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님의 서재입니다.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3,672
추천수 :
241
글자수 :
291,890

작성
21.05.19 11:02
조회
66
추천
5
글자
12쪽

보관계약(2)

DUMMY

사방이 어두운 금서관에 영상구의 빛만 희미하게 빛났다. 영상구를 들고 있던 이가 관장실에 설치한 영상저장구로 관장실 내부를 지켜봤다.

신관무리가 도서관을 나선 것까지 확인하자 입을 뗐다.


“신전과 작년과 동일하게 계약했습니다. 다만 추가 조항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확인해보죠.

“그리고, 왕녀님 말씀대로 그 사람이 움직인 듯합니다.”


영상구 안의 왕녀가 비웃듯 한 쪽 입 꼬리를 올렸다.


“도서관 도서가 도둑맞은 것처럼 행세해서 신전 측이 이번 계약에 유리한 고점을 차지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증거는 잡았습니까?

“불행히도.”


왕녀가 안타까워하자 금서관에 숨어든 이가 재빨리 말했다.


“로소 선생님과 생각보다 친하게 지내니 그쪽을 흔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흠, 로소 선생님은 예전에 내게 도움을 주었던 이라 내 마음이 석연치 않은데.

“그동안 이야기를 나눈 결과, 별다른 뒷배는 없는 거 같습니다. 위기에 빠진다면 여차할 때 왕녀님께서 도와주시면 됩니다. 아님 마탑주에게 미리 언질을 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고심하던 왕녀는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로소 선생님을 흔들 계기를 만들 테니 어떤 커넥션이 있는 지 확인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영상구가 끊기자 금서관은 어둠에 잠겼다.



*


어제 크리스틴의 말대로 출근하자마자 리콜 팀장이 나를 불렀다.


“신전으로 가서 도서목록과 아티팩트 목록을 검수하고, 여기로 올 때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는 지 감독해야하네. 기사단에게 말했으니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일 생기면 연락하게.”


내가 들고 날라야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으로 바로 출발하려는데 리콜 팀장은 초조하게 당부를 했다.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게.”


도서관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처음 어린 아이 심부름 시키는 사람처럼 굴었다. 저번에는 혼자 그것도 해결 못하냐고 쪼았으면서 갑자기 왜 저래.

이동마법으로 신전에 도착했다. 신전 입구에 있던 경비가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 행색을 보고 떨떠름하게 봤다. 아, 깔끔하다고!


“어떤 일로 오셨죠?”

“업무상 왕립도서관에서 관계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도서관 로브는 없으니 도서관 출입허가서를 보여줬다. 신전 경비는 허가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안에서는 마법 금지라 마법도구는 모두 두고 가시죠.”


신관 출입구에 마법반지를 맡겼다. 다른 마법 도구가 없는지 수색 당했다. 드디어 신전 내부로 들어갔다.


“저쪽에 앉아서 기다리시죠. 연락 넣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신전 로비에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시장처럼 가득했다. 경비가 나를 보며 왜 의아했는지 알아챘다.

다들 손에 제단에 마칠 공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사과 한 알부터 살아 몸부림치는 닭까지. 로비 의자에 앉자 옆에 있던 노인이 내게 관심 보였다.


“젊은이도 기도하러 왔어?”

“아뇨, 저는 일 때문에 왔습니다.”

“신관님이랑 만나고 그래? 어디 귀족이야?”

“그렇게 보이시나요?”

“안 그래서 내가 말 걸고 있잖아.”


노인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날 놀렸다. 노인은 손에 들고 있는 빵 반 덩이를 나눠서 내게 내밀었다.


“그래도 일하느라 힘들지? 먹어.”

“어르신은 기도 안하십니까? 기도 줄은 저쪽에서 서야 한대요.”

“알지. 난 기도가 아니라 글 배우는 거, 접수가 오늘이라 담당자 오는 거 기다리는 거야.”


크티스틴이 어제 그런 말을 했었다. 신전에서 글을 알려주지만 선별해서 가르친다고. 그리고 아마 이 노인은.

글 배운다고 해서 스스로가 민망한지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좀 읽고 싶다고 애들 배우는데 곳에 끼려 하니까 낯간지럽지. 그래도 접수는 해봐야지 않겠어?”

“여기서 안 되면 도서관으로 오세요. 곧 기초 글 읽기 반 접수가 열린대요. 여기도 애들 위주긴 해도. 개설하는 선생님이 아주 열정적이라 자리만 있으면 받아주실 거예요.”


노인의 팔을 조심스레 당겨 다시 앉혔다. 프로그램 운영 요건이 글을 배울 열정이 우선인지, 아이들이 우선인지는 단델리온에게 물어봐야했다.

그렇지만 단델리온이 애들이 아니라 노인이라고 해서 칼 같이 잘라버릴 리가 없었다. 자를 사람은 따로 있지. 떠오르는 콧수염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도서관? 갔는데 들어갈 때 돈 내고 들어가야 한대.”

“일부 프로그램은 입장 허가서 없이도 가능 하다고 들었어요. 나중에 들려서 확인해보세요.”


노인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말을 덧붙였다.


“아님 도서관 현관에 들어오는 거까지는 돈 안 드니까 거기서 ‘로소’를 찾아주세요. 그럼 제가 도와드리러 나올게요.”

“나야 고맙지. 그런데 도서관 사람이었어? 젊은이가 일도 없이 신전에나 앉아있나 싶었지.”


일 때문에 왔다고 했는데 안 믿었군. 아, 맞다.


“그런데 상황 따라 안 될 수 있다는 건 이해해주셔야 해요.”

“그럼! 알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이 늙은이 도와주려는 건 죽기 전까지 꼭 기억할게.”


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더 나눴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지자 노인은 글방 담당 신관이 저기 왔다며 작별했다.

기다리다가 점심시간을 넘겼다. 혹시 내 존재를 잊었을까봐 재차 물었지만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노인이 나눠주던 빵 없었으면 더 배고플 뻔했다. 언제 오냐.


신전 로비와 개방된 곳을 돌아다녔다. 신전 내 가장 큰 조각상은 성인의 조각상이었다. 실물과 같은 크기란다. 래넌 집안 조상에는 거인이라도 있나봐.

조각상 하단 설명을 보면 기도실에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이미 죽어서 백골사체지만 온갖 장식으로 꾸며진 뼈 앞에서 기도를 올리면 이뤄진다고 했다.


‘데이지 래넌.’


마나교를 정립한 예언가이자 신관이었다. 예언으로 당시 마그노 왕국의 국왕에게 인정을 받아 국교가 되었다. -라고 적혀있었다.

래넌 집안은 데이지 래넌 덕분에 대대손손 엘리트 신관 집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심해서 기도실 인근까지 와버렸다. 기도실 안까지 들어가고 싶었지만, 줄 선 사람들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로비로 돌아가자 한 신관이 다가왔다.


“왕립도서관에서 나오신 분인가요.”

“네, 로소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사과 한마디 없이 흰색 로브의 신관이 더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눈부신 응접실을 지나더니 한 초라한 문 앞에 도착했다.


“호위할 기사단에서 문제가 생겨 오늘 오시지 못한다고 연락 왔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올까요?”

“아뇨, 바로 출발하도록 다 준비했습니다.”


다 지들 마음대로야. 호위 없이 이렇게 막 가도 돼? 그때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무조건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던 리콜 팀장 당부가 떠올랐다.


“아, 계획이 뒤틀렸으니 상사에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으니 바로 출발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있겠습니다.”

“잠깐이면 되니까 기다려주세요.”


자기들은 잠깐도 못 기다리나보지. 구시렁거리며 영상구를 꺼내 리콜 팀장에게 연락을 했다.

영상구 너머 리콜 팀장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상황을 듣자 세상 근심을 홀로 가진 사람처럼 수심 깊은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불쌍하게 왜 그러냐.


-일단··· 젠장. 도서관 밖으로 일하러 갈 사람이 없어. 출발하기 전에 준 목록과 대조해서 제대로 맞는 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퇴근시간 되면 거기서 그냥 퇴근하게.

“다 못하면요?”

-다음날 해야지 별 수 있나. 어느 기사단인지 몰라도 갑자기 안 된다고 하다니. 따져야겠어.


영상구가 툭 끊겼다. 구석에서 쭈그린 몸을 폈다. 영상구 소리가 제법 커서 들었을 텐데도 신관은 모른 체 물었다.


“출발 준비할까요?”

“확실한 게 좋으니 한 번 목록과 대조하겠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누락된 것보다 낫죠. 어디에 있나요?”


신관은 초라한 문을 열었다. 지하 냄새가 확 풍겼다. 어둑한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묻히는 거 아냐? 불안한 기색을 눈치 챘는지 신관은 슬쩍 웃었다.


“걱정 마세요. 이 아래는 신전 자료실입니다만, 수장고와 함께 있으니 입장은 불가하십니다.”


딱 잘라 너는 못 들어간다고 말하네. 너희도 우리 금서관에는 못 들어와. 아마?


“그럼 다른 곳에서 확인하겠습니다. 응접실은 어떻습니까?”

“응접실은 현재 다른 분이 계십니다.”

“로비라도 괜찮아요.”

“거긴 도난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왜 자꾸 안 된다고만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계약상 누락되거나 손해를 보면 도서관 측에서 배상을 해야 하니 잘 검수하겠다는 건데.”


내가 안 넘어가겠다고 느꼈는지 신관은 한발빼기 시작했다.


“다 안 되서 말씀드린 겁니다. 사용 중인 방 하나를 비우겠습니다. 거기에서 확인하시면 되겠군요. 안내하겠습니다.”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갔다. 들어간 곳은 누군가 쓰다가 급하게 나간 듯 어질러져있었다. 누굴 초대할만한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신관은 빙긋 웃었다.


“따로 장소는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누군가를 쫒아내고 비우는 수밖에요. 이곳에 계십시오. 가져오겠습니다.”


앉으라는 말은 안하냐. 아무도 없자 영상구로 다시 리콜 팀장에게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역시 리콜 팀장의 반응도 그렇고, 오늘 신전이 하는 행동도 그렇고. 영 꺼림칙했다. 오늘내로 급하게 움직이게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금방 물건을 가져왔다. 신전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가져온 상자를 겹겹이 쌓았다. 상자가 방의 절반을 메웠다. 일꾼들이 줄줄이 퇴장했다.


“혼자 가능하시겠죠?”

“물론이죠. 아, 그런데 제가 3시간 후 퇴근이거든요. 시간되면 바로 퇴근하라고 하시는데 이대로 두고 가도 되죠?”


기어코 확인하려는 날 엿 먹이고 싶은 마음과 오늘 내로 보내겠다는 마음이 상충하는 지 신관은 갈팡질팡했다. 오래 뜸 들였다.


“···도와드릴 인력을 붙이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다 되면 불러주십시오.”


신관은 인자해 보이는 척 미소를 짓고 방을 나섰다. 방에 들어온 흰 로브들이 날 멀뚱하게 쳐다봤다. 제법 어려보이는 데 애기 신관들인가.


“어, 음. 일단 제가 부르는 게 있는 지 확인할게요. 찾으신 분은 제게 알려주세요.”


긴 목록의 첫 물품명을 불렀다.


*


일에 관성이 붙어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앞으로 퇴근 시간까지 30분! 쉬다가 퇴근하면 딱이네. 하지만 신관이 어떻게 알았는지 방으로 들어왔다.


“저희가 짐마차에 실고 있겠습니다. 잠시 쉬십쇼.”

“30분 남았는데 너무 급한 거 아닐까요?”

“마차로 서두르면 20분도 안 걸리니까요.”


이제 내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일꾼들이 밀려들어와 순식간에 상자를 옮겼다. 도서와 아티팩트 모두 진짜인지라 그들의 움직임을 신관들이 세세하게 감독하였다.

나도 출입구에서 마법 반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짐마차와 내가 탈 마차가 신전 앞에 줄서있었다.


“이대로 마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가시면 됩니다.”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뵙도록 하죠.”

“···당신에게 마나가 깃들기를.”


신관이 의례 하는 인사말로 마차 문이 닫혔다. 출발하는 마차가 도서관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 지 확인했다.


“출발했다고 보고해야지.”


영상구를 꺼내는 순간, 뭔가가 내 머리를 내리쳤다. 아파!

마차에 숨어있던 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주머니를 뒤졌다. 마법반지를 껴보기도 전에 다시 둔탁하게 내 머리를 찍어 내렸다.


“야! 기절 안했잖아.”

“제대로 쳤는데. 이상하다. 돌머리인가봐.”


돌머리 아니거든···. 몸에 힘이 빠졌다. 눈만 끔뻑이다 재차 맞았다.

망할 제대로 때려서 한방에 기절 시키던가···.

까무룩 쓰러졌다.


작가의말

저녁 7시쯤 한 편 더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석가탄신일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거대 마수(1) 21.05.27 38 5 13쪽
23 드래곤 21.05.26 51 5 13쪽
22 정찰대(2) 21.05.25 43 6 13쪽
21 정찰대(1) 21.05.24 51 6 12쪽
20 스승님 21.05.23 56 7 13쪽
19 온실 21.05.22 70 7 12쪽
18 감사(2) 21.05.21 74 5 12쪽
17 감사(1) 21.05.21 70 6 12쪽
16 강도!(3) 21.05.20 69 6 13쪽
15 강도!(2) 21.05.20 66 5 12쪽
14 강도!(1) 21.05.19 73 6 12쪽
» 보관계약(2) 21.05.19 67 5 12쪽
12 보관계약(1) 21.05.18 74 5 12쪽
11 도둑? +1 21.05.18 73 5 12쪽
10 연체 도서(4) 21.05.17 77 6 12쪽
9 연체 도서(3) 21.05.17 70 6 13쪽
8 연체 도서(2) +1 21.05.15 91 5 11쪽
7 연체 도서(1) 21.05.15 102 4 11쪽
6 영상저장구 21.05.14 125 5 12쪽
5 결투 +1 21.05.14 149 6 12쪽
4 골렘(3) 21.05.13 204 7 12쪽
3 골렘(2) +1 21.05.13 254 8 12쪽
2 골렘(1) 21.05.12 357 11 11쪽
1 시작 21.05.12 547 2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