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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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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0
추천수 :
241
글자수 :
291,890

작성
21.05.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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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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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드래곤

DUMMY

“그 마수, 스승님이 한 짓인가요?”


스승은 날 한참을 싸늘하게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짓이라니, 상당히 무례한 단어선택을 하는구나.”

“그 안개. 스승님의 마법이잖아요. 마나가 느껴졌습니다.”

“아가가 정찰 가기로 했던 지역과 겹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가 거길 들어갔니.”


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은 해주지 않고, 주변만 빙글빙글 돌았다. 답답하다. 내 속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다는 점이 더 답답했다.


“사람들이 위험하잖아요.”

“위험하지 않아.”

“그 안개 속에서 마수가 살고 있었어요. 그냥 싸워도 지는 그런 강한 마수였다고요.”


스승은 한심한 표정을 짓다가 고쳤다.


“간혹 네가 아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구나. 이 일은 네가 알 필요가 없어. 알았지?”


이 이상 물으면 위험하다고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마수가 만약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숲속에 머물지 않고 수도를 향해 내려온다면?

스승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인간들을 굳이 위험에 빠트릴 이유도 없거니와.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지? 인간같이 굴지 마렴, 너도 괴물이야.”


스승은 짜증냈다. 내가 제자라 이만큼 봐준 거지. 드래곤의 인내심은 매우 짧았다.

와인을 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힌 스승의 동공이 인간처럼 돌아왔다.

스승은 인간을 좋아하면서도 경멸하고 있었다. 그런 스승이 왜 인간과 살고 있는 지는 의문이지만, 그 덕분에 북부가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가, 내가 육아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줄 필요는 없단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듣는 거니.”

“저는 다 컸어요.”

“인간 기준으로는 말이지.”


수십 번 모습을 바꿔 북부를 통치하는 자에게 난 어리겠지. 뽀로통한 내 모습에 스승은 적선하듯 툭 내뱉었다.


“그 마수가 누군가를 공격하면 내가 처리하마. 됐니?”


마음이 바뀔세라 빠르게 끄덕였다. 누가 죽기 전에 처리하는 게 제일이지만.

스승은 와인 병을 들어 자리 맞은편 잔에 따랐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내게 앉으라고 하는 압박을 가했다.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스승은 기분이 조금 풀린 듯 웃었다.


“내가 다른 아티팩트는 빼앗는데 왜 그 아티팩트를 내버려 뒀는지, 기억 안나니?”

“아뇨. 기억하고 있습니다.”


옷 아래에 있는 펜던트 위로 덮듯 눌렀다.


“그래, 혹시 아가가 죽을까봐 내버려 둔거지. 그렇게 죽고 싶었니?”

“······.”


내가 아무 말 못하자 앞에 놓인 내 잔에 스승은 부딪쳤다. 스승은 청아하게 울리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걸 들키면 인간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거 같니? 널 죽여서라도 아티팩트를 가질 거란다. 특히 신전에서. 가짜 종교를 진짜로 만들고 싶어 안달 난 그들이 뭔들 못하겠니.”

“지금까지 봉사 활동했어도 한 번도 안 걸렸어요.”

“이젠 상황이 달라졌지. 도서관에서 영상저장구를 만들었지.”


갑자기 영상저장구가 왜? 스승은 멀리 보이는 건물들을 지목했다.


“그 영상저장구가 더 상용화 되면, 돈 있는 자들이 온갖 곳에 배치할거야. 왕국에서는 범죄 통제를 위해서 거리마다 설치할 텐데 넌 그걸 다 피할 수 있겠니?”


확실히 영상저장구는 아직 실험단계다.

완성도가 높아져서 더 많은 시간을 저장한다면, 딱 한번 걸려도 끝난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가, 넌 아직 변신 마법도 잘 못하잖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스승은 웃었다.


“봉사 활동이라고 하니, 내가 도움을 주마.”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스승은 순수한 의도인양 보란 듯이 팔을 들었다. 와인이 넘칠 듯 출렁였다.


“좋은 취지니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하지만 그 외에 사람은 안 된단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만. 알겠니?”


좋은 취지라 도와주겠다고?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의심해봤자 스승의 머릿속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내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었으니.


“평범하게 감사인사 해도 좋아. 오늘은 고생했으니 자고 가렴. 내일 마차를 불러주마.”

“···감사합니다.”


테라스에서 나오자 사용인은 나를 방에 안내했다. 씻고 옷까지 갈아입으니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인님께서 필요하실 거라 하여.”

“감사합니다.”


펜과 종이였다. 방 안 책상에서 내일 제출할 보고서를 적었다. 안개와 스승이 관련된 부분을 적다가 보고서를 구겼다.


“젠장···.”

‘인간같이 굴지 마렴, 너도 괴물이야.’


괴로워하는 나를 스승이 비웃는 듯했다. 난 괴물이 아니야, 아니라고.

다시 보고서를 적었다. 이번에는 스승의 이름은 빠졌다.


*


아침식사와 마차를 거절하고 이동마법으로 수도경비대 본부에 도착했다.

물어물어 대장 앞으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마법사니이임~!”


뒤돌아보니 어제의 사수 경비대원이 손 흔들며 뛰어왔다. 내게 직각으로 몸을 접어 인사했다.


“어제 감사했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져서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 신입 분은 괜찮으신가요?”

“어휴, 경비대원이라 튼튼합니다. 걔 옷이 더 고생이었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오전은 쉬고 오후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사수 경비대원이 내 얼굴을 이모저모 살폈다.


“혹시 기운이 없어보이시는데 누구랑 싸우셨습니까?”

“아, 아뇨.”


사수 경비대원은 기밀을 누설하듯 속삭였다.


“몰래 누구 뒤통수치고 싶으시다면 살짝 도와드리겠습니다. 많이는 말고 살짝만.”


사수 경비대원이 몰래 스승의 뒤통수를 때리는 상상을 하니 우스워졌다.


“신입 경비대원이 누구 보고 배웠는지 알 거 같네요.”

“제가 막 입대했을 때랑 비슷하다고들 해서 자꾸 챙겨주긴 합니다만 공감은 안 됩니다.”


어제 사수 경비대원은 신입 경비대원이 있어서 의젓해보였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고맙습니다.”

“진짜 그런 사람이 있어요? 진짜 조금만 때릴 거니까요. 기대는 마세요.”

“그런 거는 아니고 기분이 풀렸다고요.”


사수 경비대원과 인사를 하고 도서관에 출근했다.

로비에서 단델리온이 크리스틴에게 푸념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로소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용.”

“으아아. 로소 선생님! 사람 있어요? 사람?”


당황한 내가 크리스틴을 쳐다보자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봉사자가 돕고 있는데 사람이 부족한 가요?”

“당연하지! 지금 분기가 끝나면 프로그램 기초반 다시 접수 받아야하고, 다음 단계 반도 준비해야하거든. 마법초급반 애들도 이제야 글을 배워서 진도를 나갈 수 있는데. 마법 중급반을 만들라고 하는 거야!”


단델리온의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예상 본론을 찍었지만 틀렸다.


“2관 남는 예산 없어요.”

“아니야.”


단델리온은 다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본론부터 말해줘.


“예산은 다행스럽게도 준대. 정말 다행이지. 그런데 마법초급반 담당선생님께서 마법중급반은 못하시겠다고 말한 거 있지? 개인 과외 때문에 안 된대. 어휴. 그래서 말인데 로소선생님.”


뜸들인걸 보니 드디어 본론이다.


“친구 있어?”

“네.”

“레시아 선생님 말고.”


말문이 턱 막혔다. 걔 말고···. 샤니가 있긴 한데 걘 마탑주고.

단델리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로소 선생님 친구 없어 보인다니까. 아,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내성적이라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요.”


슈슉. 말로 몇 연타를 먹은 건지.

나쁜 말아니라고 하면 나쁜 말이 아니냐 나쁜 새끼야.

단델리온은 내게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라도 사람 생각나면 이야기 해줘~.”


단델리온은 크리스틴의 도움을 받아 돌돌 말린 종이 여럿을 들고 사라졌다.

크리스틴이 어깨를 토닥였다.


“친구 한명이라도 있으니 괜찮아용.”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2관의 문을 열자 책 냄새로 가득했다.

그래, 열심히 일하다 보면 기분도 나아질 거다.


*


내가 열심히 일하겠다고 그랬지, 이렇게 일을 많이 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일거리가 생겼다.

배가하러 갈 시간이 없어 쌓인 반납도서가 책 수레 두 대 가까이 됐다. 대출 도서 찾는 사람의 줄은 끊임없었다.

그래도 몸이 힘드니까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다.


“112번 이용자님, 책 나왔습니다.”

“뭐야?”


뭐야. 불만 가득해 보이는 이용자가 책을 받아들고 다시 내 앞으로 던졌다.

머리 아플 일이 없다고 했는데 바로 생겼다.


“친절하게 안 해?”

“책 나왔습니다.”


힘껏 웃으며 책을 이용자에게 앞으로 밀었다.

이용자는 더 기가 찬 듯 하! 소리를 내질렀다.


“왜 존댓말 안 해? 내가 우습냐?”

“했습니다.”


주변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용자 대출 도서 신청 대기 줄에서 불만이 터졌다.


“야! 넌 존댓말이 뭔지도 모르는 놈이 책 읽으러 왔냐!”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야래?!”

“거기! 혼자만 도서관 쓰는 거 아니잖아요. 조용히 좀 하세요!”

“넌 또 뭐야! 하여튼 어린놈들이 어른은 공경할 줄은 모르고. 내가 여기 기부를 얼마나 한지 알고나 그래? 하긴 개인 서재 없는 거지새끼들이나 도서관에서 책 읽으러 오는 거지.”

“이 새끼야! 너 지금 말 다했어?”

“다했다, 어쩔래!”


아수라장 된 건 순식간이었다. 침, 침착하게 도서 출입구에 있는 여러 번 종을 울렸다.

시근덕거리는 인원의 이목이 쏠렸다.


“조용히 하세요. 싸우실 분은 잠시 퇴장해주세요.”

“야! 네가 애초에 안 친절하게 굴어서 이 사단 났잖아! 사과해!”


이동마법으로 철망 너머 이용자들 틈에 섰다.

그 이용자는 막상 내가 나오자 당황한 듯 이리저리 시선을 굴렸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같이 이야기 하시죠.”

“아니 난 사과만 받으면 돼서 따로 이야기 할 거 없는데.”

“저거, 저거, 로비에 있는 선생님한테도 막말하다가 반응 없으니까 새로운 선생님 괴롭히려고 왔잖아. 이 선생님이 생각보다 크니까 무서워하는 거지? 저번에 로비 선생님 괴롭히는 것도 내가 꼬질렀어. 이 꼴통아.”

“뭐 꼴통?”


달려드는 이용자를 마법으로 가볍게 멈췄다.

기다리고 있는 이용자들에게 양해를 먼저 구했다. 그 이용자를 데리고 현관문 앞까지 이동마법을 썼다.


“본래라면 소란피우시면 바로 퇴장이신 건 알고 계시죠?”

“알고 있는데, 니가 친절하게 안 굴었잖아.”


그때 크리스틴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이용자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해사하게 웃었다.


“예전에 그 분이시구나.”


크리스틴의 웃는 낯과 차가운 말투에 이용자는 흠칫했다.


“제 말투, 이제 안 딱딱하시죵? 사근사근한 맛이 없다고 클레임 넣으셔서 제가 말투 고치느라 얼마나 힘든지 몰라용. 그래도 악의적 클레임이 누적되어 입장 허가서 파기했잖아용. 근데 또 오셨네용?”


크리스틴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이용자는 딴청 피웠다.


“기부금 잔뜩 내셔서 새로 허가서를 받아가지고 하는 일이라곤 겨우 이런 일이신가용?”


기부금 이야기가 나오자 이용자는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내는 기부금으로 너희 월급을 주고 있잖아. 근데 이렇게 취급해도 돼? 야, 관장 나오라고 해.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데 기부금은 다시 돌려받아야겠어.”


아침에 사수 경비대원의 말이 간절해졌다. 이놈 뒤통수 좀 갈겨주세요.

이럴 때는 만성 예산부족인 도서관 쪽이 굽신거려야 맞겠지.

크리스틴이 영상구를 가져와 사무실로 연결했다.


“관장님을 데려오라고 하셨는데용. 지금 자리에 안 계셔서 대리 권한 있는 분으로 부를 게용.”

-그래서 날 부른 건가, 크리스틴 선생.

“리콜 팀장님. 이 분이 기부금 돌려 달래용.”

-아이고, 이용자님. 도서관에 기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기부 하실 때 작성해주신 기부증서를 보시면 기부금 환급은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다 되는 거 뻔히 아는데.”


이용자는 시비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굴었다. 아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기부금 제가 돌려드리지요.”


도서관 입구에서 케인을 짚고 레인이 나타났다.


“대신, 다시는 도서관에 발도 들이지 마십시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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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거대 마수(1) 21.05.27 39 5 13쪽
» 드래곤 21.05.26 52 5 13쪽
22 정찰대(2) 21.05.25 43 6 13쪽
21 정찰대(1) 21.05.24 52 6 12쪽
20 스승님 21.05.23 56 7 13쪽
19 온실 21.05.22 70 7 12쪽
18 감사(2) 21.05.21 75 5 12쪽
17 감사(1) 21.05.21 70 6 12쪽
16 강도!(3) 21.05.20 70 6 13쪽
15 강도!(2) 21.05.20 66 5 12쪽
14 강도!(1) 21.05.19 73 6 12쪽
13 보관계약(2) 21.05.19 67 5 12쪽
12 보관계약(1) 21.05.18 75 5 12쪽
11 도둑? +1 21.05.18 73 5 12쪽
10 연체 도서(4) 21.05.17 77 6 12쪽
9 연체 도서(3) 21.05.17 70 6 13쪽
8 연체 도서(2) +1 21.05.15 92 5 11쪽
7 연체 도서(1) 21.05.15 102 4 11쪽
6 영상저장구 21.05.14 125 5 12쪽
5 결투 +1 21.05.14 149 6 12쪽
4 골렘(3) 21.05.13 204 7 12쪽
3 골렘(2) +1 21.05.13 254 8 12쪽
2 골렘(1) 21.05.12 358 11 11쪽
1 시작 21.05.12 548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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