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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야 님의 서재입니다.

겁쟁이 포수, 야구 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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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야
작품등록일 :
2024.07.09 01:44
최근연재일 :
2024.08.0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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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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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스프링캠프(3)

DUMMY

8.


오연수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침대에 누운 그는 오늘 있었던 청백전을 복기했다.


첫 타석에서 삼진 아웃.

포수로서 포구할 때와 타자로서 공을 칠 때 보는 공의 느낌이 다르다.

유인구라 생각하고 타이밍을 살짝 늦게 휘둘렀는데 패스트볼이었다.


두 번째 타석은 더 심각했다.

패스트볼인 줄 알았는데 반대로 체인지업이었다. 변화구에 대응하지 못했고, 땅볼이 나오며 병살.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기량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다.

예정보다 이른 교체 지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프로로서의 부끄러움과 후회였다.


상대 투수는 주전조도 아닌 백업조.

패전처리까지는 아니지만, 청팀에 속한 투수들보다 구속이나 구위 등 여러 능력에서 떨어진다.


그런데도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자신의 기량 미달이다.


‘더 잘했어야 했어.’


그는 수비만 잘하는 포수는 반쪽짜리라 생각했다.

타격도 1인분의 몫을 해 줘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두 번째 타석까지는 0.1인분도 하지 못했다.

병살이니 마이너스나 다름없다.


그 순간 김성준이 해 준 위로가 떠올랐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다가와 옆에 앉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불편했다.

혹시 화를 내려는 건가.


거기서 병살을 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니까 네가 교체되어 나가는 거다.

마치 그런 말을 하듯 자신을 보던 동료들의 눈빛.

그들처럼 당장에라도 힐난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아니다.

김성준 선배는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따듯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일까.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인데.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지금은 대화할 기분이 아니다.


그런데 김성준은 옆에 앉더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그저 앞만 보며 경기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행동이 오연수에겐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김성준이 건넨 스포츠음료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고생했다.


움찔한 오연수는 김성준을 바라봤다.

담담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을?’


김성준에게 집중했다.

그는 대신 나가야 하는 상황에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동시에 부담스러워하는 눈빛까지.

왜 그럴까.


‘나 대신 출전해서 그렇구나!’


죄스러웠다.

마치 커다란 짐을 넘겨준 것 같아서.


아무 의미 없는 청백전.

하지만 지금 선수들에겐 중요한 경기였다.

앞으로 있을 선발 명단이 바뀔 수 있으니까.


‘그런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시는 거지?’


집중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시선.

김성준은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투수였다.

그것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서.


‘아!’


구종과 구위, 구속을 분석하고 있었다.

무서운 집중력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니.


그 모습에 오연수는 문득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동시에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저래서 감독님이 김성준 선배를 아끼는구나!’


7회에 나가기로 했던 것도 그렇다.

청팀이 앞서나가는 건 이변이 없는 한 당연한 일.

마음 편한 상황에 나가 경기에, 그리고 팀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김류진 감독은 언제나 열심히 하는 선수를 좋아한다.

아웃이 확실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그런 우직한 선수.

연습 경기도 다르지 않다.


오연수는 공부를 멀리했지만, 바보는 아니다.

매일 바뀌는 데다가 복잡한 수신호 작전 지시.

그걸 외우려면 머리가 비상해야 한다.

이대로 물러남으로써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가 나가겠다고 말해 볼까?’


원래 자신이 나가기로 했던 타석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이대로 물러난다면?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또 밀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제까지 물러나야 하는가.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김성준이 마음에 꺼져가던 불을 다시 지핀 것이다.


그는 지금 이대로 물러나면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그를 바뀌게 하였다.

그래서 출전하고 싶다고 최대한 예의를 담아 말했다.


-그래, 원래 네 기회잖아.


정말 감사하게도 김성준 선배는 흔쾌히 수락했다.


감독님께 말씀드려 타석에 나갔고, 김성준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무섭도록 경기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야구하며 흘린 땀.

연습한 노력과 시간.

여기까지 올라온 재능.

그리고 몇 번을 뛰어넘었던 자신의 한계.


‘내가 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달라진 마음가짐 덕분일까?

멋진 3루타를 쳐 버렸다.

그때 느꼈던 짜릿한 손맛과 감동의 여운이 지금도 떠나가질 않는다.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


‘내 실력이 한층 성장한 것 같아.’


감독님의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덕아웃으로 들어가자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라고 했다.

지금처럼 매 순간 전력을 기울이라고.

욕심을 부릴 때는 부리고.

그래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그의 시선이 벽을 향했다.


‘김성준 선배님.’


벽 너머 옆방은 김성준 선배가 지내는 방이었다.

이 모든 것은 김성준 선배가 옆에서 위로를 해 줬기에 가능한 일.

앞으로도 그의 옆에서 함께 야구를 하고 싶어졌다.


***


팀내 청백전 이후 우리 팀은 2주간 괌으로 전지훈련 온 외국 대학팀, 대만 프로팀과 7번 경기를 치렀다.


물론 괌에는 한국에서 온 프로팀들도 있다. 하지만 감독님은 한국 팀하고는 언제든 붙을 수 있으니 외국에 나왔을 때는 외국팀과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스프링캠프 후 한국에 돌아가면 시범 경기가 잡혀 있다.


스프링 캠프가 거의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일본으로 넘어갔다.


열흘간 일본 프로팀과 연습 경기 일정이 잡혀 있어서다.


총 3경기.

지바 롯데 마린스.

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NPB에서 명망 높은 팀으로 만만히 볼 팀들이 아니다.

일본에 도착해 하루 푹 쉬며 여독을 푼 우리는 라커룸에 모였다.


“일본 야구는 우리보다 앞서있다. 인프라, 시장 크기, 재정, 최신식 시설 등."


김류진이 말했다.


“···.”


반박할 수 없는 말.

땅 크기나 인구수로만 봐도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크다.

시장이 크고, 인구가 많으니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야구에 재투자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뭣보다 한국은 야구부를 운영하는 학교가 약 50개인데 비해 일본은 수천 개.

심지여 야구 역사도 일본이 더 길다.

게임이 안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과거 국제 대회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준우승을 기록한 게 기적적인 일이다.


김류진은 우리 선수들을 보며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3게임 모두 패할 거다."


담담한 말투.

당연했다.

이제 막 창단한 경기 피닉스.

역사와 전통을 갖춘 일본 프로 야구 구단들.

밀리지 않는 건 딱 하나.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비슷한 수준일 뿐.

코치의 수준이나 트레이너 등, 대부분이 열악하다.

패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코치와 감독을 케어하고 성장을 돕는 보직까지 있을 정도.


대전료를 지불하지 않았으면 성사되지 않았을 매치.

거기에 김류진 감독의 일본 인맥 또한 한몫했다.

선수, 지도자 대부분이 일본이 앞서있다.


“국대 갔다 돌아온 선수들이 그러더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실력이 올라갔다고."

“···.”


강한 선수, 강한 팀과 붙어 봤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알게 모르게 실력 증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많이 깨지고, 얻어맞아라. 그리고 삼진도 당하고, 아웃도 당해라. 헛스윙도 하고."

“···.”


선수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얼굴을 붉히며 분노하거나,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또는 침울해하거나.


“그런데 얻어맞기만 하면 안 된다. 패배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얻고, 배울 수 있는 건 배워라. 그래야 일본 야구를 따라잡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되는 대로 나와라. 피쳐는 던지고, 케쳐는 받아 줘. 수비수들은 펑고 천 개씩 한다."

“예!"


그렇게 김류진이 나가고, 잠시 후 주장 권석호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야, 너희."

“···예."

“감독님이 패배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허무하게 질 생각들 하지 마라.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게 일본이다."


권석호의 말을 듣던 나는 문득 김류진 감독이 일부러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려고 일본에게 패할 거라고 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선수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마치 한국 대표로서 일본을 상대하는 것처럼.


“예!"

“이기면 내가 장어 무한으로 쏠 테니 죽을 각오로 싸워라!"

“우오오오오!"

“주장 통장 한번 거덜 내 보자!"

“하하하."

“그래, 한번 거덜 내 봐라."


이제야 선수들 얼굴에 미소가 생긴다.

뭐, 나 또한 마찬가지.

무한이라.

일본에 장어가 몇 마리나 있지?


***


경기 피닉스는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압도적으로 패했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수준 차이.

돈을 아끼게 된 권석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장어 쏘고 싶었는데."

“···.”

“돈이 있는데 쓰질 못하네."

“그냥 사 주면 안 되냐?"


그러자 타격코치 허구열이 다가와 한마디 했다.

맞아.

사 주고 싶으면 그냥 사 줘도 되는데.


“안됩니다. 그러니까 잘 좀 하라고 이 자식들아! 코치님도 장어 좋아하신다고!"


그 말에 권석호가 정색했고, 옆에 있던 허구열이 조용히 그의 경기 기록을 읊었다.


“···저번 2경기 4이닝 동안 홈런 3방 맞았고, 피안타 10에 자책점 7, 볼넷 5, 삼진 2."

“···.”

"장어 쏘기 싫어서 이러는 거냐?"

"······아닙니다."


잠시 침묵하던 권석호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3점 차 이내로 패하면 장어 쏘겠습니다!"

“음."

“3점 차라면?"

“쉽진 않겠지만 도전해 볼 만해."


야구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14:1이었던 점수 차가 15:15 무승부로 끝난 경기가 있던 것처럼.


그런데 정작 나는 선수들 분위기에 끼지 못하고 초조하기만 했다.

앞선 2경기에서 출전하지 못해서다.

나가고 싶었는데.


괌에서 치렀던 연습 시합에서 난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도 1인분은 했다고 생각했는데······.

누굴 탓할까.

다 내 실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감독님은 지난 연습 경기에서 나를 보고 아직 부족해! 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금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증거.


이제 남은 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일본 야구의 상징적인 팀이나 마찬가지다.

붙고 싶어도 붙기 힘들다.

그런 팀과 붙는데 나를 내보낼 리가 없지.

나보다 더 성장 가능성이 큰 오연수를 내보내겠지?


실제로 앞선 2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해서 6회까지 뛰었다. 나 대신 다른 포수가 교체 출전.


아.

우울하다.

또 벤치에만 앉아 있기 싫은데.

이동하는 기간은 길고, 식단까지 관리받고 있다 보니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


“겁쟁이! 내려!"

“···?"


깜짝이야.

내가 언제 잠들었지?

눈을 뜨니 김류진 감독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리치셨다.


“어디 문제 있나?"

“···아뇨."

“아픈 건 아니지?"

“···예."


몸은 괜찮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다.

속이 초조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


경기 피닉스에 입단할 때까지만 해도 날아갈 듯 기뻤는데.

또 벤치행이라니.

나는 지금 임시 입단 상태.

이러다 계약도 못 하고 팀을 나가게 될지 모른다.

뭐 내 실력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오늘 선발 포수인데 문제 있으면 안 된다."

“···예, 예?"

“너 선발이다."

“제가요?"


다른 사람이겠지?

그런데 감독님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진짜 나라고?

심장이 두근두근 빠른 속도로 고동친다.

흥분한 것이다.


“그래, 어서 가서 옷 갈아입고 몸 풀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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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5위경쟁(2) +2 24.08.08 103 7 12쪽
28 5위 경쟁 +2 24.08.07 113 7 12쪽
27 웨어울프(4) +2 24.08.06 123 6 13쪽
26 웨어울프(3) +2 24.08.05 134 6 17쪽
25 웨어울프(2, 수정) +3 24.08.04 147 5 14쪽
24 웨어울프(1) +2 24.08.03 165 6 12쪽
23 김재춘(3) +2 24.08.02 157 7 12쪽
22 김재춘(2) +3 24.08.01 162 9 12쪽
21 김재춘(1) +4 24.07.31 172 7 12쪽
20 개막전(4) +2 24.07.30 185 7 12쪽
19 개막전(3) +2 24.07.29 188 7 13쪽
18 개막전(2) +2 24.07.28 193 7 12쪽
17 개막전(1) +3 24.07.27 193 6 12쪽
16 시범경기(3) +4 24.07.26 186 8 11쪽
15 시범경기(2) +3 24.07.25 203 7 11쪽
14 시범경기(1) +2 24.07.24 209 6 11쪽
13 계약(2) +2 24.07.23 207 7 11쪽
12 계약(1) +2 24.07.22 224 9 12쪽
11 연습경기(1) +3 24.07.20 244 6 12쪽
10 잭 톰슨(2) +2 24.07.19 243 8 13쪽
9 잭 톰슨(1) +1 24.07.18 258 8 14쪽
» 스프링캠프(3) +1 24.07.17 332 10 12쪽
7 스프링캠프(2) +3 24.07.16 293 12 15쪽
6 스프링캠프(1) +2 24.07.15 314 8 12쪽
5 피닉스(1) +2 24.07.13 316 8 15쪽
4 김류진 감독(2) +2 24.07.12 352 9 15쪽
3 김류진 감독(1) +1 24.07.11 354 8 13쪽
2 김성준(2) +1 24.07.10 402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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