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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촌은 꿈꾼다.

찐따의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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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촌
작품등록일 :
2024.08.21 10:54
최근연재일 :
2024.09.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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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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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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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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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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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화. 찐따 (4)

DUMMY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

그 아줌마와 다이렉트로 부딪치는 건 지양하기로 했다.

다행히 레이더에 걸리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생긴 것부터 꼬롬꼬롬한 인간.

팔팔 돌아가는 뇌력을 뿜뿜 뿜어내며 퇴원 안 시켜주고는 못 배길 덫을 짜놓고 기다렸고 오전 8시 00분, 담당 의사가 출근하자마자 면담 요청 콜.

그리고 개자식의 태도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역시 그 아줌마, 보통이 아니었어.”


한국대 병원 전원 카드까지 준비하길 잘했다.

바로 꼬리 내리는 개자식의 얼굴에 순간 침을 뱉고 싶었지만, 그것도 잘 넘겼다. 아주 유연하게.


“명철의 비약이 아니었다면 우리 집은 전적으로 그 개자식에게 의지하고 그 지시를 따랐겠지? 아이고, 아이고, 선생님 하며 개자식이 누구의 명령을 받는지도 모르고 꼬리 흔드느라 바빴을 거야.”


다행히 이 병원에서만 벗어나면 우리도 아들 치료에 발목 잡힌 약자에서 ‘평범한 인생’ 정도로 위치가 올라간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1시간이 안 돼 부모님이 왔다.

이게 참 어려웠다. 온갖 슬픈 감정이 뒤섞인 두 분의 눈을 보면서도 진실을 말해주지 못하는 신세가.

인내하자.

성질 내고 병원을 뒤집는단들 어게인 라이프만 날아간다. 그렇다고 이들이 달라질쏘냐? 전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오늘 밤에 달이 뜰 것처럼 명확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도 절대 얻지 못한다.

지금은 숙인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어머니가 건네주신 사진을 봤다.

네 가족의 화목한 모습이 찍혀 있다.


“정말이네요. 내가 이 사진에 있어요. 정말 제 엄마이고 제 아빠가 맞으신 것 같아요.”

“그래그래그래, 유은아, 엄마야. 엄마라고. 흐으으윽.”


못 참고 덥석 안는 손길을 난 또 매정하게 떼어내야 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개자식이 같이 왔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아직 그렇게 와 닿지 않아서요. 나중에 다 기억나면 사과드릴게요.”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너무 성급했어. 얼마든지 천천히 해도 돼. 엄마가 미안. 엄마가 정말 미안. 흐으으음.”


울음을 억누르며 순순히 물러서는 어머니.

그 뒤에 선 아버지는 주먹만 부르르 쥐고 있었다.


“퇴원하고 싶다고 했어요. 병원에 있는 것보다 제가 살던 곳에 있는 게 더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제가 나을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뭐?! 퇴원한다고? 집에 올 수 있어?”


어머니가 놀라서 개자식을 봤다.

그래도 되냐고?

내가 분명 퇴원하겠다고 부모님을 불러달라 했는데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허튼수작을 벌이기 전에 얼른 잘랐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까 기억상실증은 달리 치료 방법이 없더라고요. 오로지 자연 치유라고 해서 한국대 병원을...”

“퇴원해도 됩니다! 기억상실은 확실히 어떤 계기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보다는 익숙한 공간이 더 도움될 거란 연구결과도 있고요. 어제 입원했으니까 며칠 더 두고 보고 싶지만, 서유은 학생 상태를 보니 퇴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제야 정리해주는 개자식이었다.

어머니는 재확인하고 싶은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퇴원해도 된다는 거죠?”

“예, 퇴원해도 됩니다. 다만 머리의 자상 치료가 덜 됐으니 계속 통원하시고요. 아! 병원비는 전부 납부됐습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병원비를 안 내도 된다고요?”


어떤 아줌마가 냈나 봐요.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검사나 더 빡세게 받을 걸 그랬다.

갑자기 개자식이 남의 어깨를 토닥이며 친한 척한다.


“예, 안 내셔도 됩니다. 서유은 학생, 항상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 생각해.”

“예, 알겠습니다. 근데 진단서는 언제 끊어주시나요?”

“진...단서?”


당혹스러워하였다.

이 새끼 설마...


“어! 진단서가 없어요? 이거 빨리 다른 병원...”

“해놨지. 해놨지 녀석아. 넌 말을 그렇게... 바로 끊어줄게. 그거면 된 거냐?”

“그럼요. 제가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인데요. 그것만 주시면 바로 갈게요.”

“어, 그래, 알았다.”


머뭇대며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뭐해요? 안 해주세요?”

“알...았다. 바로 해줄게.”


병실을 나가는 개자식의 등을 보며 부모님께 말했다.


“두 분... 저기, 잠시만 계세요. 진단서는 제가 받아올게요.”

“어, 응.”

“...그래.”


서둘러 의사실 안까지 쫓아가 앞에 섰다.

이런 놈을 혼자 보내면 틀림없이 어디론 가로 보고할 테고 상황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랐다. 부모님한테 퇴원을 말하지 않은 건 아마도 부모님에 기대 자기 선에서 막아볼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보고가 안 들어간 것.

속 보이게 나를 잠깐 미운 눈으로 본 개자식은 할 수 없다는 듯 키보드를 쳤다.


“자, 됐냐?”


프린트한 진단서를 넘긴다.

스윽 훑는데 Partial Amnesia가 적혀 있었다.

Partial?


“부분? 내가 부분 기억상실인 거예요?”

“뭐?!”

“이 진단서, 정말 한국대 병원에 제출해도 됩니까?”


총알같이 일어나 빼앗는 개자식이었다.


“어어! 정말 Partial Amnesia라고 적어놨네. 다시 적어줄게.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미안. 조금만 기다려.”


유치원생도 안 속을 너스레를 떨며 다시 진단서를 쓴다.

이번엔 Retrograde Amnesia이라고 쓰여 있었다.

역행성?

어감상 과거를 잃어버린 인간이란 뜻 같았다.

이번엔 제대로 적은 모양이다.


“......”


싸울 무기를 손에 쥐었다.

이제는 개자식이 필요 없어졌다.

나가려다 멈칫,

갈 때 가더라도 한마디는 해줘야겠다.


“거 좀 똑바로 삽시다. 자식들 보기 안 부끄러워요? 어떻게 기억상실증 환자도 빤히 보이는 수작을 벌입니까. 신나게 공부해서는 사기 치는 데만 몰빵했나. 다신 보지 맙시다. 체할 것 같으니까.”



***



“밥 차렸어. 유은아, 밥 먹어~~”


식탁으로 가다가 보았다. 뻐꾸기 괘종시계, 벽 한쪽에 나열된 LP 앨범과 턴테이블, 체리 색 어두운 집안.

오래되고도 모두 익숙한 물건들인데 오늘따라 새로웠다.

점심 메뉴는 된장찌개에 계란말이, 김치, 몇 가지 나물, 조기구이였다.

퇴원을 마치니 얼추 점심나절이라.

어머니가 부랴부랴 부엌으로 들어가 차린 상이었다.


“저기, 유은아.”

“......”

“엄마가 경황이 없어서. 이따가 맛있는 거 해줄게. 우선 이거로 잠깐 때우자.”


이렇게 훌륭한 밥상을 차려주시고도 어머니는 조심스러웠다.

맞은편, 흰색 난닝구를 입은 아버지는 말없이 수저를 들고.


“먹어라.”


평소 같았으면 이 말이 들리는 즉시 수저를 들고 전투적으로 식사에 임했을 테지만,

나는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에 수저를 쥐여줬다.


“먹어. 아빠가 이제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신 거야. 우리 집은 밥 먹을 때 늘 이랬어.”

“......”


맞다. 아버지가 한술 뜨시고 우리더러 먹어라 해야 우리 집은 식사가 시작된다.

격동한 나는 도저히 밥을 넘길 자신이 없었다.

채 두 수저를 뜨지도 못하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더 먹으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젠장.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에 앉았다.

무심코 든 게 수학 참고서.


“으응?”


술술 읽혔다.

외계어의 난립에 불과하던, 이게 사람 사는데 얼마나 필요한가 싶었던 고통스러운 공식들이...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의 목을 조르던 엿 같은 기호들의 집합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눈앞에 넘실댔다.


“이게... 수학?”


재밌었다. 논리적이었고 난관을 헤쳐가는 묘미가 있었다.

완전한 학문은 아닌지 소수, 무리수 같은 오류들이 가끔 눈에 띄긴 했다. 뭐, 그것도 뭉개버리고 하나의 약속으로 지정하기는 했는데.

기가 막힌 건 이걸 내가 재밌어 한다는 것이다.


“......”


필 받은 나는 참지 못하고 과학, 화학, 사회, 한문으로 영역을 넘어갔다. 그동안 터부시하고 졸업만 하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내외했던 과목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스스로 껍데기를 벗고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들을 봐달라며.

희한했다.

교과과정이 마치 손안에 잡힌 것처럼 느껴졌다. 사진으로 찍은 듯 입력되며 너무도 가벼운 존재감으로서 하찮게.

나에게 변명을 다 지껄인다. 수백만 수험생들을 농락한 주제에 자기들은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고, 오래전부터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어안이 벙벙.


“...이게 천재들의 삶인가?”


세상이 놀이터 같다더니.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방금이 트리거가 됐는지 그동안 내가 성실히 쌓아놨던 학력마저 줄줄이 녹아 스며들어 갔다.

그 뻑뻑하고 헷갈리고 지저분하게 난립하던 지식이 꼬치로 꿰뚫듯 시원해졌다.

이런 걸 보고 달통이라고 하는지. 찰나에 고교 교과과정을 마스터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완성감? 이런 걸 다 느껴보네. 공부가 재밌어. ...어떻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어게인 라이프는 판타스틱이었다.

앞으로 줄줄이 다가올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쪽지시험 생각만 하면 울컥 솟아오르던 우울이 초개처럼 구르다 사라진다. 굿바이.

이때 처음 알았다.

공부가 더 이상 나에게 고난이 될 수 없음을.


“학생이 공부가 재밌으면 끝이잖아. 특전이 맞네. 특전이 맞아. 쿠쿠쿠쿠쿠쿠쿠쿡.”


시간이 남는 김에 3학년 참고서도 들여다보고 있는데 밖에서 불렀다.


“유은아, 엄마·아빠 가게 갈 거야. 집에 혼자 있을 수 있지?”

“......”


세탁소로 간다는 얘기였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서민의 애환이었다.

아픈 아들을 두고서라도 나갈 수밖에 없는 생활고.

나도 일어났다.


“으응? 왜 나와? 어디 가려고?”

“같이 가려고요.”

“어딜?”

“가게요.”

“너 가게 나오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제가 그랬어요?”


그랬다. 나는 우리 집이 세탁소 하는 게 창피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면 사람이 많건 적건 ‘유은아, 서유은~~~’하고 이름을 불러대서 그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들이 좋아서 불렀던 거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나 멀리 보이면 눈치 못 채게 도망간 적이 많았다.

지금은 그것마저 보고도 못 본 척해준 걸 알지만.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아, 아니, 오고 싶으면 와도 돼. 당연히 와도 되지. 우리 가게인데.”

“오늘은 같이 있어 보려고요.”

“그럴까? 그러자, 같이 가자. 오늘 정돈 같이 있는 것도 좋지.”


함께 나섰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앞장서는 부모님을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세탁소가 궁금해서 가는 건 아니었다.

같이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가게 도착한 지 1시간도 안 돼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저기... 안녕하세요.”


그 아줌마였다.

화려한 치장의 조상태 엄마.


‘하여튼 부지런해요.’


우리가 퇴원한 걸 들었을 테니 오늘 안으로 어떻게든 액션을 취할 거라 봤는데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이야.


“누구...세요?”

“아, 저기... 말씀드리기 민망하긴 한데. 서유은 학생 머리... 그 녀석의 애미입니다.”

“......!”

“......!”


단박에 굳어지는 부모님.

이것도 꽤 의외였다.


‘서로 얼굴을 몰라.’


어제 병원에 왔으니 당연히 우리 부모님과 만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상식마저 가뿐하게 지르밟은 여자였다.


‘이 아줌마 정말 대단하구만.’


기사인지 경호원인지 젊은 남자가 한 아름 되는 과일바구니를 턱 내려놓고 세탁소를 빠져나갔다. 그걸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계산이 안 서는 부모님과 그 옆에서 이 흉악한 여자를 어떻게 요리해야 잘했다고 동네방네 소문날까 궁리하는 나. 그리고 불청객이란 냉랭함쯤 가볍게 튕겨내는 아줌마. 세 방향에서 얽힌 시선만 불타고 있을 뿐.

시작은 아줌마였다.


“유감입니다. 병원에서 소식을 전해줘서 저도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오늘 찾아뵈려 했는데 갑자기 퇴원하셨다고 하여 부랴부랴 댁으로 갔는데 안 계셔서 이렇게 가게로 왔습니다.”


공손과 겸양, 죄송을 가장하지만,

내 귀엔 너희가 어디로 가든 간단히 찾을 수 있단다. 로 들렸다.


“듣기론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사고가 벌어졌다고 하던데.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제가 다 가슴이 떨립니다. 아들을 따끔하게 혼내긴 했는데 그 녀석도 이렇게 큰일이 될지 몰랐다고 하더군요. 하긴 누가 이걸 예상했겠습니까.”


네 자식이 다친 건 미안하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함부로 굴지 마라.


“그래도 같이 자식 기르는 입장에서 그냥 두고 보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만나 뵙고자 했습니다. 무참하고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저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애들끼리 벌어진 일이라도 성의는 보일게.

다 들렸다.

명철은 정말 비장의 한 수였다.


“잠깐만요.”


어머니가 콧김을 뿜으며 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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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밴드 찬솔 24.09.04 59 5 14쪽
16 16화. 케이팝의 완성자 24.09.03 74 7 14쪽
15 15화. 메인 시나리오 24.09.02 79 8 14쪽
14 14화. 나는야 피아니스트 24.09.01 85 11 14쪽
13 13화. 나는 야자가 싫어요 (3) 24.08.31 85 7 15쪽
12 12화. 나는 야자가 싫어요 (2) 24.08.30 93 8 14쪽
11 11화. 나는 야자가 싫어요 (1) 24.08.29 99 10 14쪽
10 10화. 새 친구 24.08.28 116 9 13쪽
9 9화. 풍운의 전학생 +1 24.08.27 126 11 12쪽
8 8화. 호랑이 뼈 +2 24.08.26 123 9 14쪽
7 7화. 제3의 인격 +1 24.08.25 127 9 13쪽
6 6화. 그냥 전학생 +1 24.08.24 124 9 14쪽
5 5화. 명철의 힘 +3 24.08.23 134 10 14쪽
» 4화. 찐따 (4) +1 24.08.22 126 7 13쪽
3 3화. 찐따 (3) 24.08.22 126 8 14쪽
2 2화. 찐따 (2) 24.08.21 145 8 15쪽
1 1화. 찐따 (1) +1 24.08.21 200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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