단 말입니다.”


“암, 좋은 지적이야. 거기다 의외로 태후마마에 대해 자네가 아는 것이 많구먼? 지난 세월의 이야기는 지난 이들을 제하고는 쉬이 알 수 없을 것인데?”


저 들으라고 하는 칭찬인 것 같은데 이미 불편해진 마음에 제아무리 좋은 소리한다고 쉬이 귓전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 궁금한 눈치를 취한다 한들 안 가르쳐줄 것이다.


그냥 곽승이 알려준 것은 아닌가 하고 실컷 추측이나 해보라지.


그래도 제 할아비가 옆에서 쿵짝을 맞춰주니 백덕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 그렇게 쳐다봐라.


내가 나중에 조 안민만 아니었어도 이러진 않았을 것인데 그래도 혹시 모를 포석을 위해 참는다.


“하여 태후마마께서 움직이신 행보를 살피면 태평도의 재화와 오갈 데 없어진 봉서를 비롯한 탁황의 이들을 흡수하는 것. 두 가지 모두를 염두한 노림수가 아닐까 합니다. 운이 따라준다면 둘 모두를 삼킬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장양이 신경을 덜 쓰는 쪽에 것을 더 많이 취한 채, 어느 쪽에든 한 발을 걸치려는 포석인 것이지요.”


“그렇습니까? 역시 궁중정치라 함은 그 무엇보다 암투와 다름이 없는 치열한 것이라더니 과연, 과연 그리한 것 같습니다!”


“대공자. 궁중정치라 묘사하기보단, 정치의 본질 자체가 그리도 위험한 요소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치는 언제고 우리 주위에 산재하지요. 상인이 거래를 성사시킬 때에도, 관리가 정책을 실현시킬 때에도, 전장에서 적군과 마주했을 때에도, 그리고 가문의 후계를 논할 때에도. 언제고 그 정치란 놈이 제 돗자리를 펴고 궁둥이를 붙인다 이 말입니다. 아마 할아버님께서는 공자의 식견과 안목을 넓혀주고자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셨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껴 이리 나서게 된 것이구요. 허니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등 어르신의 성의와 배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가르치는데 열과 성을 다하지 않겠냐 만은, 품은 것이 많고 따르는 이가 많고 가진 것이 많은 이일수록 그 사람이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법이니, 명가나 이름난 집안에서 괜히 자제를 가르칠 스승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등 어르신께서는 직접 스스로의 그 귀하고 중한 시간을 공자에게 할애하셨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손주를 위한 스승으로서 말입니다.”


“아......!”


깨달음 어린 탄식과 함께 백덕의 눈에 아른한 물기가 차올랐다.


그리고 그 시선은 이내 제 할아비인 조등을 향했다.


감동일지 그도 아니면 감사의 마음일지 몰라도 일단 제 노림수는 그리 먹혀든 셈.


스스로가 오만해질 것을 경계한다 하여 자화자찬을 하면 아니 된다지만 역시, 이는 대단한 세 치에 해당하는 혀 놀림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아니한가? 솔직히 어느 밑 사람이 이리 빠른 눈치로 그것도 이리 매끄럽게 윗사람이 원하는 바를 실현시킬까?


속칭 딸랑이라 부를 수 있는 간신배들도 이런 진정성이 담긴 아부는 쉽사리 해내이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바로 조등의 앞에서 말이다.


뭐, 제가 이리 조 백덕을 감동시키는 동안 조등 또한 그러한 제 발언을 살피며 눈을 빛냈는데 잠시 눈빛에 힘이 실린 것 빼고는 대부분 온화한 호의의 눈빛을 보냈다.


허면 잠시 눈에 힘이 실린 것은 어느 부분이었느냐고?


빤하지 않은가? 가문의 후계를 언급했던 부분이다.


사실 그 또한 너무 조등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 같아 쉬이 당해주지 않을 생각에 일부러 잘근 씹을 수 있는 부분을 집어넣은 것인데, 그 부분을 언급하면서도 저도 살짝 쫄기는 했다.


혹시나 하고 조등이 눈치채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와, 진짜 그걸 눈치를 챘는지 순간 눈빛이 변하는데 애써 덤덤한 척을 하느라 등에 식은땀이 다 나는 듯했다.


괴물 같은 노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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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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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외전 2장 7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1) 20.07.17 332 10 17쪽
162 외전 2장 6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6) 20.07.16 332 8 18쪽
161 외전 2장 5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5) 20.07.15 320 9 19쪽
160 외전 2장 4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4) 20.07.14 350 9 16쪽
159 외전 2장 3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3) 20.07.13 340 6 17쪽
158 외전 2장 2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2) 20.07.10 372 12 22쪽
157 외전 2장 1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1) 20.07.09 379 8 18쪽
156 외전 2장의 서 – 동 태후 20.07.08 418 8 21쪽
155 2장 61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에서 시발만이 남았다 20.07.07 462 8 23쪽
154 2장 60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7) 20.07.06 408 7 28쪽
153 2장 59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6) 20.07.04 428 9 28쪽
152 2장 58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5) 20.07.03 398 9 30쪽
151 2장 57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4) 20.07.02 399 9 22쪽
150 2장 56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3) +2 20.07.01 424 9 27쪽
149 2장 55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2) 20.06.30 411 8 23쪽
148 2장 54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1) 20.06.29 432 9 17쪽
147 2장 53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5) 20.06.27 430 7 17쪽
146 2장 52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4) 20.06.26 426 8 28쪽
145 2장 51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3) +2 20.06.25 408 7 23쪽
144 2장 50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2) 20.06.24 416 9 16쪽
143 2장 49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1) +2 20.06.23 454 12 18쪽
142 2장 48화 – 알력의 예고와 연(3) 20.06.22 412 11 25쪽
141 2장 47화 – 알력의 예고와 연(2) 20.06.21 415 9 25쪽
140 2장 46화 – 알력의 예고와 연(1) 20.06.20 432 12 21쪽
139 2장 45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5) 20.06.19 441 8 20쪽
138 2장 44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4) 20.06.18 426 12 17쪽
» 2장 43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3) 20.06.17 428 12 25쪽
136 2장 42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2) 20.06.16 462 9 25쪽
135 2장 41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1) 20.06.15 457 11 17쪽
134 2장 40화 –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쉬이 알지 못한다(4) 20.06.14 458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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