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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을 전해들은 그들은, 거장의 예술혼이 타락했다는 말을 다소 거친 말투로 표현하였다.
“손모가지를 잘라서 뒷구녕에 처박았나? 아가리로 똥을 싸는 걸 보니.”
아, 네··· 숙녀 앞에서 이성 좀 찾으시죠. 하지만, 그런 나의 의사에 그들은 이보다 어떻게 더 친절하고 차분하게 말하냐고 반문하여, 나는 더 해괴한 소리를 듣기 전에 말을 접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했다.
“보지도 않은 주제에 어떻게 그분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냐고 그랬다고요? 하!!! 확실히··· 우리가 제독님을 본적도 없는 것은 사실이오. 이미 알다시피, 당시 제독님이 구하신 시민들은 대부분 우리 부모님 세대였소. 당연히 탈출 이후에 태어난 우리가 그분을 볼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도··· 무사히 탈출을 하기는 했지만, 그 후로도 오래 지속된 제국의 내전에 휘말려 대부분 고생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당시 상황을 목격한 목격자가 적은 것도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자, 이걸 보십시오. 여기 증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보여준 것은, 조금 뜻밖에도, 몇몇 남자들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림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 그려진 남자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수려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 그림을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분은 바로 제독의 부관이자, 최후까지 그분을 모셨던 테오도로스 부관이십니다. 당시 최고의 해군참모로 명성을 떨치셨죠. 고운 얼굴이 해군에 안어울린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런 말을 비웃듯이 귀신 같은 계책으로 제독을 보필하여 수많은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에는 장렬히 제독과 함께 전사한 영웅이시죠.
그리고, 이 분은 마찬가지로 그때 키리비오트 수비대장이었던 콘스탄스 장군입니다. 짙은 수염과 강렬한 인상이 멋지시죠? 한때, 제독과 정쟁을 벌이는 키리비오트 정계의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제국의 위기에는 같이 협력해서 무슬림 침입자들과 싸운 동지로 활약하셨죠. 항상, 제독과 악의를 주고 받았지만, 위기에 빠지면 서로 그 누구보다도 먼저 구하러 달려오는 사이로 유명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은 제독의 라이벌이었던 샤마드 제독입니다. 짙은 피부에 선이 가늘고, 무슬림이지만 터번따윈 집어 던지고 거칠게 머리를 기른 모습이 인상적이죠? 지금 보여드리는 이 초상화는 사실 샤마드 제독이 남긴 것입니다. 그는 뛰어난 해군 제독이었지만 동시에 화가이기도 했죠. 그래서, 자화상과 자신이 존경하게 된 적장들의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가 말년에 남긴 일생의 역작이 바로 이 그림들입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조금 감탄하면서 대답했다.
“우와··· 다들··· 대단한 미남들이네요. 그 당시에 활약했던 분들이 정말로 이렇게 잘생기신 분들이셨어요?”
나의 말에 그들은 왠지 자신들이 칭찬이라도 받은 듯이 우쭐한 표정이 되어 자랑스럽게 나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역시? 그렇죠? 공녀님이 제대로 보셨습니다. 원래, 우리 키리비오트는 역사적으로 선남선녀들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죠. 그리고 그 정점에 있었던 분들이 바로 여기 있는 키리비오트 작전의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이 얼마나 수려하신 모습들이십니까? 그리고 적이었지만, 그래도 제독에게 예의를 갖추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벌였던 샤마드 제독도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들도 인정하는 위인이죠.
그런데, 이렇게 공녀님이 보시기에도 수려한 당대의 인물들이... 다들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만큼 매혹적인 존재였다고 언급한 사람이 바로... 우리의 아르테미시아 제독님이시란 말입니다. 이건, 저희의 억지가 아닙니다. 그 당시 인물들이 언급한 내역과 직접 자필로 기록한 내역들이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런 당대의 미남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제독이 그런 하마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직접 보십시오.“
나는 그들이 내민 그림에 이어 내 눈앞에 내놓은 당시의 기록들을 보고 할말을 잃었다. 마치, 그 모습이... 위대한 영웅들을 숭배하는 일반인이라기 보다는, 뭔가 되게 수상한 걸 수집하는 콜렉터로서의 분위기가 더 강해 보였지만, 그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민 기록을 읽어 보았다. 김이 샐까봐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내용은 이곳에 오면서 제독에 대한 기록을 공부하면서 본 내용들이었다.
어차피, 제독에 대한 기록의 대부분은 이곳의 사적을 근기로 작성되었을테니 유사하지 않을 리가 없지. 하지만, 좀더 상세하게 당대의 인물들이 직접 언급한 내용으로 기록된 제독의 모습은... 그야말로 읽다가 기가 막힐 정도였다.
‘뱃머리에 서서 폭풍을 향해 돛을 펼치라고 명하시는 모습에, 수병들은 두려움에 떨기 보다는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여신께서 함대와 승무원들과 함께 하심을 모두가 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우리들 모두는 우리 여신님에게 매혹된 가련한 노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독은 항상 나와 신경전을 벌이지. 하지만 내가 그녀와 사이가 나쁘냐면, 그건 또 그렇지 않아. 그 여자는 그런 정쟁으로 한심하게 노여워할 그런 시시한 여자가 아니야. 항상, 속을 긁어 놓는 독설을 퍼부은 나의 말에 씨익 웃어주고, 곤경에 처한 나를 구하러 제일 먼저 달려오지. 뭐,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제독만큼은 아니야. 저것봐. 우리의 여신이 또 나타났잖아. 망할... 정말 끝내주는 여자야. 내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알라께서 이르시되, 세상의 여인들의 지혜와 미덕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셨다. 굳이, 샤리아의 가르침을 떠나서라도... 그 여자는 진정 알라께서 어리석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입증하기 위해 보내신 것 같았다. 오오... 자비로우신 알라여. 감사하나이다. 내 생에 저토록 매혹적인 적을 상대로 보내주심에 감사드리며, 그가 여자임을 비웃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적당히 요약해서 이 정도의 문구였다. 당시,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었을, 부관, 동지, 숙적의 입에서 마치 신앙 간증이라도 하듯이 긴 그녀에 대한 추앙이 기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휴... 이 정도로 뭔가 홀린듯한 느낌으로 기록된 묘사가 가득하니... 미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도 당연하지. 그런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시민대표들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십시오. 이런데도 그분의 용모를 터무니 없이 욕보이는 그 미친 늙은이의 생각을 고려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이미, 당대의 증언들이 이렇게 확고하게 남아있지 않습니까? 어두운 밤에 항구 저편에서 흘깃 본 그림쟁이가 아니라, 당시 제독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란 말입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이네요. 그런데, 조금 의아하네요. 이 그림을 남긴 사람이 바로 샤마드 제독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샤마드 제독은 정작 왜 자신의 인생에 가장 라이벌인 아르테미시아 제독의 초상화는 남길 생각은 안하고 이렇게 기록만 남기신거죠? 자신이 싸웠던 테오도로스 부관과 콘스탄스 장군도 그림으로 그려서 남기셨다면서요? 그냥 그분이 아르테미시아 제독의 모습에 대해 그림만 남겼으면 깔끔하게 해결되었을 일이었을텐데.”
나의 질문에 시민들의 표정이 탄식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도 그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움은 지금은 물론 당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더라구요. 그래서. 제독님의 모습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제독님의 초상을 그려보라고 샤마드 제독에게 권했지만, 샤마드 제독은 그것을 완강하게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무슬림 신자로서 다른 여성의 얼굴을 함부로 그릴 수 없다는 이유였죠. 어휴... 그놈의 신앙이 대체 뭐라고...”
그들의 표정에서는, 왠지 수집가들이 눈이 뒤집힐 컬렉션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장인이, 시덥지 않은 이유로 작업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조금 완곡하게 그들에게 가벼운 반박을 제기하였다.
“음...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이유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그 말은 바꿔 생각해 보자면, 당시 제독의 모습에 대한 글로 남겨진 기록은 있어도, 실제로 그분을 정확하게 목격하신 분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리 그분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이었고, 그 당시의 증언이 남아있기는 해도, 그 신뢰성이 지금 생존해서 증언을 하신 오라치오 화백에 비해서 높다고 보기에는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시민들의 표정에서는 당혹한 낯빛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 반박에 대해서는, 이의를 찾기 어려운지, 즉시 대답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그때... 결국 한 사람이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일어서서 나에게 말했다.
“그...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제독님의 모습을 그 그림쟁이 놈보다 더 정확하게 증언해줄 증인 중에... 아직 생존해 있으신 분이 있으십니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아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왜 진작에 말을 하지 않고? 하지만, 나는 그 궁금증보다 먼저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요? 누구길래, 오라치오 화백보다 신뢰성이 높은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러자, 시민대표들이 망설이다가 일제히 손으로 어느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오라치오 화백이 그린 그림의 한쪽 구석이었다. 어라? 저 사람은... 그들이 말했다.
“바로, 제독님의 사촌동생이신 젤리아나 부인이십니다. 여기 그림에 그려져 있는 이 아리따운 아가씨가 바로 그분이십니다. 제독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자매와 같은 분이고, 당시 키리비오트 탈출에서 무사히 도망치신 이후, 제독님과 가문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일한 상속자이시기도 하시죠. 그리고, 고령이시지만, 지금도 건강하게 이곳 키리비오트 교외에서 살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독님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젤리아나 부인의 증언이라면, 당연히 그 정신나간 그림쟁이의 증언보다 신뢰성이 높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그들의 말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바실이 가져온 그림을 보고 처음에 제독으로 착각했던 그림 속의 절세 미녀. 그 사람이 살아 있고, 그 누구보다도 제독의 모습에 대해 정확한 증언이 가능하다고? 근데 왜...?
“아니... 그럼 왜 그분에게 직접 증언을 듣고 오라치오 화백과 대질하게 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냥 그분만 나와서 증언하시면 모든 일이 끝나잖아요? 근데 왜 그런 간단한 방법을 두고 이런 소동까지 벌이신 건데요?”
그러자, 나의 질문에 시민대표들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한 사람이 결심을 한 듯 한걸음 나서서 나에게 말했다.
“그게... 좀 곤란한 사정이 있습니다. 젤리아나 부인의 앞에서, 아르테미시아 제독을 언급하는 것은 조금 입장이 곤란합니다.”
“네? 어째서요? 사촌언니라면서요?”
“그,,, 그게... 젤리아나 부인의 지아비되시는 분 때문입니다.”
“네? 그게 누군데요?”
“그게... 바로, 다름아닌... 키리비오트 탈출 작전에서 제독과 같이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신 바로 그분... 키리비오트 방어 사령관이었던 콘스탄스 장군이 바로... 젤리아나 부인의 남편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자... 잠깐만요. 키리비오트 탈출 때 제독이 구출하였던 바로 그 콘스탄스 장군이... 젤리아나 부인의 남편이었다고요? 그 양반, 그 당시에 유부남이었어요? 그리고, 유부남이 지금 마누라 두고선 마누라 사촌 언니의 미모에 감탄한 기록을 이렇게 많이 남기고, 심지어는 같이 싸우다 거기서 최후까지 같이 하였다고요? 그렇다면 설마...”
시민들은 나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였다. 그리고, 나는 왜 그들이 젤리아나 부인에게 증언을 요청할 수 없었는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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