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사기꾼 18화
<※본 글은 소설이며 단체명이나 이름 등은 사실이 아닙니다. 작가의 상상에 의한 순수 창작물입니다.>
필드의 사기꾼 18화
“오늘 멋졌어.”
“너도 멋졌어. 아니, 최고였어. 정말 네 드리블은 화려하고 멋있어.”
“하하, 고마워. 네 드리블도 좋았어. 특히 돌파를 할 때나 공간을 파고들어 위치 선점을 하는 것은 예술적이었어. 마법사에게 배워서 그런 거야?”
“선생님께도 많이 배웠어. 하지만 아빠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아.”
“아버지도 축구 선수야?”
“부상으로 은퇴하셨지만 한때는 유명했던 축구 선수지.”
“내가 아는 선수야?”
“그건 아닐걸.”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로커 쪽으로 걸어갔다.
“너라면 믿고 패스를 해줄 수 있겠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아이들은 못 믿어?”
줄리오 실바가 주위를 살피고는 민선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저기 키 멀대같이 큰 놈 보이지?”
“너희 팀 공격수였던?”
“그래, 안토니오 갈로파. 너 오기 전까지 우리 클럽의 주전 공격수였어. 오늘 경기하면서 봤지? 저 녀석이 날려 먹은 찬스가 몇 번인지?”
민선이 보기에도 안토니오 갈로파는 실력이 썩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함께 축구를 했던 아이들과 비교를 하자면 한참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을 기준으로 하면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안토니오 갈로파는 경기 내내 동료들의 패스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 했다. 특히 줄리오 실바의 떠먹여 주는 패스도 두 번이나 뻥 하고 날려 버렸다.
“저 녀석에게는 패스가 아까워. 그래서 오늘도 패스 보다는 개인플레이를 많이 했지. 절대 내가 패스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
“기대해 보라고 아주 멋진 패스를 줄 테니까. 물론 네가 우리 클럽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됐을 때 이야기지만 말이야.”
민선이 씨익 웃으며 감싸고 있는 줄리오 실바의 어깨를 끌어당긴다.
“걱정 하지 말라고.”
***
일주일간 민선과 안영우는 참 바빴다.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들 때문이었다. 민선이 다닐 학교를 방문하고 이런저런 서류적인 문제도 처리를 했다.
유성 코퍼레이션에서 민선을 케어하기 위해 보낸 직원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민선은 첫날 클럽을 찾고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경기장 구경도 하지 못 했다.
“하하, 드디어 내일부터구나.”
민선이 기대가 된다는 듯 웃으며 공을 강하게 때린다. 정원 한쪽에 만들어준 아주 작은 골대에 공이 정확히 들어간다. 정원에는 그것 말고도 여러 개의 골대가 있었다.
공 세 개가 겨우 통과할 정도의 작은 골대들로 안영우가 설치를 해준 것이다.
정원에서 공을 가지고 놀다 아무 때고 뻥뻥 슈팅을 하면 그 공들은 어김없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고용인 에밀리아 아주머니의 외침이 들려온다. 민선을 위해 안영우가 특별히 고용한 에밀리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 살았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에밀리아는 전통 이탈리아 음식도 잘하지만 대한민국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덕분에 민선은 유럽과 대한민국의 퓨전 식단을 거의 매 끼마다 먹고 있었다.
민선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영우와 유성 코퍼레이션의 직원 이동수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간단하게 씻고 밥 먹자.”
“네, 선생님.”
잠시 후 식당에 모인 사람들.
에밀리아를 포함해 네 사람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갈비찜 했어요. 물론 화학조미료는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에밀리아 아주머니의 음식은 언제나 최고예요.”
민선의 입에는 이미 갈비찜이 들어가 분해되고 있었다.
“드디어 내일부터 훈련을 하는 구나. 기분이 어때?”
“너무 좋아요.”
이동수가 웃으며 민선의 어깨를 툭 쳤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경기장에 가지 못해서 엄청 좀이 쑤셨어요.”
“하하, 그렇구나. 대신 영우 씨와 훈련했잖아.”
“헤헤, 다른 아이들과 경기하고 싶어서요.”
안영우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수업도 잘 받아야 하는 것 알지?”
“네, 선생님.”
“몇 번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학교생활을 잘해야 해. 아마도 다른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 거야. 그런 아이들과 무조건 싸우자고 덤비면 안 된다.”
유럽은 유난히 인종차별이 심하다. 어떤 나라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출입을 하는 입구가 다른 건물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학교에 클럽 아이들도 다니니 그 아이들과 함께 다니도록 해. 아무래도 축구 클럽에 있는 아이들은 좀처럼 괴롭히거나 하지 않으니까.”
“선생님, 저 남자예요. 아빠가 그랬어요.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 아니라고.”
“하, 하하…… 그렇구나. 우리 민선이도 남자였지. 그러면 선생님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민선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머니, 갈비찜 너무 맛있어요.”
“호호, 넌 안 맛있는 음식이 없잖아. 항상 배가 고프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기는 해요. 식사하고 뒤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파요. 하지만 그래도 에밀리아 아주머니 음식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말이라도 고맙구나.”
에밀리아가 웃으며 갈비찜 접시를 민선 앞으로 밀어준다.
“많이 먹어.”
***
펑-
낮고 빠르게 크로스가 날아온다.
텅-
민선은 가볍게 도약을 하며 몸을 비틀고는 날아오는 공의 방향을 발등으로 살며시 바꾼다. 공은 정확히 골대의 좌측 상단에 빨려 들어간다.
골대로 향하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워낙 위치가 기가 막혀 골키퍼 마르코 보체니는 점프를 하였음에도 걷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골을 허용한다.
좌측 라인에서 줄리오 실바가 엄지를 세우며 웃고 있다. 민선 역시 줄리오 실바를 보며 가볍게 박수를 쳐준다. 수비수가 없는 상황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킨 것이지만 확실히 줄리오 실바의 크로스는 대단하다.
“마르코, 수고 했어.”
마르코 보체니가 어깨를 으쓱한다. 민선과 줄리오 실바의 훈련을 돕기 위해 골대를 지키고 있었지만 열 번의 슈팅 중 두 개밖에 막지 못했다.
피렌체 유소년 클럽의 주전 골키퍼인 마르코 보체니이지만 저 괴물 같은 동양인 소년의 슛은 좀처럼 막기가 쉽지 않았다.
두 골을 막은 것도 줄리오 실바의 크로스가 길거나 짧아 제대로 된 슛을 하지 못한 것을 막은 것뿐이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골대의 공을 툭 차 주자 민선이 기다렸다는 듯 공을 받아 줄리오 실바를 향해 패스를 한다.
툭- 툭-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질주를 하며 일대일 패스를 한다. 서로 달리는 속도까지 계산을 한 정확한 패스다. 그렇게 경기장을 왕복 두 번 패스를 하며 질주를 한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경기장에 주저앉는다.
한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훈련을 했다. 힘이 들 법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줄리오 실바 역시 민선만큼이나 체력이 뛰어났다.
본격적으로 클럽의 훈련에 참여하고 보름이 지났다. 그간 가장 친해진 동료가 바로 줄리오 실바였다.
다른 아이들과도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줄리오 실바와는 이제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친해진 상태였다.
“앞으로 십 일 후면 리그가 시작이야.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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