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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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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5
추천수 :
241
글자수 :
291,890

작성
21.05.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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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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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보관계약(1)

DUMMY

큐 팀장과 글래드는 떠났다. 글래드는 연신 손을 흔들었고, 나도 흔들어줬다. 한창을 정원에 서있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도서관 로비로 뛰어 들어갔다. 로비 데스크를 정리 중이던 크리스틴이 깜짝 놀랐다.


“로소선생님, 아직 퇴근 안하셨나용? 늘 마감 끝나자마자 퇴근하시던 분이 웬일이신가용?”

“도둑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쓰여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죠. 그런데 도둑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글래드가 도둑인 줄 알았다는 말은 생략했다. 돈 많을 엘리트 신관 집안의 제자로 들어갔으니까 훔칠 일도 없겠지. 아마.


“맞아용! 레시아 선생님께서 훔치던 현장을 잡아 바로 신전에 넘겼다고 해용!”


크리스틴은 환하게 웃었다. 스산한 기색이 섞여있었다. 그나저나 글래드는 역시 아니었구나. 괜히 의심해서 미안하네. 다음에 맛있는 거나 사줘야겠다.

눈치를 보다 구석에 있는 영상저장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시제품인데 영상저장구가 활약했네요.”

“아뇨, 하필 그 장소, 그 시간에 영상저장구가 고장이 났어용.”


단어 하나하나에 화가 느껴졌다. 이것 때문에 마냥 좋아하지 못했구나. 연구 실적과 동시에 실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던 기회라 내가 다 아깝다.


“그럼 저건 다시 철거하나요?”

“아뇨, 도둑을 잡던 그 시간대만 영상이 없어졌더라구용. 영상 저장의 문제라 철거는 따로 안하려구용. 그 문제만 해결하면 되용.”


그렇구나. 주변을 살피던 크리스틴이 비밀이야기라도 할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도 몸을 숙이자 크리스틴과 속삭였다.


“오늘은 빨리 들어가셔서 쉬는 게 좋을 거예용.”

“왜요?”

“내일부터 좀 바쁠 테니까용.”


언제나 바빴는데 이보다 더? 크리스틴이 천장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3층 사무실 옆방을 가리켰다. 계단을 오르면 제일 먼저 보는 방이었다. 다른 문보다 좀 더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곳이었다.

자세히 보니 문 앞에 흰 로브를 입은 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관장실에 신관 분들이 오셨거든용.”


저기가 관장실이었구나.


“아! 로소 선생님은 북부에서 와서 잘 모르시겠군용. 곧 축제가 열릴 거예용!”

“작년 축제 소문이 북부까지 나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좀 더 이후에 열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을 시작할 즈음에 하는 데용. 혹시 종전 기념 축제인거는 알고 있나용?”


몰라서 머쓱하게 웃자 크리스틴이 화들짝 놀랬다.


“전쟁이 난 줄은 알고 계시나용?”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종전에 가까워지고서야 알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크리스틴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에서 오셨으면 모르실수도 있죵. 대공께서 물자지원과 관장님만 보내셨잖아용. 물론 관장님께서 일당백이었지만!”

“그래서 축제랑 신관이 온 거랑 무슨 관계인데요?”

“신전에서 종전 기념 축제를 맞아 일반인들에게 신전 내부를 개방해용. 그러면 신전 내부 보안이 취약해져서 걱정이 큰 나머지 도서관에 희귀도서 및 보물을 맡긴답니당.”


오히려 도서관은 평소에도 사람이 오가니까 더 위험하지 않나. 이번에는 크리스틴은 지하를 가리켰다.


“우리에게는 금서관이 있잖아용. 왕가의 허락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한 곳.”

“근데 왜 보관을 맡아주나요?”


귀찮은 걸 숨기지 않은 내 물음에 크리스틴이 음흉하게 웃었다.


“돈이죵. 보관료를 받거든용! 도서관에 몇 없는 수익사업이에용. 근데 신전에서는 주기 싫어하고, 그러면서 생색도 내고. 어휴.”

“으, 돈 관련이면 얼마나 사람을 굴릴지 벌써부터 내일이 걱정이네요.”

“그래도 요즘 리콜 팀장님이 덜 괴롭히시던데용. 왕궁에서 무슨 일 있었어용? 아, 무슨 일 하셔서 기부금 받았죵.”

“아니에요.”


단델리온이 그것 때문에 계속 고맙다고 달라붙는다. 은근히 돈을 더 받을 수 있는지 살피던데. 진저리가 났다. 크리스틴이 감정을 담아 로비 데스크를 두드렸다.

3층 관장실 문 앞 신관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크리스틴도 느꼈는지 목소리를 재차 낮췄다.


“하여튼 도서관이 신전 별관 건물 뺐었다고, 신전 쪽에서는 도서관을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기는 데용! 화려하게 새로 세웠으면 됐지 너무 욕심이 많은 거 같아용!”

“신전 별관이요? 어쩐지 여기저기 뭐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 외관과 내부에 힘을 잔뜩 주고, 화려한 마나신 조각상과 천장화까지. 신전에서 그렇게 공들여놓고 뺏기다니 왕궁 세력이 생각보다 강한 듯 했다.


“왕궁에서 도서관 세운다고 엄청 쪼았다고 들었어용. 반강제로 건물을 왕가에 기부하고, 감사의 표시로 거액을 기부 받고.”

“거래네요.”

“거래라도 신전 내부 파벌 중에 왕궁 친화세력이 그때 우세해서 가능 했대용. 지금은 그 반발로 불화세력이 더 강세래용. 지금 온 사람도 그 쪽이고.”


대놓고 왕궁과 불화세력이 있어도 되나. 하긴 마그노 왕국에서 마나교가 가지는 위상은 대단하니까 어느 정도 선까지는 넘어 가주는 거겠지.


“도서관이 도서구입을 하는데 신전이 몰래 훼방 놓고, 도서를 대여해준다 싶으면 대여 비용을 뜯어가고. 왕궁에서 주는 예산이 덕분에 아주 털털 털리고 있어용. 아주 가관이에용.”


음? 분노로 눈 돌아간 크리스틴이 불만을 줄줄 내뱉기 시작했다. 저기 3층에 신관이 있는데 이래도 되나. 내가 다 눈치 보였다.


“단델리온 선생님도 싫다고 했어용! 신전에서 글 가르쳐주는 게 자기네 소관이라고 우기고, 도서관에서 가르친다니까 엄청 반대한다고! 애들 엄청 가려서 받은 다음에 마나교 관련만 가르쳐서 그러면 안 된다고, 단델리온 선생님이 팀장님들을 작년부터 계속 설득했어용. 이번에 시작할 수 있어서 엄청 기뻐했는뎅! 신관들이 이번에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내 황당해하는 얼굴과 마주한 크리스틴은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덧붙였다.


“신전 대외부가 그렇다는 거죵. 전 마나교에는 별다른 불만 없어용. 매번 휴일마다 신전 가서 꼭꼭 기도도 드리는 걸용.”

“사람끼리 일인데, 마나 신께서 다 이해하시겠죠.”


신전에 대한 불만을 여기서 덮겠다는 내 속말을 이해한 크리스틴은 빙긋 웃었다.


“어쨌거나 내일 신전 보물이나 책을 옮기는데 인력이 필요하니. 2관은 사람이 두 명이라 2관에서 한 사람 불려나갈 거 같네용.”

“벌써부터 제가 일하는 모습이 선하네요.”


축 처지자 크리스틴이 내게 퇴근을 권했다. 2관 문단속을 확인하고 도서관을 나섰다. 내일, 힘내자······.


*


크리스틴과 로소가 이야기 나누고 있을 무렵 관장실에서는 관장과 리콜은 신관과 대화 하고 있었다. 신전 대표로 계약하러 온 신관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쯧쯧, 큐 녀석도 언제 철이 들지. 이런 상황에서 뛰쳐나가면 실례라는 걸 아직도 모르다니.”


리콜은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뛰쳐나갔다고 말하고 싶었다. 본인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술에 빠져있는 관장을 두고 나가기 어려웠다.

저 음험한 신관이 아무도 없는 새 엉뚱한 계약서에 관장의 지장을 찍어버릴지 어떻게 아는가. 리콜은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았다.


“그나저나 도서관에 도둑이 들었는데 어떻게 믿고 보관을 하지?”

“도서관 측에서 발견한 대로 바로 잡았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도둑은 신전 재판에서 잘 처리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흐음. 신뢰를 잃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오히려 도서관에게 이번 희귀 도서와 아티팩트을 대여하는 특별비용을 받아야 하는 판국인데. 우리가 보관료까지 줘야합니까?”

“그럼! 줘야지! 보상도 안 주고 우리한테 일만 시키려고 하고!”


신관의 말에 술에 취한 관장이 벌떡 일어났다가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묻었다. 흠흠. 리콜이 헛기침을 관장을 싸늘하게 노려보는 신관의 시선을 환기했다.


“관장님 말씀대로 보관 및 관리에 대한 비용은 주셔야죠. 대여라고 하셔도 따로 전시도 못하게 하시잖습니까.”

“이번에 도서관이 기부금을 좀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이렇게 나오시는 겁니까?”

“어휴, 아닙니다. 도서관과 신전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하지만 도서관이 운영 가능한 실정인데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렇다고 보관료를 안 받으면 왕궁에서 주는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어떻게 도서관을 굴리겠습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십시오.”


리콜은 신관 앞에서 설설 기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모습을 보자 신관도 못내 흡족해했다.


“또 신관께서는 도서관이 아니면 먼 마탑이나 비싸게 받을 왕궁으로 의뢰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들게 다른 곳에 걸음하지 마시고, 도서관에서 보관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리콜의 설득에 넘어가는 척 신관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러면 이번 계약서에는 특별 조항을 더 추가하도록 하죠.”

“어떤···?”


리콜이 불안해하자 신관이 손사래를 쳤다.


“도서관에 침입한 도둑, 강도에 의해 신전 소유의 물건이 파손 및 훼손, 손해를 봤을 경우, 보관료의 다섯 배로 변상하시죠.”

“아니, 잠깐. 그건 저희 측에 너무 손해 보는 조건 아닙니까. 도둑도 잡혔고, 영상저장구 설치로 금방 잡아낼 수 도 있습니다.”

“이미 잡혔다고 하지만 영 불안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자신있어하니 있어도 되는 조항 아닙니까? 최종 결정권자인 관장님께서도 뭐라 한 말씀 하시죠.”


관장은 코웃음을 치며 와인을 병 채로 벌컥벌컥 마셨다. 새로운 와인의 뚜껑을 맨손으로 열면서 말했다.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어차피 맘에 안 들면 다 엎고 나가실 거 아닌가?”

“그런 불한당으로 보시니 안타깝군요.”

“그럼 그런 짓을 하지 말던가.”


신관은 불쾌해져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다. 관장은 그러던가 말던가 와인을 퍼마셨다. 초조해진 리콜이 말하기 전에 관장이 와인 병으로 테이블에 쾅 내려쳤다.


“좋아. 그 조항 합시다. 대신 그 조항 아래에 보관 기관동안 피해가 없을 시 사과하는 것도 추가하죠.”

“관장님!”

“물론입니다.”


신관은 휘갈겨 특별조항을 써넣고 그 아래에 관장이 추가한 조건도 넣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크게 사인을 했다. 계약을 받은 관장은 도서관 직인을 찍었다. 한 부씩 나눠가졌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평안하시길.”


리콜이 건네는 인사말도 듣지 않고 신관은 뒤돌아 나왔다. 관장실을 나서자 양 옆으로 붙은 다른 신관들이 붙었다.


“평민 주제에 과분한 자리에 올라와서는 우쭐해하기는. 그러니 이런 가벼운 도발에나 걸리지.”


신관은 비웃으며 3층에서 텅 빈 로비를 내려다 봤다. 고적한 로비가 마음에 들어 한창을 바라봤다.


“그럼 이만 가지.”


신관의 뒤를 다른 신관들이 줄줄이 따라 도서관을 나섰다. 관장실 문을 살짝 열어 살펴보던 리콜은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갔습니다. 근데 관장님께서 오늘따라 더 술을 드시는 거 같습니다.”

“이런 망할 공문을 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


관장이 거리낌 없이 욕을 지껄였다. 신관이 들어오기 직전 받았던 왕궁에서 공문이 날아왔다.

관장이 우선 확인했던 공문은 관장 책상 위에 널려있었다. 리콜은 조심스레 확인했다.


“왕궁에도 도둑 소식이 널리 퍼졌나보군요. 갑자기 도서관 감사를 한다니요. 마법서는 도둑맞지도 않았는데······.”

“뒷장도 봐봐.”

“마법 중급반도 운영 하라고-요?”


리콜은 관장 앞이라는 것을 자각해 재빨리 높임말을 덧붙였다. 관장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마법 초급반 운영할 때만 해도 예산 안 주려던 곳인데, 이제는 더 넉넉하게 준다더군.”

“마탑의 반발도 심할 텐데요.”

“이렇게 문서로 보낸 것으로 보아하니 왕궁이 직접 방패가 되어주겠다는 뜻이겠지.”

“허, 참나. 갑자기 무슨 일이람.”

“그러게 말일세. 나 같은 바지 관장을 앉혀두고서 말이지.”


소파를 몸으로 푹 누르며 관장의 눈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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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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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거대 마수(1) 21.05.27 39 5 13쪽
23 드래곤 21.05.26 51 5 13쪽
22 정찰대(2) 21.05.25 43 6 13쪽
21 정찰대(1) 21.05.24 52 6 12쪽
20 스승님 21.05.23 56 7 13쪽
19 온실 21.05.22 70 7 12쪽
18 감사(2) 21.05.21 74 5 12쪽
17 감사(1) 21.05.21 70 6 12쪽
16 강도!(3) 21.05.20 70 6 13쪽
15 강도!(2) 21.05.20 66 5 12쪽
14 강도!(1) 21.05.19 73 6 12쪽
13 보관계약(2) 21.05.19 67 5 12쪽
» 보관계약(1) 21.05.18 75 5 12쪽
11 도둑? +1 21.05.18 73 5 12쪽
10 연체 도서(4) 21.05.17 77 6 12쪽
9 연체 도서(3) 21.05.17 70 6 13쪽
8 연체 도서(2) +1 21.05.15 92 5 11쪽
7 연체 도서(1) 21.05.15 102 4 11쪽
6 영상저장구 21.05.14 125 5 12쪽
5 결투 +1 21.05.14 149 6 12쪽
4 골렘(3) 21.05.13 204 7 12쪽
3 골렘(2) +1 21.05.13 254 8 12쪽
2 골렘(1) 21.05.12 357 11 11쪽
1 시작 21.05.12 548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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