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늑대의 현실감 넘치는 조언은··· 나에게 무거운 무게로 다가왔다. 내가 너무 상대를 가볍게 본 건 아닐까? 문득 후회가 드는 가운데 배는 어느새 키오스섬의 해얀 요새에 도착했다. 도착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병사들이었다. 팔이 하나 더 달린 사람. 어린 아기의 머리를 한 근육질 거인. 귀가 없는 사람. 다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모습의 병사들이 자신들에게 맞춰진 갑주를 입은 모습이 더 무시무시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그들이 말했다.
“공녀만 저 요새탑 위로 올라가시오.”
뒤를 돌아보니 늑대에게 병사들은 창을 들이밀고 견제하고 있었다. 울프스턴은 그런 그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어께를 으쓱하며 괜찮다고 말하고 나는 그걸 보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이 안내하는 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도달해서 들어온 풍경은··· 몹시 생소했다. 방에는 전리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전리품이라면 당연히 생각할 법한 귀금속 등의 돈이 될 법한 것들이 아닌 지도와 서류와 책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긴장감의 수위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재물보다는 지식과 정보에 더 관심이 많은 자. 나는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바로 황후 마마. 그분을 보고 겪은 경험으로 보건데··· 대개 이런 종류의 사람은 대단히 무서운 사람일 경우가 많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지옥에서 온 꼽추라 부르는 그 자의 범상치 않음에 긴장의 수위를 낮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미없이 곁에 놓인 책을 한권 집어든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나바시스라··· 머저리들의 행진곡이지.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행적의 기록이지만 머리를 비우고 보기엔 쓸만하지. 시간을 때우려고 했다면 좋은 선택으로 인정하겠소. 만나서 반갑소. 카밀라 공녀. 앙리 콰지모도, 프릭 용병대 대장이요.”
흠칫해서 뒤를 돌아본 곳에는 더 흠칫할 광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초상화는 상당히 미화된 수준이었다. 머리보다 높게 솟은 등, 그리고 측면으로 뒤틀어져 사람이라기 보다는 기형 도마뱀 같은 모습. 얼굴에는 불에 그을려 녹아내린 모습이 끔찍해 보이는 그 사람. 나는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앞에 있는 존재는 도저히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온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더 나를 두렵게 만든 것은, 다른 것도 아닌 그리스인들에게는 영광의 기록으로 자부하는 아나바시스를 하찮게 보는 그의 태도였다.
그건 악의가 아니었다. 명백히 자기보다 하찮고 한심한 것을 보는 존재의 오만이었다. 사람들이 그의 흉학한 용모 이상으로 그의 사악한 지혜를 두려워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최대한 용기를 내어 물러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처음 뵙습니다. 카밀라 아르파드입니다.”
“훗··· 일단 이 몸을 보고도 비명을 지르거나 발걸음을 뒤로 하지 않다니··· 과연 소문으로만 듣던 공녀의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군요. 뭐, 좋소. 앉으시오. 귀찮은 수사법은 집어 던지고 얼른 본론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도록 하죠. 너무 시간을 끌면 뒷마당에 공녀가 두고 온 똥개가 난동을 부릴지도 모르니 말이오.”
일대일로 그 어떤 자도 당할 수 없다는 최고의 전사를 똥개라고 부르다니··· 이걸 들으면 이번에는 군견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본론을 던졌다.
“자, 이 정도면 합격이오?”
“네? 그게 무슨 말이시죠? 합격이냐뇨?”
그의 눈빛이 빛났다. 뭔가 사냥감에 한걸음한걸음 다가가는 사냥꾼처럼···
“그야 물론, 우리 부대의 실력 평가에 대한 결과를 물어본 거요. 어떻소? 이 정도면 우리 프릭용병대와 내가 제국군에 다시 합류하는 것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소. 그대는··· 현재 제국군 총사령관의 인사보좌관이 아니시오? 당연히 부대의 실력 평가에 대해서 그대가 결과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
“자··· 잠깐만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럼 지금··· 제국의 해상 방어를 위한 요새 11곳을 불시에 기습해서 아무런 사상자도 남기지 않고 요새의 방어력만 무력화시키고 퇴각해서 여기 키오스 섬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일련의 행동이··· 전부 제국군에 재입대를 위해서 실력 과시를 한거란 말인가요?”
그는 나의 말에 어께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옛 고용주의 후속 사업자에게 다시 고용되려면 이 정도의 실력이 여전하다는 건 보여주는 것이 상도덕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우리 부대 반병신인 부하 놈들을 보고도 고용할 고용주가 있을까? 듣자하니··· 최근 제국에서는 과거 내전과 관련되어 죄상이 과하지 않은 인사들에 대해 복귀를 허락하고··· 그러면서 과거 내전기에 고용되었던 부대들도 속속 제국군 정규군에 재편하고 있다고 들었소. 그렇다면··· 우리 프릭용병대라고 해서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안그렇소?”
그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러니깐··· 자기들을 고용해달라고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거야? 나는 그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기가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과거 내전기에 고용되었던 용병대들이 제국군에 정식 편입되어 아욱실리아 보조군으로 재편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들보다 좀더 나은 대우를 위해 실력을 과시하고 고용을 요구한다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사실이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내전 시대에 그 사악한 지혜로 가장 악랄한 활약을 했다는 프릭용병대와 그의 주인 앙리 콰지모도. 처음에 우려한 그가 제국에 반기를 들거나 혹은 국력을 깍아먹을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측에 붙겠다는 제안을 한 점에서 일단은 한 시름을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군일때보다 아군일때가 더 위험한 놈이라는 평이 사실인 건 알겠지만, 일단은 그런 자와 적대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형식적이라도 아군의 범주에 넣어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조금 안도하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 다행이군요. 다른 의도가 아닌··· 그저 제국군에 귀순을 희망하시는 거였다니. 그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겠지만, 일단 제안해 주신 그 의사에 대해서는 제국군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제안해 주신 내용에 대해서 돌아가서 보고를 드리고 그 의견에 대한 허락을 구하도록 하죠.”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빛났다. 뭐··· 뭐야? 저 뭔가 낚았다는 눈빛은?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그가 말했다.
“과연, 이해해주시니 다행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그 의견에 대해 의사결정권자에게 주청하시고 답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시는 김에 그 제안을 수락하실 경우 동반될 옵션에 대해서도 의견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네? 옵션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듣자하니··· 과거 내전기에 참여했다가 내전이 끝나고 오도가도 못한 용병대들에 대해서 제국은 그들에게 제국군에 편입될 기회를 제공하기로 하였죠. 그러면서, 정식 제국군으로 편입되기 이전에 용병대가 이전 고용주에게 받지 못한 임금이나 계약 잔여 조건에 대해서도, 부대를 인수하는 제국이 이전 고용주의 책임을 승계하기로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1차 포에니 전쟁을 마치고 용병대의 반란에 시달린 카르타고의 전례를 막기 위해서 였겠죠.
그래서··· 각 용병대들은 제국군으로 편입되기 전에 밀린 임금과 계약 조건의 옵션들을 죄다 제국 정부에서 지급하고 계약을 소멸한 다음 입대가 진행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우리 부대에도 이전 고용주가 계약한 옵션에 대해 제국 정부가 약정 승계를 하여 청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입맛은 썼지만, 그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후 마마시니··· 이전 계약자의 약정 승계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정하는 것이 맞다고 언급하시고 부대에 체불 임금을 지불하셨다. 덕분에 반발이 극심하리라 생각된 반군 세력의 군사력이 급속히 위축되고 용병대들은 자연스럽게 임금 수령 후 해산되거나 제국군에 편입되는 것이 가능했었지. 놈은 그걸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놈도 아니고 고용주 뒷통수를 까고 입사하겠다는 놈이 바라는 건 뭐가 이리 많아? 나는 최대한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아, 물론 그것도 당연히 인정될 것입니다. 제국은 이전 고용주가 내건 계약에 승계를 약속하고 이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임금이 체불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건 지급이··· 응? 이건 뭐죠?”
나는 말을 멈추고 그가 갑자기 내민 서류를 보며 물었다. 그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공녀, 내가 원하는 건 돈 몇푼이 아니오. 내가 바라는 건 내 전임 고용주가 걸었던 돈으로 살 수 없는 조건··· 그것에 대해서 나는 후임 계약자가 책임을 지고 이행을 하길 바라는 것이오.”
나는 당황하여 그가 내민 서류를 읽어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키오스 섬을 점령하고 콘스탄틴노플로 가는 통로를 확보하는 자에게, 그 신분여하와 출신을 묻지 않고 황실의 가장 고귀한 처녀를 아내로 하사하겠노라?!!!”
나는 그 순간 내가 덫에 걸린 것을 깨닭았다. 이건 틀림없이 내전기에 그가 섬기던 앙겔로스 황가에서 패전을 거듭하다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집어 던지듯이 내린 명령임에 틀림없다. 이제 앙겔로스 황가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 계약은 잔존하고 있고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이 자는 키오스 섬을 점령하고 콘스탄틴노플로 향하는 통로를 확보했다. 내전기에라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을 지금 방심한 틈을 타고 달성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약정 승계를 천명한 후임 계약자에게 이행하라 요구하는 것이고.
“나를··· 속였군요.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잖아요!!! 선대 황가에서 저지른 무책임한 마구잡이 명령을 어째서 지금의 황가에게··· 거기다, 결정적으로 이건 이행될 수 없습니다. 지금 황실에는 여자 황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걸···”
“꼭, 황족일 필요는 없죠. 황실에 속한 고귀한 처녀면 충분한 겁니다. 지금 등잔 밑이 너무 어두운 거 아닙니까?”
그의 말에 나는 순간 흠칫하는 기분을 느꼈다. 뭐··· 뭐야? 설마··· 나? 그래서 당황해서 팔로 몸을 가리는 것을 보자 그가 비웃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눈치채신 모양이군요. 후후후···”
“지금··· 그런 일을 하고도 용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요? 나는 죽어도 당신의 아내가 될 수는···.”
“굳이 싫다면, 거절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나도 솔직히 말하면··· 공녀처럼 좀 기가 쎈 여자는 별로라서 말이죠. 굳이 당신이 아니더라도, 후보는 한 명 더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황실에 몸을 의탁한 처녀가 하나 있지 않던가요?”
나는 그의 말에 경악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마리아 앙겔로스? 그녀라면··· 내궁에 속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결혼을 황실에 뜻에 맡긴 시점에서 황실의 고귀한 처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이 자식, 그럼 설마··· 그때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난 어느 쪽이든 상관없소. 공녀와 황녀··· 지금 콘스탄틴노플에서 가장 화제인 두 고귀한 꽃의 처녀들··· 둘 중에 한명을 계약에 의거하여 나에게 보내시오. 그것이 내가 제국에 귀순하는 조건이요. 이만 돌아가서 잘 논의해보고 결과를 통보해주시길 바라오. 즐거운 기분으로 그 답을 기다리리다. 크하하하하!!!”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깨닭았다. 내가 저 자가 판 함정에 제대로 빠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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