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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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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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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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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The Destroyer.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인들에게 케네디 대통령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고인이 되고서도 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워런 머피 역시 ‘The Destroyer'에서 케네디를 자주 언급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포트 브래그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린베레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월리엄 야보로 장군이 병사에게 베레모를 당당하게 쓸 것을 명령했다.

당시만 해도 베레모는 공인되지 않던 때다.

특수 부대 그린베레의 훈련 및 능력에 감동한 케네디 대통령은, 녹색 베레모를 ‘우수의 상징, 용기의 휘장, 자유를 위한 싸움의 명성의 증거’로 정식으로 허가했다.

케네디가 특수 부대에게 공식적으로 경의를 표현한 것이다.

워렌 머피는 원작소설에서 레모 윌리엄스를 그린베레 출신으로 설정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흔하면서 중요한 메타포다.

한때 그린베레는 할리우드 작가들이 초인적인 전투 능력을 갖춘 캐릭터를 고안할 때마다 써먹은 진부한 설정이었다.

즉 존 람보, 존 메이트릭스(코만도) 또는 제이슨 본, 마틴 릭스(리셀웨폰) 등은 모두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심슨 가족>의 스키너 교장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특수 부대 군인 출신이다.

류지호가 어린 시절 재밌게 본 미국 TV시리즈 <A-특공대>는 그린베레의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알파 팀에서 따온 제목이다.

특수 부대 그룹은 대대나 중대로 구성되어 있다.

최소 단위의 대부분은 알파 작전 분견대, 즉 A팀이다.

A팀은 12명 편성이다.

무기 전문가, 의료 전문가, 통신 전문가 등으로 팀을 이룬다.

그들은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벽지에서도 장기간 생활할 수 있도록 훈련 받는다.

공정 기술에 특화된 대원이라면 고고도강하 저고도개산(HALO)이 가능하고 고급 등산 기술을 가진 대원, 차량을 이용한 침입과 전투 운전에 특화된 대원도 있다.

브라보와 찰리 팀은 지원대 역할이다.

<Remo : The Destroyer>에서 그린베레는 진부하지만 매우 중요한 설정이다.

왜 CURE라는 정부 내 비밀조직에서 레모 윌리엄스를 요원으로 선발했는지, 레모 윌리엄스가 어떻게 단시간에 무술 고수가 되었는지, 어떻게 전투에 능하고 언어구사능력도 뛰어난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내적인 설정들은 ‘그린베레니까‘ 말 한마디로 설득력을 가질 순 없다.

과거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젠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류지호는 레모 윌리엄스가 그린베레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군인이었음을 암시하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레모는 자신이 뉴어크의 경찰이었다는 사실보다 그린베레에 더 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야.”


류지호의 설명에 윌리 워커가 납득했다.

미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확실한 나라다.

과장되고 미화된 무용담도 많지만,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라서 군과 관련된 각종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류지호는 윌리 워커에게 레모 윌리엄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설명해 주었다.

그 외에도 크리스 워컨과 오순탁에게도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레드 워드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 역시 후배를 위해 자신의 경험담과 캐릭터 해석을 들려줬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윌리 워커가 입을 열었다.


“혹시 PTSD를 겪고 있지는 않을까?”

“처음 사회로 돌아왔을 때는 힘들었겠지. 레모는 걸프전과 북부아프리카 전장에서 여러 차례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어. 실제 적군을 무수히 사살한 경험이 있다는 설정이야.”


1963년에 원작소설 1권이 완성되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레모 윌리엄스의 참전경험이 없었다.

전투경험이 풍부하다는 배경설정은 시간대가 좀 더 현대로 바뀌면서 추가되었다.

윌리 워커가 크리스 워컨을 한번 쳐다본 후 류지호를 향해 물었다.


“혹시 레모가 트래비스나 니키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겠지?”


트래비스는 <택시드라이버>의 주인공 이름, 니키는 <디어헌터>에서 크리스 워컨이 연기한 캐릭터다.


“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면 치운이 더욱 혹독하게 수련을 시켰을 거야.”

“하긴 소설만 보면 치운은 완고하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


류지호가 크리스 워컨을 돌아봤다.


“<디어헌터>에서 니키를 연기할 때 어땠어요?

“지독했지.”


크리스 워컨은 <디어헌터>에서 전쟁후유증을 겪는 광기어린 참전용사 연기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당시에, 내 자신의 한계까지 모조리 끌어다 쓴 느낌이었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크리스 워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류지호가 <디어헌터>의 대사를 인용하자, 크리스 역시 자신이 했던 대사로 호응했다.


“아냐,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 영원히.”


그리고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이마에 댔다.


붐.


<디어헌터>의 유명한 러시안 룰렛 장면까지 재연했다.

모든 게 망가진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 봐야 친구들에게 짐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사실상 자살하는 장면이다.


“....음.”


윌리 워커는 처음으로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연기한다.

그 중압감으로 매사 진지한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


“윌리, 웃어.”

“아, 네.”


노련한 두 배우, 오순탁과 크리스 워컨은 식사 내내 엉뚱한 유머를 남발했다.

특히 크리스 워컨은 중후하고 점잖아 보이는 외모와 달리 4차원적인 모습을 드러내 류지호의 환상을 무참히 짓밟았다.

대선배들 앞에서 겸손함을 유지하던 윌리 워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말이야....”

“....응?”

“빅키에게 말해서 내 스턴트 트레이닝 시간을 조금 줄여줄 수 없을까?”

“많이 힘들어?”

“연기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그래.”

“기본 훈련을 마쳐서 적응을 마쳤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프레드 워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윌리, 지금 네가 하는 트레이닝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 때는....


“크랭크인 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의 웬만한 산을 다 등산했고, 1만 Km 이상 러닝을 했어. 내 멘토였던 가라데 마스터는 내가 부상당할 것은 고려하지도 않고 심하게 몰아붙였지.”


윌리 워커가 앓는 소리를 했다.


“빅키팀은 나를 터미네이터로 아는 모양이에요.”


오순탁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하. 늙은 나도 군소리 없이 참여하고 있는데, 젊은 네가 그러면 쓰나.”

“순탁은 진짜 치운 같아요. 난 마샬아츠를 수련한 경험이 없단 말입니다."


오순탁과 윌리 워커는 Vic & Jay 센터에서 거의 매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함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친밀해져 있었다.


'좀 더 사석에서 허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배우들마다 각기 다른 연기론과 연기법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 달랐다.

따라서 감독은 그런 배우들과 작품에 들어 가기 앞서 많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선배님은 서툰 영어가 아니라 정상적인 영어로 다이얼로그를 쳐주시고요.”

“오랜만에 다이얼로그 코디네이터를 따로 고용했네. 걱정 말아.”


전작에서는 치운이 서툰 영어발음을 하는 전형적인 아시안이었다.

이번 영화에서 치운은 정상적인(?) 영어를 구사한다.

대신 ‘예끼!’ ‘이 쇠똥같은 놈아!’ 같은 한국말을 많이 넣었다.

호칭 부분에서도 ‘스승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어르신’ CURE 요원들은 ‘마스터’라고 부르게 했다.

전장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치운은 항상 한복을 입기로 했다.

다만 조선시대 복식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다들 감사해요.”


할리우드에서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보통 리허설(배역 미팅)을 하지 않는 편이다.

충무로처럼 ‘와라가라‘ ’한 번 보자’ 배우들에게 함부로 요구하기가 힘들다.

아예 프리프로덕션에서 미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배우도 있다.

연기는 자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간섭을 거부하는 거다.


“나는 블록버스터가 처음이고, 촬영 현장에서 머뭇거리는 게 싫으니, 미리 캐릭터 해석 등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굳이 리허설이라기보다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내가 왜 이렇게 대사를 썼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고 하는 얘기들을 나누고, 또 배우의 생각이나 접근법에 대해서도 들어보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류지호가 직접 배우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최대한 정중하게 미팅 자리를 요청했다.

배우들은 그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충무로에서 상전 노릇만 하던 감독들은 이해 못할 분위기다.

할리우드는 감독이 상전이 아니라 잘 나가는 사람이 상전이다.

류지호 역시 오라고 하면 톰 메이포더, 아놀트 슈발츠네거 같은 A-list 몇 명의 배우를 빼곤 냉큼 달려올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럼에도 예의와 절차를 따박따박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들이 싸가지를 밥 말아먹었다고 해서 자신까지 그럴 수는 없으니까.

크리스 워컨이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솔직히 디렉터의 준비에 감동했어. 대화씬까지 모조리 스토리보드를 준비하다니.”

“제 고향에서는 모든 컷을 스토리보드로 그리는 것이 당연해요.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었나 봐요.”


과장된 말이다.

20년 후라면 몰라도 현재는 절대 그렇지 않다.

콘티조차 안하는 감독이 수두룩하다.

류지호는 풀스토리보드와 현장편집이 당연시 되던 시기에 감독을 했다.

그러니 완전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도 디렉터의 스토리보드는 매우 꼼꼼해. 사실 오늘같은 자리를 갖지 않아도 스토리보드만 봐도 디렉터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야.”


오순탁이 끼어들었다.


“단편영화 작업부터 디렉터의 스토리보드는 유명했다고 하지.”


할리우드에서는 특별히 중요한 장면이나 각 씬의 핵심 이미지만 스토리보드로 만든다.

광고와 애니메이션에서나 풀스토리보드를 제작한다.

반면에 류지호는 단편영화시절부터 풀스토리보드를 제작진과 공유했다.

비싼 스토리보드 작가를 고용해 실제 화면 같은 그림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알아볼 수 있도록 꼼꼼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Timely에 추천 받은 전문 작가가 스토리보드를 그려주지만.

일반적으로 대규모 전투 장면처럼 인물과 도구가 많이 등장하고 동선과 액션이 복잡하다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 스토리보드와 그 밖의 여러 종류의 사전준비를 한다.

몹씬 혹은 폭발 씬 같은 종류의 촬영은 많은 카메라가 있어도 한꺼번에 세팅하기 곤란하고, 수많은 배우와 엑스트라를 동원하지만 촬영을 여러 번 반복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감독과 촬영감독, 편집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꼭 필요한 구도와 앵글들을 결정해서 편집 순서대로 미리 배치해보는 과정이 필수다.

<Remo : The Destroyer>는 카메라와 인물의 움직임이 많은 영화다.

대규모 액션 시퀀스도 많았다.

항공촬영, 플라잉 캠, 스태디 캠 등 각종 특수 촬영장비도 많이 사용될 예정이다.

당연히 꼼꼼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오늘 유익한 시간이었길 바래요.”

“감독과 자주 만나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지.”


샘 L 잭슨이 함께 하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주요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날 이후로도 몇 번 더 식사를 겸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샘 잭슨과는 따로 만났다.

사석에서 꽤 만난 편이지만, 샘 잭슨은 여느 할리우드 스타들과 달랐다.

그는 평소에 아무렇게나 입고 다닌다.

너무 대충 입고 다녀서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지나칠 정도로 외모와 대중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배우라는 걸 잊어버리기 일쑤다.

류지호에게는 동네 아저씨 같아 푸근해서 신비감은 없지만,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감독은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좋다.

그렇게 류지호는 프리프로덕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았다.


❉ ❉ ❉


할리우드는 시스템으로 시작해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또 시스템으로 끝난다.

지난 몇 달 동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류지호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프리프로덕션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조감독 터커 툴리가 합류하고부터 류지호는 창작 외의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일일 보고, 주간 보고, 월간 정기 보고.

주간 회의, 월간 회의.

부서별 미팅, 전체 미팅.

류지호가 사무실에 출근하면, 책상에는 전날 작성된 보고서가 놓여있다.

월요일 오전회의에서 류지호의 주간 단위 지시사항이 전달된다.

프로듀서와 조감독은 특별한 이슈가 아닌 이상 류지호에게 보고하지 않는다.

자율적으로 프로덕션을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메이저 스튜디오 임원들로부터 요구사항이 월요일에 전달된다.

하지만 JHO Pictures는 류지호의 영화사다.

류지호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류지호의 말이 곧 법이다.

예산과 관련해서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의 경고가 전해지긴 하지만.


“미술팀에서 1,000 달러의 비용을 요구했는데, 그들이 무엇을 새롭게 추가하기에 그런 청구를 한 겁니까?”


피터 웰스 사장은 너그러운 류지호를 대신해 꽤나 예민하게 굴었다.


“슬로바키아 로케이션 세트장에 폐건물 더미 외에 목재 느낌이 살아있는 폐가구들 좀 더 놓아달라고 디렉터가 요구했습니다만.”

“꼭 그런 것들을 놓아야 분위기가 사는 겁니까?”

“쓰레기 더미 위를 탱크의 궤도가 지나가며 ‘빠직’ 불길한 암시를 주게 될 거라고 디렉터가 그랬지요.”


모두가 말끝마다 류지호를 들먹였다.

피터 웰스 사장은 류지호가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아이디어로 찍어주길 바랐다.

류지호에게 예산은 세 번째 문제다.

가장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장치와 미장센이 더욱 중요했다.

그것들이 다 돈이다.

피터 웰스 사장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한 푼이라도 예산을 깎고 싶어 하고, 류지호는 더 창의적이면서 더 그럴 듯한 연출을 위해 쓸 때는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스럽게 의견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갈등이 폭발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앨런 포스터와 잭 워든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었으니까.

그들은 효율적이면서 합리적인 예산집행과 제작공정을 위해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했다.

한편 조감독 짬밥과 수많은 영화 제작 경험을 가진 류지호다.

때로는 제작팀의 고민을 즉석에서 해결해 주었다.


“무너진 건물 하나를 포기하죠. 그 예산으로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제작비를 투입해 줘요.”


하나를 포기하고 두세 개를 얻어가는 방식.

류지호는 자신이 찍으려고 하는 장면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대세에 지장 없는 것을 양보하는 척 하면서 실리를 얻어내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거래가 조삼모사일 수도 있다.

알고보면 전체 예산은 달라질 것이 없으니까.

효율성의 추구라고 할까.

잭 워든은 처음으로 류지호와 작업을 하고 있다.

빅보스인 류지호가 양보하는 태도를 보인 것만으로도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감독으로서 권력을 휘두른다면 어느 정도 용인해 줄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런데 류지호는 막무가내 전횡을 휘두르지 않았다.

토론과 타협을 마다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고집을 부릴 때는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서 끝까지 관철시켰다.

양보할 부분은 또 털털하게 양보했다.

앨런 포스터는 세 번째 함께 하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잭 워든은 류지호의 일거수일투족이 충격적이었다.

그가 지금껏 할리우드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유형의 감독이었으니까.


✻ ✻ ✻


8월 중순.

선셋가에 위치한 스튜디오의 입구 Sunset Gower 간판이 사라졌다.

대신 새롭게 스튜디오 이름이 붙었다.


TRI-STELLAR STUDIOS.


마침내 본사 신축공사와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입구 좌측의 15층 신축건물은 트라이-스텔라 본사가 사용하게 됩니다.”


스튜디오를 돌아보고 있는 류지호의 곁에서 촬영소 사장 버트 머스틴(Burt Mustin)이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촬영지원 시설에 있던 기존의 오피스에는 ParaMax Films, Timely Studios가 차례로 입주할 예정입니다.”

“두 영화사가 쓸 공간으로 충분하겠어요?”

“봄에 입주했던 트라이-스텔라TV와 IVE Entertainment 또 사실상 브랜드만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 오라이언 오피스가 본사 건물로 들어가기로 했기 때문에 큰 문제없습니다.”

“뉴욕에 그대로 남기로 한 디멘션필름은 어떻게 하기로 했죠?“

“지사 형태의 사무실만 하나 차지하기로 했습니다.”

“제휴영화사들은요?”

“트라이-스텔라 본사와 기존 복합오피스 센터에 나눠서 입주하기로 했습니다. 공실 없이 모든 오피스가 채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무공간을 돌아본 류지호가 촬영지원 건물로 향했다.

오래되어 낡았던 건물을 보수하고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해서 현대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녹음실, 색보정실, 편집실을 포함한 각종 포스트프로덕션 지원 시설들이 최신 장비들로 교체되어 있다.

그 외에 소품실, 의상실, 세트미술 지원실, 촬영·조명 지원실 등 영화와 관련된 원스톱 토탈서비스가 가능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빅 식스에 비해 규모나 시설면에서 소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메이저 스튜디오의 상징이랄 수 있는 종합촬영소를 갖게 된 것이 뜻 깊었다.


‘이젠 트라이-스텔라도 메이저 스튜디오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지.’


할리우드 기득권 연합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영화협회(MPAA)에 회원사가 되면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명실 공히 메이저 스튜디오가 된다.

참고로 류지호가 백퍼센트 소유하고 있는 JHO Pictures는 헤드쿼터가 있는 웨스트우드를 당분간 떠날 계획이 없다.

조용히 따르고 있던 의전비서 제니퍼가 시간을 확인했다.


“파티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수십만 평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단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구경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류지호와 수행원들이 스튜디오에서 가장 평수가 넓은 스테이지로 향했다.

15개의 사운드 스테이지에는 01~25의 번호가 붙어있다.

중간에 빈 번호들이 10개나 된다.

할리우드 초창기 시절, 이 스튜디오에는 모두 25개의 스테이지가 존재했다.

이전 소유자들이 부지를 떼어 팔아먹고, 세월이 흐르며 주변지역이 개발되다 보니 현재는 15개 스테이지와 건물 몇 채, 약간의 주차장 공간만 남게 되었다.

과거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처음 붙여진 번호를 그대로 유지했다.

특이한 것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 400평 규모의 사운드 스테이지 번호다.

JH. R.

스테이지 넘버 대신 영어 약자가 붙어있다.

해석해 보자면 Ji Ho Ryu다.

류지호 전용 사운드 스테이지다.

유니벌스 스튜디오에 스티븐 아들러를 위한 전용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것처럼.

류지호가 스티븐 아들러처럼 대감독이라거나 회사의 주인이어서가 아니다.

이 스테이지는 류지호의 연구실이며 실험실이다.

D-Cinema 시대를 대비한.


따라라라~


1,600평짜리 초대형 스테이지로 들어서자 미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소리가 가장 먼저 류지호 일행을 반겼다.

실내는 벌써부터 파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예전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제안했던 파티다.

동시에 Tri-Stellar Studios 오픈 축하를 겸하는 파티다.

이틀에 걸쳐서 열릴 예정이다.

첫 날은 JHO Company 산하 영화사업 부문 직원들을 위한 파티가 마련되어 있다.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모두 포함하면 JHO Company 정직원은 5,000명에 육박한다.

계약직 지원까지 포함하면 1만 명을 훌쩍 넘긴다.

뉴욕에서 근무하거나 해외출장 중이거나 촬영현장에 나가 있는 직원들은 이번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날에는 제휴영화사 관계자들, 유명한 감독, 프로듀서, 배우, 헤드 스태프들, 제작자 협회 같은 각종 조합 관계자들, UC계열 예술대 학장들, 그 외에도 업계관계자들의 발길이 늦은 시간까지 끊이지 않았다.

시장은 물론 시정부의 각부서 요인들, 캘리포니아 상하원 의원 및 지역 정치인들도 찾아왔다.

심지어 StreamFlicks나 Zip2 Corp.같은 여러 실리콘 기업 CEO와 자선사업 관계자들까지도 축하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류지호와 JHO가 후원하는 빈민가 장학생들, 한인단체장 등 다양한 인종, 계층, 연령대가 이틀에 걸쳐 드넓은 스테이지에서 파티를 즐겼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까지 트라이-스텔라의 밝은 앞날을 기원해주는 축전을 보냈다.

민주당의 열렬 지지자인 모리스 메타보이에게 보낸 메시지다.

중부와 동부의 유력자들에게는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축하를 보내왔다.

이 파티의 호스트는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다.

류지호는 파티 예산의 절반을 부담한 것 외에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저 사람들은 섭외명단에 없지 않았나?”


류지호 주변을 서성이던 UK 탤런트의 죠셉 박이 얼른 참견했다.


“혹시 몰라 초청장을 보냈는데, 진짜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어요?”

“유니벌스 뮤직 부사장이 테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원하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자신이 주선을 해보겠다고 했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을 주기로 한 것인지 모르지만, 유니벌스 레코드 산하 레이블의 유명한 밴드와 래퍼가 즉석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원래 초청 가수들은 주로 워너-타임뮤직 소속이었다.

유니벌스 레코드 소속 가수들이 즉석에서 합세하면서 마치 미국의 유명음악시상식 축하공연처럼 판이 벌어졌다.

그것을 홍보팀에서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 어떤 식으로 써먹을지 궁리했고.


“회사사람들끼리 소박하게 파티를 할 걸 그랬죠?”


류비호의 말에 모리스 메타보이가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의 땀을 닦아냈다.


“그러게 말이야. 이러다가 온 할리우드 사람들이 다 찾아오겠어.”

“파티 기간을 연장하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난 못 들은 걸로 할래요.”

“당연하지!”


파티를 열렬하게 주장했던 모리스 메타보이까지 질색했다.


“할리우드 사람들이 아무리 잘 논다고 해도, 이건 오스카 애프터 파티보다 더 하잖아요.”

“그 만큼 우리가 잘나가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좋게 생각하자고.”


맞는 말이다.

류지호는 더는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때, 무대에서 류지호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Hey Bro! Big Jay! 사우스센트럴의 나의 형제와 이웃들을 위해 보여준 그대의 헌신과 봉사에 대해 감사와 존경을 보낼게!


래퍼 아이스 슈가가 류지호를 향해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놀고 있네!’


류지호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블랙 코리아’란 노래로 한국인을 비하하고, LA폭동을 은근히 부추긴 주제에 이제 와서 아부는.


‘넌 내게 찍혔어. 인마!’


무대 위에서 현란한 랩을 선보이는 아이스 슈가를 지켜보는 류지호의 표정에 냉기가 흘러넘쳤다.

아이스 슈가같은 스타 래퍼는 영화와 TV시리즈에도 출연한다.

류지호는 한국인 비하나 인종차별 전력이 있는 연예인을 자신 소유 영화사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


“유대인들도 할리우드에서 갑질을 하는데, 나라고 못해?”

“뭐라고?”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이스 슈가의 출연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갑질이 맞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 작자들은 연예계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류지호의 생각이다.

그들의 음반을 듣고,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 인터뷰 기사를 읽는 청소년들.

과연 그들이 무엇을 배우겠나.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차별 받는 것은 억울하고 지들이 행하는 차별과 부당한 처사는 괜찮고.’


아이스 슈가의 인종차별적이며 혐오와 증오가 담긴 노랫말을 따라 불렀던 수많은 청소년들은 은연중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지나친 과대해석 아니냐고?

‘컴백홈’이란 노래가 히트하면서 많은 가출청소년들이 귀가했다는 자료가 있다.

청소년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방법에는 일본처럼 역사왜곡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대신 한류를 차단한 중국정부의 방법이 더 그럴싸할 수도 있다.

역사 교과서는 왜곡된 지식을 심어주지만, 대중문화는 감정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무역상품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얻어 온다.

대중문화는 외국에 긍정적인 인식과 인상을 남겨놓는다.

무역상품은 사용기간이 한정적이다.

대중문화는 일단 씨앗을 심어놓고 잘 가꾸면, 오랜 시간 영향력을 지속시킬 수가 있다.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감정이 초기화만 되지 않는다면.

류지호가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돌아섰다.


“어디 가?”

“아가씨들하고 어울리려고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류지호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얼른 가봐. 노인네들하고 그만 어울리고.”


류지호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꽃밭에서 헤엄쳤다.

두 시간이 흐른 뒤.

온갖 꽃향기로 유혹하는 아름다운 꽃들을 뒤로 하고 파티장을 떠났다.

노는 것은 매일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프로덕션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류지호는 JHO Company 산하 영화사들이 이사를 하든 말든 <Remo : The Destroyer>에 매달렸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스턴트 디자인 확정.

1차 분 세트 미술 작업 완료.

탱크와 각종 총기류를 포함한 대도구, 소도구 확정.

주연 배우들의 의상을 포함한 특수제작 의상 확정.

아날로그 특수효과와 VFX 시퀀스 플랜 확정.

풀스토리보드 완료 및 중요 장면 프리비주얼 확정.

크랭크인 날짜가 다가오면서 프리프로덕션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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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The Destroyer. (3) +8 22.12.05 4,015 143 21쪽
352 The Destroyer. (2) +7 22.12.05 4,036 12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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