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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도서관의 호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무슨
작품등록일 :
2021.05.12 11:30
최근연재일 :
2021.06.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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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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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스승님

DUMMY

더위를 먹었다. 더위 먹지도 않는 몸뚱이지만 더위가 분명했다.

스승님이 북부에서 나오실 리가 없다. 일부러 천천히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고,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시간이 꽤 흐른 거 같은데. 슬쩍 고개만 빼서 화장실 밖에 아직 사람이 있나 살폈다.

현관 앞이 텅 비어있었다.


“좋아!”


누가 볼까 온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레시아가 중간에 아는 체 했지만, 인사만 대충 했다.


“무슨 일이야?”

“깜짝이야! 따라왔어? 넌 무슨 애가 기척 없이 다녀.”


레시아는 억울해했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중앙 온실로 가자 타라곤이 땀에 젖었던 머리를 싹 넘기고 도서관 로브를 착용했다. 깔끔한 지팡이까지 짚었다.


“그래서 누가 왔더냐?”

“타라곤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련님도 오셨군.”


레시아에게 타라곤은 호의적으로 대했다. 레시아는 내가 바깥만 경계태세하자 타라곤의 질문을 대신 대답했다.


“대공님이 견학하러 왔어요. 수도 방문할 일이 있다면서 겸사 둘러보고 싶다고 했대요.”


잘못 본 게 아니었나. 망했다.


“작년 도서관에 도서랑 돈을 다량으로 기부 했다는 그 사람?”

“대공이 수도 자체에 온 것만으로도 오랜만이죠. 수도에 머무는 기간은 길어야 사흘이 고작이지만요.”

“근데 갑자기 무슨 도서관 견학이래?”

“관장님이랑 아시는 사이래요.”

“그 관장 양반은 평민이면서 무시무시한 인맥 가지고 있구먼.”

“관장님이랑 나중에 같이 돌아가실 건지 도착하자마자 마차부터 돌려보냈어요.”


관장님이랑 아는 사이였구나. 다 함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 차라도 마시자는 취지였다.

도망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 찼다. 참는 이유는 어설프게 도서관을 나서다가 걸릴 수 있으니 스승님이 온실로 들어오면 쥐죽은 듯 빠져나가는 게 제일 낫다.

이동 마법? 마나에 예민하신 분이라 오죽하면 북부에서 한 달에 걸쳐서 걸어왔겠는 가.


“젊은이가 왜 그렇게 손을 떨어.”

“왕자님한테도 굽히지 않으면서 대공님은 왜 무서워해?”


너무 긴장해서 말하면 토할 거 같다. 차향이 조금 진정시켜 주고 있었다. 호록.


“여기는 온실입니다. 자투리땅을 활용한 약초 재배도 진행 중입니다.”


왔다.


“저 화장실 좀.”


차를 간신히 삼키고, 몸도 목소리도 낮췄다. 레시아가 뭐라 했다.

미안하다 바쁘다. 난 나가야한다.

견학 무리가 도서관 로비를 통해 온실로 올 테니 난 옆문으로 나가면 된다. 나무 뒤에 있는 문을 열었다.


“······.”

“······아, 여긴 로소 선생님입니다. 오늘 휴일인데도 온실 관리를 위해 출근을 했습니다.”


지나치는 들풀을 설명하듯 관장이 말했다. 내 스승이자 대공은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관장은 갑자기 열린 문에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했다.

애써 태연한 척 스승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스승은 내가 내뱉는 말에 크게 웃었다. 스승은 어리둥절한 일행들을 지나 내 앞에 섰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꼴이 말이 아니구나.”


내 얼굴을 잡고 휙휙 돌려봤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 생애에서 북부에 있을 때가 제일 추레했다. 북부의 식사가 맛있으면 뭐하나 잠도 못자고 일을 시키는데.

거기로 다시 끌려가나.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나를 보아하니 훈련은 게을리 하고 있네. 어디보자, 온실은 아가가 설명해주렴.”

“아가?”


네 그 아가가 접니다. 창백한 내 얼굴에 피 쏠렸다.


“온실에는 잠깐 도와주는 거라 잘 모릅니다. 원하시는 만큼 자세히 설명을 못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대공님.”


스승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타라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온실 담당자 타라곤이라고 합니다.”

“최근 약초학 도서에서 이름 좀 보이던 사람이군.”

“영광입니다.”


스승은 공식적으로는 백 년에 조금 더 산 대마법사였다. 아무리 나이 60 넘은 타라곤이라고 해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스승은 고민하는 체 했다.


“제 부덕한 제자 때문에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군요.”

“아닙니다. 제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약초학에 대해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약초학의 일인자의 질문에 호기심이 생긴 스승은 허가했다.

두 사람은 온실의 길을 따라 사라졌다. 기다리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떠날 용기는 없었다.


“여전히 건재하시더군.”


큐 팀장이었다.


“내가 갓 졸업했을 때 먼발치에서 뵌 적 있었지.”

“자네에게 그런 인맥이 있는지 몰랐는데!”


리콜 팀장은 분한 듯 큐 팀장에게 소리 쳤다. 큐 팀장은 안색이 파리했다.


“인맥이 아니야. 경험 쌓기 위해 마수 토벌대에 참가했다가 전멸 나기 직전 토벌대를 구조하러 오신거지. 솔직히 그때 마수보다 더 무서웠어.”


공감했다. 겨울 산에서 만난 상급 마수 무리는 무섭다.

그보다 무서운 건 마수 무리가 한 번을 짖지 못하고, 그 무리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스승이었다.


“로소 선생은 정말 대공의 제자인가?”

“맞습니다.”

“대공의 후계자였나!”

“그건 아닙니다.”

“왜 아냐. 북부 대공 령은 혈연이 아닌 사제의 승계로 이어지지 않나!”

“저처럼 북부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몇 없어서 그렇지 제자는 여럿 있습니다.”

“아니, 내가 알기론.”


관장도 끼어들다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큐 팀장은 그 사이에 조금 떨어졌다.


“정원 정리 거의 마무리 했을 시간이니 난 빠질게. 대공께 잘 말해줘.”


리콜 팀장이 말릴 새도 없이 큐 팀장은 사라졌다.

생각보다 빠르게 온실을 둘러보고 온 두 사람이 다가왔다.


“그럼, 이야기를 나눌까? 아가.”

“제 집무실로 가죠. 이쪽입니다.”


관장실에 도착하자 자연스레 스승이 상석에 앉았다. 관장과 나, 리콜 팀장이 소파에 앉았다.


“자네는 나가보게.”

“저, 저요?”

“그래.”


리콜 팀장은 시무룩해져서 나갔다. 스승은 아랑곳 않고, 관장을 지긋하게 바라봤다.

관장은 어째서인가 고개를 못 들었다. 관장이 북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뭔가 문제 일으켰나.


“대공 어르신과 스승님의 말을 듣지 않고, 제 자리에서 뛰쳐나와 죄송합니다.”

“넌 내게 미안할 것도 없지. 연락이나 잘하렴. 네 연락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네, 어르신.”

“그래도 술은 줄이렴. 집무실이라는데 술 냄새가 진동하는 구나. 생전 술을 입에도 안 대던 녀석이. 그러다가 골로 간다.”


관장은 한층 더 고개를 숙였다. 저번에도 이야기하면서 술을 들이마시고 있었지.

스승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해야 할 말은?”

“도망쳐서 죄송합니다.”

“알긴 하는구나. 넌 여기가 좋니? 친구가 있어서?”


내가 이 도서관을 나가고 싶다고 해도 북부갈래, 도서관에서 일 할래?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도서관이다.

생각보다 도서관 일이 많긴 해도 제대로 잠도 잘 수 있고, 가끔 나와야 하지만 정기 휴일도 있다.

훈련을 안 해 마나 감각이 나태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건 나중에 시작하면 될 일이다.


“아가가 독립하는 일은 어른 된 도리로 축하해야하지. 그래도 못 하겠다 싶으면 돌아오렴.”


자상한 말처럼 들린다. 그럴 리 없다. 스승이 온화한 척 웃었다.


“못 믿는 구나. 난 아가들에게 관대하단다. 이번에는 수도에 오래 머물 예정이라 상담하고 싶으면 부르렴.”

“바쁘시잖아요?”

“집사장이 대리인을 맡고 있지. 집사장이 너희들을 위해 파이를 만들었더구나. 각자 집에 보내 놨다. 맛있게 먹으렴.”

“안 그래도 바쁘신 분이.”


집사장은 스승이 자리를 비울 때 대신 북부의 업무를 대리한다. 워낙에 대공 업무가 많다보니 스승과 집사장은 업무를 분담했다.

소파 등받이에 느슨하게 기댄 스승은 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네가 도망갔을 때 집사장이 화내더구나. 아가를 일주일 동안 잠도 못자게 일 시킨 건 너무 했다고. 납득했어. 하지만 내게 건방지게 말한 벌을 줘야 싶었지. 아, 축제도 즐기고 가야겠다.”

“어르신···.”


업무 전부를 집사장에게 처벌삼아 맡겼다는 말에 관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집사장님. 좋으신 분이었는데.


“아가, 네가 책임을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이 지는 거야. 신전에서 너의 개인 감사를 핑계로 내 영지의 감사를 하고 싶어 하더구나. 네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인내하고 있었지. 그러다 갑자기 흐지부지 넘겨 들쑤시려다가 참았단다.”


웃고 있는 스승은 살벌했다. 널 위해 이렇게 참고 있다 강조하고 있었다.

스승은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자가 자신의 영토에 발을 들이는 것을 끔찍하게 여겼다.


“다음에는 그런 일 없도록 처신 잘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스승은 할 말이 끝나 일어섰다. 관장과 나도 일어서려하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난 수도 별장에 가 있으마. 언제든 오렴. 아참, 아가야.”

“네.”

“오늘 아티팩트를 돌려줄까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가가 도망쳤을 때 꽤 훔쳐갔더구나. 이 아티팩트는 나중에 기분이 풀리면 돌려주마.”


멍한 내 표정을 보고 스승은 웃었다. 스승은 조금 기분이 풀린 채로 이동 마법을 쓰려다가 관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밖에 있는 것들에게 몰래 들으려고 애쓰지 말라 전해주렴. 거슬리는 구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동마법을 쓴 스승은 사라졌다. 관장도 나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스승님은 갈수록 더 변덕스러워진다.

그래, 스승님을 영원히 안보고 살 수는 없을 테니 단번에 매 맞는 게 나았다.


“다들 퇴근했으니 자네도 가보게.”

“관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관장실을 열자 리콜 팀장이 고꾸라졌다. 리콜 팀장이 데굴데굴 구르자 관장이 한숨을 더 쉬었다.


“자네, 대공 어르신께서 몰래 듣는 게 불편하다고 하셨어. 부디 다음에는 그러지 말게.”

“하하하,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럼 팀장님, 퇴근하겠습니다.”


또다시 시무룩해진 리콜 팀장을 피해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티팩트를 다시 보니 마법 도구가 더 간절해졌다. 월급날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시장가서 골라놓기라도 할까.

1층 로비에 도착하자 현관문 옆에 장식처럼 서있던 사람이 스륵 움직였다.


“안녕하십니까, 로소님.”

“누구세요?”

“클라우드 브라이트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올 게 왔다. 배상 청구 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상급 마법 도구를 망가트렸다. 마법서는 브라이트 집안에서 배상했으니 상급 마법 도구는 갚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걱정거리가 하나 없어졌다 했더니 하나가 굴러왔다. 브라이트 집안의 사용인은 뒤에서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사용인 뒤에 그림자 같은 사람이 더 있었다.


“클라우님의 선물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이건. 말로만 듣던 뇌물?! 신관이 왕궁 마법사한테 도서관 내에서 뇌물을 줘도 되는 건가? 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사용인이 냉큼 말했다.


“일전에 빌린 물건이 훼손 되어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니, 로소님의 선처를 바라셨습니다.”

“다른 물건?”


받아서 상자를 열자 아머링이 있었다. 아머링 본체와 사슬로 이어진 반지도 마석이 박혀있었다. 뒤쪽에서 웬 사람이 매달렸다.


“완전 상급 마법 도구네용!”

“크리스틴 선생님.”

“후후. 무슨 밀거래 하나싶어서 몰래 지켜봤는데 아니었군용. 중급 마법 도구 빌리고, 상급 마법 도구로 돌려주다니 후작가 배포는 과연 다르네용.”


크리스틴은 사용인에게 두 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용인은 입 꼬리만 살짝 올렸다.


“보증서는 상자 내부에 있으니 마음에 안 드시면 판매하셔도 됩니다.”


사용인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떠났다. 아머링을 꺼내자 크리스틴이 손에 들고 있던 영상구를 주머니에 넣었다.


“제가 상자 받아 줄 테니 껴보세용.”

“일할 때는 불편하겠는데요.”

“링을 다른 손가락에 하나씩 끼면 되죵. 그럼 손가락 끝에 안 걸쳐지잖아용.”


확실히 전에 쓰던 것보다 멋있다. 상급이라 마나 운용도 가뿐했다.

스승이 가져간 그 아티팩트라도 아쉬웠는데 쓸 만한 마법 도구가 생겨 다행이다.

무엇보다 공짜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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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거대 마수(1) 21.05.27 38 5 13쪽
23 드래곤 21.05.26 51 5 13쪽
22 정찰대(2) 21.05.25 43 6 13쪽
21 정찰대(1) 21.05.24 51 6 12쪽
» 스승님 21.05.23 56 7 13쪽
19 온실 21.05.22 70 7 12쪽
18 감사(2) 21.05.21 74 5 12쪽
17 감사(1) 21.05.21 69 6 12쪽
16 강도!(3) 21.05.20 69 6 13쪽
15 강도!(2) 21.05.20 65 5 12쪽
14 강도!(1) 21.05.19 73 6 12쪽
13 보관계약(2) 21.05.19 66 5 12쪽
12 보관계약(1) 21.05.18 74 5 12쪽
11 도둑? +1 21.05.18 73 5 12쪽
10 연체 도서(4) 21.05.17 76 6 12쪽
9 연체 도서(3) 21.05.17 69 6 13쪽
8 연체 도서(2) +1 21.05.15 91 5 11쪽
7 연체 도서(1) 21.05.15 102 4 11쪽
6 영상저장구 21.05.14 125 5 12쪽
5 결투 +1 21.05.14 149 6 12쪽
4 골렘(3) 21.05.13 204 7 12쪽
3 골렘(2) +1 21.05.13 254 8 12쪽
2 골렘(1) 21.05.12 357 11 11쪽
1 시작 21.05.12 546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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