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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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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613,477
추천수 :
8,501
글자수 :
520,281

작성
12.08.19 22:48
조회
4,383
추천
63
글자
5쪽

SS 밤이 온다

DUMMY

흐드러지게 많은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추억은 얼마나 오랜 과거의 것일까.

살아온 나날을 헤아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오랜 삶을 살아온 남자는 예배당 제일 앞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그는 오랜 삶 속에서 많은 ‘인간의 신’들을 보았고, 수많은 종교를 보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믿고 싶어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원시적인 부락을 이루고 살 때부터 갖가지 자연현상을 숭배했다. 그들은 믿고 싶어 했다. 의지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언제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수많은 종교를 지켜봐왔다. 그것들은 인간의 여느 발명품들이 그러하듯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조금 더 세련되게, 조금 더 현란하게 변모했다. 하지만 그 본질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예배당 문이 열렸다. 하지만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예배당은 신을 모시는 장소였다. 위대한 그분의 제 일 사도인 ‘왕’께서 등장하신 이래 많은 것들이 변하였다. 이제 모두는 알았다. 진정으로 믿어야 할 자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기도를 바칠 자가 누구인지를.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하나였다. 언제나와 같이 둘이 아니었다. 남자 옆에 발소리의 주인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자를 보았다. 소리죽여 말했다.

“왕이시여.”

왕은 답하는 대신 예배당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 얼굴엔 감출 수 없는 피로가 묻어났다.

남자는 그런 왕을 이해했다. 그러했기에 왕이 먼저 입을 열기를 침묵 속에 기다렸다.

왕이 고개를 들었다. 나직이 말했다.

“밤이 오고 있다.”

밤이 온다.

황혼이 낮을 물들인다. 다가올 밤을 예고한다.

남자는 왕의 마음을 헤아렸다. 때문에 의미 없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데바우 성인들은 어찌한답니까?”

“그 자들은 밤 앞에 순종하겠다더군.”

“그들답군요.”

저항하지 않는다. 밤의 도래는 순리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다시 새로운 해가 떠오르듯이- 이 모든 것은 순리이다. 애당초 저항이란 개념 자체가 우습다. 인류와 더불어 전 우주에 가장 널리 번성한 그 종족은 그리 결론을 내렸다.

“불사왕, 나의 기사여.”

“말씀하십시오, 나의 왕이여.”

왕은 남자를 보았다. 너무나 오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여인 하나를 잊지 못하는 바보에게 물었다.

“그대는 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우문이었다. 왕도 남자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남자는 성실히 답했다.

“그리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밤이 온다.

밤이 다가온다.

“왕이시여.”

“말하오, 나의 기사여.”

“공주께서는 어찌 하신답니까.”

왕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은 무언 나름의 답이 되었다. 남자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오는 것이 순리라면, 공주의 행동 또한 순리이리라. 그녀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왕과 남자는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예배당 높은 곳에 자리한 우상을 보았다. 우상 아닌 우상. 상징을 만들지 않으면 믿음을 바칠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애석한 인류를 위한 그것.

“기도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의 신께서는 우리에게 무관심하시지요.”

“우리의 기도는 닿지 않겠지.”

“설사 닿는다 할지라도 응답은 돌아오지 않겠죠.”

무관심한 신.

엡솔루트 원.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아섰다. 남자는 그 뒷모습에 물었다.

“결심하신 겁니까.”

공주는 결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가신들 가운데서도 반발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그것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왕인 당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인 당신이 그것을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왕은 즉답하지 않았다. 즉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왕은 끝내 입을 벌렸다. 쥐어짜낸 목소리를 낮게 토했다.

“그래, 그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이 마왕이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지.”

왕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예배당을 떠났다.

홀로 남은 남자는 눈을 감았다. 왕을 위해 닿지 않을 기도를 보냈다.

밤이 온다.

밤이 온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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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13 조조3
    작성일
    12.08.19 22:59
    No. 1

    와...사연이 있는둣...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灰羽聯盟
    작성일
    12.08.19 23:11
    No. 2

    역시 사연이 있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레크리온
    작성일
    12.08.19 23:25
    No. 3

    왕과 가신들은 걍 나쁜놈이 아니었어!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4 길동무
    작성일
    12.08.19 23:29
    No. 4

    데바우....제 아버지 고향에는 선바우가 있지요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sfartar
    작성일
    12.08.20 00:12
    No. 5

    왕과 왕의 가신들이라
    죽은 왕을 다시 살리려는 건가요?
    밤을 막느라 사라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티미.
    작성일
    12.08.20 00:39
    No. 6

    음....
    역시... 왕의 가신중에 길잡이 토깽이만 나쁜놈 같은;;;;;

    앱솔루트 원이라... 올 어보브 원이 떠오르네요..ㅋㅋㅋ 앱솔루트 원이 모든 세상의 창조주이자 신이고, 그 아래 왕과 공주가 있는건가요..?
    그 왕은 마치 별의 아이처럼 밤을 막기위해 모종의 일을 꾸민거고... 그리고 왠지 그 진정한 뜻은 저 불사왕 아저씨랑 사기꾼 모자장수, 나쁜 꿈 정도? 만 알 것같기도 하고...

    어서 위레담이 나와서 해설이라도 좀 해주면 좋겠어요..ㅠㅠㅠ 다음 외전으로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불쌍한 음유시인 위레담이 나와서 떡밥 투척좀해주면 안될까요??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BK
    작성일
    12.08.20 01:44
    No. 7

    이편은 좀 본격적인 내용이 나오네요ㅋㅋ
    흑...신혼생활판타지말고 연대기 내용좀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3 alvink
    작성일
    12.08.20 11:09
    No. 8

    연대기는...재미있는데 복잡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오룡이
    작성일
    12.08.20 11:34
    No. 9

    공주가 별의아이인거 같던데 아니였나? 암튼 왕쪽에도 사연이 있긴있군요 왕과 공주가 밤앞에서 한 선택이 뭔지 궁굼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천지
    작성일
    13.11.01 09:05
    No. 10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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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SS #13 취중야담 +4 12.08.12 4,165 3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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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SS #9 사자와 호랑이의 록 & 롤 -1 +18 12.07.30 4,345 56 10쪽
90 SS #8 사자와 호랑이의 집지키기 +11 12.07.28 4,688 5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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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SS #6 그리고 그들은 +6 12.07.26 4,237 59 10쪽
87 SS #5 악마를 보았다. +26 12.07.25 4,659 64 17쪽
86 SS #4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18 12.07.25 5,422 70 15쪽
85 SS #3 추랑 - 도망 신랑을 쫓다 +21 12.07.24 5,124 72 21쪽
84 SS #2 그 시각 쫑파티 +16 12.07.23 5,304 69 6쪽
83 SS #1 사자와 호랑이와 여우의 첫날 밤 +9 12.07.23 5,746 42 1쪽
82 용어 해설 #9 +14 12.07.22 5,591 42 11쪽
81 연대기 각 시리즈 보는 법 +11 12.07.22 9,873 37 1쪽
80 숨겨진 이야기 #1 +14 12.07.22 5,870 60 3쪽
79 후기 +26 12.07.22 5,551 63 3쪽
78 후주곡 +14 12.07.22 5,616 71 8쪽
77 최종악장 '별의 아이' +15 12.07.22 6,113 79 9쪽
76 SG Chapter 23. #2 +25 12.07.22 6,049 88 14쪽
75 Chapter 23. +22 12.07.21 5,205 85 6쪽
74 용어 해설 #8 +15 12.07.21 6,422 57 7쪽
73 Chapter 22. #3 +34 12.07.21 5,384 95 16쪽
72 Chapter 22. #2 +46 12.07.21 5,141 102 8쪽
71 Chapter 22. +31 12.07.20 5,307 9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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