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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레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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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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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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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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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화. 빛, 함정.

DUMMY

[크리스토프가 정화 기사단에 합류할 시, 저항이 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야. 정화기사단이 저항을 시작하면 수호기사단과 주도기사단만으로도 막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저희 정화 기사단은 기사단장님이 어떤 판단을 하든 조건 없는 충성을 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저희 목숨은 기사단장님의 것입니다!]

[전하는 나를 숙청하려 한다.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



***



수도 메리즈빌의 왕성 서문.

평소엔 보지 못할 커다란 얼음덩이가 들어서 있었지만, 이곳의 솜브라인들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처음 얼음이 발견된 지 한 달이 넘어서이기도 했고, 무서운 표정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정화기사단원들 때문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프가 서문을 들어섰을 때는 이미 해가 늬엿늬엿 넘어가고 있었다.


“단장님! 들어오셨습니까?”


단원 하나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크리스토프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인사를 받았고, 경계를 서고 있는 다른 단원들을 지나쳐 얼음덩이에 다가갔다.


-쾅!


크리스토프의 주먹이 얼음덩이에 부딪으며 커다란 파열음을 냈다.


-콰지직.


크리스토프의 주먹을 중심으로 얼음의 사방으로 균열이 퍼져나갔다.

단원들은 놀랐지만, 크리스토프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쾅! 쾅! 쾅!


다시금 크리스토프의 주먹질이 시작되었고, 얼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평소 본 적이 없는 단장의 이러한 모습에 몇몇 단원들은 그를 말려야 하는 게 아니냐며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그들이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크리스토프가 아니었다.

단원들은 애달픈 눈빛으로 자신들의 단장을 바라보았다.


한편.

‘자신만의 잣대를 가져요, 단장님.’


별것도 아닌 이야기였지만 앞집 아주머니의 말이 크리스토프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주머니의 말이 아니더라도 크리스토프는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 그런 말을 하는 분은 아니야….’


상황이 작위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평소에도 늘 살가운 아주머니였지만, 크리스토프에게 뭐라 조언을 하던 이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심적인 요동이 커 그런 부분까지 간파할 경황이 없었지만, 왕성으로 걸어오며 상황을 되짚어보니 이해하기 힘든 것투성이였다.


‘설마…, 배후가 있는 건가.’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를 망치기 위해 수를 쓰는 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모난 돌이 정맞는다’며 크리스토프를 걱정하긴 했지만, ‘암중 모략을 일삼는 솜브라의 일을 루즈에 대입하지 말라’며 오히려 화를 냈던 그다.

무엇이 배후에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 나의 길을 제대로 가면 된다.’


경계를 서던 단원 하나가 크리스토프의 눈에 띄었다.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단장실에 가 있을 테니, 부서진 얼음을 항아리에 담아 지하 저장고로 옮기도록 하라.”


크리스토프의 말투에 망설임 같은 건 없었다.



***



메리즈빌 왕성 내실.

사방이 새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된 왕의 집무실.

이곳은 ‘빛의 종족’이라 일컬어지는 루즈를 상징하고 있었다.

수백 년 전, 왕성을 세울 때 옛 왕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치장을 한 곳은 왕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내실이었다.

집무실을 비롯해 십여 개가 넘는 방 모두 새하얀 대리석만을 사용했다.

그러나 대리석은 흔한 돌이 아니다.

왕성을 짓는 것보다 대리석을 구하는 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대리석을 구하기 위해 솜브라의 영역까지 침범할 때도 있었고, 그 과정에 많은 루즈인이 희생되기도 했다.

내막을 아는 당시 사람들은 이곳 내실을 무조건 칭송할 순 없었다.

루즈인들의 피와 눈물을 먹고 세워진 내실을 순결의 상징이라니, 심지어 혀를 차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세월과 함께 먼지처럼 사라졌고,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내실은 주도 메리즈빌의 상징이자 왕성의 꽃, 동시에 순결한 루즈의 상징이 되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무실의 적막을 깼다.

그러자 집무실의 구석, 옥상(玉像)의 뒤편에서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오라!”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수호기사단장이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정화 기사단장이 입성했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는가.”

“보고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왕은 들고 있던 헝겊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정화 기사단의 동태는 어떤가.”

“정보원의 조사로는 아직 미첼 가문의 일에 대해 명확히 아는 이는 없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프가 기사단에 합류할 시, 저항이 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왕의 이마에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정화 기사단은 서루즈를 포함하여 루즈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단이었다.

크리스토프를 쳐낸다 하더라도 정화 기사단을 송두리째 잃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었다.

그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했다.


“그래. 병력의 상황은 어떠한가.”

“주도 기사단은 왕성 주변에 매복해 있고, 저희 수호 기사단은 내실 밖, 동문 방향에 사열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즉시 체포가 가능하도록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수호 기사단장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야. 정화기사단이 저항을 시작하면 수호기사단과 주도기사단만으로도 막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염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만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수호 기사단장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뭐?”

“그가 의도대로 나와주겠습니까?”


수호 기사단장 역시 크리스토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 왕에게 거짓을 보고할 남자가 아니었다.


“명예만이 그가 가진 전부이니라. 그런 그의 동생이 마녀이니라. 자네라면 모든 진실을 토해내겠느냐.”

“그러기…….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아는 게 모두 진실은 아니지.’


굳이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창문 쪽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알았다. 동문 방향 커튼을 내리면 즉시 작전을 시작하라.”

“예! 전하!”



***



깔끔하지만 여러 석재가 뒤섞여 있는 작은 집무실.

이곳 역시 고급스러웠지만 방금의 왕의 집무실에 비하면 허름하다 못해 누추했다.


흑연이 종이에 닿으며 내는 소리가 사각거리며 조용한 집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집무실에 도착한 지 벌써 두 시간째.

처음 삼십 분 정도는 흑연 덩이를 든 채, 빈 백지만 바라보고 있던 그였다.

결심이 선 그는 망설임 없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똑똑.


크리스토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문을 두드린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개를 든 크리스토프의 눈에 보인 것은 그의 기사단원이었다.


“무슨 일이냐.”


크리스토프의 물음.

단원은 그의 집무실 책상 앞까지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왕성 주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줄 알면서도 찾아왔다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그 사유를 물었다.


“심상치 않다니, 무슨. 설마 솜브라 놈들이라도 나타난 것이냐?”

“예, 맞습니다.”


단원의 대답에 크리스토프는 흑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흑연은 크리스토프의 악력에 눌려 조금씩 바스러졌다.


“이런 부정한 놈들…. 알았다. 출정 준비를 지시하거라. 보고서를 낸 후 즉시 놈들을 소탕하겠다.”


명령을 내리는 크리스토프.

그러나 단원은 명을 받들고도 움직이지 않은 채 머뭇거렸다.

크리스토프는 들고 있던 흑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냐.”

“저, 그게 다가 아닙니다.”

“뭐가 더 있는가.”


단원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크리스토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솜브라 놈들이 주시하고 있는 왕성의 방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말해 보아라.”


눈을 맞추면서도 말을 망설이던 그는 크리스토프의 재촉에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왕성의 주변에 수호 기사단과 주도 기사단이 저희를 경계하며 매복해 있습니다. 또한, 수도 방비군도 왕성 외곽에 집결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단원의 말에 크리스토프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크리스토프는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수도 방비군까지…. 알았다. 정화 기사단도 출정 준비를 하고 서문 안쪽에 사열하라 전하라.”

“넵! 단장님!”


단원에게 하명하며 크리스토프는 되뇌었다.


‘전하께선 이미 모든 걸 아시는 모양이군.’


어쩌면 보고서의 내용을 모두 뜯어고쳐야 하는지도 몰랐다.

크리스토프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고민과 함께, 한 시간을 넘게 공을 들였던 보고서를 흝어보고 있는 크리스토프.

단원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무어냐.”

“소문을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을 말이냐.”


단원은 지금까지도 조심스러웠지만,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단장님의 누이에 관한……. 죄송합니다! 오지랖이 넓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더 잇지는 못했다.

단원은 황급히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고, 크리스토프는 이미 체념을 한 상태였기에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편안히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다. 곧 너희도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크리스토프의 눈빛을 읽은 것일까.

단원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정화 기사단은 기사단장님이 어떤 판단을 하던 조건 없는 충성을 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저희 목숨은 기사단장님의 것입니다!”

“고맙다. 그리고 나가보거라. 전하께 보고할 일이 있느니라.”

“넵!”


할 말을 모두 마친 단원은 진심이 담긴 경례를 하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닫힌 집무실의 문과 이미 작성한 보고서를 번갈아보며 크리스토프는 상념에 잠겼다.


‘이 녀석들도 이미 모든 걸 아는 모양이군. 나만 모르고 있었어.’


그렇다고는 해도 방법이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클로이가 마녀라는 사실은 보편적인 기준에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그게 크리스토프가 마녀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직 기사단장과 부정한 마녀가 한가족이라는 사실은 문제의 소지가 컸다.


“전하는 나를 숙청하려 한다.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 크리스토프의 나지막한 음성이 조용히 메아리쳤다.


“…….”


대답이 들려올 리가 없었다.

크리스토프는 써내려간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부우욱.


보고서는 힘없이 반으로 찢어졌고, 크리스토프는 몇 번을 더 손을 움직여 보고서를 형체도 없이 조각내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순백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크리스토프는 클로이를 떠올렸고, 흑연을 들어 새하얀 백지를 지쳐 나가기 시작했다.


‘절대 이런 식으로 죽진 않겠다.’


사각거리는, 흑연이 종이에 닿으며 내는 소리가 다시금 조용한 집무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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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빛, 함정. +2 14.06.18 446 1 11쪽
22 16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로랑. 14.06.15 340 0 12쪽
21 15화. 빛, 딜레마. 14.06.11 393 0 15쪽
20 14화. 어둠, 슬픈 현실. 14.05.18 198 2 11쪽
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3 0 13쪽
17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6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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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7화. 빛, 오(汚)를 받아들이다. 14.05.11 37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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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화. 어둠, 차기 국경 정찰대장. 14.04.29 237 3 17쪽
7 3화. 빛, '오(汚)'를 느끼다.(2) 14.04.29 342 5 12쪽
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2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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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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