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시드리안 님의 서재입니다.

버닝하트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톨킨사랑
작품등록일 :
2018.06.19 22:37
최근연재일 :
2019.04.23 11:15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1,594
추천수 :
0
글자수 :
191,073

작성
19.02.19 18:50
조회
24
추천
0
글자
12쪽

19. 나는 돈키호테가 싫지 않구나.

DUMMY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신이었다. 그가 바가반의 심장에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웬만하면 승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더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승부의 추는 바가반 쪽으로 기울었다. 이대로 두면 버닝하트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허세 부리지 마라. 넌 쏘지 않은 게 아니다. 쏘지 못한 것이다. 네가 정녕 날 쏘려 했다면 2번째 화살은 필요 없었을 거다.”


바가반이 유신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살생유택. 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대는 모르겠지만, 이는 화랑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세속오계라는 규율 중 하나다. 난 그저 그 규율을 따랐을 뿐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이라도 시험해 보겠느냐?”


유신이 호기롭게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처음으로 두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그다음이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무인으로서 버닝하트의 승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살생유택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지금 감히 이 바가반을 살려주겠다는 건가? 감히, 이름 없는 인간 따위가? 하하하! 재미있구나.”


바가반이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그는 다시 유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괜찮겠나? 진부한 얘기지만, 지금 여기서 날 풀어주면 분명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대의 말대로 눈앞에서 적장을 놓아준 내 어리석음을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해서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유신이 호흡을 가다듬고 쓰러진 버닝하트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 아이.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보전키 어려울 것이다. 내 그대를 살려줄 터이니, 대신 이 아이를 치료할 수 있는 마을을 알려주는 것이 어떻겠나?”


바위에 부딪혔을 때 충격은 옆에서 보는 유신의 눈에도 상당했다. 늑골이 몇 개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나이다. 어서 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헌데 이곳의 의술 수준으로 과연 저 아이를 치료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만약 치료시기를 놓친다면,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이곳은 국경지역 너머 인간의 영토이다. 그런데 인간인 너희가 오크인 나에게 길을 묻는 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가반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유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유신은 달랐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크의 영토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말해줄 수 없으니, 그저 길을 잃었다고 해두는 것이 어떻겠나? 그러니 그대가 내게 길을 알려준다면, 우리 사이에 더는 은원관계가 없는 것이다. 가능하면, 내 인내심이 떨어지기 전에 대답해 주겠나?”

“좋다.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리 오크는 음흉한 너희 인간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은혜를 아는 종족이다. 그 보답으로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마. 어차피 너도 이곳에 내가 있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했을 거 아니냐?”


오크의 뜻밖의 제안에 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가려운 것을 긁어준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이곳이 인간의 영토라면, 오크인 그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오크는 은혜를 갚겠다며 저 얘기를 했다. 이는 분명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에서 굳이 저 얘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얘기가 빠르군. 그럼 시작하마. 이 숲을 벗어나 곧장 달려가면 마을이 하나 나올 것이다. 그곳에 신녀 아리엘 크리슈나가,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몸소 행차한다고 한다. 바로 그 여자가 이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더불어 내가 이곳에 왔던 목적이기도 하지.”

“결국, 오크인 그대가 어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는지는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냐?”


유신이 물었다.


“그렇다. 오크의 셈은 정확하다. 네놈이 내게 베푼 은혜는 이것으로 갚았다. 그러니 내게 더는 말해 줄 이유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원한이다. 네놈은 감히 내게 굴욕감을 선물했다. 우리가 다음번에 다시 만났을 때는 그 굴욕감을 돌려줄 것이다. 그러니 네놈의 이름을 말해라.”


바가반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유신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의 결심은 확고했고,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리가 유신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유신. 화랑 유신이다.”


유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기억해두마.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어깨 위의 물건을 잘 간수해라. 곧 내 도끼가 거두어 갈 것이다.”


바가반이 서슬 퍼런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유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무사히 넘겼구나.


“저···저기. 형.”


그때 바위 뒤에서 재민이, 힘겹게 걸어 나오며 사색이 다 된 얼굴로 유신을 불렀다. 소년은 중심을 못 잡고 비틀대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어 다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뭐 하고 있느냐? 어서 승태를 내 등에 업혀라. 이 아이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렸다. 짐은 모두 버리고 간다.”


유신이 그런 재민을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재민은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런 유약한 소년을 그처럼 다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 아이의 목숨이 그들에게 달렸다. 사정 따위를 봐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제야, 재민도 정신을 차렸는지, 떨리는 마음과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애써 잡으며 승태가 유신의 등에 업히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유신은 버닝하트를 등에 업고, 바가반이 알려준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



그들은 곧 숲을 벗어나서 비교적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에 이르렀다. 버닝하트를 업고 있는 유신이 앞에서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재민이 따랐다. 엄청난 속도였다.


특히 유신은 갑옷 입은 소년을 업고 달리고 있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말 그대로 경이로운 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재민은 그런 유신을 따라가느라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중이었다.


“헉···헉. 형 같이 좀 가요.”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에 이른 재민이 애타게 유신을 불렀다. 그런 재민을 돌아보며 유신은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정신 차려라! 지금 네 친구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렸다. 나도 사람인데, 어찌 이 상황이 어찌 힘들지 않겠느냐? 나도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지금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허나 그래서는 아니 된다. 지금 우리가 힘들다 하여 속도를 늦춘다면, 이 아이를 살릴 확률도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어라. 그 찰나의 시간 때문에 소중한 동료를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내는 불상사는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


재민은 캑캑 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신의 말이 맞았다. 지금 그의 친구는 생사를 오가는 중이었다. 즉 언제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숨이 붙어 있을 때, 마을에 도착해야 한다.


바가반이 말했던 그 신녀라는 사람이 얼마나 영험한 힘을 지녔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든, 그것은 버닝하트가 살아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유신은 운동선수이고, 재민은 일반인이다. 게다가 그는 평소에 운동을 즐기지 않아 다른 사람보다 체력마저 약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핑계다.


유신의 말처럼 지금 이것을 버티지 못해 친구가 죽는다면, 그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숨이 가빠오고 무리한 탓에 심장이 아팠다. 하지만 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달려야 한다. 재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대답하지 못할 터이니 뛰면서 듣거라.”


유신이 앞에서 뛰면서 재민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단하다. 재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지금 이렇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데, 유신은 쓰러진 버닝하트를 업고 뛰면서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지 않는가? 그 엄청난 폐활량과 정신력이 부러웠다.


“이 아이! 참으로 어리석지 않으냐? 그때 이 아이만 나서지 않았다면, 나는 단 한 발의 화살로 바가반의 심장을 명중시키거나, 그를 협박해서 이곳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헌데 이 아이의 성급한 행동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흐트러졌어. 그런 이 아이의 어리석음은 지난날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말을 달리던 돈키호테의 그것과도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인지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재민은 문득 유신의 미소를 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돈키호테라. 왠지 승태에게 잘 어울리는 별명 같았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 평하던 자신만의 낭만을 향해서 달리는 돈키호테. 그게 바로 재민이 생각하는 승태, 아니! 버닝하트 그 자체가 아니던가?


“허나 나는 그런 돈키호테가 싫지가 않구나.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가 먹으면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허나 이 아이에겐 어느 것이 효율적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구나. 머리가 아닌 심장을 따르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다. 멋지지 않으냐?”


이제는 네. 라고 대답할 힘도 없는 재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승태가 영웅의 그릇이라 하였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유신의 말을 들은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허나 그렇다고 내가 이 아이의 행동을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아이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치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그 치기를 바로 잡아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치기가 일행 전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야.

우리는 이곳에 장난하러 온 것은 아니지 않으냐. 이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뒤따르는 책임감을 통감해야 한다. 이 아이가 깨어나면 내 따끔하게 혼을 내줄 것이다. 내 반드시 그리할 것이야."


유신이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달리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어느새 호흡이 조금 편안해졌다.


마라톤 선수들이 숨이 미친 듯이 차오르는 순간에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오히려 편안해진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마을 입구로 보이는 대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기쁨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버닝하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37화 저도 통행증이 필요한가요? 19.04.23 25 0 9쪽
36 36.중요한 건 지금은 그 새장 밖으로 나와 있다는 거야. 19.04.23 22 0 13쪽
35 35.마법의 체계 19.04.04 37 0 8쪽
34 34.멧돼지 소동 19.03.30 17 0 11쪽
33 33. 신녀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이십니까? 19.03.21 39 0 13쪽
32 32. 아무래도 재민이 너는 팔굽혀펴기부터 시작해야겠구나. 19.03.08 43 0 8쪽
31 31. 대형4륜마차. 19.03.08 17 0 9쪽
30 30. 재민과 유신의 문답. 19.03.07 37 0 10쪽
29 29. 내 너에게 물을 것이 아직 산더미같이 남았다. 19.03.05 39 0 9쪽
28 28. 으하하! 양변기라니 이거 완전 멋지잖아. 19.02.28 36 0 7쪽
27 27. 소영주 론데모 헤일롯 19.02.28 18 0 14쪽
26 26. 무영 vs 파리온 19.02.26 30 0 12쪽
25 25. 우터와 무영. 19.02.26 39 0 13쪽
24 24.내 말은 나만 들리나? 19.02.24 43 0 7쪽
23 23. 나르실 팔레도. 19.02.22 24 0 14쪽
22 22. 강진우와 한조. 19.02.20 43 0 10쪽
21 21. 유신의 예측 19.02.20 38 0 8쪽
20 20. 신녀 아리엘 크리슈나 19.02.19 43 0 9쪽
» 19. 나는 돈키호테가 싫지 않구나. 19.02.19 25 0 12쪽
18 18. 어이! 거기 오크 아저씨 나랑 한 번 붙자 19.02.19 33 0 12쪽
17 17. 드디어 시작하는 모험. 좋아. 시작해 보자고. 19.02.17 69 0 11쪽
16 16. 불가능을 가능케 하다. 19.02.17 26 0 17쪽
15 15. 사망유희 19.02.17 27 0 17쪽
14 14. 차원과 차원 사이의 거대한 다리 19.02.17 46 0 9쪽
13 13. 프로젝트 레인보우 19.02.14 32 0 13쪽
12 12. 한 단계 진화한 증강현실 그리고 테슬라코일 19.02.14 44 0 10쪽
11 11. 알리바이가 필요하거든요. 19.02.14 34 0 13쪽
10 10. 대망의 결승전 19.02.14 46 0 13쪽
9 기사 vs 무사 18.08.24 51 0 11쪽
8 vs 태권도 18.08.16 49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