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사기꾼 15화
필드의 사기꾼 15화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 국제공항.
민선과 안영우가 출국장을 벗어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영우!”
“오우, 파울로!”
덩치가 상당한 백인이 다가오며 반갑게 외치자 안영우가 양팔을 벌리며 그에게 다가간다. 포옹을 한 두 사람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 아이야?”
“그래. 민선아, 인사해. 이쪽은 피렌체 유소년 클럽의 감독인 파울로 로시야.”
민선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강민선이라고 해요.”
“이탈리아어를 참 잘하는구나.”
“선생님께 배웠어요.”
안영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고작 1년을 가르쳤을 뿐이야. 그런데 내가 몇 년을 배운 것보다 이탈리아어에 능숙해.”
“하하, 축구에만 재능이 있는 게 아니었네.”
파울로 로시가 두 사람을 이끌었다. 주차가 되어 있는 차에 타자 곧 출발을 한다.
“민선은 이탈리아가 처음이지?”
“네, 이번에 비행기 처음 타 봤어요.”
“소감이 어땠어?”
“으음, 그냥 지루했어요.”
“지루했어? 하하하! 아주 재미있는 소감인데? 보통은 처음 비행기를 타면 신났다거나 신기했다거나 하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오는 거잖아.”
“신나거나 신기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야. 하하, 아무튼 특이하네.”
파울로 로시는 민선이 무료할 것이 걱정인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클럽에 대해 들은 이야기 있어?”
“조금요.”
“그래? 영우가 어떤 이야기를 해줬지?”
“클럽에 속해 있는 아이들은 재능이 뛰어난데 감독님의 실력이 형편없어서 아이들의 재능을 죽이고 있다고 했어요.”
운전을 하던 파울로 로시가 멍한 눈으로 안영우를 바라본다. 안영우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담담한 말투로 말을 한다.
“운전 할 때는 앞만 보라고 몇 번을 말했어?”
“정말 그렇게 말했어?”
“틀린 말은 아니잖아.”
“민선, 절대 그렇지 않아. 나는 한때 세리에 A에서 아주 잘나가던 윙어였어. 영우가 세리에 A에서 활동을 할 때 득점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나의 크로스와 킬패스 때문이었어.”
안영우가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말은 정확하게 해야지. 만년 벤치 신세였던 널 구원해 준 건 나야. 내가 감독을 설득했기 때문에 네가 출전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리고 크로스와 킬패스? 그래, 크로스까지는 어떻게 끼워 맞추면 그럴 수도 있다고 쳐. 하지만 킬패스는 아니지. 그냥 치고 들어가서 문전으로 크로스밖에 올리지 못했잖아. 아무리 민선이 그때 경기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
“언젠간 복수하고 말 거야.”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을 보며 민선이 웃음을 터뜨린다.
“요즘 클럽 분위기는 어때? 괜찮은 유망주들은 좀 들어왔어?”
“아주 힘들어 죽겠어. 괜찮은 아이들은 죄다 로마나 밀라노, 토리노 쪽에서 다 빼 가고 있어.”
파울로 로시가 열거한 도시들은 하나같이 빅 클럽들의 연고지였다. 로마에는 AS 로마가 있고 밀라노에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두 밀란, 즉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 있다. 그리고 토리노는 세리에 A의 절대강자 유벤투스의 연고지다.
유망주는 클럽의 미래다. 그렇기에 1부 리그, 즉 세리에 A에 속한 클럽들은 실력이 뛰어난 유망주를 클럽 산하의 유소년 클럽에 영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도 다행히 작년하고 올해는 꽤 괜찮은 아이들을 몇 명 영입했어.”
“미드필더와 윙어는?”
“직접 봐. 썩 마음에 들걸?”
“무슨 자신감이야? 기대 되는데?”
안영우는 파울로 로시가 쓸데없이 말이 많기는 해도 무언가를 과장을 하거나 지나치게 허풍을 떨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피렌체 유소년 클럽에 실력이 좋은 미드필더와 윙어가 있는지를 물어 본 이유는 당연히 민선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민선을 받쳐 줘야 제 기량껏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가 있을 테니까.
***
피렌체 유소년 클럽에 도착을 한 민선은 입을 쩍 벌렸다.
“파리 들어갈라.”
“우와, 선생님. 엄청 좋아요.”
클럽 하우스에 들어와 창밖으로 보이는 경기장을 본 것이다. 경기장에는 아이들이 코치의 지도 아래 훈련을 하고 있었다. 피부색이 하얀 백인, 검은 흑인, 그리고 남미 계열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하하, 시설이 좋지 않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그래. 축구 선진국, 특히 유럽 국가들은 유소년 클럽들도 우리나라의 웬만한 프로들보다 좋은 시설에서 훈련을 해. 참고로 말을 하자면 이곳 피렌체 유소년 클럽의 시설은 다른 유소년 클럽에 비해 썩 좋은 편은 아니라는 거야.”
“그걸 꼭 내가 듣는 데서 이야기를 해야겠어?”
이탈리아에 온 이후로 한국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기에 조금 전 대화를 할 때도 이탈리아어로 했고 그 말을 들은 파울로 로시가 틱틱거린다.
“사실이니까.”
“그러면 좋은 시설 있는 곳에 보내지 왜 이곳에 보내는 거야?”
“이곳만큼 민선의 실력을 키워 줄 만한 클럽은 없으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세리에 A 산하 유소년 팀에 가면 좋은 시설에 실력이 뛰어난 코치들에게 지도를 받을 텐데.”
안영우가 파울로 로시를 바라본다.
“민선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실전이야. 많은 경기를 뛰어 봐야 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실력이 뛰어난 유망주들로 차고 넘치는 그런 클럽들에 보내면 안 되지. 출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
“듣고 보니 씁쓸해지네.”
민선의 실력에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고 피렌체 유스에 민선의 출장을 막을 만한 실력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좋은 코치에게 훈련 받는 것은 별로 부러워 할 필요가 없지. 내가 개인 지도를 할 거니까.”
“아-”
아무리 유명 클럽들 산하 유소년 클럽의 코치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안영우의 네임 벨류를 따라갈 수는 없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우리 애들 봐줄 수 있지?”
“좋아. 대신 네 말대로 일주일에 딱 하루야.”
“그것만 해도 감사하지. 잠시 기다려. 아이들과 인사 해야지.”
파울로 로시의 안내로 세 사람은 클럽 하우스를 나섰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민선과 안영우가 축구화로 갈아 신었다.
일행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미리 연락을 받았던 코치들이 아이들을 집합 시켰다. 서른 명가량 되는 아이들이 코치들의 지시에 따라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열심히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네. 리그가 시작되기 전까지 열심히들 해봐. 이번에는 좋은 성적 거둬야 하지 않겠어?”
파울로 로시의 말에 몇몇 아이가 움찔한다. 나이가 차서 이제 유스를 떠나야 하는 아이들이다. 유스를 떠나기 전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상위 리그 팀에 스카우트를 받아야 축구 인생이 연장이 되는 것이다.
“오늘 새로운 동료가 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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