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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안코나에 도착하니, 이탈리아 방면군도 14번째 패전을 거두고 막 안코나까지 도주한 상황이었다. 나는 도착한 안코나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도착한 패잔병들의 모습을 보게 될 거란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틀림없이 전쟁에서 패전한 자들이 보여주는 비참한 고통과 비명... 그리고 적에 대한 두려움으로 진중은 혼란스러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내 생각과는 달리 병사들에게서 고통과 비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외로... 사상자와 부상자는 별로 없다? 그런 나의 생각은 같이 동행한 장교들의 말에 의미를 잃었다.
“계속 도망만 치느라고 실제 전투에서 발생된 부상자는 드문 모양이군. 하지만 사기는 엉망이야. 저기봐. 다들 두려움에 찬 표정이 가득해.”
그들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익숙한 패잔병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지만... 대신에 병사들의 표정은 지독한 두려움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사실상 지독한 참패를 거둔 것과 다름없는 병사들의 모습에 나는... 그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신속하게 총사령부로 향했고 알베르토 경과 만났다.
“여기 계셨군요. 알베르토 총사령관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십니까!!! 본국에서 총사령관님의 이번 작전 수행에 대해서 저에게 현장 방문을 지시... 저기, 사령관님?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알베르토 총사령관에게 다짜고짜 전해야 할 용건을 소리치며 전하다가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회의실에는 방안 가득 빽빽하게 수천, 수만장이 넘는 서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 서류들을 수십, 거의 백명에 달하는 행정장교들이 보면서 정신없이 뭔가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중에 그 사람... 알베르토 경이 있었다. 그는, 뭔가 실성한 사람처럼 서류를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돼... 모자라. 이래서는 도저히 모자라.”
뭐... 뭐지? 대체 뭐가 모자라다는 거야? 예비병력? 방어구와 무장?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치즈!!! 치즈가 모자라!!! 이래서는 안돼!!! 팔레르모 연대와 메시나 연대에는 식단 계획표 규정대로 정해진 치즈가 다 못돌아가 버려!!! 크아아악!!! 안돼!!! 어서 후방에 치즈 보급을 서둘러 주문해. 당장 배급 일자가 다음 주인데 이래서는 지급을 못하게 되어버려!!!”
나는... 뒷목을 제대로 후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이 인간 전에 내 앞에서 면접볼 때 하던 짓 아직도 하고 앉아 있었어? 이 심각한 시국에? 나도 이번에는 속에서 불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서 헛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 소리쳤다.
“총사령관님!!! 지금 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어? 고... 공녀님. 언제 여기 오셨어요?”
“지금 막 왔습니다. 그런데 사령관님은 지금 뭘 하고계신겁니까? 본국에서는 지금 이탈리아 전선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자그마치 14패입니다. 14패!!! 천운으로 겨우 확보했던 포강 방어선을 상실하고 작계도 무시하시고 계속 남하하시면서... 기록하신 패전이 무려 14번이란 말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예전 행보관 시절 버릇이나 반복하시면서 계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서 대책을 세우셔야죠. 지금이 겨우 치즈 배급 따위나 걱정하고 계실 상황이십니까? 밖에서 두려움에 가득찬 2만6천명의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으신 겁니까?”
내가 그렇게 소리를 치자...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26,463명.”
“네? 지금 그게 무슨...”
“그냥 2만6천명이 아닙니다. 현재원 21,139명. 외부작업 2,379명. 강행정찰 2,158명. 경상 787명 후방이송 대기. 총원 26,463명입니다.”
“......???”
아니, 이게 무슨... 이 엄청나게 이 양반스러운 1단위 숫자 관리야? 어지간한 부대 행정 관리가 숫자 뒷자리 잘라서 관리하지... 그걸 누가 저렇게 하나하나 다 세고 앉아 있어?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거리에는 도가 터서. 나는 어이가 없는 기분에 그에게 말했다.
“하...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그렇다면... 아예 병사들 이름도 하나하나 다 외워서 관리하시지 그러세요? 그렇게 한명한명을 다 관리하시면 차라리 그렇게 하시는 것이 맞지 않으세요?”
“네.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하! 거보세요. 그런 말도 안되는... 네? 지금 뭐라고요? 지금 뭘 하고 있다고요?”
잠시 후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병사 이름이 200명 정도를 넘은 시점에서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뭐야... 이거 정말 뭐야... 이 정도면 이거 상태가 좀 심각한 수준이잖아? 이건 머리가 좋다는 장점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지독한 편집증의 단점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신성동맹 측에서 아무리 용감공에 맞설 사령관을 겁쟁이로 보내라고 하였지만, 이건 좀 도를 넘어서는 겁쟁이에 정신나간 편집증 환자다. 이걸... 대체 어떻게 유지해. 이건 아무리 나라도 스파이로 의심사고도 남을 상황이다. 나는... 서둘러 이 상황을 내 손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었군요. 용건만 말씀드리죠. 일단, 본국에서는 사령관님의 연이은 패전에 대해서, 현 전선을 계속 맡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온 것이고 저는 현재 상황을 파악한 후 크로아티아에 계시는 바실레이오스 제국군 총사령관님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기다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휘하의 병력을 동원하셔서 더 이상 남진하는 대신 이곳 안코나에서 베니스군의 남하를 저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 하지만, 아직 우리는 준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력도 그렇고, 보급도 그렇고...”
빌어먹을... 지금 바리와 브린디시에 집결하고 있는 병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에다가, 보급도 황당할 정도로 많이 처먹고 있으면서 아직 준비가 안끝났다는 것이 뭔 소리야. 그렇게 내가 울화통이 터지는 사이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도저히 무립니다. 그 용감공의 공격을 그대로 받는 다는 것은 말입니다. 공녀님이 못보셔서 그렇습니다. 포강의 기세와 원거리 공격에도 불구하고 밀고 들어오는 그 별명 그대로 대담무쌍한 용감공의 공격을 말입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그와 제대로 정면에서 붙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시간을 조금 더 주십시오. 어떻게든 전력을 모아 그들을 상대할 수준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결론이 났다. 그는 아마도 이곳 안코나도 유지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안코나를 버리면 그 다음은 바리다. 바로 제국의 영토다. 베니스군이 이탈리아 남부 제국의 영지에 온 시점에서 이미 전쟁은 진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마음 속으로 보고할 내용을 결론지은 다음에 그에게 말했다.
“더는... 저도 방법이 없군요.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가감없이 바실레이오스 폐하에게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후의 결정은 그분께서 하실 것입니다. 저를 원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저 본 그대로만을 보고드릴 수 밖에 없으니깐요.”
나의 말에... 알베르토 사령관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억지로 자격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을 사령관을 맡겨서 벌어진 일인데... 하지만, 더는 나도 방법이 없었다. 이미, 용감공이 안코나에 접근하고 있다. 그의 진격 속도를 생각해보면 생각보다는 늦은 속도지만 빠르든 늦든 안코나도 그리 오래지 않아 베니스군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안코나를 손에 넣은 베니스군이 바리로 진격에서 제국의 영토를 치면... 그것으로 이탈리아 전선은 의미를 상실한다. 그리고 전쟁은... 제국의 패배로 끝나겠지. 그것으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최소한의 보신을 위해서, 내가 추천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어 경질하는 의견을 냈다는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좋겠지. 나는 그래서 바실에게 편지를 썼다.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사실만을 기록하여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바실에게서 답장이 왔다.
“뭐? 유... 유임??? 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유임이라니!!!”
나는 편지를 받고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편지에는... 현장에서 노고가 많은 나에 대한 감사. 그리고 항상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 여기 생활은 안락한지 안부. 아오, 이 자식아!!! 이거 연애 편지 아니라고!!! 본론만 말해!!! 그리고 나온 본론에서... 그가 끝까지 내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총사령관의 의견을 보낸 것이다. 아니, 이 자식도 이거 미친거 아니야? 지금 이 상황이 눈에 보이질 않는거야?
나는 설마 이게 신성동맹이 따로 심은 첩자가 공작한 가짜 편지가 아닌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봉인도 체크해보았지만, 편지 서두에 저런 소리 늘어놓은 걸로 봐서 틀림없는 바실의 답장이었다. 크아아악!!! 아니, 이 자식아!!! 아무리 사실만을 기재하고 판단은 맡긴다고 했지만... 그걸 그대로 유임해버리면 어떻게 해!!! 대체 얼마나 더 패전을 겪어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하지만, 나의 바램과는 달리 이미 알베르토의 유임은 결정되었고... 그는 그 명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다름없는 삽질을 다시 시작했다.
아오... 내 뒷목!!! 대체 이걸 어쩌려고 이래? 뭔가 당연하다는 듯이 안코나에서 퇴각해서 바리로 오면서... 이미 14번이나 겪은 패전이 이어지고 있잖아!!! 정말이지... 이탈리아 전선 버릴거야? 전쟁 지고 말거냐고? 얼마나 여기 이탈리아 전선이 압도적으로 밀리는지, 되려 제국 본국에 각지역을 공격하던 베니스 해군의 기세마저 다소 주춤해져 버릴 정도로, 패전은 이어졌다.
베니스 해군 입장에서도... 굳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육상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양동공격에서 무리하게 힘빼가며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싶지 않겠지. 덕분에 제국 본국에 가해지던 해상에서의 압력은 다소 약해졌지만, 여전히 이탈리아에서의 패전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네? 뭐라고요? 지금 전선의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고요? 대체 무슨 일이... 응? 근데 그보다 먼저 보고할 일이 있다는 건 대체 무슨... 네? 여기 바리에 본국에서 온 손님이 있다고요? 대체 누가 저를... 응? 다... 당신은? 히이이익!!!”
나의 경악 속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아닌... 크로노스 카시우스경이었다. 그가 조금 멋쩍은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녀님. 공녀님께 인사올립니다.”
그의 연장자 답지 않은 공손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랑 엮여 있는 그 아이가 떠오를 수 밖에 없으니깐.
“다...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건... 서... 설마...”
그리고 나의 우려는 맞아버렸다.
“야호!!! 언니 오랜만이에요. 쥬노 와쩌염!!!”
이탈리아 전선...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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