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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완 님의 서재입니다.

닉네임 군필여고생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드라마

완결

린완
작품등록일 :
2018.10.19 17:38
최근연재일 :
2023.01.15 06:06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84,906
추천수 :
2,686
글자수 :
473,904

작성
20.01.04 20:23
조회
1,840
추천
53
글자
9쪽

01. 한아름(2)

DUMMY

‘흐으음. 이거 분위기가 생각보다 심한데.’


아직 자신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남자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반의 분위기 전체가 자신에 대한 반감, 혐오적 색채로 가득 찬 것을 느끼곤 좋게 좋게 말로 해결을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결론지은 그는 입을 다물고 상황을 좀 더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른으로서 건방진 꼬맹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생각을 꾹꾹 눌러 담으며 앉아 있으니 곧 중년의 남성이 교실로 들어왔다. 담임 선생인 모양이었다.


“어 춥다. 야, 핸드폰 집어넣고. 옆에 엎드린 놈 깨워. 반장!”

“네. 차렷. 경례.”

“그래. 아직 많이 추우니까 따듯하게 입고 다녀라. 그리고··· 어?”


출석부를 들고 대충 학생들을 훑던 선생은 그제야 남자의 존재를 깨달았다. 선생과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다시금 목례를 했다.


“어, 아름이 왔네. 음··· 그래. 아름이 잠깐 선생님 좀 볼까?”

“넵.”

“허. 그래. 조례는 특별한 거 없으니까, 다들 수업 잘 듣고. 이상.”


선생은 아름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며 교실 밖으로 나섰다. 아름도, 그러니까 아름의 모습을 한 남자도 교실의 답답한 분위기에 숨 막혀 하던 차라 얼른 선생을 따라 나섰다.

선생의 옆에 붙어 걷고 있자니 선생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어때. 이제 좀 괜찮은가봐?”

“네?”

“대답도 크게 잘 하고, 나랑 이렇게 붙어 있어도 괜찮은 거 맞지?”


아하. 남자는 선생의 말에서 이전의 아름이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말도 우물우물 거리면서 잘 내뱉지 못 하고, 사람 근처에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 할 정도의 대인기피증환자 수준이었다는 거겠지.

교무실에 도착한 선생은 출석부와 노트, 서류 등을 꺼내어 적고 체크하고 줄긋기를 반복한 뒤 다시 아름에게 물었다.


“그래. 일단 부모님께 이야기는 들었거든. 아참. 삼촌이랬지. 아무튼 그 뭐냐. 무단 결석은 아닌 걸로 해 둘 테니까. 진급이나 수시나 뭐, 불이익은 없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흠. 이건 됐고. 이건 따로 전화를 해 봐야겠고··· 아참. 병원에는 가 봤어?”

“어··· 아뇨.”

“그래? 그래도 상담이라도 받아 보는 게 좋을 거야. 서류상으로도 그렇고.”

“네.”

“됐다. 그럼, 자꾸 물어서 미안하지만 이젠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앞으로 계속 나올 수 있겠어?”

“네. 괜찮아요.”

“그래.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선생님한테 이야기 해. 아니면 반 애들한테 좀 도와 달라고 하고. 자, 선생님도 이제 1교시 들어가야겠다. 너도 교실로 돌아가라.”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선생에게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현재 아름이가 반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에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은 자신이 알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학생들 모두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고, 가끔 남학생 몇몇이 노골적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애들이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는지 알 길이 없던 남자는 그저 침묵을 지킬 수밖엔 없었다.


결국 이렇다 할 소득도 없이 집으로 귀가한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머리가 소란스럽다. 복잡한 고민 따위, 정면 돌파로 뻥뻥 뚫어내야 속이 풀릴 텐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자신의 손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남자의 심경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몸에 얼굴을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하루 종일 냄새 난다느니 더럽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아무튼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혹시 내 냄새라 나만 못 맡나?’


남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교복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에서 속옷을 벗고 온수를 틀었다. 손을 적셔가며 물이 따듯해지기를 기다리던 남자는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눈이 갔다.


‘······.’


성인 남성이 여자애의 알몸을 보면 민망한 기분이 들 법도 했겠지만, 남자는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만 강해질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부를 호소하는 방송에서나 나올법한 앙상한 몸매가 거울에 비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개 같은 것들! 도움을 줘도 모자랄 불쌍한 애한테 왕따시키고 욕질이라니.


남자의 보호본능이 자극 받아서 인지, 좀 전의 복잡했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 씻고 잘 먹고 잘 뛰고. 일단 건강하게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남자를 지배했다.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고, 부엌에서 보이는 재료로 식사를 한 뒤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뛰고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오버하면 몸에 무리가 갈 테니, 천천히 식사량이나 운동량을 늘릴 계획까지 짰다. 그래. 잠을 푹 자는 것 또한 중요하다. 조금 이른 시간일 수도 있었지만 적당히 몸도 노곤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 남자는 곧바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좀 전의 식사와 운동, 그리고 따듯한 물에 몸을 씻었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 종일 있었던 정신이 피곤했던 일 때문인지 남자는 빠르게 눈이 감겨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늘어지고, 침대 아래로 가라앉는 이 기분. 남자는 속으로 이거 코를 골 정도로 깊이 잠들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주욱 바닥으로 가라앉던 남자는, 생각하지도 못 했던 상대와 만나게 되었다.

꿈에서 만났던,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아름이었다.


“아. 그렇군. 꿈에서 만났으니까 꿈을 꿀 때마다 만나는 건가?”

“앗.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다.”


이 기묘한 상황 속에서도 남자가 태연하게 인사를 한 것은, 최근 이상한 일을 하도 많이 겪었기 때문일 것 이다.


“갑자기 정신이 말끔해 지는군. 그래서 아름이? 맞지?”

“네.”

“그래. 안 울고 있으니 좀 좋아. 아무튼 넌 혹시 내 몸으로 간 거냐?”

“네?”

“아니 그게. 내가 네 몸에 들어갔으니 반대로 너는 내 몸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해서.”

“그···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여기 쭉 있었는데.”

“그렇구만. 기묘하구만 정말. 그럼 난 대체··· 아니, 아니지. 그런 것 보다 야. 너 대체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얼 했길래 애들이 널 그렇게 싫어해? 야야. 아냐. 화 난 거 아니야. 그러니 울상 짓지 말고. 응? 미안해. 그냥 널 도와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무슨 상황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 그래. 그냥 물어보는 거야.”


남자는 자신의 언성이 높아진 것을 사과하며 그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최대한 조곤조곤한 말투로 사정을 물었고 그녀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은 남자는 오랜만에 담배를 물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때문에 좁은 강당에서 치러진 그녀의 고등학교 입학식. 안 그래도 낯선 사람과 환경을 무서워하는 그녀가 몇 백 명이 모여서 한참을 서 있어야 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참아내려 했지만 교장선생의 훈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애써 버티던 그녀는 결국 구토를 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며칠 간 학교에 나갔지만 아직 정신 연령이 낮은, 장난끼 넘치는 10대 청소년들이 그녀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고 결국 등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전교생이 보는데 그런 일이 났으면 뭐, 난리도 아니었겠네. 소심하고, 왜소하고, 놀려먹기 좋은 사건까지. 알만하네.”


남자는 영 탐탁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알았으니 됐어. 아마 지금이 꿈이고, 조금 있으면 또 내가 네 몸으로 일어나겠지? 이게 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개뿔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걱정 마라. 약속했던 대로 친구도 잔뜩 만들어주고 학교도 가고 싶은 곳으로 바꿔 줄 테니까.”

“저기···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누구신데 절 도와주시는 거예요?”

“뭐? 아니 이제 와서 그런 걸 묻냐?”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몰라 임마.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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