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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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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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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2장 45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5)

DUMMY

마지막까지 척을 지지 마라? 웃기는 소리.


제아무리 조등이라 한들 저만큼의 미래는 알 수가 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관상을 그것도 봉황의 눈을 타고났다 한들, 이리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하다니, 허면 난세는? 그 난세는 뭐로 설명할 것인가?


황건의 난을 시작으로 돌아 누워버린 민심을 집어던지고, 변란의 진압 끝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무너진 권위 위에 한줌의 권력을 쥐고자 하는 더러운 정치싸움이 지속되며 그 속에 환관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동탁이 발을 들인다.


이뿐인가? 십상시들이 판을 치던 시절이 그나마 말이 통하고 자유로운 시절이었다며 그보다 더한 폭정이 일어나고, 하늘이 뒤바뀌며 그에 각지의 군웅들이 일어나고 또 천하는 시끄러워지고 거기다......, 하아. 그냥 말을 하지 말자. 그냥, 끝도 없다. 진정 끝도 없다.


그러니까 난세라는 이름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자신은 이것이 절대 불가능한 약속임을 알고 있다.


“먼저......, 그러니까 조가에서 먼저 척을 지지 않는다면 그럴 일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살고자 하는 그저 그런 나약한 이들 중 하나니 말입니다”


“이유 없이 죽고 싶진 않다는 말로 들리는 군.”


“살면서 딱히 선업을 쌓아온 이는 아닙니다. 하여 그 원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다면 차라리 담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오나 아무런 연유도 연고도 없이 죽어야 한다면 이는 절대로 사절입니다. 조가가 아니라 조가보다 더한 가문이 나타난다 해도 어르신보다 더 높으신 분께서 나서신다 해도 그냥은 죽어주기 싫습니다.”


“당연하면서도 원론적이지. 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해.”


역시 조등도 어쩔 수 없는 윗사람이었던가?


“그래도 내 앞에 이리 솔직히 그 연유를 말해줘서 고맙기도 하네. 허니 자네의 그 조건 내 받아들이도록 하지.”


“어......, 진정이셨군요?”


“왜? 이 늙은이를 앞에 두고 지레짐작하여 미리 실망이라도 했던 것이야?”


그리 물어본다면 뭐라 하겠습니까? 당연 그렇다 끄덕일 수밖에 없지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놓고 그리 말하면 조금 실례인 듯 싶고, 그저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이를 대신했다.


“헌데 진정 그리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소인 같은 권력자의 하수인이 뭐라고. 어르신에게 있어 저 같은 이는 발에 치이는 돌부리만큼이나 흔한 이들이 아닙니까?”


“흐하하하하! 역시, 자네는 재미있는 사람이야. 뭐,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낮추는가? 뭐, 소인배들이야 제 주제를 너무 잘 안다고 좋아할 순 있지만 나는 나만의 사정도 있고 또 자네가 달리 보였으니 그런 것이겠지. 편안하게 생각하게. 세상 천지에 널린 것이 돌이야, 그 와중에 내 발에 치인 돌부리라면 그 또한 중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기이한 설득력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큰 사람이 내뱉는 말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설득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거나.


다만 이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조등이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저를 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말 못 할 사정까지 있으시다 하니 이에 대하여 여쭙지는 않겠습니다. 허나 밑도 끝도 없는 새로운 무언가가 뚝 떨어진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잠시라도 좋으니, 단 일각이라도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럴 테지. 허면 오늘 자리는 이것으로 마치는 것으로 하고. 내일 이 늙은이를 찾아오게. 곽승이 오매불망 바라는 것조차 아직 알려주지 않았지 않은가?”


스스로답지 않게 조금은 붕 뜬 느낌이었다. 멍하면서도 무감각했진 느낌 말이다.


오죽하면 곽승이 바라는 조등의 조언조차 듣지 못했다는 사실도 저 스스로가 까먹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뭐, 말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많이 늦으셨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침상 위로 엎어져버린 야견. 아니, 저였다.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나마 저를 따라온 왕위가 아니었다면 이리 마음 편히 침상에 자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래서 다들 호위를 두나 보다.


아, 급작스러운 왕위의 등장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작금의 저는 곽승의 명을 받은 사절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곽승의 사병장이란 자리에 있는 왕위가 저를 따라온 것이다.


허면 황충은 뭘 하고 있느냐고?


당연 무관에 있다. 그것도 세 무관을 돌며 검계수들의 무예를 봐주기도 하고 혹시 모를 인재의 영입을 위해 싹수가 좋고 실력이 좋은 젊은 무인들을 봐두라 하였으니 매우 바쁠 것이다.


아, 황충하니까 다른 이들도 차례대로 생각이 나는데 허유야, 지금쯤이면 제가 내린 상여금으로 필히 회포를 풀고 있을 것이다만, 그리 큰 걱정은 없다.


청류에 몸담은 오랜 세월 동안 그리 탁류의 이들보다 더한 탁함을 보여주는 허유는 어찌 행동을 하건 본래의 굳어진 이미지가 그러했으니 딱히 더 깎일 명성도 없으니까.


거기다 이미 조가를 방문한 전력이 있기에 평상시 돈이 없어 궁하다고 알려진 그가 어디 낙읍이나 하남의 이름난 주가에서 거하게 마시는 일도 주변에서 알아서 고개를 끄덕여줄 일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원소인데 뭐, 봉기가 어쩌니저쩌니 해도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한다며 약속을 했다고 하니 믿어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리 사소한 것 하나하나 의심하고 감시하면 조직이란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사람 하나 조차 쉬이 부릴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리고 과희는 여전히 무관에 자리한 서기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 참에 검계수들의 연락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혔다.


그 오성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하며 칼을 쓸 줄 아는데 의외로 또 냉철하다.


자, 이러한 묘사를 들어보니 제 수하 중에도 그러한 이가 있지 않은가?


‘한참이나 부족한 실력이지만 확실히 원영과 닮아있다. 뭐, 지모는 딱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그래도 칼솜씨는 조금 향상시켜 놔야지. 원영이 말하지 않았던가?’


해서 원영과 연결시켜주었다. 본인도 제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보이지 않는 세계, 더러운 구정물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을 알았는지 도리어 열심이다. 원영의 반응도 의외로 좋았고.


“원영이 그랬다지? 다른 것은 채울 필요가 없으나 필히 칼은 가르치라고 말이야.”


“예, 문사치고는 제법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선천적으로 힘이 약한 탓인지 가벼운 것이 답니다. 그렇다고 이를 무겁게 뒤바꾸긴 쉽지 않으니 그 실력이라도 늘렸으면 하셨습니다. 검계의 속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스스로는 지킬 실력은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의외로 왕위의 평이 박하다. 그래도 최근 들어 칼 배운다고 드잡이질 마냥 이리 저리 들쑤신 허유를 가벼이 상대한 과희인데 그 정도인가?


하긴 그의 무예에 대해 별다른 기록이 없으니 실질적으로 그가 고강한 무예를 지녔음에도 기록이 없어 이를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거기다 황충이 제법 합을 겨루며 칭찬을 하였으니 못해도 어지간한 쭉정이들 보다는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원영과 저보다 강할지 아니면 약할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네 무용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느냐?”


“어디 가서 자랑치 못할 수준입니다. 솔직히 노력은 합니다만 주변을 둘러볼수록 부족함을 느끼지요. 다만 쉬이 죽을 위기에 놓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사람의 능력을 절대적 수치화 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를 알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 수준이라도 어림짐작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도리어 저 호방함에 넘어갔다.


참으로 멋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뭐, 제아무리 무위가 고강하지 않다 한들, 악진이나 이전마냥 그 안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장수도 있지 않은가?


딱 그 정도만 되어도 좋을 것이다.


“훌륭한 호기다. 헌데 어떠한 연유로 검계수가 되었느냐?”


“제 생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으면 했습니다.”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 간간히 피로를 이겨내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한데 그리 몽롱한 와중에 뜬 구름이 잡히는 것 같은 말이 나왔다.


“새로운 이야기라......, 해서 네 생에 펼쳐진 새로운 기승전결(起承轉結)은 지금까지 어떠했느냐?”


사람들은 이야기를 논함에 이를 기승전결에 비유하곤 한다.


스토리란 필히 순차적인 단계를 거치며 처음에서 시작된 흐름을 마무리하는 법이니까.


“좋습니다. 답답한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서 좋고, 거칠고 차가우면서도 살아있음을 느껴 좋습니다. 힘들고 죽을 뻔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결말 속의 저는 죽지 않았으니 이리 새로운 이야기가 또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생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음을 저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먹물깨나 먹은 것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의외로 표현력이 저리 깊을 줄이야.


참으로 와닿는 표현이 아닌가? 결말 속의 저는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그 다음에 새로운 이야기가 또 저를 찾아온다니. 음?


그러고 보니 저 또한 왕위가 묘사한 것과 같지 않은가?


조가에 방문한 저는 곽승의 부탁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


허나 그러한 와중에 조등을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제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허망한 이야기지. 추리도 아니고, 소설 속에서나 볼법한 예언이라니.”


하지만 장담컨대 그 이야기는 절대 주(主)는 아니다. 부(附), 게임으로 친다면 dlc까진 아니고 서브퀘스트 정도로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예언이라뇨? 명도자나 도인이라도 만나신 것입니까?”


의외로 설화나 전설을 좋아하는 낭만파였는지 왕위의 눈에 호기심이 보였다.


의외다, 이리 귀여운 구석도 있을 줄은.


그러고 보면 은근히 황충하고도 닮았다.


황충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다, 설사 그러한 이를 만나 그런 말을 들었다한들 그것만 심간에 두고 있다면 정작 중한 일이 쉬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저 간간히 심간 한 켠에 두었다 꺼내본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해서, 이 늙은이가 언급했던 여강이 누구냐고?”


어느새 시간도 흘러버렸고 배경도 바뀌어 있었다.


그리 혼자만의 다짐 속에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야견이 다음 날이 되어 조등을 찾자마자 물어본 것이 바로 그에 대해서이다.


왜 조등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던가? 그 때문이라고.


본래 설화나 전설이나 예언 같은 허무맹랑한 것들은 애초부터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유래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허나 조금 현실적인 부분을 논하자면 최초 유포자를 만나 그 진의를 묻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이것 참 의외로구먼. 환관을 주인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여강이 누구인지도 모르나?”


가벼이 수염을 쓸어내린 조등이 도리어 제게 되물었다.


모르냐고, 진짜 모르냐고.


아니, 어째서 그를 모를 수 있냐는 표정으로 이야기하는데 진짜 모르니까 물어본 것이다.


막말로 삼국지에 그 이름이 나오는 이들만 따져도 몇 백은 될 것인데 어떻게 다 기억한다는 말인가?


기막히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보인 조등은 그 또한 웃기는 일이라며 또 웃음을 보였다.


어째 저만 보면 웃는다. 물론 저는 대체 그것이 뭐가 그리 웃긴지는 모르겠다.


“아, 기왕 이리 된 것 곽승의 부탁마저 한 번에 해결하면 되겠군. 내 곽승에게 해줄 조언 또한 그를 찾는 것이네.”


문제가 다른데 그 답이 하나란다. 이것이 어디 하나로 퉁칠 수 있는 일이던가?


정치가가 조언을 구하고, 그런 정치가의 수족인 저는 제게 내려진 기이한 예언을 파헤치는데 조등은 이 두 가지 노력을 너무 쉽다는 듯 표현했다.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또 얼마나 대단하기에.


“청류하면 이름난 이들이 많지. 허나 그들 대다수가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이거나 벼슬자리가 없는 유랑 선비일 뿐 제 관직을 지키는 이들은 정작 몇 되지 않네. 지금 자리를 꿰찬 이들이라 해도 과거의 이들만 못한 그저 반쪽짜리 쭉정이들일 뿐, 사실 그러니까 환관들이 청류의 이들을 두는 게야. 구색이거든, 그걸 보며 늘어진 긴장을 다시 좋이는 게지. 와신상담(臥薪嘗膽)과는 조금 다르나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람을 물었는데 또 다시 장황한 수업이 펼쳐지는 것 같다.


심지어 오늘은 백덕도 없는데 말이다.


다만, 제 자리를 지키며 지금까지 탁류의 이들과 환관의 압박으로부터 청류의 이름을 지켜온, 또 그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청류계 관리들을 저리 싸잡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강이 누구인지를 물었지?”


“예.”


“그런 쭉정이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환관이네. 또 청류를 지향하는 유일한 환관이며, 그 누구보다 환관다운 환관이지. 장담컨대 근 수십 년의 세월 속에 환관에 본분에 가장 충실했다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그가 유일할 것이야.”


“그런 이가 도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까?”


“정확히는 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넓다면 넓다하나 천하를 논하면 한 없이 비좁은 곳이야. 그 안에 모여드는 것은 온갖 오욕칠정이 그득한 짐승들 중 가장 강한 맹수들뿐이고. 헌데 그리 험난한 곳에서도, 참송 한 그루 자리하지 않은 그곳에 백로가 있네.”


백로라, 그 또한 선비의 상징이었지 아마?


생각해보면 이 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인물을 빗대는 것을 참으로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가장 흔한 것은 동물이었던 모양이고.


하지만 여기서 필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다른 이도 아닌 작금의 혼정을 불러일으킨 원흉이라 볼 수 있는 환관을 선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로에 비유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러한 시대적 배경의 정중앙에 자리한 작금의 시대에 말이다.


“도양후를 거절했다. 채 백개의 목숨을 구명했다. 청빈하다 못해 고아했다. 세력을 만들지 않았고 암약을 멀리하며 사사로이 친분을 쌓지 않았다. 참 선비와 다를 바 없는 고아함에 유림조차 그를 환관이라 매도하기는커녕 그에 대한 추앙을 높였다. 허면 하늘이라도 다를까? 하늘조차도 그 고아함이 사라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환관으로써 당대의 유림에 인정을 받고 선비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이들은 그 수가 매우 적었다.


특히나 후한 말기와 같은 환난에 시기해서는 없던 욕마저 만들어 환관을 욕보이는 것이 당연지사한 사회다.


제가 알기로도 작금의 제 앞에 자리한 조등만이 유자들로부터 또 청류의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데 그만한 인물이 더 있었다니, 그것도 진정 훌륭한 군상의 인물이 환관들 사이에 있었다니.


생전 처음 듣게 되는 놀라운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제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분을 찾아뵈면 어르신께서 언급하셨던 것의 연유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 늙은이 또한 그리 된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일 것이다. 허나 그것이 쉽지는 않지. 그는 절대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아. 생로(生路)를 보는 이인데도 말이야. 그 스스로의 금언은 확실히 지킬 것이니 그에게서 원하는 답을 듣는다는 것은 쉽진 않을 게야.”


무슨 천기누설도 아니고. 진짜 하늘에 통달이라도 한 신인이라도 된다는 소리일까? 사람이 사는 길은 안다는 것은 가히 신의 영역 이라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어쩌면 미래를 보는 예지몽 같은 것보다 더 대단한 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가 어찌 되었건 그 당사자는 죽지 않는 길을 택할 테니 말이다.


근데 막상 이리 생각해보고 나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무슨 허황된 판타지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닌 환관이 그것도 충신이라 불리는 이가 그러한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이 말이다.


“허면 그분의 조언을 구하면 곽 상시께서도 생로를 보장받으시는 것입니까?”


“그런 셈이지. 그의 조언은 사람을 구했고 그의 조언은 나라를 이롭게 했으니. 어수선한 정국에 애꿎은 불똥이 튀기 싫어 몸을 사리며 제 살길을 도모하는 곽승에게 그만한 이도 없지 않은가? 쯧, 환관으로 나고 자란 것이 죄인 게지, 그는 차라리 명신으로 태어났어야했어.”


“명신이라 하시면 혹, 장균과도 같은 이를......”


“누구? 장균? 흐하하하하하!”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간혹 느끼는 것이지만 이쯤 되면 이것도 병인 듯 싶다.


진짜 저만 보면 파안대소를 해대는데 대체 뭐가 그리 웃긴 것이지? 저 또한 장균의 대쪽 같음을 보지 않았던가?


하운을 목전에 두고 그를 무시했다. 권력의 핍박에도 당당히 제 발걸음을 옮긴 채 기가 죽기는커녕 환관을 도발했던 그다.


거기다 청류의 명성 또한 알아주는 이였고, 교현을 내직으로 복귀시킨 것 또한 그였다.


한데 저리 웃음을 보인다?


만일, 조등의 답을 듣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영영 이를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물론, 야견이라는 제 자아가 이에 대하여 깊게 깨우치게 된 것은 보다 후의 일이며, 지금은 그저 비유 속에 담긴 인물평을 이해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어디 이게 쉬이 이해가 되는 웃음이던가? 장균이 어디 그리 무시를 받을 인물이던가?


“제아무리 꿩이 창공을 우러러본다 한들 그 날갯짓으로 하늘을 날 순 없는 법이야. 한데 어찌 기품을 갖춘 닭이나 다름없는 꿩 따위를 백로와 비교할 수 있는고? 꿩의 가치는 깃과 고기 그리고 지켜보며 키우는 재미가 있다는 것뿐일세. 그렇기에 살아있건 죽어있건 그에 관련 없이 사람들이 만족할 이(利)를 지녔다 하는 것이고. 허지만 백로의 생사를 두고 사람들이 이(利)를 논하던가? 꿩 사냥은 있을지언정 백로 사냥은 없네.”


꿩이라, 그러고 보니 전생의 기억 중에 젊었을 적의 자신이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이기 전, 간혹 취미 삼아 글을 쓰던 별 것 아닌 시절의 자신이었으나 간간이 쓰던 단문(短文) 하나가 제 뇌리 속에 버젓이 피어난 것이다.


“선비는 활을 당겨 꿩을 노리니, 이는 꿩의 생김새와 습성이 부호와 지주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살아야 할 새가 제 몸이 무거워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상을 버리고 현실이란 소욕에 안주했기 때문이며, 그의 몸짓과 깃이 화려한 것은 암컷을 꾀기 위함일지니 그 목적 자체가 사람이 아닌 짐승의 속성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꿩이 살이 많은 것은 심간에 쌓아야 할 수양 대신 제 잇속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그런 것이며, 위기에 처한 꿩이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제 머리만 풀 속에 감추는 것은 주변을 챙기지 아니한 채 제 안위만을 우선적으로 걱정하기 때문이다.”


“선비와 꿩이라, 이제는 시문으로 이 늙은이를 비꼬는구만. 하긴, 자네와 같은 젊은이들의 눈에는 장균이 그리 꿩으로 매도당할 이로는 보이지 않을 게야. 자네가 묘사한 대로 선비나 다름없는 장균이 작금의 장균이 꿩이나 다름없는 환관들을 향해 살을 날리고 있기는 하지. 다만 그것은 자네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시각이고, 이 늙은이의 눈에는 조금 달리 보인다는 것이 문제지.”


제 딴에는 그저 기억을 더듬은 것이 조등에게는 이 시대의 문인들 마냥 제 비꼼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표현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래도 그 의도는 잘 전달되었다. 저 나름대로도 그것이 궁금하긴 했었으니까.


“이리 질문을 던졌으니 그에 대한 답을 해줘야겠지? 수리가 오가는 창공엔 새들이 사라지고 매가 날아드는 산중엔 새소리가 들리지 않네. 허나 꿩이 빨빨대며 오간다 한들, 대저 어느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이를 두려워해 도망치겠는가? 영향력이 없는 게야. 주변을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게지. 장균이 제아무리 스스로의 명성이 높은 이라 해도 결국 그 스스로를 넘어서 조정을, 정국을 뒤바꾸진 못했네. 제아무리 자주 성상을 찾아뵌다 한들 지금의 세월 속에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게 바뀐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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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외전 2장 1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1) 20.07.09 379 8 18쪽
156 외전 2장의 서 – 동 태후 20.07.08 418 8 21쪽
155 2장 61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에서 시발만이 남았다 20.07.07 462 8 23쪽
154 2장 60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7) 20.07.06 408 7 28쪽
153 2장 59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6) 20.07.04 428 9 28쪽
152 2장 58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5) 20.07.03 398 9 30쪽
151 2장 57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4) 20.07.02 399 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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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2장 49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1) +2 20.06.23 454 12 18쪽
142 2장 48화 – 알력의 예고와 연(3) 20.06.22 412 11 25쪽
141 2장 47화 – 알력의 예고와 연(2) 20.06.21 415 9 25쪽
140 2장 46화 – 알력의 예고와 연(1) 20.06.20 432 12 21쪽
» 2장 45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5) 20.06.19 442 8 20쪽
138 2장 44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4) 20.06.18 426 12 17쪽
137 2장 43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3) 20.06.17 428 12 25쪽
136 2장 42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2) 20.06.16 462 9 25쪽
135 2장 41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1) 20.06.15 457 11 17쪽
134 2장 40화 –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쉬이 알지 못한다(4) 20.06.14 458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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