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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앵무의 글공간

엘프세계에 떨어진 한식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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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앵무
작품등록일 :
2019.08.19 00:23
최근연재일 :
2019.10.19 08:05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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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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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473

작성
19.09.19 07:00
조회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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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11쪽

21화. 찻집에서 지난길을 되돌아보다. (수정)

DUMMY

그렇게 우리는 여관에서 나와 상가 쪽으로 나왔다. 언덕길 아래로 따라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산간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비탈길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우리는 이 상점, 저 상점을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들―드워프쌀, 괜찮은 뚝배기들, 그리고 각종 소스들―을 구비했다. 물론 예산 초과로 가마솥하고 절구는 못 샀다. 10~20리프 쯤 되는 가격으로 우리의 예산으론 너무 비싸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돈을 더 벌면 그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정도 하면 되겠구먼요."


그렇게 구한 모든 물품들을 전부 택배로 누님 집 앞으로 부치고 나왔다. 솔직히 무게를 낮춰주는 〈라이튼〉 마법이 있다곤 하나, 전부 들고가기엔 손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었다.


"이 마을도 참 신기한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누님."

"그냥 평범한 마을인 것 같은데···. 가령 어떤 거?"

"저런 거죠."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이 《스미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늘에서 말들이 날아다니는 게 종종 보이는데, 저 말들로 산속 공장의 물건을 운반한다고 한다. 날개도 없는데 하늘을 난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흐음. '슬레이프니르' 말이구나."


그 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너, 거기 안 서? 잡히면 죽는다!"

"키키키킥. 내가 너한테 잡힐 것 같냐?"


초등학생쯤으로 되어 보이는 드워프 꼬마 애들이 비탈길을 따라 놀고 있었다. 남자애가 뒤를 보고 뛰어가더니, 앞에 있는 내 모습을 못 보고 부딪히고 말았다.


"아쿠!"

"응?"


꼬마 드워프는 반작용에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어버렸다. 난 꼬마를 번쩍 들어 일으켜세웠다.


"괜찮니, 꼬마야?"

"네, 고맙습니――헉! 인간?"


꼬마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흥! 나쁜 놈한테는 고맙다는 인사는 안 할 거야! 메롱."

"에잉, 쯔쯔쯧.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말버릇하고는. 느그 부모가 예의를 그렇게 가르치든? 욘석아!"


그때 아마릴리스 누님이 '예끼!'하며 꼬마의 머리에 콩 박으려는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려 있었다.


"괜한 일 엮이지 말고 그냥 가자, 아저씨. 잘못하면 일이 복잡해질 거야."


아직 난민심사도 통과하지 않은 이상 마찰로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질 것이라는 누님의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님의 말대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했다. 하지만 그때 그 꼬마 녀석이 돌발행동을 했다.


"에잇!"

"아고고고!"


꼬마는 내 정강이를 걷어찼고, 곧장 토꼈다.


"이게 바로 정의의 응징이다!"

"저 녀석이···!"

"으으.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저씨. 예전에도 말했지만 전쟁 통에 요정들은 모두 인간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학교에서도 인간은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반쯤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 해 혀를 찼다. 여관 주인도 그렇고, 상점 주인도 나를 노골적으로 피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니 참 착잡했다. 누님들이 없었으면 쇼핑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렇기에 누님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쯧.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 아들내미는 저렇진 않은데."

"그러고 보니, 아저씨. 아저씨한테 아들이 있었어?"


내리 걸어가며 아마릴리스 누님이 물었다.


"어? 거, 말 안 해줬던가요? 저한텐 7살쯤 되는 외동아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누님들에게 말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 아저씨 부축하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잠꼬대로 아들이 보고 싶다나 뭐라나, 계~속 중얼거리는 거 있죠?"

"릴리 누님, 제가 그랬습니까?"

"네, 그랬어요."


이래서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뭔 말을 할 지 모르는 거거든.


"아저씨, 인간 나이로는 상당히 늙은 편일 텐데 어쩌다 늦둥이를 가진 거야?"


아마릴리스 누님은 그 점이 궁금했나 보았다.


"사실 돌아간 우리 아내가 난임이라 애를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40~50살이 되도록 애를 못 가졌죠. 그 때문에 대를 못 이으니 아내도 미안해했죠. 우짜겠습니까. '이게 우리 팔자지, 뭐.'하면서 세월을 보냈죠."


"오,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래서 걱정 없이 피임도 안하고 밤에 사랑을 나눴습니다. 애 하나 갖겠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매일이 새로웠죠."


누님들의 얼굴이 빨개졌다.


"응? 누님들도 어른이니 알 건 다 알 거 아닙니까? 저보다 나이도 많고, 뭘 그리 쑥스러워 하는 지, 원."

"아, 아니. 뭐 그, 그렇긴 하지."

"······."


수위가 별로 높지도 않고, 말해달라고 해서 말한 것뿐인데 릴리 누님은 그냥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뭐, 그러다가 8년 전에 덜컥 임신해 버려가지곤. 아들이 생기게 된 거죠."

"으아아아······."


내가 한 정력 하긴 한다.


"근데, '돌아간 우리 아내'라니. 부인이 돌아갔어요?"

"네, 교통사고로요. 한순간이었죠. 하아······."


누님들은 놀랐다.


"말이나 그리핀에 치이기라도 한 거야?"

"저희 고향 세계에선 '자동차'라는 스스로 움직이는 마차 같은 게 있어요. 그거에 치였죠."

"아······, 어쩌다가?"

"그 쉬부럴 젖같은 음주운전 쉐리들 때문이었죠···."


그 날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날 만삭의 아내는 나와 같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차가 고속질주를 하며 왔었어. 느낌이 싸해 빨리 피하려고 했지만······, 이내 차가 전봇대에 부딪히고 이어서 아내를 덮쳐버렸지. 술을 쳐 마셨으믄 운젼대를 쳐 잡지 말던가 쉽새끼들이···, 그 모가지를 돼지 멱따듯 찢어 발겨야했는디."


나는 입술을 깨물고 화를 삭였다. 그날의 일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짝!


"?"


나는 누님이 내 얼굴 앞에서 친 박수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아저씨, 아픈 이야기 꺼내게 해서 미안해. 잠깐 우리 저기에 들어갈까?"


아마릴리스 누님이 가리킨 손가락 방향을 보니 한 나무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긴 찻집이잖아요?"

"가자!"


엘프자매 누님들이 나는 데리고 찻집에 들어서 자리에 앉았다. 곧 주문한 차가 나왔다.


"자, 마셔봐."


아마릴리스 누님의 말에 나는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호로록


"하아."

"녹차를 마시니 마음이 진정되지?"

"예."


따뜻한 차를 천천히 마시니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천천히 몸을 따스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화가 난 마음도 차츰 가라앉았다.


"확실히 차를 마시니 마음이 편해지긴 하군요. 그나저나 누님 집에도 찻잎을 모아둔 통이 있던데, 생각보다 이세계의 차 종류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채식을 주로 하는 요정사회에선 차 문화가 엄청 발달했거든."

"차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어요."

"수백 가지씩이나 됩니까?"


이 찻집에서 파는 차의 종류만 수십 가지지만, 그 보다 더 많다니. 놀라웠다.


"아저씨가 온 뒤론 바빠서 차를 마실 시간도 없었지만요."


릴리 누님은 말을 하고 나서 차를 홀짝 마셨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네. 아들은 그래도 살아났잖아. 그치?"


아마릴리스 누님이 화제를 다시 전환했다.


"네, 천만 다행이었죠. 어떻게든 뱃속의 아이만큼은 살려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죠. 제가 신고하자마자 달려온 소방관님들에게도 감사하고요."

"그 나쁜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감옥에 갔죠."

"다행이네요."

"다행일까요? 전 그 놈들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릴리 누님의 말대로 다행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똑같은 고통을 맞봐야하는데, 그딴 쓰레기들은 그냥 자유가 억압되는 것만으로 끝이라니. 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죄, 죄송해요, 아저씨."

"아닙니다. 릴리 누님. 그 뒤로 전 홀로 애를 키우려고, 갖은 고생을 했죠. 식당일을 하면서 애도 봐야하니까. 잠을 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무슨 식당을 했는데?"


아마릴리스 누님이 물었다.


"한식집이었는데, 망해버렸죠."

"아니, 왜요?"


망했다는 말에 릴리 누님이 놀랐다.


"맛집으로 소문나 하루 종일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만, 건물주가 임대료를 몇 배로 올려버렸으니······. 그래서 얼마 못 버티고 나와 버렸습니다. 매출이 높아도 임대료 때문에 돈이 다 나가버리니. 돈을 벌기 어려웠습니다."


그건, 아무리 성공을 해도 권력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현실은 참으로 잔혹했다.


"아······."

"그러다 [한식만찬]이란 한식 레스토랑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제 경력을 들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죠. 제 연륜을 따라올 지원자가 그리 없더군요. 하지만 오너 셰프의 성격이 참 짖굳다는 게 문제였지만."

"응? 어땠길래?"

"대충 이랬습니다."


나는 그가 했던 어록들을 누님들에게 상기 시켰다.


'뭔 갈 가루로 만드는 건 부모님 유골로 충분하지 않아?'

'채소가 네 피부처럼 삭아버렸잖아.'

'그걸 까먹어? 치매는 너네 할머니만으로 충분하잖아!'

'이따구로 할 거면 때려치워라 개새끼야. 개같은 부모한테 개밥이나 먹이지 그래?'


누님들은 그 어록들을 듣자 할말을 잃었다.


"······. 그 인간이 나빴네."

"그러게요."

"그나저나 우리 아들, 잘 먹고 지낼는지는 모르겠네요. 밥은 잘 챙겨 먹을까 걱정됩니다······. 빨리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할 텐데 말이죠."


나는 그 생각에 하염없이 씁쓸한 얼굴로 찻집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네. 그 느낌 뭔지 알 것 같아. 우리도 어린 시절에 부모를 모두 여의어 홀로 자랐으니까. 고생 많았지."

"네?"


이건 금시초문이었다.


"아, 말 안 해줬었나?"

"말 안 해줬었어요, 언니."


엘프자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아저씨? 옛날에 〈칠성대전〉이 있었다고 했던 거."

"네, 기억나지요. 이 세계에 온 그날을 어찌 잊겠습니까?"


첫날 누님들이 내 감자채전을 먹고 호탕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칠성대전〉이나 〈백년전쟁〉은 이미 끝난 지 오래고, 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이세계에서 떨어진 거니까.'


근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칠성대전〉, 부모를 여의어?―――――――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사실 우리 부모님들은 백 년 전, 인간과의 〈칠성대전〉으로 모두 돌아가셨어."


작가의말

좀 내용이 길어졌네요. 조금 일찍 올려봤습니다.


+) 1화와 겹치는 내용 다 잘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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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화. 징조(2) +4 19.10.03 754 23 8쪽
41 40화. 징조(1) +5 19.10.03 791 21 8쪽
40 39화. 네가 어떻게 여기에?!(3) +5 19.10.02 902 25 8쪽
39 38화. 네가 어떻게 여기에?!(2) +5 19.10.01 965 20 13쪽
38 37화. 네가 어떻게 여기에?!(1) [1권 분량 끝] +6 19.09.30 995 25 8쪽
37 36화. 바다에서 생긴 일(7) +6 19.09.29 1,006 30 11쪽
36 35화. 바다에서 생긴 일(6) +7 19.09.29 965 27 12쪽
35 34화. 바다에서 생긴 일(5) +6 19.09.28 967 25 10쪽
34 33화. 바다에서 생긴 일(4) +4 19.09.28 1,025 24 8쪽
33 32화. 바다에서 생긴 일(3) +4 19.09.27 1,028 23 8쪽
32 31화. 바다에서 생긴 일(2) +6 19.09.27 1,088 27 9쪽
31 30화. 바다에서 생긴 일(1) +7 19.09.26 1,199 28 9쪽
30 29화. 뒷풀이 +8 19.09.25 1,297 32 9쪽
29 28화. 이게 한정식 풀코스다, 심사위원들아!(3) +5 19.09.24 1,349 28 11쪽
28 27화. 이게 한정식 풀코스다, 심사위원들아!(2) +4 19.09.23 1,304 30 8쪽
27 26화. 이게 한정식 풀코스다, 심사위원들아!(1) +4 19.09.22 1,340 30 10쪽
26 25화. 된장, 간장, 그리고 고추장 +4 19.09.22 1,295 35 7쪽
25 24화. 메주 만들기(2) +6 19.09.21 1,303 31 13쪽
24 23화. 메주 만들기(1) +4 19.09.21 1,315 34 9쪽
23 22화. 야채볶음면 +5 19.09.20 1,384 31 8쪽
» 21화. 찻집에서 지난길을 되돌아보다. (수정) +5 19.09.19 1,466 26 11쪽
21 20화. 납작샌드와 누룽열매 수프 (수정) +5 19.09.18 1,509 29 10쪽
20 19화. 마늘 코다리강정과 폭탄계란찜 +6 19.09.17 1,535 31 9쪽
19 18화. 지인 소개 +6 19.09.16 1,530 31 11쪽
18 17화. 맥주와 통삼겹살 구이 +7 19.09.12 1,622 34 9쪽
17 16화. 드워프의 영역 +7 19.09.11 1,622 33 8쪽
16 15화. 호황 +6 19.09.10 1,634 34 10쪽
15 14화. 장사 준비 +6 19.09.09 1,653 3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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