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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레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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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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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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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글자수 :
137,227

작성
14.04.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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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DUMMY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어. 고마워.]

[나, 정찰대장의 자리에 지원하겠어.]



***



지줏돌을 세우는 작업은 이미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흙을 덮어 경사로를 만드는 것까지.

장례식이 시작되고 약 열 시간 정도가 흘렀다.

붉은 하늘은 검게 변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수십의 횃불이 어두운 장례식장을 비추고 있어 사물을 식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거친 상복을 입은 전사들이 당기는 밧줄은 고인돌에 연결되어 있었고 임시로 만들어진 경사로를 타고, 느리지만 조금씩 고인돌은 지줏돌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밧줄을 잡은 이 중에 눈에 익은 이가 있었다.

바로 마니아코 벨포흐였다.

마니아코는 고인돌에 이어진 줄을 당기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욕설을 지껄였다.


“이 빌어먹을, 제기랄, 흑흑. 제기랄…. 조심해서 가시오…. 제발 조심해서 가시오, 대장…. 마드레님의 품속으로…. 조심해서 가시오….”


죽은 이의 좌우명이자, 이제는 유언이 된 그 말처럼 마니아코 이외에도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이 슬픔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이들은 울지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도 않았다.


멀찍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 남자를 오히려 조금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여자들.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조제와 로랑이 있었다.

눈썹이 진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것이 없는 조제가 아닌 것은 당연했다.

그녀들은 잘생긴 로랑을 보러 온 여자들이었다.

로랑은 분통을 터트렸다.


“진짜 저 여자들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해…. 아니, 이런 식으로 찾아온다고 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난 저런 여자들을 원하지 않아.”

“뭐, 가진 자의 여유라는 건가.”


조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장례식장까지 찾아온 여자들의 순애보가 가여워서이기도 했고, 그것을 대하는 로랑의 태도가 우스워서이기도 했다.

방금까지 지줏돌을 세우고 와서 지친 조제와 로랑은 바위에 기댄 체 꼼짝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니, 가진 자의 여유라는 게 아니고 나는 솔직히 저런 식으로 달라붙는 여자들은 싫어. 나는 지금 순수하게 대장을 추모하고 싶단 말이야. 이런 잡스러운 감정과 함께가 아니라.”

“글쎄, 로랑. 내 생각엔 가진 자의 여유가 맞아. 넌 이미 아내가 세 명이나 있잖아.”

“바로 그거야, 조제! 대체 일부다처제는 누가 만든 거야? 대체 왜 그딴 걸 만들어서 이미 아내가 세명이나 있는 남자에게도 여자들이 쫓아다니게 하는 거냐고!”


로랑은 조제의 말에 다른 의미로 맞장구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자들은 로랑의 목소리를 듣기 몸을 기울였고, 로랑은 그 모습에 털이 곤두선 팔을 쓸어내렸다.


“일부다처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해.”

“그러기는 힘들 걸. 남자들은 보통 서른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니까. 여자들을 외롭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

“난 이제 열아홉이라고. 대체 내가 아내를 몇 명을 만들어야 저 여자들이 나를 쫓아다니지 않을까? 한 열댓은 둬야 하는 건가?”

“해보면 알겠지. 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으…. 생각도 하기 싫다. 근데, 조제 너는 왜 결혼하지 않는 거야?”

“때가 되면 짝이 생기겠지.”

“때는 지난 것 같아, 조제. 열아홉이면 거의 끝이라고. 스물이 넘어서까지 여자가 없으면 아무도 너를 거들떠보지 않을 거야.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로랑은 턱짓으로 조제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나도 너처럼 여자에 큰 관심이 없어. 난 조용히 혼자 훈련에 열중하는 게 좋아. 나에게도 너처럼 따라다니는 여자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괜히 아비 없는 자식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조제, 여기에 아비 있는 자식은 마니아코 빼곤 아무도 없을걸?”

“아니야. 시몽씨도 있고, 디디에와 실바인도 아비가 있어.”

“정상적인 아버지가 아니잖아.”


로랑의 지적대로였다.

시몽의 아비는 어릴 적에 열병을 앓고 나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고, 디디에와 실바인 형제의 아비는 정찰대원이었던 젊은 시절 다리 한쪽을 잃고 촌락의 잡무를 보고 있었다.

사지가 멀쩡한 아비는 촌장인 마니아코의 아버지뿐이었다.

마니아코의 이야기가 나오자 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니아코를 향했다.

마니아코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조제. 마니아코는 왜 저렇게 울까. 쟤는 눈물도 마르지가 않나.”

“글쎄, 그럼 나는 눈물이 마른 건가.”


조제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조제는 껄끄러운 감정을 남겨놓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화해를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조제는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니아코와 주먹다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니아코와는 그때 이후로 아직 화해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 담아두지 마, 조제. 마니아코는 진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래?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마니아코의 저 태도는 뭔데? 벌써 장례식을 준비하는 일주일 내내 내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잖아.”

“많은 사람 앞에서 너에게 달려들었다가 되레 두들겨 맞았잖아. 창피하겠지.”


로랑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조제가 마니아코의 속을 긁자 마니아코는 눈이 뒤집혀 조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조제는 가볍게 뒤로 한 걸음 물러 거리를 벌렸고 지친 마니아코가 허공에 헛손질을 했다.

조제는 그대로 달려들어 마니아코를 잡아당겼다. 조제가 뒤로 물렀을 때 이미 중심을 잃은 마니아코는 나뒹굴었고, 조제는 가차 없이 밟았다.

로랑도 소용이 없었고 결국 다른 정찰대원 네다섯이 달려들어서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험한 말과 행동을 해놓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면, 난 지금부터 마니아코와의 연을 끊겠어.”

“조제, 너도 마니아코와 똑같아. 마니아코가 오늘 격한 감정에 휘둘려 저지른 잦은 실수들. 마니아코 모르게 뒤처리해준 것.... 너 아니야? 네가 정말 연을 끊을 생각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사과하러 오지 않는 것이 화가 났을 뿐이야.”


조제의 단호한 대답에 로랑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긴 머리가 고갯짓에 따라 흔들렸고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로랑은 소름이 끼쳤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니아코는 너처럼 차분한 성격이 아니잖아. 시간이 지나면 사과하러 올 거야. 그리고 마니아코는 울어주는 것이 진심으로 대장을 보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잘 알잖아.”

“알아, 무슨 이야기인지는. 저 모습을 벌써 몇 년을 보는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잖아. 마니아코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번 대장은 특별한 대장이었잖아.”


로랑은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의 깊은 두 눈에서 두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조제는 눈물을 훔치는 로랑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조제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랬던가…. 근데 난 벌써 죽은 대장의 얼굴이 가물가물해. 마니아코의 말대로 난 벌써 눈물이 메말랐는지도 몰라. 그렇지 않길 바랐는데….”

“별 수 있냐, 조제. 떠난 사람은 빨리 잊어야 해. 넌 그게 능숙한 거고.... 그건 우리 솜브라의 남자 모두가 이고가야 할 짐이야. 솜브라 남자들은 저 루즈를 상대로 반드시 솜브라의 촌락과 도시들을 지켜할 숙명이 있잖아.”


로랑은 그렇게 말하던 중, 대장의 공석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어차피 서부 수비대가 있으니 당장 급한 건 없지만, 국경 정찰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루즈 개척 기사단의 습격을 미리 방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차기 정찰대장은 누가 되려나.”

“마니아코겠지. 다른 이는 생각도 할 수 없잖아.”

“그럼 대장이 죽은 상황에 차기 대장을 두들겨 팬 너는 어떻고?”

“로랑, 난 대장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조제는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한 모금을 마시고는 로랑에게 건넸다. 로랑은 수통을 받아들었다.


“되고 싶다고 되는 자리이면 나도 해보려고 하는데. 동의하냐?”

“선출 때 도전해봐. 너도 검술이라면 나나 마니아코에 뒤지지 않잖아.”


조제는 로랑이 돌려주는 수통을 받아들었고, 로랑은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뒤지지 않다니. 왠지 기분 나쁜데. 속도는 내가 셋 중엔 발군이야. 조제.”

“그럼 그 빠른 속도로 장례식을 마무리 지으러 가자.”


휴식을 마치고 일어나는 조제와 로랑.

마침 그 모습을 발견한 마니아코가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마니아코는 밧줄을 당기다 손바닥이 다 헤져 피가 맺혀있었다. 장갑은 이미 제 기능을 수행하긴 힘들어 보였다.

조제는 잠시 마니아코의 손을 지켜보다가 마니아코를 바라보았고, 마니아코는 의도적으로 조제를 피하며 로랑에게 말을 걸었다.


“로랑.”


작가의말

※용어 해설.


*솜브라 : 신의 왼쪽 눈에서 태어난 종족이란 전설이 있다. 은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자애로운 사랑을 중요시하는 종족이다. 하지만 루즈와의 수천년간의 전쟁으로 옛 문명은 퇴색하였고, 이제는 루즈족에게 인종청소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고인돌 : 옛 루즈족과 솜브라족의 무덤 양식의 일종. 두 개, 혹은 세 개의 지줏돌 위에 큰 바위를 얹어놓은 형태로 그 위에 시신을 올리고 제를 지낸 후 고인돌 아래에 사자의 시신과 유품을 묻는다. 솜브라족은 아직 고인돌 무덤 양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루즈족은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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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6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로랑. 14.06.15 340 0 12쪽
21 15화. 빛, 딜레마. 14.06.11 393 0 15쪽
20 14화. 어둠, 슬픈 현실. 14.05.18 198 2 11쪽
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3 0 13쪽
17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70 0 12쪽
16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2) 14.05.31 303 0 13쪽
15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1) 14.05.25 382 0 12쪽
14 9화. 빛, 절대 선의 부정. 14.05.24 290 0 14쪽
13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2) +2 14.05.18 398 9 13쪽
12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1) 14.05.17 386 2 13쪽
11 7화. 빛, 오(汚)를 받아들이다. 14.05.11 372 1 13쪽
10 6화, 어둠, 사(四)인의 후보. 14.05.04 400 3 16쪽
9 5화. 빛, 오(汚)를 깨닫다. 14.04.30 422 2 14쪽
8 4화. 어둠, 차기 국경 정찰대장. 14.04.29 237 3 17쪽
7 3화. 빛, '오(汚)'를 느끼다.(2) 14.04.29 342 5 12쪽
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3 4 10쪽
5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14.04.28 411 3 11쪽
»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14.04.27 328 4 9쪽
3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2 7 12쪽
2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1) 14.04.17 612 11 11쪽
1 프롤로그. +8 14.04.12 919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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