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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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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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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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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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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연체 도서(2)

DUMMY

“내가 말이야! 왕가의 허가까지 받고 일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이딴 편지나 보내두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이런 식으로 날 창피를 주는 건 용서 못하지! 사람을 가려가며 보내야지!”


심기 불편해 보이는 이 사람은 항의 하러 왔다. 몇 분 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받은 우편 한 번 보여주시면.”

“너희가 보냈으니까 알거 아냐!”


뭘 어떻게 아냐.


“저희가 일괄적으로 보낸 거라 본인 확인을 위해 성함이라도 알려주시-.”

“날 보고도 몰라. 이것도 몰라, 저래도 몰라. 아는 게 뭐야?”


여긴 온갖 귀족과 자제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나. 왜 자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그러냐.

몰라! 귀족이 몇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알아도 나한테 알면서 보냈냐고 그랬겠지. 네가 연체한 걸 나한테 그러냐.

내 얼굴에 빤히 반항심 비치자 보다 못한 레인이 내게 저리 꺼지라고 손짓했다.


“저 선생은 뜨내기라 이쪽으로 오셔서 저와 이야기 하죠. 백작.”

“흐흠. 소후작이 그렇게 말하면.”


둘이 구석으로 빠지자 백작의 눈치만 보고 있던 이용자들이 내게로 와 내부 대출 신청을 했다. 일하면서도 레인 쪽으로 귀 기울이고 있었다.


“신입 선생님께서 경우가 없다고 하지만 명령 없이 혼자 연체 우편을 보냈겠습니까?”

“그렇지, 실링왁스에 도서관 인장까지 찍혀있으니 도서관 측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거지. 그러면 관장이?”

“그럴 분이십니까?”

“하하, 그것도 그렇지. 그래, 소후작께서 수고하시지오.”


몇 번의 짝짜꿍에 백작은 웃으며 곧 떠났다. 기분이 좀 풀린 이때다 싶어 레인을 칭찬했다.


“이야 역시 브라이트 선생님. 역시 데스크에는 브라이트 선생님만큼 잘 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네요.”


속보여도 레인은 뿌듯해보였다. 그래도 확실히 레인이 있어서 내용 없이 화내는 권위주의자들을 편히 상대할 수 있었다. 백작은 본인이 가진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더 화내는 듯싶었다. 다음부터라도 연체하지 마세요.

레인은 마감까지도 기분 좋았다. 떠날 무렵엔 내일 보자며 인사도 했다. 좋았어. 진짜 내가 돈 다 갚고 먼저 퇴사할거다. 야근부터 해야지만.


“우리 로소 이제 새 업무 받았네!”


오늘 아침에 도서관으로 돌아온 레시아는 1관 마감을 마치고 놀러왔다.


“장기 연체자 반납독촉 편지 보냈다면서?”


놀리려고 왔나. 인상을 쓰자 레시아가 철망 데스크 너머로 이동해 옆에 앉았다.


“그래서 연체도서 반납 독촉 편지는 다 보냈어?”

“응. 도서관에 적어낸 주소랑 이름대로 보냈지. 멀리 사는 사람도 있어서 그건 언제 도착 할지 모르지만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벌써 반납 한 사람도 있어.”


그 백작처럼 리콜 팀장의 의도대로 욕먹기도 했지만, 조용히 반납하고 돌아가는 이용자가 더 많았다.


“그것 때문인지 장기연체 도서가 1관에도 반납 들어오더라고.”

“고생한 보람은 있어서 다행이네.”


편지 쓰느라 아직도 손목이 욱신거렸다. 그나마 외부 대출이 일반인들에게 막혀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서 한 150통. 미쳤나봐 책이 오랫동안 안 들어왔는데 아무도 관리를 안 해?


“어차피 2관이 더 반납 많이 했을 텐데.”


1관 일반도서보다는 2관 마법서가 외부 대출율이 더 높았다. 마법서다 보니 다수 연구 목적으로 마탑 쪽으로 대출되었다.

한숨과 함께 오늘 반납된 연체도서와 연체자 목록을 대조했다. 또 반납 받은 도서가 대출 한 도서가 맞는 지 서지정보를 교차 확인했다.


“알아서 자기들끼리 대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거 없나.”

“그런 마법이 없으니 로소 선생님께서 손수 비교하고 있는 거겠죠? 빨리 하고 저녁 먹으러 가자.”

“네네.”


서지정보 확인한 도서를 반납 수레에 올려놓았다. 레시아는 이제 막 도서관으로 돌아온 책들을 구경했다.


“재밌어 보이는 책 많네. 꽂아도 돼?”

“응. 꽂아주면 감사하죠.”


심심하던 레시아가 배가를 해줬다. 대조 작업 마무리 하는 사이 레시아의 배가가 다 끝났다. 아 그러고 보니.


“소필라 백작의 영애가 <얼레벌레 여행기> 3권 찾았는데 그거 반납됐어?”

“아니. 근데 그거 쉽게 반납 안 될걸?”

“왜?”


그 책 때문에 왕립도서관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라 연체자 독촉 작업이 시작했는데! 마법 아카데미에서 거하게 사고치고 반성문을 썼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이 돌아갔다. 레시아가 마나 포션을 하나 건넸다.


“마시고 일단 진정해봐.”


마나 포션을 원 샷 했다.


“그 날 제1왕자도 왔었다고 소문이 파다하던데. 못 들었어?”


연이은 야근에 기억도 눈도 가물가물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귀족이고 왕족이고 얼굴 알아야 하냐고. 어떻게 생겼는데.”

“아무래도 그런 편이 좋지.”


레시아는 고민하다가 툭 내뱉었다.


“미남이야. 차기 태양 같은 분이시지. 자신감 넘치시고.”

“미남···. 알 것 같아. 갑자기 일 안한다고 뭐라고 하던 사람.”


그날 내가 모르던 훤칠한 미남이라면 날 혼냈던 그 사람뿐이었다. 뜬금없이 호통을 친다 생각했는데 몰래 도서관 시찰 나온 왕자가 소필라 백작의 영애 말을 들었던 것이다.


“오늘 왕자님이 한 마디 했을지 모른다고 했었는데, 진짜 인가봐.”


도서 관리를 소홀히 한다 생각했을 테니 한마디만 한 게 용했다. 쓸데없는 말도 한 것 같았지만!

도서 한 권당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데. 도서관에 돈 주는 사람이 화낼 만하지.


“브라이트 선생이 그렇게 말했어? 그건 둘러댄 거 맞을 거야. 책임지는 일은 팀장이 하겠지. 최종확인을 리콜팀장이 했잖아? 아직 왕자의 그 한마디. 안내려왔거든.”


레시아가 말을 덧붙이려는 때 2관 연락전용 수정구에 빛이 들어왔다. 영상구에 맺힌 마력의 색을 보아하니 내부연결이었다.

레시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결했다. 영상구에서부터 2관에 노성이 울렸다.


-로소 선생! 편지에 뭐라고 썼어!! 뭐라고 썼길래~$%#


리콜 팀장이었다. 분노에 어그러진 뒷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러다가 내 퇴근이 멀어지니 일단 이 팀장님을 침착하게 만들어야 했다. 사근하게.


“안녕하세요, 리콜팀장님. 편지라고 하면 연체자 독촉편지 말씀일까요? 리콜 팀장님도 내용 검수 해주셨고, 허가까지 내주셨잖습니까.”


내 기계적인 상냥함에 리콜 팀장은 얼굴이 구겨졌다. 잠자코 듣고 있던 레시아가 양피지에 뭔가 적기 시작했다.


-왕자님께서 내일 반납도서 찾아가라고 답장을 주셨어!


영상구의 사각으로 레시아가 양피지를 내밀었다. 눈만 내리깔고 내용을 읽었다.


‘그 제1왕자님이 <얼레벌레 여행기 3> 장기 연체 중이셨거든. 말해주려고 했는데 도서관으로 먼저 연락이 왔네.’


레시아는 얄밉게 웃었다.


*


다음 날 오전, 도서관에서 마차를 불렀다. 오픈 준비 중이라 크리스틴과 잡담을 하는데 리콜 팀장이 계단에서 내려왔다. 평소와 달리 쥐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위 아래로 내 옷을 살피더니 인상을 썼다.


“그러고 입궁할 건가?”


내 옷 차림이 어때서. 수도에서 오자마자 새로 샀다고.


“그레이스 선생. 도서관 전용 로브 가지고 로비로 오게.”


영상구로 연락 하자 곧 1관에서 레시아가 튀어나왔다. 한 쪽 팔에는 리콜 팀장이 입은 로브와 같은 쥐색 로브가 걸려있었다. 나오자마자 레시아는 상황파악을 했다. 도서관 전용 로브를 내게 입기 편하게 펼쳐보였다.


“로소 선생님, 입으시죠.”


레시아가 사용인처럼 입혀준 로브는 내가 입은 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품이 좀 더 크고 단추랑 박음새가 좀 더 꼼꼼한 정도?

다 입자 레시아가 등을 팡팡 쳤다. 로브에서 먼지가 나풀거렸다.


“너 이거 언제 입었어.”

“도서관 1주년 행사할 때가 마지막인데 바로 세탁했어.”

“팀장님, 정말 이걸 입고 가야하나요?”

“등에 도서관 인장 문양 있어서 신분 확인 금방 되니까 입으라고 한 거지. 네 로브는 안 도망가면 몇 달 더 있다가 만들어 줄 거야.”


뭐라 말하기도 전에 마차가 도착했다. 누가 열어주기도 전에 리콜 팀장이 먼저 앞서 탔다. 리콜 팀장 등에는 꽃 모양으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마차에 따라 타려고 하자 말이 투레질을 했다. 목적지를 들은 마차가 왕궁으로 출발했다.


“로소 선생은 가자마자 왕자님께 일단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

“장기 연체 한 왕자님이 잘못한 건데요?”

“네 책임인데 어쩔 수없이 나까지 따라가니까 무조건 사과하라고!”


어제 리콜 팀장이 책임 질 거라고 말했던 레시아 놈은 손들고 서있어. 책임 전가할 생각밖에 없잖아.


“원래 관장이 이런 걸해야 하는데. 내가 왜.”


리콜 팀장은 사색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왕자의 연체도서만 가져오면 되는데.

제1왕자라면 바쁘니 다른 사용인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마차 안쪽 커튼을 살짝 젖혔다. 거리에 핀 꽃들이 만개했다.

북부 산에서 몰래 기어 나왔을 때가 겨울 끝자락이었다. 한 달 내 동안 도망치다 도서관에서는 봄을 맞이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구경하는 사이 마차의 흔들림이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과 함께 문을 열렸다. 리콜 팀장과 내려 사용인이 이끄는 대로 갔다. 가는 곳마다 봄 내음이 가득했다. 꽃과 파릇한 잎사귀 사이로 신전이 보였다.

제 1왕자의 궁은 신전과 가까웠다. 신관의 흰 로브가 멀리서도 보였다.


“정신 차리고. 내가 한 말 잊지 말게!”


주위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자 리콜 팀장이 세게 찔렀다. 2층으로 올라가 이윽고 문 앞에 멈췄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사용인이 두 번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는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왕자의 목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리콜 팀장과 함께 응접실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넓은 응접실 발코니가 열려 있었다. 그 앞에 놓인 티 테이블이 있었다.

여인이 우아하게 앉아 찻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어서들 오세요. 오라버니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제1왕자가 우리를 불렀는데 그 장소에 있을 수 있고, 왕자를 오라버니라고 부를 사람은.

계산이 끝난 리콜 팀장이 상체를 납작 숙였다.


“고귀한 왕녀님을 뵙겠습니다! 왕립 아카시아 도서관의 자료실 총괄 팀장을 맡고 있는 리콜 거베라라고 합니다.”

“로소라고 합니다.”


간결한 내 소개 끝에 리콜 팀장을 따라 고개 숙였다. 리콜 팀장이 그것밖에 못하냐고 왕녀가 안 보이는 곳에서 나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가도 리콜 팀장은 금방 아부 입담이 돌았다.

왕녀님께 역시 아름답다고 하느니, 봄의 현신이라니 낯 간지러운 소리를 펑펑 해댔다.

리콜 팀장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왕녀가 물끄러미 날 쳐다봤다. 나도 하라는 건가. 아부 멘트를 고르는 동안 왕녀가 돌연 빙긋 미소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작가의말

다음 편은 월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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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거대 마수(1) 21.05.27 38 5 13쪽
23 드래곤 21.05.26 51 5 13쪽
22 정찰대(2) 21.05.25 43 6 13쪽
21 정찰대(1) 21.05.24 51 6 12쪽
20 스승님 21.05.23 56 7 13쪽
19 온실 21.05.22 70 7 12쪽
18 감사(2) 21.05.21 74 5 12쪽
17 감사(1) 21.05.21 70 6 12쪽
16 강도!(3) 21.05.20 69 6 13쪽
15 강도!(2) 21.05.20 66 5 12쪽
14 강도!(1) 21.05.19 73 6 12쪽
13 보관계약(2) 21.05.19 67 5 12쪽
12 보관계약(1) 21.05.18 74 5 12쪽
11 도둑? +1 21.05.18 73 5 12쪽
10 연체 도서(4) 21.05.17 77 6 12쪽
9 연체 도서(3) 21.05.17 70 6 13쪽
» 연체 도서(2) +1 21.05.15 92 5 11쪽
7 연체 도서(1) 21.05.15 102 4 11쪽
6 영상저장구 21.05.14 125 5 12쪽
5 결투 +1 21.05.14 149 6 12쪽
4 골렘(3) 21.05.13 204 7 12쪽
3 골렘(2) +1 21.05.13 254 8 12쪽
2 골렘(1) 21.05.12 357 11 11쪽
1 시작 21.05.12 547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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