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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레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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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9,498
추천수 :
81
글자수 :
137,227

작성
14.04.2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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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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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DUMMY

클로이는 다시 스콜로폰도가 든 바구니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안에서 말린 스콜로폰도를 집어들었다.

작은 손칼로 꼬리를 따는 작업.

리즈베트는 그래도 성실히 라브를 손질하는 클로이를 보며 대견함을 느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살림을 한다는 것이. 게다가 리즈베트가 시집을 간 이후로 집안의 요리는 대부분 클로이의 손을 거쳤다.

리즈베트는 그래서 오늘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요리를 해 놓고 가려고 한다.

혼자 집안일을 다 하는 여동생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언니의 따스한 마음이었다. 지금 볶고 있는 두아도 마찬가지다.


두아는 라브의 한 종류로 손톱만 한 크기다. 그냥 먹으면 시큼해서 먹을 수가 없고 머리카락만 한 다리가 입안에 걸린다. 그래서 볶아두어야 하는데. 볶은 후에는 간단하게 스튜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냥 과자처럼 주워 먹어도 된다.

물론 볶으면 오래 보관하긴 힘들지만 서늘한 저장고에서 일주일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리즈베트는 두아를 볶다가 불현듯 남동생이 떠올랐다.


“클로이, 크리스토프는 오늘 언제 들어오니?”

“오늘은 정화기사단에 회의가 있다고 하니까 조금 늦지 않을까?”

“정화를 나가지 않는 건 다행이구나.”


리즈베트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화’라는 말에 클로이 역시 낯빛이 창백해졌다.


“왜 오빠는 그 많은 기사단 중에서 정화기사단에 들어간 걸까?”

“그건 크리스토프의 신념이겠지.”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정화기사단은 루즈의 모든 기사 중에 가장 긍지 높은 기사단이잖니. 그들이 없었다면.”

“나도 알아. 부정한 솜브라를 대륙 대부분에서 몰아낸 것이 정화기사단이라는걸. 하지만.”

“하지만 위험하다고?”

“꼭 그 위험한 일을 우리 오빠가 할 필요는 없잖아.”


리즈베트의 물음에 클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토프를 걱정하는 동생의 마음을 리즈베트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건 리즈베트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념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너희 오빠잖니.”

“그렇지만.”

“그래서 크리스토프를, 동생이지만 언니는 존경한단다. 게다가 크리스토프는 어떠한 사심도 없이 순수한 신념 하나만으로 기사단장의 자리에까지 올라갔어. 다 다듬었으면 바구니 이리 줄래?”


리즈베트는 손을 내밀었고 클로이는 무심코 옆에 있던 바구니를 내밀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정화기사단 말고도 안전한 주도기사단도 있고 수호기사단도 있잖아. 거기에서 신념을 펼치면 안 돼?”

“클로이. 주도기사단이나 수호기사단은 신념과 실력만으로 기사단장이 될 수 없단다…. 그리고 이 바구니 말고!”


리즈베트는 클로이가 건넨 바구니를 들여다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화에 집중하던 클로이가 실수로 엉뚱한 바구니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클로이는 제대로 된 바구니-스콜로폰도의 독 꼬리가 잔뜩 담긴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진 스콜로폰도가 들어있는-를 내밀었어야 했다.


“그럼?”

“뭐에 대한 ‘그럼?’이야?”

클로이의 물음에 오히려 리즈베트가 되물었다. 클로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신념과 실력 말고는 뭐가 필요한 거냐고 묻는 거였어.”

“정치의 논리가 들어간단다. 클로이. 그리고 스콜로폰도가 들어간 바구니를 줘야지.”

“신념과 실력만으로 성공을 얻어낼 수 없다는 건 불공평한 것 같아. 아무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말하며 클로이는 이번엔 제대로 된 바구니를 건넸다. 그때 둘의 대화에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치의 논리가 나쁜 게 아니란다. 클로이.”

의외의 목소리에 클로이가 몸을 돌리며 소리 지르듯이 외쳤다.


“오빠!”


기골이 장대한 남성은 은발에 푸른 눈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저기 자잘한 흠집이 잔뜩 나 있는 은빛 갑옷. 그리고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고풍스러운 문양. 어깨의 녹색 견장까지.

정화기사단,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이었다.


크리스토프는 클로이의 부름에 웃어주고는 갑옷을 풀어 내려놓았다.

기사단은 정기적으로 정화를 나가는데, 그럴때면 크리스토프를 몇 날 며칠, 때로는 몇 달은 더 볼 수 없다.

그나마 기사단 회의가 있다고 하면 붉은 하늘이 검게 변하고 나서야 나타나지만, 클로이는 그나마라도 안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이라니.

예상외의 등장에 클로이의 반가움은 평소보다 더했다.


“기사단장인 내가 너의 자질에 대해 추천한다면 어떨까?

그게 사실과 다르다면 문제겠지만, 사실이라면 오히려 인재를 발굴하는 셈이니 좋은 일이지.

정치의 논리도 그것과 다르지 않아.

게다가 수호기사단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해.

우리 정화기사단이 부정한 솜브라를 몰아내면 그 자리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해야 하는데, 완전히 무방비상태거든.

수호기사단이 그곳을 수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니?”


“그래그래. 알았어, 오빠.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클로이는 방금까지 리즈베트와 나눴던 이야기는 까맣게 잊었다.


“회의가 일찍 끝났어.”

“너, 오빠 말 듣는 거니?”

크리스토프와 리즈베트의 말이 겹쳤다.

크리스토프는 클로이를 위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괜찮아, 누나. 아직 아이잖아. 누나도 온 걸 보니 오늘 식사는 화려할 것 같은데? 흠~ 좋은 냄새!”

“네가 좋아하는 폰도 구이야, 크리스토프.”

“나를 위해 해준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구이보단 찜을 좋아하잖아.”

“알아, 그런데 구이도 좋아하지.”

“맞아. 클로이는 구이를 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위해 요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부정한 솜브라만큼 흉악한 거짓말일 거야.”


둘의 이야기에 클로이는 헤- 하고 웃었다.


크리스토프는 몸을 씻으러 사라졌고 리즈베트와 클로이는 예상외로 이른 저녁 식사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크리스토프가 씻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상이 모두 차려진 후였다.


“오늘은 무슨 회의를 했길래 이렇게 일찍 끝났어?”

“응, 뭐. 별것 아니야, 누나. 지난번 정화 때, 내가 더러운 솜브라 놈들의 국경 정찰대장을 죽였거든. 차기 대장이 누구냐에 따라 우리 대처가 달라질 것 같아서.”


리즈베트의 물음에 크리스토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음식에 집중하느라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리즈베트나, 심지어 어린 클로이마저 크리스토프가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났어?”

“결론이야 뻔하지 뭐. 죽이고, 또 죽이는 거지. 그것보단 지난 번 정화 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볼래?”

“뭔데, 오빠? 나 궁금하다.”


클로이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크리스토프는 폰도구이의 뒷다리를 북 찢어 입에 물었다.


“잠깐, 이거 다 씹고. 맛있다 누나.”

“고마워. 재료 손질은 클로이가 다 했어.”

“클로이 어른 다 됐네? 이제 시집가야지? 아, 참. 내가 죽인 정찰대장 놈이 우리한테 기습당하면서 몇 번이고 외친 말이 있는데, 하하. 어이가 없더라니까.”

“뭐라고 했는데?”


크리스토프가 이야기하는 동안 클로이는 폰도구이를 포크로 찍어 앞 접시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클로이! 기품있는 숙녀는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단다.”

-찰싹.


리즈베트가 가볍게 클로이의 손목을 때렸다.

클로이는 힝 하고 투정을 부리며 고기를 내려놓았고, 이내 폰도를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리스토프는 고기를 한 입 더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뭐더라? 아! ‘명예롭게 죽어라. 그러면 모든 이가 너를 위해 울 것이다. 비겁하게 살아라. 그러면 모든 이가 너를 위해 웃을 것이다.’ 라고 외쳤지.”

“뭐야, 하나도 안 웃겨. 비장하고 멋진 말 아니야?”


클로이는 재미없다는 투로 되물었지만, 크리스토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건 부정한 솜브라 놈들이 명예라는 게 있느냔 말이지.”

“히히. 듣고 보니 그러네?”

“그놈이 명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죽음이었다는 건 확실해.”

“게다가 우리가 비웃었으니, 확실히 우습기까지 했고. 그 부정한 놈들에게 눈물이라는 게 있다고 해도 말이지.”


크리스토프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불길이 일어났다. 입에 넣은 고기를 거칠게 씹던 크리스토프는 불현듯 생각이 났다.


“누나. 그러고 보니 오늘 프랑수아도 일찍 들어왔을 텐데. 여기 있어도 돼?”

“우리 남편 말이니? 매일 일찍 들어오는데 뭐 어때?”

“그래도 그렇지. 걱정하겠다. 들어가면 혼나는 것 아냐?”


크리스토프는 고기를 집으려다 말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친정집이라고는 하지만 남편 된 입장에서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가 없다고 한다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 크리스토프의 걱정과 다르게 리즈베트는 크게 상관없다는 듯이 크리스토프가 집으려던 고기를 입에 가져갔다.


“메리즈빌 최고의 원칙주의자가 증인을 서줄 텐데 뭐가 걱정이니?”

“또 나를 팔 작정인가? 미리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실만 이야기할 거야.”

“원칙주의자님께서는 그 정도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크리스토프는 리즈베트의 눈에 띄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리즈베트는 ‘원칙주의자’인 크리스토프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크리스토프는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그 말을 듣기 싫어했다.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을 지키고 수행해야 할 일을 수행할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원칙주의자이다. 순결주의의 상징이다.’


하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원칙을 어기는 것은 이 세상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오히려 크리스토프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무리를 증오했다.


한편, 그런 가치관은 그를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성격은 끝없는 훈련과 한계를 모르는 성장을 만들어냈고, 불의를 넘기지 못하는 성격은 ‘정화’를 나설 때마다 최일선에서 부정한 솜브라를 맞아 항상 훌륭한 활약을 펼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은 그가 있는 메리즈빌 정화기사단을 루즈 내 최강의 기사단으로 만들었다.


“크리스토프?”

리즈베트가 몇 번을 불렀을 때야 크리스토프는 대답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아니야, 누나. 고기가 맛이 있어서.”

“에이, 표정은 그게 아니었는데?”

“….”


리즈베트의 말에 크리스토프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프의 속을 알 길이 없는 리즈베트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다음 ‘정화’는 언제 출정하니?”

“아! 클로이가 말하지 않았나? 내일이야, 누나.”

크리스토프는 리즈베트의 오해-정화를 위한 출정때문에 표정이 굳어졌다는.-를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출정에 대한 부담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칙주의자라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것을 굳이 표현하여 식사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돼. 크리스토프.”

리즈베트의 말에 크리스토프는 씨익 웃었다.


“진짜 조심해야 할 놈들은 솜브라놈들이겠지.”


작가의말

분량 수정했습니다. 편당 분량이 많다는 의견이 있어 연재 분량을 조절하였습니다. 내용의 수정은 없습니다. 분량만 끊어올리고 있사오니 기존에 선작해두신 독자분들께서는 추후 ‘5화, 빛, 오를 깨닫다’ 부터 읽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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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5화. 빛, 딜레마. 14.06.11 393 0 15쪽
20 14화. 어둠, 슬픈 현실. 14.05.18 198 2 11쪽
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3 0 13쪽
17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69 0 12쪽
16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2) 14.05.31 302 0 13쪽
15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1) 14.05.25 382 0 12쪽
14 9화. 빛, 절대 선의 부정. 14.05.24 290 0 14쪽
13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2) +2 14.05.18 397 9 13쪽
12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1) 14.05.17 38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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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6화, 어둠, 사(四)인의 후보. 14.05.04 399 3 16쪽
9 5화. 빛, 오(汚)를 깨닫다. 14.04.30 421 2 14쪽
8 4화. 어둠, 차기 국경 정찰대장. 14.04.29 236 3 17쪽
7 3화. 빛, '오(汚)'를 느끼다.(2) 14.04.29 342 5 12쪽
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2 4 10쪽
5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14.04.28 411 3 11쪽
4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14.04.27 327 4 9쪽
»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2 7 12쪽
2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1) 14.04.17 612 11 11쪽
1 프롤로그. +8 14.04.12 918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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