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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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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글자수 :
291,890

작성
21.05.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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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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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연체 도서(3)

DUMMY

절 아세요? 말이 입 밖에 뛰어나올 뻔했다. 침착하게.


“죄송하지만, 전 그동안 왕녀님을 뵐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른 분과 착각 하신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왕녀님. 로소 선생님은 수도 막 상경했습니다.”


리콜 팀장의 지원에도 왕녀는 웃었다. 우리에게 티 테이블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오라버니를 기다리시는 동안 제 말동무나 해주시지오.”

“영광입니다.”


우리가 티 테이블에 가서 앉자 왕녀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림자처럼 서있던 사용인들이 와서 기본 세팅을 해주었다.


“제가 좋아하는 차라서 한 번 대접해주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왕녀님.”


홀대가 아니라 리콜 팀장의 콧수염은 기분 좋아보였다. 무슨 차인지는 몰라도 맛이 좋네. 몇 번 호록이자 동났다. 재빠르게 사용인들이 와서 채웠다.


“입맛에 맞으시니 다행이네요. 사실 4년 전 북부에서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런 북부이야기에 차를 뿜을 뻔했지만 간신히 삼켰다.


“대공성에 교류 차원으로 가다 눈사태로 전복된 마차를 구해주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랬었나? 겨울에 수도에서 북부로 온다고 하면 대부분 대공의 성이 목적지다. 그 외에는 외지인은 너무 추워 얼마 못 버티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많아서 기억나지 않습니다. 겨울 북부는 눈사태가 잦은 사고입니다. 또, 보이는 대로 구조하고 있어서 구분하기도 어렵죠.”

“그때 제가 어떤 부탁이든 들어준다고 했을 때 로소 선생님께서 그저 다음에 보면 모른 척 해달라고 하여 인상 깊었지요.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네요.”


내가 잊었다는 말을 진심으로 받지 않는 듯했다. 다들 자기 얼굴에 한 번 보면 알고, 잊지 않는 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확실히 그 당시 왕녀가 대공의 저택으로 간다고 했다면, 부탁이 아니더라도 날 모른 척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괜히 스승님에게 혼난다.


“하지만 그때 부탁을 잊고, 이렇게 아는 척을 해버렸으니.”


고심하는 체 하던 왕녀의 눈이 장난기로 반짝였다.


“다른 부탁을 뭐든 들어드리지요.”

“죄송하지만, 그게 저인지 확신하시는 지요?”

“오라버니께 온 연체자 독촉 편지를 봤습니다. 그때 로소 선생님께서 대공 저택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던 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녀가 편지를 펼쳤다. 구조 요청 편지 속은 편히 쓰지 못한 상황처럼 다급하게 그어진 선의 향연이었다. 리콜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글씨 특징은 그대로이군요.”


특징이랄 게 있나. 그냥, 그냥 악필이지. 젠장. 왕녀는 편지를 다시 곱게 접었다.


“부탁은 정하셨나요?”

“제1왕자님의 연체 도서를 반납해주세요.”


리콜 팀장이 내 종아리를 세게 걷어찼다. 테이블 위로 쓰러지자 냉큼 리콜 팀장이 등을 끌어당겨 세웠다. 하하. 리콜 팀장이 억지 웃었다.


“음. 제 부탁이 아니더라도 오라버니께서 오늘 반납 할 거니까요. 그걸 위해 두 분이 오셨잖아요.”

“그럼 딱히 없는데요.”


왕녀가 고민하는 체 했다.


“목숨을 빚졌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그럼 나중에 부탁할 거 생기면 편히 말씀 하시죠.”

“네.”


대답하고 나니 문득 돈이 떠올랐다. 리콜 팀장이 닥치라고 팔꿈치로 연신 찔렀다. 다시 찾아온 적막에 리콜 팀장의 입이 참지 못하는 직전까지 갔다. 노크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늦었군.”


제1왕자는 왕녀의 허락도 없이 벌컥 들어섰다. 미안하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티 테이블로 와 남은 의자에 앉았다.


“이걸 찾으러 온 거지.”


테이블 위로 책을 던졌다. 티팟이 흔들었다. <얼레벌레 여행기 3>였다. 책을 가져오려고 손을 뻗자 리콜 팀장이 내 손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 내 머리를 테이블 위로 박았다.


“왕자님. 죄송합니다! 감히 왕자님께 이런 심려 끼칠 만한 우편을 보내고. 정말 죄송합니다. 너도 어서 사과드려!”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냉정하게 왕녀가 말했다. 리콜 팀장이 손에 힘을 풀자 슬쩍 고개를 들었다.


“백성을 위해야 할 오라버니가 도서 대출을 오용한 일이니 오히려 오라버니께서 사과하셔할 일입니다.”


왕자는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잠자코 있었다. 리콜 팀장이 재빠르게 분위기를 살폈다. 왕자가 리콜 팀장 쪽으로 책을 밀었다.


“들고 나가게.”

“예. 왕자님.”


리콜 팀장이 책을 챙기고 함께 나가려는 때 왕자가 말했다.


“자네는 나와 잠시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지?”

“암요. 로소 선생은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내려오게.”


내 의사는 없이 진행되었다. 사용인들도 다 물렸다. 셋만 남아있는 응접실에서 왕자, 왕녀 둘이 반대편에서 빤히 나를 쳐다봤다.


“자네가 진짜 그 로소가 맞나?”

“어떤 로소를 찾으시는지는 모르지만, 전 로소라고 합니다.”


대충 소개를 올렸다. 왕자와 왕녀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왕녀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쾌활하게 굴었다.


“브라이트 마탑주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브라이트요?”


내가 의아해하자 왕녀는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맞아, 레인 브라이트 소후작이 도서관에서 봉사활동 중이었죠.”

“레인 브라이트라고 하면 브라이트 가의 둘째군.”


빈 찻잔으로 마시는 척 했다. 브라이트 이야기 나오면 불안했다.


“제가 말하는 브라이트는 샤니 브라이트. 브라이트가의 셋째 말입니다. 좋은 말상대죠. 두 분이서 친하시죠?”

“그렇습니다.”


샤니가 마탑주라니, 레인을 통해 내 소식을 알았을 텐데도 조용한 이유는 바빠서구나. 다행이다. 속으로 안심하는 사이에 왕녀에게 눈치 받은 왕자가 말했다.


“너와 샤니 브라이트의 사이를 알고 있다.”

“콜록콜록”


입안에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기침이 잦아 들자 두 사람의 시선에 뚫릴 것 같았다.


“사실인가 보군.”

“브라이트 마탑주가 거짓말을 고할 리가 없죠.”

“그 브라이트 마탑주가 쫒아 다닌다지?”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마음 졸였다. 왕자의 눈은 비장해보이기 까지 했다.


“나에게도 비법을 알려다오.”

“아니, 더 똑바로 말하세요!”

“내게도 연애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다오!!”


왕자의 외침은 응접실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


왕자 이야기를 듣다보니 머리가 지끈 거렸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은 왕자의 말을 요약하면.


“왕자님이 그 소필라 영애를 짝사랑 하는데, 만날 방법이 없으니 소필라 영애가 자주 읽는 이 책을 빌려갔다. 보고 싶은 책을 연체를 하면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우리가 아니라 소필라 영애가 직접?”


왕자가 긍정했다. 그를 한심해하는 왕녀와 상당히 친해보였다.


“어디서부터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 틀렸다는 건 아시죠?”

“알죠. 그래서 샤니 브라이트 마탑주를 사로잡은 그 밀당의 기술을 우리 오라버니에게 전수해주세요.”


딱히 없었다. 사로잡지도 않았고, 잡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에 샤니와 약속한 대로 그것에 대해 벙긋도 못한다. 할 수 있는 말 중 적당한 말은 추렸다.


“꽃을 가지고 가서 같이 차를 마시자고 해요.”


내가 알고 있는 데이트 신청의 정석적인 방법이었다. 왕자가 인상을 썼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 받는 입장에서 바라는 게 뭔지를 듣는 거라네.”

“뒤에서 이런 짓 하지 마시고. 앞에서 나서세요. 잘생기셨으니 얼굴로 어필하세요. 소필라 영애는 도서관에 자주 오고, 좋아하는 책도 있을 정도면 같이 독서 토론이라도 하세요. 그러면서 소필라 영애가 좋아하는 다른 걸 듣고 해주세요.”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아는 방법이지.”

“근데 왜 안하고 딴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괜한 시간 낭비였어.”


투덜거린 왕자가 얼굴을 감싸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왕녀가 왕자의 팔뚝을 찰지게 때렸다.


“연애 경험 0이면 경험자 말을 들어.”


아니, 저도 없답니다. 하지만 사람 사귀는 일이라면 안면을 트는 게 기본이 아닌가. 왕자의 반항심 가득한 얼굴을 보니 다른 방법을 쓸 게 분명했다.


“그럼 제 의견은 더 필요 없어 보이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1층 현관으로 내려오자 앞 정원을 구경하던 리콜 팀장이 단걸음에 왔다.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살피다 속삭였다.


“그래서 왕자님과 무슨 이야기를 했어?”

“연체한 사유요.”


사실여부를 확인하듯 내 안색을 살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리콜 팀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왕자님께서 어떤 지령을 내리셨는지 모르지만, 말하지 못하고 쉬어도 내가 다 이해하겠네.”


지대한 착각이었다. 그래도 딱히 고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차 타는 동안 적막이 내려앉았다. 도서관에 보일 때쯤 리콜 팀장이 머뭇거렸다.


“로소 선생님은··· 왕녀님과 아는 사이인가?”

“왕녀께서 말한 그 때 말고 딱히 없습니다. 아마?”

“···그렇군.”


도서관에 도착해 마차가 멈췄다. 내린 리콜 팀장은 도망치듯 도서관 안에 뛰어 들어갔다. 점심시간을 맞춰 도서관에 도착했고 늦게나마 근무를 시작했다.

오후 출근하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2관의 마감을 하고 레시아에게 빌린 로브를 돌려주러 1관으로 갔다. 레시아가 반갑게 맞아줬다.


“마침 저기 오네요. 로소 선생님!”


소필라 영애가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했다. 하필 왕자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날 이렇게 만나다니.


“연체 도서 담당 선생님 맞으시죠?”

“그렇습니다.”

“1관 담당자 분께서 먼저 연체 도서 담당 선생님에게 검수를 받아야 한다고 우겨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시아 선생님께서 우긴 게 아니라 원래 절차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외부 대출 가능하신가요?”


왕가의 허가가 있었다면 왕자랑 일면식 있는 거 아닌가? 그때 레시아 선생님이 덧붙여줬다.


“도서관 일정 이상 금액 및 물품을 기부해주신 분께 특별대출 해드리고 있어. 왕궁 허가도 일괄로 문서로 일임 받았지.”


기부라서 리콜 팀장이 그렇게 절절 맸구나. 소필라 영애가 다그치듯 도서관 허가증을 내밀었다. 서지내용 확인하고 반납여부에 확인 도장을 찍었다. 레시아가 책을 받아들었다.


“그 때 일 안한다고 말했던 거. 사과하겠습니다.”


지나가듯 소필라 영애가 사과했다. 소필라 영애의 도서관 허가증을 살피며 레시아가 대출자 목록에 날짜와 ‘엘렌 소필라’ 이름을 적었다.


“정말 읽고 싶은 시기에 보고 싶은 책을 못 읽으니 많이 갑갑해서 그렇게 말했네요. 선생님들도 그럴 때 있잖아요?”


대출자 목록에 레시아 도장까지 찍히자 소필라 영애는 기뻐했다. 도서관 허가증을 대신 돌려주며 맞장구를 쳤다.


“있긴 하죠. 그럴 때는 같은 책이 여러 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오늘 무리하게 오다보니 시간이 늦었네요. 그만 가겠습니다.”


겨우 해가 넘어갈 기색에도 소필라 영애는 급하게 짐을 챙겨 1관을 나섰다. 소필라 영애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입을 뗐다.


“너, 왕자가 반납 안한 이유 알고 있었지?”

“너무 뻔히 보이잖아.”


1관에서 일했을 때 왕자가 시찰 나온 것도 아니고 도서관에 왔을 때 우연인 척 훔쳐 봤다는 건가. 암살하는 것도 아니고. 레시아가 대출자 목록에서 영애이름을 두드렸다.


“엘렌 소필라. 아카데미에서 유명했지. 나라 제일가는 미인인데 누구 하나한테 눈길 안준다고. 집에서는 하도 끼고 돌아서 엘렌의 마음에 드는 사람 나타날 때까지 안 된다고 못 박아뒀더라.”


아카데미는 왕족과 귀족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였다. 마법 아카데미 설립 이후 위세가 꺾였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커넥션을 위해 성황이었다.


“누가 물어봤- 어라.”


데스크 밑에 떨어져 있던 손수건이 주웠다. 레시아가 방정맞게 놀란 척 했다.


“이거 가져다주면서 눈 맞는 그런 상황이지? 샤니한테 말해도 돼?”

“화낸다, 진짜.”

“소필라 저택은 시장 쭉 지나쳐서 있어. 보통 마차 안타고 다니니까. 가져다 줘. 눈 감아 줄게.”


레시아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때 1관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손수건 내가 가져다주겠다!”


왕자였다.


작가의말

저녁 7시쯤 한 편 더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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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거대 마수(1) 21.05.27 38 5 13쪽
23 드래곤 21.05.26 51 5 13쪽
22 정찰대(2) 21.05.25 43 6 13쪽
21 정찰대(1) 21.05.24 51 6 12쪽
20 스승님 21.05.23 56 7 13쪽
19 온실 21.05.22 70 7 12쪽
18 감사(2) 21.05.21 74 5 12쪽
17 감사(1) 21.05.21 69 6 12쪽
16 강도!(3) 21.05.20 69 6 13쪽
15 강도!(2) 21.05.20 66 5 12쪽
14 강도!(1) 21.05.19 73 6 12쪽
13 보관계약(2) 21.05.19 66 5 12쪽
12 보관계약(1) 21.05.18 74 5 12쪽
11 도둑? +1 21.05.18 73 5 12쪽
10 연체 도서(4) 21.05.17 77 6 12쪽
» 연체 도서(3) 21.05.17 70 6 13쪽
8 연체 도서(2) +1 21.05.15 91 5 11쪽
7 연체 도서(1) 21.05.15 102 4 11쪽
6 영상저장구 21.05.14 125 5 12쪽
5 결투 +1 21.05.14 149 6 12쪽
4 골렘(3) 21.05.13 204 7 12쪽
3 골렘(2) +1 21.05.13 254 8 12쪽
2 골렘(1) 21.05.12 357 11 11쪽
1 시작 21.05.12 547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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