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사기꾼 32화
<※본 글은 소설이며 단체명이나 이름 등은 사실이 아닙니다. 작가의 상상에 의한 순수 창작물입니다.>
필드의 사기꾼 32화
“으…….”
푸근한 날씨임에도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민선은 클럽 재킷을 두르고는 벤치에 앉아 있다.
“하아-”
옆에서 파울로 로시의 답답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리그 10라운드 경기에 민선이 감기에 걸려 출전을 하지 못했다.
운이 나쁜 것인지 상대 팀이 중부 지역의 강자 중 한 팀인 SS 라치오 산하 유소년 팀이었다.
후반 27분, 스코어 2:0.
경기는 시작부터 라치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라치오는 특유의 한 템포 빠른 공격으로 피렌체의 수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경기에서 1: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후반 인저리 타임에 어처구니없는 실점을 하며 무승부로 경기가 끝이 났다.
오늘 패배를 하게 된다면 10라운드까지의 성적은 7승 2무 1패로 승점 23점이 된다.
AS 로마는 피렌체 유소년 클럽과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를 제외하고 전승을 거두었기에 승점 28점이다.
무려 승점 5점이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상대를 하는 라치오의 성적은 7승 1무 1패다.
이 경기에서 이기게 되면 승점 25점으로 피렌체를 3위로 밀어내고 2위에 오르게 된다.
“안토니오!”
파울로 로시가 그답지 않게 라인까지 걸어가 손나팔을 만들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결정적인 찬스를 안토니오 갈로파가 개인플레이로 날려 먹은 것이다.
민선이 괜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안영우의 음성이 들려온다.
“축구 선수가 훈련만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부상도 조심해야 하고 또 지금의 너처럼 어처구니없게 감기에 걸리지 않게도 주의해야 해.”
며칠 전 훈련을 마치고 몸이 뜨거워져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 날 일어난 민선은 체온이 39도까지 올라 병원에 가야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음에도 아직도 몸이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경기에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대 라치오전은 후반 종료 5분 전 한 골을 더 내주어 3:0으로 종료가 되었다.
***
피렌체 유소년 클럽의 회의실.
안영우와 파울로 로시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안영우는 앞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내려놓는다.
“하아, 답이 없네.”
안영우가 피식 웃으며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는 파울로 로시를 바라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잖아. 원맨팀의 한계잖아.”
“하하, 그토록 정성을 쏟은 팀이 원맨팀이라니…….”
“정확히는 원맨팀은 아니지. 나름 괜찮은 팀이었는데 민선이 오면서 원맨팀처럼 바뀌어 버렸지.”
안영우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파울로 로시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민선이 없을 때의 피렌체 유소년 클럽은 나름대로 중부 지역에서 강한 축에 속하는 팀이었다.
그런데 왜 안영우와 파울로 로시가 원맨팀이라는 표현을 쓸까?
그 이유는 이러하다.
민선이 들어온 이후 민선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피렌체 유소년 클럽의 10라운드까지 경기 중 넣은 골 18골 중 민선이 넣은 것이 11골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4개의 어시스트도 기록을 했다.
팀의 골 중 8할이 넘게 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민선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니 팀의 경기력이 현저히 떨어져 버린다.
민선이 없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형편없는 경기력이다.
그것이 바로 민선에 대한 의존도 때문이다.
“모두 내 욕심 때문이야.”
파울로 로시가 자책하듯 중얼거린다. 민선이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들어오자 승리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민선을 무조건 선발 기용하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민선의 대신할 수 있는 서브 자원을 마련했어야 했다.
“내 입장에서야 민선이 계속해서 선발 출장을 하면 좋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 있겠지. 지역 예선을 통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그렇지. 선택은 내 몫이지.”
***
11라운드와 12라운드에서 민선은 벤치를 지켜야 했다.
벤치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후반에도 교체 투입이 되는 일은 없었다.
민선이 없을 때를 대비한 훈련도 열심히 하였다. 덕분에 수혜를 입은 이가 공격수 서브 자원이었던 호세 고메스였다.
호세 고메스는 안토니오 갈로파와 짝을 이뤄 두 게임 연속으로 선발 출장을 하였다.
기록한 성적은 어시스트 하나뿐이었지만 훈련의 성과 때문인지 이전과는 달리 경기를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패스도 감각적으로 바뀌었다.
11, 12라운드의 결과는 1무 1패다. 경기당 각각 한 골을 기록했지만 네 골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12라운드 7승 3무 2패 승점 26점으로 공동 4위에 랭크가 되어 있다.
쾅-
발등에 제대로 얹힌 중거리 슛이 골대의 좌측 상단을 꿰뚫을 듯 빠른 속도로 통과한다.
그물을 찢어 버릴 듯 회전을 하던 공이 떨어져 내린 후에야 골키퍼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을 넣은 민선이 가슴을 두드리며 동료들에게 어서 달려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골 세리머니 후 민선이 진영으로 복귀를 한다.
13라운드, 시에나 유소년 클럽과의 경기에서 그간 출장을 하지 못한 설움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경기장을 휘젓고 있다.
미친 존재감이란 이런 것이리라.
전방에서 홀로 압박을 하여 공을 빼앗아 내질 않나, 미드 라인까지 올라가 공을 받아 50미터 단독 드리블을 한 후 골을 넣지를 않나…….
아무튼 오늘 민선의 활동량은 어마어마했다. 그 결과 전반에만 세 골을 넣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시에나 유소년 클럽이 절대 약한 팀이 아니다.
피렌체를 4위로 밀어내고 3위에 있는 팀이 바로 시에나 유소년 클럽이었다.
두 팀의 승점 차이는 2점.
오늘 피렌체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시에나를 밀어내고 다시 3위를 탈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반이 종료되며 로커로 돌아갔다. 민선은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후반에 안토니오 갈로파와 교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코어가 3:0이었기에 내려진 결정이리라.
후반을 벤치에서 시작을 하게 된 민선.
후반 초반의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미드필드진에서 경기를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상대팀은 전반에 대량 실점을 하며 멘탈이 흔들렸는지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시에나 유소년 클럽에게 다행인 점은 후반에 피렌체의 최전방 공격수로 나온 안토니오 갈로파가 완벽한 찬스를 번번이 날려먹고 있다는 것이다.
후반 12분 무렵 시에나의 윙어가 올린 크로스를 다니엘 그로소의 어깨를 맞고 골로 이어지는 실책으로 한 점을 빼앗기게 되었다.
민선은 이상하게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불안감의 정체를 알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 하하…….”
후반이 끝나는 시점 전광판에 기록이 된 3:4라는 스코어가 민선을 헛웃음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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