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아름(4)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방과 후, 아저씨와 옆자리 남학생은 함께 피시방에 도착해 있었다.
아저씨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게임을 하는 학생들을 구경했고 남학생은 몹시 지친 표정으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는 게임을 켜지도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고 곧 그의 옆자리에 아저씨가 와서 앉았다.
“뭐해? 게임 안 해?”
“내가 대체 왜 너랑 둘이서 피씨방을 온 거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의문이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친하기는커녕 절대 엮이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다. 요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나타나선···
“참나. 뭐 그런 걸 고민하고 있냐? 나 같으면 기왕 왔으니 뭐 하고 놀까 생각하겠다.”
“진짜 뭐에 홀리기라도 했나. 그래도 뭐··· 맞아. 기왕 왔으니 겜이나 해야지.”
묘한, 무언가 기묘한 그 친화력에 끌려서 같이 피시방에 오고 만 남학생은 결국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고민하길 포기하고, 게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게임 롤을 켜서 자신의 계정으로 접속하고, 현재 접속 중인 친구 목록을 쭉 둘러본다.
“왜? 뭘 봐? 너도 롤 하냐?”
“롤?”
남학생의 모니터를 바라보던 아저씨가 되묻는다. 남학생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설마 모르냐? 피시방 가자길래 게임 좀 하나 싶었는데, 롤도 모를 줄이야.”
“······.”
“이게 피시방 점유율 부동의 1위인 갓겜이거든. 리그 오브 로드라고, 영주들끼리 전쟁 대신 용병이나 대리인을 세워서···”
“대리인을 세워서 모의 전쟁을 하는 게임··· 이지. 유저가 한 캐릭터를 플레이하고, 총 10명이서 5:5로, 최종 적의 넥서스를 부수면 이기는.”
“뭐야? 잘 아네?”
“······.”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남학생의 게임 화면에 새로운 채팅창이 올라왔다. 친구가 함께 게임 한 판 하자는 메시지였다. 아저씨가 미묘한 표정으로 별 말이 없자, 남학생은 그 메시지로 신경을 돌렸다.
[리바 : ㅎㅇㅎㅇ 겜 한 판 할래?]
[눈안좋음 : 그래 ㄱㄱ]
[눈안좋음 : 초대 줘 당연히 공식이지?]
[리바 : 개소리 ㄴㄴ]
[눈안좋음 : ㅋㅋ 그럼 그렇지;; 일반에서 손 푸는 거 도와달라는 거네]
남학생은 열심히 친구와 채팅을 치면서 하나 둘 게임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쩍 옆을 보니 아직도 아름이 이상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 왜?”
“아냐. 아니, 아닌 건 아닌데. 이거 롤 맞지?”
“롤이지.”
“그렇지. 야, 너 지금 게임 돌릴 거지? 잘 됐다. 구경 좀 해보자.”
“구경하는 거야··· 별로 상관은 없다만.”
남학생은 어깨를 으쓱 하곤 자신을 초대한 친구와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한다. 10명의 유저가 모두 선택이 끝나면 넓은 전장으로 이동한다. 두 팀의 진영. 위, 중간, 아래 세 갈래 길의 공격로. 공격로의 중간 중간을 지키는 포탑요새. 풀숲에 숨어 있는 중립 몬스터들.
남학생과 그의 친구는 보이스 채팅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손발을 맞춰 적과 싸웠다. 아저씨는 그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자리에서도 롤을 실행시켰다. 그러자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로그인 화면이 아저씨를 반겼다.
‘기억난다. 확실해. 내가 아는 그 롤이다! 롤이라니.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처음엔 그저 가장 가까운 옆자리의 학생과 친해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 둘 친구를 늘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피씨방에 도착해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걸 보는 동안에도 가물가물 했는데, 이 남학생이 롤을 켜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확실하게 떠올랐다. 나는, 이 게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저씨는 떨리는 손으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자신의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존재하지 않는 계정입니다.]
“······.”
계정이 해킹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잘 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고민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기에 결국 아름의 학생증을 꺼내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새로운 가입을 시도했다.
[이미 가입된 주민등록번호입니다.]
“······.”
아름이도 이 게임을 했나?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주민번호 정보가 새나가서 어디 외국사람이 쓰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행히도 같은 주민번호로 복수의 계정 가입이 가능했기에 아저씨는 그 방법을 선택하여 게임에 성공적으로 접속하였다.
“근데 상대팀이 너무 대충해서 별 재미도 없었네. 한 판 더 할까? 그렇지? 제대로 된 게임도 아니었으니. 그러게, 손을 풀 틈도 없었겠어.”
아저씨가 게임에 접속하여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남학생이 하던 게임 한 판이 끝난 모양이었다. 그는 슬쩍 아저씨의 화면을 보았다.
“레벨이 1이네?”
“어··· 원래 아이디를 까먹었거든. 너 끝났으면 같이 할까?”
“난 지금 잘하는 애랑 파티중이라 안 돼.”
“흐음. 내가 너 보단 잘 할 텐데.”
“뭐? 너 티어가 어디였는데?”
“티어? 아. 브론즈 실버 골드 그런 거 말이지?”
“그런 거라니··· 응? 아니, 너 말고. 옆에 롤 하는 애가 있어서. 어. 겜방이거든. 같이 하자고? 너 상관없으면 나도 뭐, 상관없지. 야. 내 친구가 같이 하재. 너도 보이스 채팅 들어올래?”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세 명은 파티를 맺고 게임을 시작했다. 단순하게 게임을 즐기려는 학생, 본 게임 이전에 가볍게 손을 풀기 위해 게임을 하려는 그의 친구. 그리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피씨방에 따라왔을 뿐이었던 여학생.
이 묘한 파티는 누가 보아도 즐겜 파티였다. 즐겜. 그러니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즐기는 것에 목적을 둔 파티였다.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손 풀고, 적당히 옛날 기억이나 좀 되짚어 보고.
그 정도로 끝나야 할 평범한 이 게임에, 한 가지 이변이 생겼다.
“아니 뭔데? 실화냐? 상대편에 김민성있네?!”
“그게 누군데?”
“우리 반 친구! 쟤가 우리 학교에서 티어 제일 높아! 플래티넘이라고!”
“미쳤네. 그럼 우리 즐겜하긴 글렀네.”
“기가막히네. 쟤가 대체 우리랑 왜 매칭이 되고 난리냐. 와씨, 나도 재랑 겜하는 건 처음인데.”
남학생과 친구가 잔뜩 흥분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플래티넘이면 학교에 한 두명 정도 있는 수준의 고수가 아닌가. 신기하기도 하고,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두 사람은 마우스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플래티넘이 높은 거였던가?’
그렇게 평범했어야 할 게임에, 두 번째 이변이 발생하게 되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