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바다에서 생긴 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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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바다다!"
푸르른 하늘, 에메랄드 빛 바다, 넓게 퍼진 모래해변, 해변을 따라 서 있는 포장마차와 상점들.
우리는 엘프의 영역 서해안에 있는 《엘로리다 비치》에 왔다.
"릴리도 참. 정말 못 말린다니까."
릴리 누님이 기뻐하며 뛰쳐나가자 큰 누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다들 우리처럼 놀러왔나 보지, 뭐."
이 해변은 관광지라 그런지 우리말고도 인파가 넘쳐났다.
"이게, 바닷물? 아읏, 짜!"
릴리 누님이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돌다가 맛을 보더니 손사래 쳤다.
"여기서 바다씨가 만들어지는 구나."
"예. 바닷물로 소금을 만드니까요."
이걸로 아마릴리스 누님의 지식이 하나 늘었다.
"그럼 기껏 장만한 수영복을 입어 볼까?"
"잠깐만요, 누님. 여기서 말입니까?"
탈의실 하나 없는 해변 한가운데서 옷을 갈아입겠다니 누님이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에잇!"
-촤락!
"히익!"
누님이 대범하게 옷을 풀어재끼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 사실 손가락 사이로 눈동자가 보여 가린 것도 아니었다.
누님은 효과음과 함께 순식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안에 미리 입어둔 것이었다. 뭔가 내심 아쉬웠다.
아마릴리스 누님은 밀짚모자에 오직 식물성 천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연녹빛 탱크탑 비키니를 입었다. 허리에는 기다란 천을 둘러 묶어 치맛자락을 연출했다.
"누님.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말은 그렇지만, 이거 아무리 봐도 그냥 속옷 같은데···.
하긴 이 세계에 합성섬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래도 물에 젖으면 속살이 다 비쳐 남사스러울 것 같았다.
"그치? 어울리지?"
"근데 그런 복장이면 물에 들어가서 다 젖어 속살이 비칠 것 같습니다."
난 솔직하게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 방수마법 《워터 프루프》가 있어서 그럴 일은 없으니까."
"그렇군요."
맞다. 이 세계엔 마법이 있었지?
"아저씨도 빨리 바다에 들어와~!"
그 말을 남기곤 누님은 동생 따라 바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누님의 몸매에 비하면 그냥 적당히 잡혀있는 노인네 몸매라 벗기가 좀 모양새가 안 맞았다. 그냥 지금 면티에 반바지차림이면 될 것이다.
"언니, 받아랏!"
"꺄악! 너 이러기야? 에잇!"
누님들은 서로 물장난을 치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이제 보니 작은 누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빨간 줄무늬 패턴의 배꼽티 수영복이었다.
"아저씨도 같이 놀자."
"전 그냥 이러고 있겠습니다."
"왜~?"
―이 그림에 내가 끼는 건 좀 모양새가 상당히 이상하니까요, 누님. 젊은 아가씨와 같이 노는 늙은이라니.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나는 생각을 삼키고 적당히 둘러댔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말이죠. 에고. 삭신이야."
"알았어. 평소엔 잘만 요리하면서 하필 오늘 몸이 안 좋대?"
누님은 살짝 실망했는지 다시 바다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누님.
"날씨 한번 참 좋구나."
그나저나 바닷가에 왔으니, 일전의 그 굴소스 재료를 구할 수 있나 싶었다. 굴만 있으면 절여서 만들면 그만인데 말이다.
이런 바닷가면 반드시 수산시장 같은 게 있을 터이다. 누님말론 생선을 안 먹으니 없을 수도 있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때였다.
"《크리에이트 워터》!"
"으아악!"
나는 홀딱 물에 젖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릴리 누님!"
"헤헤헤. 바다에 왔는데 물 한 번 안 적시는 건 이상하잖아요, 아저씨."
"누님, 가만 안 둡니다."
-다다다다다
나는 그대로 누님들에게 달려가 물장구로 복수(?)를 했다. 정말 치열한 물싸움이었다.
그렇게 놀다가 시간이 흘러 배가 고파졌다.
"아, 배고프다."
아마릴리스 누님도 허기진 모양이었다.
"뭐 좀 먹으러가죠."
"찬성!"
우린 해변에 늘어져있는 포장마차들을 둘러보면서 뭘 먹을 지 고민했다.
"조개구이를 주로 팔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엘프들도 조개구이를 맛있게 즐기고 있어."
릴리 누님과 아마릴리스 누님의 말대로, 포장마차 테이블마다 엘프들이 조개구이를 즐기고 있었다.
지난 번 《스미다》 마을에서 누님들이 굴소스에 딱히 거부감이 없던 걸 보면, 역시 엘프들은 조개까진 먹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조개랑 친구 먹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겠냐만···.
"그럼 조개구이를 먹도록 하죠. 여기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자리가 남아있는 포장마차 안으로 누님들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점원이 주문을 받았다.
"주문은 뭐로 하시겠어요?"
메뉴판을 보았다. 조개구이, 조개탕, 조개찜 크게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다.
"모듬조개구이 3인분하고, 공깃밥 3개요."
"네~. 모듬조개구이 3인분하고 공깃밥 3개. 알겠습니다."
점원은 주문을 받고 버너와 철판을 올리고 불을 켰다. 그리고 서빙된 바가지 안의 모듬조개구이의 구성은 푸짐했다. 키조개, 가리비, 돌조개, 참조개, 홍합 등이 있었다.
"이게 조개구나."
"전 처음 봐서 그런지 신기해요."
누님들은 처음 보는 조개에 입이 떡 벌어졌다.
"구워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제가 얼른 구워드리죠."
근데, 이 포장마차 밑반찬이 딱히 없었다. 왜 안주는 것인지 점원에게 물어봤다.
"근데 밑반찬은 안 줍니까?"
점원의 말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반찬은 메뉴에서 선택해 구매하셔야 합니다."
밑반찬은 원래 메인메뉴를 고르면 같이 달려 나오는 것이거늘. 이 세계는 기본이 안 되어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메뉴에서 채소 반찬 두개 정도 사버렸다.
그러던 와중 조개들이 익어 입을 떡 벌렸다.
"오오!"
조개가 익어가는 과정이 누님들은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조개가 다 익은 것 같으니, 한번 잡숴보십시오."
"잘 먹겠습니다~!"
누님들은 밥에 조개를 얹어 한입 먹어봤다.
"음~. 이게 이런 맛이구나. 괜찮네."
"살짝 질긴 것도 있는 것 같아, 언니."
"그나저나 여긴 초고추장이 없군요."
그렇다. 이 세계에서 고추장을 처음 만든 것도 나니까, 이 세계에선 초고추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조개구이 집에선 찍어먹는 소스로 소금밖에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초고추장? 그게 뭐예요?"
"고추장하고 식초랑 섞은 것입니다. 조개랑 찍어 먹으면 맛있거든요."
나는 작은 누님의 질문에 답했다.
사실, 난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
나는 짐 가방에서 고추장과 설탕을 꺼냈다.
"아저씨, 그거 언제 가져왔어요?"
"지난번 《노르단》에 갔었을 때, 이미 만들어둔 조미료를 가지고 다니면 꽤 쓸모가 있어서 한번 가져와 봤습죠. 빨리 초고추장을 한 번 만들어보죠."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그릇에 고추장과 테이블 위의 식초를 3대 1의 비율로 섞어준 다음, 물로 농도를 맞춰준다. 여기에 설탕으로 달콤한 맛을 더하면 초고추장 완성!
"한번 여기에 찍어 드셔보겠습니까?"
"어디."
아마릴리스 누님이 조개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오~. 되게 잘 어울리네, 이거? 그냥 바다씨에 찍어 먹는 것보다 매콤달콤하니 훨씬 좋아."
"정말이야, 언니? 그럼, 나도."
릴리 누님도 초고추장에 조개살을 찍어 먹었다.
"음~. 진짜네. 조개만 먹어도 맛있긴 한데, 매콤달콤한 맛이 더해지니까 더 맛있어요."
"이거면 밥 한 그릇 뚝딱 입니다. 하하하."
누님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조개구이를 배불리 먹고 난 우리는, 숙소를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던 중 해변 끄트머리에 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우리는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그래서 자릿세 언제 낼 거요, 아줌마?"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금방 돈을 마련하리다."
"이딴 거나 파는데 돈이 마련되겠소? 어서 장사 접고 떠나시오."
"안 됩니다, 저에겐 아직 지켜야할 가족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딱 봐도 자릿세를 못 내 빌빌 거리는 가게 아줌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양이었다.
근데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말에 아줌마와 내 모습이 살짝 겹쳐보였다.
"흥. 시간은 이미 충분히 줬소. 얘들아, 어서 치워라."
"예."
덩치 큰 남자 엘프들이 아줌마의 포장마차를 때려 부수려고 하는 순간,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잠, 잠깐!"
- 작가의말
아아, 일에 휘말려 버렸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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