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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레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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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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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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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글자수 :
137,227

작성
14.04.17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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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1)

DUMMY

[다음 ‘정화’는 언제 출정하니?]

[내일이야.]

[조심해야 돼. 크리스토프.]

[진짜 조심해야 할 놈들은 솜브라놈들이겠지.]



***



흙과 바위뿐인 붉은 땅 위에 사람 머리만 한 무언가가 슬금슬금 기어갔다.

표피에선 질척한 점액이 흘러내려 ‘그것’이 지나간 자리는 끈끈한 액이 묻어났다. 작은 앞다리와는 다르게 길쭉하고 튼실해 보이는 뒷다리는 ‘그것’이 굼떠 보이는 생김새와는 다르게 꽤나 빠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양서류의 그것과 비슷해 보이는 눈동자는 무언가를 노리는 듯이 여기저기를 희번득거렸다.


‘그것’이 마침내 먹잇감을 발견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은 먹잇감에 접근했다.

얇은 비닐과도 같은 6장의 날개를 가진 먹잇감은 사뿐히 바위에 내려앉았다. 볕을 받아 반짝이는, 몸에 비해 커다란 날개들은 먹잇감을 높이 띄울지언정 몸을 숨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기민하게 아가리를 벌렸다.


-휘익. 철썩!


‘그것’이 아가리를 벌리자 입안에서 긴 혀가 빠르게 튀어나와 검붉은 먹잇감의 마디들을 낚아챘다.

실로 경이로운 속도였다.

먹잇감은 버둥거렸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혀에 붙은 먹잇감을 끌어당겨 주둥이로 밀어 넣으려 했다. 사냥은 성공적이었다.

그때, 사냥의 주체가 바뀌었다.

‘그것’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쉬이익!


어디선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온 화살이 ‘그것’의 몸을 일순간에 꿰어 버렸다.

‘그것’은 꾸엑하며 비명을 질렀고, 물려있던 멋잇감은 제2의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

먹잇감은 마디마디에 묻어있던 체액을 털어내며, 재빨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와앗! 언니 최고!”


바위 너머에서 푸른 눈동자를 지닌 십 대 소녀가 흥분해서 뛰어 나왔다.

‘그것’은 자신을 기습한 이들의 정체를 깨닫고는 결국 눈을 감았고 소녀는 ‘그것’의 뒷다리를 두 손으로 힘겹게 들어 올리고서 소리쳤다.


“언니! 이 폰도 진짜 크다!”


‘그것’을 ‘폰도’라고 부른 소녀.

하늘하늘한 밝은 색의 원피스에 달린 작은 유리조각이나 긴 머리를 고풍스럽게 땋아 올린 방식으로 미루어보아 상당히 귀한 집안의 영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치장한 장신구는 아주 최고급품은 없었지만 평범한 아이들은 쉽게 하지 못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녀가 이렇게 흥분해 뛰어다닐 정도로 ‘폰도’는 귀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폰도가 귀하다고 해도 많은 핀과 끈으로 머리를 땋아 올린 소녀가 이렇게 방방 뛴다면 매무새가 쉽게 상할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바위 뒤에서 평균보다도 훨씬 더 작은 숏보우를 들고 나온 여인도 그것이 우려스러웠다.


“클로이, 머리가 다 헝클어지겠어…, 조신하게 행동하렴.”


기품있는 말투로 자상하게 소녀를 꾸짖는 여인은 소녀의 언니, 리즈베트였다.

리즈베트도 클로이가 또래에 비해 차분하고, 말수도 적은 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오늘의 클로이가 평소에 비해 심하게 흥분했다는 것도 리즈베트는 이해했다.

아니, 오히려 그 점은 내심 미안했다.

클로이는 언니인 리즈베트를 엄마처럼 따랐었다.

하지만 리즈베트가 메리즈빌의 주도기사단의 기사단장과 결혼을 하며 클로이는 순식간에 외톨이가 되었다.

오빠가 있었지만, 오빠는 엄마보다 바빴다.

그래서 리즈베트는 이렇게 라브를 채집하러 나올때면 가끔은 일부러 클로이를 데려왔고, 클로이는 그럴 때마다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오늘처럼.


“이렇게 큰 폰도는 처음이야!”

큰 폰도를 잡았을 때는 말이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오른다.

게다가 그것이 맛까지 좋다면 굳이 다른 이유를 댈 필요는 없었다.

폰도가 그랬다.

이곳 메리즈빌은 땅속에서 수많은 라브가 기어 나오는 비교적 풍요로운 땅이다.

그러나 그건 세부홀이나 두아같은 것들이고 폰도는 개체수도 적은데다 영리하기까지 하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맛 또한 흔한 다른 라브요리와는 다르게 육질도 부드럽고 누린내라든가 라브 특유의 시큼한 향이 나지 않아 특별히 조미료를 쓰지 않아도 맛이 좋았다.

클로이는 자기 머리보다 큰 폰도를 들고 오며 몇 번 땅에 다시 떨어트렸다.

폰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뒤뚱거리는 클로이의 모습은 무척 익살스러웠고, 그 모습을 본 리즈베트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풋…. 클로이! 킥킥…, 조신하게 행동하라니까!”

“뭐야! 웃지 마! 언니!”

“킥킥. 네 모습이 우스운 걸 어떡하니?”


리즈베트는 뾰로통한 클로이의 모습이 귀엽고 우스워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클로이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술을 꾹 하고 다물었다.

클로이가 잔뜩 화가 났을 때 하는 표정이다.

결국, 리즈베트는 오랜만에 친정-클로이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하며 겨우 클로이의 화를 풀어줄 수 있었다.


클로이의 집.

꽤 고풍스러운 바위로 만들어진 집이다.

이곳, 마드레의 땅에는 아직 나무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다 보니 모든 건물은 진흙을 구워 쌓은 벽돌집이거나 진흙을 그대로 쌓아올린 암굴 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클로이의 집은 그런 평범한 집들과는 격이 달랐다.

거대한 바위를 정교하게 깎아 쌓아올린 이 집은 클로이의 가문이 어떠한 가문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클로이, 이것 좀 다듬어줄래?”


리즈베트는 말린 스콜로폰도가 담긴 바구니를 클로이에게 내밀었다.

아까 보았던 ‘먹잇감’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것은 바짝 말라있었고 날개가 제거된 상태였다.

클로이는 익숙하게 스콜로폰도의 꼬리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스콜로폰도는 독이 있기에 이렇게 꼬리를 잘라내고 먹어야 한다.

클로이는 손을 움직이며 리즈베트에게 물었다.


“언니. 대체 이 라브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

리즈베트는 폰도의 네 다리에 칼집을 내고는 가죽을 북 하고 벗겨 냈다. 능숙한 손놀림에 폰도의 가죽은 피 한 방울 내지 않으며 살과 가죽이 나뉘었다.

리즈베트는 벗겨 낸 가죽을 주방 한구석으로 치우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글쎄. 그것이 어디서 나타났건 마드레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땅속에서 갑자기 기어 나왔다고 하는 것도 난 믿어지지 않아.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마드레님의 몸이잖아. 마드레님이 죽으시며 우리도 생겼다고는 하지만.

만약 내가 죽은 이후에 이런 것들이 내 몸속에서 기어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

으, 소름 끼쳐.”

“언니도 그건 믿어지지 않아.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걸.”

“게다가 피도 녹색이야. 마드레님이 흘리는 피도 붉은색이고 루즈족인 우리도, 그리고 더러운 솜브라족마저 피가 붉은색인데 이 라브들은 모조리 피가 녹색이야.”

“그게 문제가 되니?”

“응?”


클로이는 리즈베트의 말에 잠시 손질을 멈췄다. 그리고 부엌칼을 내려놓고 리즈베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언니는 그게 문제가 안 돼?”

“문제랄 것이 뭐가 있니?”

“세상에서 가장 부정한 솜브라족도 피가 붉은색인데 왜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라브는 피가 이렇게 기분 나쁜 초록색이냐는 거야!

설마 이 라브가 솜브라족보다 부정한 것이 아닐까?

우린 부정한 걸 먹고 있는 거야!”


클로이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지금 네 생각이 더 부정해 보이는데?”

“엥? 언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솜브라족보다 내 생각이 부정하다는 거야?”

“아니면 말고~ 언니는 그보다 네가 이 부정하고 맛있는 폰도구이를 오늘은 맛보지 못할 거란 사실에 가슴이 아프단다.”

“엑? 먹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야!”

“그럼 그 부정한 음모론은 그만하고 화덕에 이 폰도를 넣으렴.”


클로이는 샐쭉한 표정으로 입을 내밀었지만, 거기에서 더는 나아가기는 힘들었다.

클로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이 폰도 구이였기 때문이다.

폰도는 맛있는 식재료이기도 했고, 그러한 재료들이 늘상 그렇듯이 다양한 요리법이 존재했다. 가장 유명한 구이와 찜요리는 물론, 조림을 비롯해 수십 가지의 조리법이 있었다.

그중 최고는 폰도찜이라고 하지만, 클로이는 폰도구이를 가장 좋아했다.

리즈베트는 그렇기에 구이로 준비를 한 것이고, 오늘의 논쟁에서 리즈베트가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가 되었다.

클로이는 부정한 이야기를 멈춰야 했다.

그때였다.


“언니!”

클로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 세상 전체가 거대한 붉은 강물 속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붉은 강물은 순식간의 클로이의 시야를 덮었고 클로이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클로이는 물살에 휩쓸리듯 몸이 이리저리 요동쳤다.

하지만 그것은 단 한 순간이었다.

몇 초의 짧은 시간이 흐르자 시야를 가리고 몸을 여기저기로 뒤흔들던 붉은 강물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클로이는 놀란 눈을 껌뻑거리며 리즈베트를 바라보았다.


“언니도 느꼈어?”

“깜짝 놀랐잖아. 클로이. 너 자꾸 체통 없게 그리 행동할 거야?”

“아니아니, 언니! 방금 느꼈냐고?”

“느끼긴 뭘 느끼니? 너 정말….”

“방금 우리 집이 붉은 강물 속에 잠긴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 언니는 못 느꼈어?”

“클로이. 너 설마 오(汚)를 말하려는 거야?”

“오?”


클로이는 닭살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느꼈던 것이 오(汚)라니. 그건 아닐 것이다. 오(汚)는 전설에서 나오는 마귀의 힘이었다. 붉은 강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그것으로 벼락을 내리고 바위를 쪼개는 힘.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클로이, 너 오늘 언니한테 부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사단장님인 너희 오빠한테 일러야겠구나.”

“아냐아냐! …이상하다…. 진짜 느꼈는데….”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너! 화덕 달구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넣고 있니?”

“언니가 넣으면 되잖아.”

“클로이, 언니 뭐 하는지 안 보이니?”


리즈베트는 폰도구이와 함께 먹을 두아를 볶고 있었다.

그제야 클로이의 코에 두아의 고소한 향기가 느껴졌다.

현실로 돌아온 클로이는 폰도가 담긴 도자기를 화덕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아직 찜찜한 여운이 남아있던 클로이는 옷자락에 손이 갔다.


‘젖진 않았는데…. 진짜 이상하네.’


작가의말
용어 해설.

*루즈 : 신의 오른쪽 눈에서 태어난 종족이란 전설이 있다. 은발에 푸른 눈이 특징이며, 순결한 정신을 중요시하며 악을 증오하며 배척한다. 오래전 어떠한 이유에서 솜브라족과 갈등이 생기며 솜브라족을 마드레의 땅에서 몰아내는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 솜브라족보다 먼저 중앙집권화에 성공하며 강력한 군사력으로 솜브라족을 거의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현재 대륙의 패권을 가지고 있다.

라브 : 태초부터 흙을 헤집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갑각류가 대부분이며 일부는 끈적이는 양서류의 피부를 지니고 있다. 루즈인과 솜브라인의 유일한 식량이자 그들 이외의 유일한 종류의 생명체이다.

*폰도 : 라브의 일종. 주먹만 한 것에서 머리통만 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가 있다. 맛이 좋아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만 찾기도 쉽지 않다. 라브 사이에서는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으며 가장 큰 것은 어린 아이만 한 것도 발견되기도 한다.

스콜로폰도 : 라브의 한 종류. 6개의 손바닥만하고 비닐막 같은 날개를 지닌 갑각류이다. 몸은 8개의 마디로 이루어져 있고 마디당 양쪽으로 2개씩 36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날로 먹으면 독이 있어 탈이 나고, 익혀도 꼬리의 독은 사라지지 않아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 꼬리의 독은 정제해 독을 만드는데 쓰인다.

두아 : 가장 흔한 종류로 손톱만한 크기의 작고 동그란 라브이다. 딱딱한 껍질과 껍질에서 나오는 시큼한 점액때문에 날로 먹긴 힘들고, 대부분 불에 볶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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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6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로랑. 14.06.15 339 0 12쪽
21 15화. 빛, 딜레마. 14.06.11 392 0 15쪽
20 14화. 어둠, 슬픈 현실. 14.05.18 197 2 11쪽
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3 0 13쪽
17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69 0 12쪽
16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2) 14.05.31 302 0 13쪽
15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1) 14.05.25 381 0 12쪽
14 9화. 빛, 절대 선의 부정. 14.05.24 289 0 14쪽
13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2) +2 14.05.18 397 9 13쪽
12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1) 14.05.17 386 2 13쪽
11 7화. 빛, 오(汚)를 받아들이다. 14.05.11 371 1 13쪽
10 6화, 어둠, 사(四)인의 후보. 14.05.04 399 3 16쪽
9 5화. 빛, 오(汚)를 깨닫다. 14.04.30 421 2 14쪽
8 4화. 어둠, 차기 국경 정찰대장. 14.04.29 236 3 17쪽
7 3화. 빛, '오(汚)'를 느끼다.(2) 14.04.29 342 5 12쪽
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1 4 10쪽
5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14.04.28 410 3 11쪽
4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14.04.27 326 4 9쪽
3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1 7 12쪽
»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1) 14.04.17 612 11 11쪽
1 프롤로그. +8 14.04.12 91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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