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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레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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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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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8
추천수 :
81
글자수 :
137,227

작성
14.06.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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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DUMMY

[저택에 언제부터 저리 커튼이 드리워져 있던가요?]

[한 달 전에….]

[얼음이 떨어진…, 날부터 말입니까?]

[아무래도 클로이가….]



***



메리즈빌 외곽, 미첼 가문의 저택과 그리 멀지 않은 공터.

크리스토프와 정화 기사단원들이 사람 키의 거의 두 배 정도는 될 법한 얼음 구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그 얼음인가?”

“맞아요! 한 달 전엔 이보다 훨씬 컸습니다요, 기사단장님! 아니 빨래를 널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일전에 클로이와 마주쳤던 앞집 아주머니는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크게 휘둘렀다.

앞집 아주머니는 이미 수백 번도 말했던 같은 이야기를 또다시 신이 나 설명했다. 게다가 앞으로 수백 번도 더 말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속사포처럼 입을 놀렸다.


“아주머니 말대로라면 얼음이 집채만 하겠는데…. 믿기 어렵습니다….”


크리스토프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한 기사단원이 말했다.


“저도 보았습니다. 저기, 저 저택만큼 컸습니다.”


크리스토프는 기사단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바로, 크리스토프가 사는 저택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마침 저도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을 지나며 보았습니다. 세상에 없는 크기였습니다.”


‘하필 이런 기이한 일이 우리 집 근처에서….’


크리스토프는 기분이 나빠짐을 느꼈고, 한 편으론 이런 거대한 얼음이 자신의 집으로 떨어지지 않았음에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항상 클로이가 집에 있는데.’


순간, 크리스토프는 저택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창문이 다 막혀있지?’


루즈의 땅은 날씨가 무척 덥다.

어쩔 수 없는 것이 태양을 가려줄 만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낮에 달구어진 저택의 벽과 담이 내뿜는 열기는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 안에서 참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루즈의 사람들은 창문을 최대한 크게 틔어 열기를 내뿜는다.


반대로 밤에는 온도가 내려가기에 넓은 창문을 두툼한 커튼으로 최대한 막아야 한다.

냉기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미첼의 저택은 다른 집들과는 달리, 훤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집에 아무도 없나?’


크리스토프는 의아함을 느껴 무의식중에 계속 쳐다보았고, 앞집의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면서.


“글쎄, 나만 놀란 게 아니라니까요! 동네 사람들 다 나왔고, 아! 여동생분이신 클로이도 놀란 눈으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라니까~! 그땐 나도 놀라서 손짓으로만…….”


무의미한 모험담을 계속해서 나열했다.

크리스토프는 단검을 꺼내 얼음의 한구석을 쪼갰다. 떨어진 얼음 조각은 아직도 맑고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

만약 이게 얼음이 아니라 보석이라면 몇 톤의 라브와 맞바꾸기 힘들 정도였다.


“흡!”


크리스토프는 망설임 없이 얼음 조각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안의 얼음을 굴렸다.

차가운 얼음이 녹으며 맑은 물이 흘러나왔다.


“어머머! 기사단장님! 이게 무슨 물일 줄 아시고 그냥 드시는 거요?! 어머머 어떡해! 이거 어떡해!”

“단장님! 정제하지 않은 강물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주머니나 단원들이 놀라 소리쳤다. 크리스토프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하고는 끝내 얼음을 모두 먹어 삼켰다.

그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절대 강물이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얼음은 이미 고도의 정제를 통해 만들어진 맑은 물이다.”


빗물이나 강물처럼 붉은 기운이 스며 사람이 마실 수 없는 물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자연적으로 떨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전하의 말씀대로, 조사할 필요가 있겠군.”


크리스토프의 말에 단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맑은 물이라는 건, 가끔 떨어지는 우박처럼 자연현상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어머머! 이게 먹을 수 있는 얼음이라고요? 이 귀한걸! 마드레님의 선물이신가? 우린 그것도 모르고 다 녹게 내버려뒀으니!”


크리스토프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앞집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아이고, 참말로 기사단장님께서는 어쩜 이리 선견지명이 좋으실까~? 그러니 그 젊은 나이에 단장이 되셨지요~! 어머머 나 좀 봐! 이거 주방에서 토기 좀 가져와서 얼음 좀 가져가야지!”


아주머니는 속사포처럼 입을 놀리더니 자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단장님,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만들었다는 건데….”

“누가 이걸 만들겠느냐. 이 근처에 깊은 동굴이라도 있느냐.”

“글쎄요. 있다고 하더라도 이만한 걸 꺼내서 들고 올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얼음이란 건 귀하다.

1년에 한두 번, 우박이 내릴 때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은 얼음을 만져볼 기회조차 없다. 그 우박이란 것도 붉은 빛깔을 띠기 때문에 그대로 먹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정제를 위해 끓여야 하는데 그러면 얼음은 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먹을 수 있는 얼음은 더 귀하다.

이빨이 쉴 새 없이 부딪칠 때까지 깊은 동굴로 내려가 토기에 담은 물을 가져다 놔야 하고, 그러고도 일주일이 지나야 토기에 살얼음이 낀다. 그렇게 한 달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얼음이 한 토기가 생긴다.


“동굴에서 꺼내온 것은 아닙니다. 집채만 한 토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우선 이걸 조사해 봐야겠다. 수레에 실어라.”

“예! 단장님!”


이미 거의 녹은 얼음은 아직도 사람 키의 두 배는 될 법했다. 단원들은 당장 이만한 얼음이 들어갈 만한 수레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단원 하나가 우물쭈물 대며 크리스토프에게 다가왔다.


“뭐하나? 당장에 수레를 가져오지 않고.”

“저…. 단장님. 뭔가 미심쩍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정제된 얼음은 확실히 우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우박은 아니지.”

“이걸 설명해 줄 수 있는 완벽한 가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크리스토프의 눈이 번뜩였다. 단원은 말을 이었다.


“전설의 종족, 라브의 황제라 불리는 이들 말입니다. 하늘을 날고, 바위를 부수며 산을 옮기는 종족 말입니다. 그들이 한 소행이 아닐까요?”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실존한다고 쳐도 얼음을 여기까지 옮겨놓을 이유가 없다.”


되지도 않는 소리.

크리스토프가 엉뚱한 소리에 화를 내지 않은 것은, 바로 오(汚)와 마녀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저 전설로만 치부했던 옛이야기가, 왕가의 서재-한정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에 명백한 기록으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汚)와 마녀가 실존한다면, 인섹트도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단원 역시 그점을 들었다.


“그렇다면 마녀가 한 소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녀? 그거 역시 현재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능성은 없다.”

“그럴 수 있습니다만 오(汚)를 다루는 불경한 이가 만약에, 정말 만약에 존재한다면, 마녀가 세상의 혼란을 위해 이러한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조사해볼 만한 가치는 있군. 만약에 마녀라면 동기는 충분할 테니까.”


단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때마침 앞집 아주머니가 커다란 토기를 품에 안고 신명 난 표정으로 뛰어 나왔다.


“하이고! 아직 계셨구나! 내가 이 토기를 찾느라고 진이 빠져서~! 단장님! 이거 부탁을 해서 미안한데~! 저기, 저 얼음 쪼끔만 나눠주면 안 될까?”


아주머니는 스튜를 끓여도 마흔 명은 족히 먹기 충분해 보이는 거대한 토기를 지고 나왔다. 저기에 얼음을 담으면 아주머니가 지고 들어갈 수는 있을까. 분명 그것도 도와달라 부탁할 것이다.

그런 소소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크리스토프는 단호히 말했다.


“안됩니다.”

“아잉~ 단장님! 내가 단장님 어릴 때 반찬이며 얼마나 많이 갖다 줬수? 단장님~!”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저도 나눠드리고는 싶지만,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입니다.”

“잉~! 거 단장님! 융통성도 없이~!”

“안됩니다. 어린 시절의 도움은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크리스토프는 몸을 돌려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시간이 없다! 지금도 얼음이 녹고 있다! 서둘러 실어라!”

“예! 단장님!”


크리스토프의 성격을 아는 앞집 아주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얼굴 그득 담아냈다. 한 번 안 된다고 한다면 절대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난 집에 잠시 들렀다 출발할 테니, 먼저 왕궁 서문 옆에 가져가도록 하라.”


크리스토프의 명령에 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얼음을 실었다. 커다란 무게에 잠시 고생했지만, 훈련으로 단련된 기사들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는 크리스토프는 몸을 돌렸다.

아주머니는 쓸쓸히 빈 항아리를 들고 사라져가는 수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주머니.”

“왜요, 단장님!”


아주머니의 투정 어린 대답에 크리스토프는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나라의 일입니다. 제 사재(私財)였다면 통째로 드렸을 겁니다.”

“힝~! 알아요, 알아~! 그래도 아쉽잖아~! 내 평생 저런 걸 또 언제 맛본다고~!”

“그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삐친 아주머니의 다소 공격적이면서도 애교 섞인 목소리. 그녀가 크리스토프에게 언제부터 이랬던가.

아마도 기사단장이 된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크리스토프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정화를 나가느라 제집에 한참을 못 들어갔습니다. 저택에 언제부터 저리 커튼이 드리워져 있던가요?”

“어머머! 단장님도 나랑 같은 생각 했구나~! 나도 그거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네,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왜 있잖아~! 한 달 전에….”

“얼음이 떨어진…, 날부터 말입니까?”


크리스토프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주머니는.


“아니, 그렇다니까~! 아무래도 클로이가 겁이 많아서 그런 걸 꺼야. 얼음이 떨어진 날~! 맞아! 그 날부터 창문을 꼭꼭 걸어잠그더라고~!”

“혹시 집에 사람이 없는 것 아닙니까?”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릴~! 가끔 오가는 사람 보다 보면 왜 있잖아~! 사만다도 드나들더라니까~!”

“어머니께서요?”

“글쎄~! 그렇다니까! 클로이가 호들갑을 떨었겠지~! 사만다도 엄하긴 해도 딸 사랑이 지극하잖아~!”


아주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크리스토프는 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끝도 없이 주절거렸고, 크리스토프는 잠시 멈칫하더니.


‘아주머니, 오늘 나눈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시고, 앞으로 누가 물어도 잘 모른다고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고, 아주머니는 ‘왜요? 단장님?’을 몇 번씩이나 물었다. 결국에.

‘집안일입니다. 밖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걸 막을 겸 말입니다.’

하고 설명하고 나서야 아주머니의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단장님~! 클로이 너무 잡지 마~!”


크리스토프의 뒤에 대고 아주머니가 외쳤다. 아무래도 크리스토프가 클로이의 어리광-무섭다며 어머니를 집에 불러들인 것-에 혼쭐을 내려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차라리 그것도 그것대로 좋았다.


‘후우…. 무슨 일인 거지.’

크리스토프는 대문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뭔가 부정한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클로이와 관계되어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무서운 직감이 크리스토프의 몸을 감쌌다. 직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크리스토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익.


크리스토프는 상식이 부서지는 충격을 겪었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할 줄 알았던 집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오히려 건물 밖보다 훨씬 시원했다.


크리스토프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작가의말

이제 클로이와 크리스토프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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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4화. 어둠, 슬픈 현실. 14.05.18 198 2 11쪽
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3 0 13쪽
»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70 0 12쪽
16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2) 14.05.31 303 0 13쪽
15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1) 14.05.25 38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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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2) +2 14.05.18 398 9 13쪽
12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1) 14.05.17 386 2 13쪽
11 7화. 빛, 오(汚)를 받아들이다. 14.05.11 372 1 13쪽
10 6화, 어둠, 사(四)인의 후보. 14.05.04 400 3 16쪽
9 5화. 빛, 오(汚)를 깨닫다. 14.04.30 422 2 14쪽
8 4화. 어둠, 차기 국경 정찰대장. 14.04.29 237 3 17쪽
7 3화. 빛, '오(汚)'를 느끼다.(2) 14.04.29 342 5 12쪽
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2 4 10쪽
5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14.04.28 411 3 11쪽
4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14.04.27 327 4 9쪽
3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2 7 12쪽
2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1) 14.04.17 612 11 11쪽
1 프롤로그. +8 14.04.12 919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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