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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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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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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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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2장 47화 – 알력의 예고와 연(2)

DUMMY

지난 방문과는 달리 단촐한 방문이었기에 말등에 오를 이들의 수는 매우 적었다.


허나 제아무리 적은 인원이라 한들 조가의 가주가 직접 그들을 배웅하려는 듯 나와 있는 모습은 누구 하나 쉬이 구경하기 힘든 광경이었기에, 조가에 속한 이들 중 몇몇의 얼굴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허나 명실상부 집안의 큰 어른이자 여태껏 그 어떤 그른 판단도 존재치 않았던 그의 능력과 영향력에 감히 반기를 들 간 큰 인사는 없었다.


거기다 애초부터 이들이 흘끗거리며 얼굴을 비춘 것은 그저 조등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지, 전혀 안면도 없는 손님의 배웅을 위해서가 아니었으니 괜시리 책잡힐 일 또한 벌이지 않았다.


그 복잡미묘한 분위기를 알기에 또 과할 정도의 배려임을 알기에 야견은 더더욱 예를 갖춰 조등에게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아예, 저를 피 말려 죽이십시오. 고작 소인 같은 이에게 배웅이라뇨? 세속의 틀에 통달하신 분께서 어찌 이리 나오십니까? 진짜 너무하셨습니다.”


“에잉, 알다가도 모를 놈 같으니. 그러는 그 어투야 말로 크나큰 무례라는 걸 모르는가 보구나? 내 손주 놈들도 무려 두 차례가 넘도록 내게 너무하셨다는 말은 꺼낸 적이 없었느니라. 이를 알고 있는고?”


“어르신, 그건!”


“되었다, 덩치만 큰 어린놈아. 이렇게라도 네놈이 호의와 내어준 고마움을 빚으로 여기면 도리어 이 늙은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것이니라. 허니 올라가서 맹덕 고놈도 좀 챙겨주고, 몸에 좋은 보양제라도 구하면 우리 똥강아지, 순진한 백덕이 놈한테도 좀 보내주고. 아, 부탁한 약속도 잊지 말고.”


“그리하겠습니다. 허면, 다음에 또 인사를 올릴 날에 찾아뵙겠습니다, 어르신.”


흙바닥 위에서 엎드릴 수 없으니 허리를 숙이며 작별인사를 올리는 야견이었다.


허나 숙여진 그의 고개 위에서 다시금 조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깜빡하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제는 네놈도 알고 있겠지? 네가 올라갈 때쯤 전해질 추천서. 그것이 도리어 저들 사이에 괜한 바람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는 절대로 잊지 말거라. 알력의 대한 예고는 이미 이곳에서 수 차례나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더냐?”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곽승을 설득하고 그다음에는 곽승이 장양에게 붙도록 만들어 시선을 돌려라. 그리고 궁주들과 환관들이 제각기 노리는 것에 제 시선을 쏟을 때, 네놈 또한 네놈의 살길을 궁리하고 또 궁리하며 움직여라. 여강을 만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늦지는 않아. 적어도 네놈이 어찌 움직여도 상관없을 행적의 보장만은 확실히 받아내라. 그럼 네놈은 그때부터 자유다.”


울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말 등에 올라 말머리를 돌리는 그 순간까지도 야견의 귓전을 맴돌았다.


그렇게 그를 비롯한 이들의 뒷모습이 점차 흐릿해져 갈 무렵, 조가의 이들도 하나둘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허나 그런 그들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다가오는 이도 존재하였는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조등의 옆에 선 것은 그가 아끼는 손주인 백덕이었다.


“내 네게 짝지어주려 했던 인연이거늘, 어찌하여 지금껏 나오지 않았던 게냐?”


“개인의 볼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한 것이 공적인 일입니다. 암염을 비롯한 형주의 특산에 대한 정보가 퍼진 이후, 지주와 부호를 비롯한 중상인들의 방문요청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 총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좋든 싫든 남양을 쥔 곽승으로 인한 이득을 계산치 않을 수가 없겠구나. 헌데 어찌하누? 그런 곽승이 아끼는 중하디 중한 인재가 벌써부터 참을성이 없어 제 목에 채워진 목줄을 스스로 끊으려 하는데?”


“허면 저 이와의 관계를 끊어야 합니까?”


“글쎄다. 엄밀히 말해 남양태수는 곽승의 사람이니 남양에 드러난 영향력은 그가 쥐었다 볼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곳을 쥐고 있는 이는 네 눈앞에 사라져가는 저 어린놈이란 말이지. 네 조카나 다름없을 나이인 저 어린놈, 상상 이상이다. 너도 맹덕도 저 나이엔 그저 치기 어린 소년에 불과하지 않았더냐?”


“마치 그 바탕부터가 다르다는 말로 들립니다.”


“다르지. 노골적으로 달라. 아니, 근본부터 다르다고 봐야 할까? 저놈에게는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이란 세월이 없다. 허긴, 하나를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법이라지만......., 저놈의 살아온 삶은 어쩌면 죽어서도 별 의미가 없을 삶이기도 할 것이야.”


쉬이 이해가 가지 않을 대사 속에서 백덕은 진지해진 제 조부의 얼굴을 읽었다.


그것은 그 나이 때의 노인이 보여주지 않을, 젊은이들이 보여줄 법한 희열과 오로지 노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탄식의 뒤섞임이었다.


“기뻐 보이십니다. 허나 슬퍼 보이시기도 합니다.”


“사람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니 그런 것이겠지. 그래도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났으니 반갑고 뿌듯한 면도 있기는 하구나. 저놈은 내가 마지막으로 길러낸 제자를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이전에 할아버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기억이 납니다. 건석이라 했던가요? 지금은 황문감의 직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놈과 똑 닮았지. 허나 그놈보다 더 나은 것은 선택지부터가 차이가 있다는 게다. 건석 그놈이야, 나고 자라서 제가 죽을 때까지 환관을 벗어나지 못한다지만 남양에서 칼질하는 모든 이들의 위에 앉아있는 저놈은 선택지 자체가 차고 넘치니까. 저놈은 남양의 밤을 지배하는 놈이다.”


백덕의 눈이 화등잔과 다를 바 없이 커졌다.


“놀란 게로구나. 허긴 그럴 만도 하지. 아직 관세(冠歲)에도 이르지 못한 어린놈이, 제 발아래 못해도 일천에 가까운 칼잡이들을 수하로 두고 있다. 힘으로 찍어 눌렀건 뛰어난 언변과 비상한 재주로 그들을 휘어잡았건 그게 중한 것이 아니야. 중한 것은 그 뒤에 쌓인 경험이지. 어디에서건 뛰어난 놈은 제 재주를 드러난다지만 어디에서건 한 무리의 장이 되는 놈들만큼 대단한 놈들은 없는 법인데 그놈이 경험을 쌓고 곽승의 밑으로 들어가 상경한 것이 엊그제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곽승의 구속이 싫다며 이를 또 벗어던지려 하고 있지 않느냐? 곽승이 남양에 내려가 저놈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곽승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저놈이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다른 이도 아닌 중상시이신 곽 어른입니다. 그것이, 그러니까 정녕 그럴 수......!”


“그래 이해하기가 힘들 테지. 허지만 곽승 놈도 곽승 놈인 만큼, 저 어린 놈 또한 보통이 아니니까 그리 표현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시문이니 배움이니 이런 저런 연유로 기재니 어쩌니 하는 천재 소리를 들었던 너와 같은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않느냐?”


“소손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옵건데 믿고 싶지 않은 허상이라 치부하고 싶습니다.”


“우리 귀여운 똥강아지가 치기 어린 모습을 다 보이는구나. 허지만 엄밀히 말하면 허상은 아니다. 오군에 이름난 손 씨 중에도 저러한 이가 있다.”


“손가는 권세를 쥔 가문은 아니나 지금껏 이어져 내려온 명성이 있지요. 혹 사서에 기록된 이전 시대의 인물입니까?”


“허허허허, 요 똥강아지가 또 우를 범하는구나. 뛰어난 이는 무조건 책과 과거 속에만 자리할 것이란 그 고정관념이 문제인 것이다.”


“하오나 소손은 그러한 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그가 누구입니까?”


“하비승의 직에 있는 손 문대라는 자다. 아마 중원을 벗어난 남방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지진 않았을 게야. 열일곱의 나이에 수적들이 탈취한 배를 보고는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마냥 적들을 혼란시킨 그는 도망치는 그들의 뒤를 쫓아 기어코 수적의 머리를 베어와 명성을 얻었고 그 뒤로 관리가 됨은 물론, 회계의 변란에 일천의 군사를 모아 토벌을 도와 염독현의 승이 되었다고 하지. 그 뒤로도 가는 곳마다 평판이 좋았기에 그를 따르는 이들이 구름처럼 늘어난다고 하니 어떠하냐? 그 이야기만 듣고도 절로 전신에 소름이 돋지 않더냐?”


백덕은 말이 없었다.


야견의 일만 하여도 혀를 내두를 지경인데 정작 그러한 야견의 이전에 그만한 실적을 보인 이가 또 있다고 한다.


그것도 작금의 저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가 말이다.


저 또한 부족하긴 하나 그래도 꽤나 인정을 받고 자라왔다.


유약한 신체는 더더욱 자신을 배움으로 몰아붙였고 그것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분노의 배출구이자 저를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수양이 되어 문(文)으로나마 제 이름을 높여주었다.


헌데 제한된 선택지 속에 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자신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이들이 있다니.


마치 턱밑까지 숨이 턱하고 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천하는 역시 넓나 보옵니다.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띈 인물이 있습니다.”


“넓지, 넓으니까 그만큼 큰 사람들이 나는 게다.”


“허지만 그런 이들에 비한다면 소손은......”


그 여린 어깨가 축하고 처진 것으로 보아 꽤나 큰 충격에 빠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허나 그런 손주의 우울을 그냥 두고 볼 조등이 아니었다.


“되었다. 저들은 저들의 길을 걷는 것일 뿐이고 너는 이제부터라도 너의 길을 걸으면 되는 것이지. 저들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빨랐을 뿐이다. 너는 지금껏 그 어느 것 하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니 네 스스로 네 길을 찾지 않았던 게야. 갈 길이 있는 자는 제 스스로를 재촉하며 제 나름대로 방향을 찾아 나아가는 법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이도 저도 아닌 채 언제고 제가 멈춰있는 주변을 맴돌지. 하물며 스스로 무언가를 원하지 않았던 너는 어떠했겠느냐? 네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네 스스로 걷기를 원치 않았으니 그저 네 눈에 저들이 멀리 간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이 할아비가 굳이 그런 사례를 끄집어낸 것은 너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네게 세상을, 또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연유에서였으니 너는 이를 왜곡하여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알겠느냐?”


언제고 제가 힘들 때면 조등은 제 곁에서 묘한 용기와 위로를 건네곤 했다.


이리 따뜻한 배려였는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이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보다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였을까?


백덕은 문득 제 할아버지인 조등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해야한다고 말했던 야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그림자와 말들이 만들어내는 흙먼지마저도 사라져버린 뒤였으나 지금도 제 눈에는 그리 저를 다그쳤던 야견의 모습이 생생이 그려지는 듯 했다.


‘내가 애초부터 놓치고 있었던 것을 너는 나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깨닫고 있었구나.’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자였다.


친분도 없고 서로 존대를 하던 사이이며 깊은 인연이라기 보단 급작스레 제 삶에 끼어 든 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런 그를 편하게 부르고 싶어졌다.


그를 놓치기 싫었고, 보다 가까이에 그를 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다.


최소한도 제게 깨우침을 주는 자다. 최소한도 제 동생의 안위를 믿고 맡긴 자다.


이제는 그보다 더 나아가 그런 그와 이런저런 일들을 해내려 하고 있다.


제각기 자신이 속한 세력을 위하여, 스스로의 능력을 기량 것 뽐내려 하고 있다는 말이다.


콜록, 콜록-.


“괜찮으냐?”


“괜찮사옵니다. 별 일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마소서.”


봄이라 하나 간간히 불어오는 찬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오죽하면 제 할아버지인 조등이 자신이 걸친 겉옷을 다 벗어주었을까?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조등의 눈길에는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담겨있었으나 자신은 애써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사실은 저 또한 알고 있다. 그저 내색하지 않았을 뿐.


할아버님께선 별 것 아니라 하셨으나 현실과 세상이란 변명아래 사람은 실질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자신처럼 허약한 이는 제 아무리 재능이 특출났다고 해도, 그 재능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거나 이를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져 있음을 말이다.


작금의 저만 하더라도 이미 가문의 뒤를 이을 후계자 자리에 대해선 반쯤. 아니, 8할 정도는 이미 포기를 한 상태가 아니던가.


꿈과 희망에 차 있을 그 어릴 적에 결정한 것이니 그만큼 자신의 몸 상태는 심각했다.


“할아버님, 목검을 한 자루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백덕아, 급작스레 그 무슨 소리더냐!”


제 질문이 꽤나 이색이긴 했나보다.


하긴 평생에 단 한 번도 그러한 부탁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러한 질문을 받은 조등이 여러모로 놀랬으리라.


“그자에게 목검을 받았습니다.”


“고얀 놈이로고! 이 늙은이 앞에서 두 팔을 뻗쳐 올릴 때도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을 때 알아봐야 했던 것을, 그것이 칼을 쥐었던 제 손을 감추기 위한 연유였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이제와 정체를 그리 드러내다니. 한데, 그놈이 목검을 주었다고?”


“예, 그것도 안민이의 것을 말입니다.”


조등은 말이 없었다. 다만 제 손주의 눈동자를 살피고 있었을 뿐이다.


“이 험한 세상 거칠 것 없이 달려나가는 호쾌한 이들 중의 하나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함을 알기에 예서 만족합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어도 그저 그런 이들과 연을 맺고 가까이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다만 우리 안민이, 안민이 만큼은 이 아비처럼 살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허나 자식의 성장을 위해 작은 가르침 하나라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치는 것을 억누르진 못하겠사오니 우리 안민이가 훌쩍 커버리기 전에 아비로서 그런 그들만 못한다 한들 칼 한 자루 휘두르는 것만큼은 가르치고 싶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비로서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아직도 이 할아비의 눈에는 그저 어리고 어린 너이니라, 한데 벌써 훌쩍 커버렸구나. 이 할아비의 앞에서 아비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이런 소손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다, 아니야! 허허허, 내 어찌 마음에 들지 않겠느냐? 되려 너무 훌륭해서 그러다. 훌륭해서, 부모의 마음가짐을 가지기가 쉽지가 않지. 암, 이 할아비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구나. 하지만 너무 일찍이 체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네 여린 성정에 스스로의 길을 나서지 않았던 것도, 네 육신이 허약함을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이기도 하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손은, 그저 소손이 갈 수 없는 칼을 찬 이들의 길을 가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 외의 길은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아비가 되는 것도, 총관이 되어 가문에 봉사하는 일도, 이름난 이들을 만나 이런 저런 교류를 나누며 호기심을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청류의 의지를 품고 행하는 것까지. 허니 그저 가벼이 이해해주십시오, 이것은 대리만족. 그저, 그 정도 선에서 그칠 일이니까요.”


이제는 사라져버리고 잔상도 남아있지 않을 전방을 향해 조 백덕이 손을 뻗었다.


그 느릿한 움직임은 마치 이제는 떠나고 없는 이를 붙잡으려 하는 손짓과도 같았으며 떠난 이들과의 작별을 고하는 배웅의 손짓 같기도 했다.


“느릿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이 춤사위와 다를 바 없구나. 아이고, 우리 손주를 어이할꼬? 여전히 떠나지 못한 미련이 여실히 남아있으니......”


“괜찮습니다. 이것으로, 그저 이것으로 되었습니다. 어차피 저 길을 걷는다 해도 소손이 저들처럼 뛰어난 능력을 보일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지요. 만약이란, 일이 벌어지기 전에 논하는 것이지 그 후에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저들이 걷게 될 길이, 특히나 도성으로 돌아간 저이가 걷게 될 길이 절대로 쉬운 길이 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리 사는 것이 속 편할 정도로 힘든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 하느냐?”


“가르쳐 주신대로, 힘 있는 자들이 제각기 제 목적을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구름과 구름이 만나는 하늘에 어찌 햇살과 따스함이 자리하겠습니까? 저 이는 그 폭풍 속에 발을 들인 것입니다. 천둥, 번개와 비바람은 물론이고 돌풍과 용오름마저 솟아날지 모르는 일이지요. 할아버님께서 인정하셨던 궁주님들이 계시고, 할아버님께서 손수 길러내신 할아버님의 후인들이 계십니다. 또 할아버님께서 인정하셨던 이들도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지요. 그런 쟁쟁한 분들이 으르렁대고 서로를 노려보는 자리를 거쳐 가는 길이 어디 쉬운 것이겠습니까? 목숨을 걸어도 부족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가다가 끊어질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허허허, 영험한 도인이 따로 없구나. 어째, 이 할아비의 앞일이라도 봐주는 것은 어떠한고? 내 복채는 두둑이 내어줄 것이다.”


“허면 그 복채는 목검으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려무나. 하고......, 미련을 털어버렸다기에 하는 말이지만, 네게 내리려한 벼슬자리가 하나 있는데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이를 이 할아비가 써도 되는 것이겠지?”


“벼슬이라, 그 또한 성의의자 호의지요. 허나 그것은 애초부터 제 것이 아닌 할아버님의 의지이자 용단이셨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소손에게 벼슬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죽이 척척 맞는 조손관계는 참으로 따스해보였다.


세상에 가진 것 많은 가족일수록 틀어지는 일이 많다지만 지금의 조가는 전혀 그러한 기색이 없었으니까.


그런 조가가, 그리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는 조가가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켠 것은 보다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지금은 그저 위험스레 요동치는 파도와 같은 정국을 피해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을 뿐.


* * *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가문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이 사람의 입장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는 환영이지요.”


“결국 자네도 안으로 굽을 팔이었던가?”


“팔이 바깥으로 굽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귀(鬼)나 괴(怪)로 의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대체 뭐가 그리 두려우신 것입니까? 세상 거칠 것 없다는 듯 청황과 탁황을 가르신 분이, 감히 하늘의 비호를 받는 중상시를 대놓고 모욕하신 분이 말입니다.”


“탁류의 기질을 버리지 못한 게로군.”


“청류가 탁류를 이기기 위해 청류 나름대로 세를 뭉친 것은 그럼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 행동을 탁류의 기질이라 평할 것이라면 차라리 관복을 벗고 궁을 나서십시오. 이 맹덕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되돌려놓기 전까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며 그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떠날 생각이 없으니 말입니다. 고작 시어사 자리 하나에 조가의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그 작은 것 하나 탁류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매도하는 것이라면 아예 효렴부터 싸그리 없애시지요. 어디 벼슬자리가 추천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자리가 있답니까?”


“맹덕, 그대는 너무 거친 것이 탈임을 모르는가!”


“거칠어야 합니다.”


“뭣이?”


“더 날카롭고 거칠게 다듬어서 날을 세워야 합니다. 탐욕스러운 도야지만 하더라도 날카로운 어금니를 지니고 있는 법인데 온갖 조아(爪牙)가 깃든 괴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들을 그 무엇 하나 준비하지 않고 대체 어찌 상대하시려 하십니까? 조가에서 이번에 내린 조치는 이 맹덕의 보호가 첫째요, 조정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둘째이며, 이전만 못하다 할 수 있는 조가가 여전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셋째일 것입니다. 허면 조당의 이들이 어찌 반응하겠습니까?”


“그건......!”


“청류를 핍박하고 싶어도 최소한도 이 사람과 함께 자리하고 계시는 분들의 안전이 도모될 것이고 조가라는 울타리 속에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잃지 않으며 그 어떤 핍박도 쉬이 받지 않은 채 우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온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권세를 쥐었던 가문? 작금의 환관들과는 시대관과 가치관부터가 달랐던 것이 바로 조가입니다. 청탁을 구분 짓기에 앞서 둘 간의 상생을 논하였고, 단 한 사람의 권력을 강화할지언정 그 어떠한 무리가 되었건 절대적인 권력 집단의 형성을 막았습니다.”


“그렇다 한들, 한 사람에게 편중된 권력은 제어할 수 없는 위험을 만든다는 사실은 변치가 않네!”


“그 대상이 하늘이십니다! 본래 하늘이 지녀야 할 권력을 쥐고 음탕히 가지고 노는 것들, 그 무뢰한 잡것들을 쓸어 버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신 분이 바로 제 조부님이시구요. 이 맹덕은 그러한 조부님의 의지를 이어받은 조가의 사냅니다.”


“하늘 또한 사람일세! 그 누구보다 존귀하고 완전한 분이시나......., 그 분 또한 인간이시란 말이네. 사람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여러 방면의 이들이 그런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 것이네. 신하가 무엇이던가? 보필이 무엇이던가? 충성이 무엇이던가?”


“탁류가 문제라면 탁류를 갈아치우면 됩니다. 허지만 그 뒤를 청류가 차지한다 한들, 청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신하가 선을 먼저 넘었든 군주가 선을 먼저 넘었든 선을 넘었기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허면 선을 넘지 않으면 되는 것이겠지요? 선을 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되겠지요?”


“조 맹덕!”


“늙은이들이 고고한 이상을 지켜왔기에 가치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행동력 있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대인께서 하시지 못하시겠다면 이 맹덕이 해내 보이지요. 아, 참고로 시대를 뒤바꿀 수 있는 힘을 대변하는 젊은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지금껏 이상을 지켜주신 어르신께 딱 한 번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시면 그것이 뭐가 되었든 손부터 잡으십시오. 내일을 논하면서 과거와 현재에 얽매어 있으시다면 대인께선 더 큰 이상을 이루실 수 없으십니다.”


“내 자네를 지켜볼 것이야.”


“그러시지요. 뭐, 엄밀히 말해 제 복권을 지켜보신 것도 그러한 연유 때문이 아닙니까? 아, 지금 생각해보니 대인께선 이미 용단을 내리셨던 것 같습니다. 이 맹덕을 조당에 들이면서 말이지요. 다만, 그 용단에 대해선 여전히 껄끄러움을 느끼시기에 이리 이 맹덕을 두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를 쏟아내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 조가의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름 멋들어지게 관료가 되어 복귀를 마친 조조는 이번 조등이 올려 보낸 추천서를 꽤나 달가워했다.


그 때문에 이리 장균을 앞에 두고도 그는 당당했다.


봉명이라는 자가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나, 제 조부인 조등이 조치한 일일 것이니 꽤나 뛰어난 이일 것이다.


제아무리 자신의 아비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는 하나 조가의 인물치고는 조정에 끼치는 영향력은 미비했다.


또한 이제 막 벼슬자리에 앉아 주변으로부터 노골적인 눈초리를 받으며 복귀한 자신으로써는 적진 앞에 홀로 칼을 들고 서 있는 전방의 병사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허나 이번일로 말미암아 은연중에 받았던 비호를 보다 확실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여러 방면으로 해석하여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면 제가 쓰기 좋은 패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저 또한 그러한 가문의 비호 속에 제 이상을 거칠 것 없이 펼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시어사의 자리를 꿰찼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듯 보이면서도 격정적인 순간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자리. 그 어디든 간에 고개를 디밀고 협조를 부탁하며 비빌 수 있는 자리. 7품이라 그리 높은 품계는 아니나 반드시 낮다고만 볼 수도 없는 자리. 힘이 실린 이가, 뒷배를 지닌 이가, 이름값이 없는 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 뜻대로 날뛸 수 있는 자리.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기각지세(掎角之勢)를 논하기가 용이해졌으니, 내가 날뛰고 새로 올 이가 날뛴다면 그 또한 대소 속에 지켜봄 직할 것이야.”


장균을 떠나보내면서도 조조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그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제 집에서 날아온 편지는 일종의 경고이자 노골적인 보호벽이라는 것을.


앞으로 펼쳐지게 될 정쟁에서 행여나 저를 향해 튀게 될 불똥이나 화살을 막아줄 든든한 갑주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갑주를 받은 자신은 제가 지닌 갑주를 여러모로 활용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에 갑주를 덧씌워 마치 저인 듯 꾸민다던가, 그도 아님 제가 직접 갑주를 걸치고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되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마 내일쯤이면 시끄러워질 듯 싶구나. 기다리겠다. 그리고 지켜보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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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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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외전 2장 7화 – 미꾸라지도 큰물에서 자라면 메기가 된다(1) 20.07.17 337 10 17쪽
162 외전 2장 6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6) 20.07.16 335 8 18쪽
161 외전 2장 5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5) 20.07.15 321 9 19쪽
160 외전 2장 4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4) 20.07.14 354 9 16쪽
159 외전 2장 3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3) 20.07.13 342 6 17쪽
158 외전 2장 2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2) 20.07.10 373 12 22쪽
157 외전 2장 1화 – 용이 사는 못에 이는 포말(1) 20.07.09 380 8 18쪽
156 외전 2장의 서 – 동 태후 20.07.08 419 8 21쪽
155 2장 61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에서 시발만이 남았다 20.07.07 464 8 23쪽
154 2장 60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7) 20.07.06 410 7 28쪽
153 2장 59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6) 20.07.04 430 9 28쪽
152 2장 58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5) 20.07.03 400 9 30쪽
151 2장 57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4) 20.07.02 400 9 22쪽
150 2장 56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3) +2 20.07.01 427 9 27쪽
149 2장 55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2) 20.06.30 412 8 23쪽
148 2장 54화 - 뒤섞일 인연들의 종착점과 시발점(1) 20.06.29 434 9 17쪽
147 2장 53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5) 20.06.27 432 7 17쪽
146 2장 52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4) 20.06.26 427 8 28쪽
145 2장 51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3) +2 20.06.25 409 7 23쪽
144 2장 50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2) 20.06.24 418 9 16쪽
143 2장 49화 – 각자가 제각기 활을 당긴다(1) +2 20.06.23 456 12 18쪽
142 2장 48화 – 알력의 예고와 연(3) 20.06.22 415 11 25쪽
» 2장 47화 – 알력의 예고와 연(2) 20.06.21 417 9 25쪽
140 2장 46화 – 알력의 예고와 연(1) 20.06.20 434 12 21쪽
139 2장 45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5) 20.06.19 444 8 20쪽
138 2장 44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4) 20.06.18 428 12 17쪽
137 2장 43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3) 20.06.17 429 12 25쪽
136 2장 42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2) 20.06.16 463 9 25쪽
135 2장 41화 – 기승전결은 새로운 기승전결을 부른다(1) 20.06.15 458 11 17쪽
134 2장 40화 –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쉬이 알지 못한다(4) 20.06.14 459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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