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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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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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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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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290. 길드원員의 회의

DUMMY

*


결과적으로 말해 습격은 성공적이었다. 슬그머니 빠져나가기까지, 완벽히.


“아무도 다친 데 없지?”


대공령에서 그대로 빠져나와 긴 거리를 질주했다. 황야의 어느 바위산 근처에, 라이엔이 불러 놓은 갈색 매 여러 마리가 있었다.


헌터즈 길드원들, 다섯 명은 무사히 대공가를 유린하고 탈출했고.

그대로 잡히지 않은 채 알사드슈트의 성벽까지를 넘었으며. 황야에서 다시 라이엔의 펫들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했다.


하늘을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갈색 매를 잡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썬더스 한 마리로만 전력 비행을 했다면 훨씬 더 빨랐겠지만. 여러 마리를 다루는 라이엔의 솜씨도 여간한 것은 아니었다.


라이엔이 최고속 비행으로 일행을 옮기면, 그런 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건 릿샤밖에 없었다. 그러나 릿샤 애드윈 역시 한계가 있다. 그녀의 비행 스킬은 장거리 이동용은 아니었고.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까지 여유롭게 갈 정도는 아니었다. MP 포션을 계속해서 들이키며 이동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전투용 스킬을 이동용으로 길게 쓰는 것이, 소모가 만만찮았다. 그래야만 한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효율의 문제로 라이엔에게 이동에 관한 것을 모두 맡기는 편이 편했다.


갈색 매들은 애초에 날기 위해서 지어진 생물들이었으니 말이다.


라이엔의 주도 하에 썬더스가 선두를 섰고. 그 뒤로 제냐와 호아킨, 그리고 릿샤를 태운 갈색 매가 따랐다. 편대 비행을 하듯 세 마리 매는 삼각형을 그리며 길게 날았고.


쉬지 않고 움직여 누구의 추적이 따라붙기 전에, 어둠숲 내부로 숨어드는데 성공했다. 데슈칸 산맥으로 갔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 쪽엔 그들의 우군이라 할 수 있는 그리턴 자작가의 영지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대공가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인 셈이었고. 얼굴을 가렸다고는 하지만 아마 심증적으로 대공의 의심을 샀을 테다. 제냐 킴, 외에는 근래 그런 일을 벌일만한 이가 대공에게 달리 없을 테였다.

제냐는 그렇게 확신을 했다. 자신이 대공의 심기를 가장 어지럽히고 있는 원인이라고 말이다. 대공이 얼마나 넓은 마음과, 또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차피 사람이 쓸 수 있는 심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제냐는 대공에게 있어 가장 짜증스러운 가시일 테였고. 그 가시는 한 번 더 대공의 빈틈을 깊이 찔렀다.


대공의 분노와 의심을 산 상태에서, 그리턴 자작가의 호의를 받는 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들에게 전했던 이야기가 왕실에게 잘 전해져서. 왕실의 비호를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에나 가능할 일이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은, 산슈카 국내에서 왕실 외에는 눈치를 볼 자가 달리 없는 고위 귀족이었으니 말이다. 무력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세력을 꾸리는데 성공한 인간이었고.


제냐로서, 플레이어로서 게으른 대공이 사이코패스같은 작자이며 무슨 사고를 칠 지 모르는 종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에. 특별히 더 조심을 해야 했다.


결국 헌터즈 길드 일행이 선택한 건 어둠숲이었다. 몬스터들이 천혜의 요새가 되어줄 테였다. 어지간한 기사급들은 내부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이기지 못하리라. 어둠숲 내에 아주 깊숙히 들어가 꽁꽁 숨는다면. 대공가에서도 단장 급의 초인 병력들이 와야만 할 테였다.


결국 제냐와 헌터즈 길드의 목적은. 알사드 대공의 주의를 돌리는 일이었다.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건 지는 모르겠지만 산슈카 국에 위해를 끼치려고 하는 인간이었고. 여기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벌이는 작자였는데. 그 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힘을 빼놓을 수 있다면 무엇이 되었든 좋은 상황이다.


제냐 일행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면 될수록. 힘을 쓰면 쓸수록 그들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그런 듯 한데.”


최태현이, 어디 다친 곳 없냐는 제냐의 물음에 답을 했다.


알사드슈트의 성벽을 넘고. 황야까지 깨나 긴 시간을 질주했다. 미리 준비해놓은 갈색 매를 타고 다시 몇 시간.

한국은 밤이었고, 미국 동부와 서부는 각기 정오 근처의 시간이거나, 혹은 이른 아침이었다. 각자 스케쥴을 맞춰 작전을 벌인 차였다. 일부러 휴일을 고른 것도 있었고.


대공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릿샤가 준비해두었던 스킬은 여러 종이었지만. 그것들을 전부 쓰지는 못했다. 스킬을 난사하는 것보다도, 시간의 문제가 컸다. 아무리 대단한 화력을 준비해간들 거듭 말하듯 대공가와 총력전을 아직, 벌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체급은 대공가에 비해서 한참이나 아래인 것이 사실이다.


“빌어먹을.”


릿샤는 입이 조금 거칠었다. 승부욕이 강하고, 아닌 체 하면서 열정이 과한 편이다. 사실 그녀의 시큰둥한 태도들은, 자신의 과한 의욕을 죽이기 위해 꾸미는 모습일 때가 도리어 많았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인간. 그게 릿샤의 본래 성격에 가깝다.


그네들은 어둠숲 깊은 곳에 들어와 있었다. 외곽지 어딘가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보스 몬스터들이 여러 종 근처에 있는 곳이 낫다.


그렇다고 정말 보스 몹과 맞닥뜨리면, 그렇잖아도 피곤한 와중에 더욱 고생을 해야 하니까 그럴 수는 없었고.

미리 어둠숲 지형 조사를 마친 뒤에,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이 어둠숲 전역의 지형과 몬스터들간 세력도, 분포도를 조사할 수는 없었고. 어느 정도 실물 조사를 한 뒤에 나머지 정보는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참조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라고는 하더라도. 깨나 정확하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서바이벌 게임이었지만. 아직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생존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집중력으로, 다들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생존 게임’이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만들런지 모른다. 아무리 몰입감이 넘치게끔 현실적으로 게임을 꾸며놓는다고 하더라도. 일정선 이상 플레이어들의 정신을 유도하는 게 쉽지 않은데. 게임 시스템 자체가 한 번이라도 게임 오버 되었을 시 계정이 삭제되는 식으로 만들어 두었다보니.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게임 플레이 중에 플레이어들이 더욱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게임 내에 접속하는 이들은 콘란드 대륙에 진지하게 몰두하며.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을 한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보니. 그것을 이용해서 현실의 직업을 삼는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경우에는, 다른 평범한 취미들보다는 조금 더 무겁게 시간을 쓰는 셈이다.


게임을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결국 인터넷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공유했다. NPC들이 따라올 수 없는 플레이어들만의 강점이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사람이 플레이 가능한 지역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고. 아직 어떤 플레이어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미험지라거나, 스타팅 포인트가 근처에 없는 곳들의 경우에는 정보가 전무하거나 적었으나.


어둠숲처럼 나름대로 메이저한 사냥터의 경우에는, 인터넷에서 상당히 양질의 정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일행 중에서 인터넷 상의 정보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건 제냐 뿐이었다. 제냐도 솔로 플레이를 할 때의 고집일 뿐이었고. 파티Party 플레이를 할 때 그런 기준을 고수할 생각은 없었다.


어둠숲 내의 가장 강력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할 보스 몹의 경우에는 언제 사냥이 되었는지. 또 언제 리젠Regen(eration)이 되었는지 따위가 실시간으로 갱신되어 공유되는 편이다. 그런 정보를 갱신하는 플레이어들이 활동을 할 때가, 정보를 찾을 때와 겹친다면 거진 분 단위, 초 단위로 바뀌는 정보들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호아킨이 정보를 찾을 때는 그 정도로 생생한 현장성이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영 틀린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헌터즈 길드원들은, 고블린 프린스와 백마, 흑사 등 여러 종류의 보스 몹들이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것과 같은 영역을 용케 찾아냈다.

각 보스 몹들은 활동 범위와 관할하는 영역 따위가 있었고. 주된 동선에서 멀어질수록 그 영향력이 작아지게 되어 있다. 보스 몹이라고 하더라도 무소불위의 절대자는 아니었기에.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 몇 마리와 싸우다가 상처를 입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기에 으르렁거리면서도, 나름의 규율을 지키는 편이었다.


야생의 규율이라는 건 때로는 도시에서의 그것보다 더 엄정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정확하며.


그리하여, 거진 수학적으로 계산되어 만들어진 작은 틈새에 그들이 캠프를 차린 참이다.


갈색 매는 곧장 하늘을 날아 어둠숲 상공에서 해당 포인트로 이동을 했고.


어둠숲의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플레이어들을 잡아먹는 비행 몬스터들이 있기는 했지만. 개중에서 갈색 매 몇 마리를 위협할 정도의 보스 몬스터는 없었기에 그리 어렵잖게 도착할 수 있었다.


대공가에서도 나름대로 이동용의 기술이나 탈 것들이 있을 텐데. 그 ‘나름’이 갈색 매를 도저히 쫓지 못할 정도였던 것인지. 아니면 대공이 다른 일에 더욱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전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냐는, 대공이 얼마나 꿍꿍이와 여력을 감추고 있다고 한들. 분명 금방의 습격이 아주 큰 데미지였으리라 확신을 했다. 물리적으로도 그럴 테였고. 심정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제냐는 체스를 두듯이. ‘적’의 성격을 끊임없이 가늠하며 비련시 온라인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제냐 킴이라는 캐릭터가 콘란드 대륙에서 벌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단발적인 퀘스트들을 꾸준하게 해결하거나. 모험가 길드, 용병 길드 따위에서 활약을 하며 명예 점수를 얻은 것.

그리고는 로멜리아 가문의 일에 참여하여 힘을 조금 더해준 일 뿐이다.

그 정도의 사연이 제냐 킴이 콘란드에 두고 있는 사정의 전부였다.


그런데, 고작 그만한 일로 이토록 집요하게 제냐를 공격한다고 한다면. 모르기는 몰라도 아주 자존심이 강하고, 아집이 센 인간일 확률이 높았다.

결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제냐를 노린 것을 보면. 수완이 대단하고, 머리가 좋은 인간이기도 할 테였다. 아주 멀리서 다른 인간들을 시켜서 공격을 했으니 큰 세력을 가진 권력자일 것이었고.


작은 틈 하나를 결코 용서하지 못해서 제냐를 끈질기게 상대하던 ‘적’이었다. 그 ‘적’의 정체를 밝히고, 대놓고 안면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꽂아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옆에서 깔짝거리며 누군가의 일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상대는 아마 머리가 잘 굴러가고. 지기를 싫어하고. 자존심이 높은, 뭐 그런 편집증적인 성격의 인물일 테였다. 그러니까, 알사드 대공이 말이다.


철저하게 방비를 다졌던 자신의 본거지에서 그만한 횡액을 당했으니. 확실히 흔들어 놓기는 한 셈이리라.


“여기까지 추적이 따라 붙을까?”


라이엔, 이 조금 지친듯 보이는 갈색 매들을 한 구석에 두어 쉬게끔 하고 왔다. 그리고 물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일행이 시선을 모았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만일 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못’하는 것지 ‘안’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제냐는 라이엔에게 반말과 존대를 슬슬 섞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같이 지낸 시간이 길었다. 라이엔도 그렇고. 나머지 일행들도.

늘 생각이 복잡한 편이고. 실제의 대학 생활에서도 사람들과 어딘가 거리를 두고서 사는 제냐였다. 게임 속에서 만난 이들에게 처음부터 완벽히 마음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되리라.


그러나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편해지고는 있었다. 다른 일행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지독하게 느린 변화의 속도였지만.


“못하는 거라고.”


릿샤가 묻는다. 제냐가 끄덕거렸다. 어두운 숲. 침엽수목이 아주 길게 뻗어 있는 숲이었다. 하늘을 다 가린 것도 아니었는데 햇빛이 왜인지 잘 들지 않는 지형이었다. ‘어둠숲’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광경이기는 하다. 해가 저물지도 않았지만 마치 초저녁과 같다.

정말로 밤이 되면 시야가 극단적으로 제한이 된다. 이런 마경에 올 정도면 적어도 초인들이라. 밤의 어둠도 배겨낼 재간들이 다들 있기야 하다만. 약간의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몇 걸음 걷다 보면 심심찮게 몬스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음에도. 그 외에 별다른 기척은 없었다. 어쩌면 덩치가 큰 갈색 매들의 기운을 느껴서 잡다한 몬스터들이 꼬이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괴물들은 괴물들의 법칙으로 다루어야 할 때가 있었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대한 경지의 초인이라 하더라도 몬스터들은 달려들어 물려고 한다. 사람이 특별히 위압 종류의 스킬을 쓴다거나 수단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몬스터들 간에는, 강함으로 인한 위계 서열이 잘 먹히는 편이었다.


달리 말하면. 몬스터들이 인간을 배척하고 공격하고자 하는 습성은. 그것 자신들의 목숨을 도외시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생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몬스터’라고 따로 분류하는 것이기도 했다. 비련시 온라인의 주요한 스토리 라인Story-Line 중 하나가 몬스터와 인류 연합 간의 대립인 이유가 있었다.


“예. 어쨌든 그 정도로··· 때렸는데 대공이 자비심이 넘쳐서 우리를 용서할 것 같지는 않고요···. 대공을 잡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일단 모두들 성하게 돌아온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죽였어야 했는데.”

“음, 아니 죽이는 건 말고 생포해서 퀘스트를 진행을 했어야···.”


제냐가 릿샤의 말에 반문을 했다. 릿샤 역시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괜히 던져보는 말에 불과하고.


“일단 도시 쪽으로 나가면 암살자의 습격을 받는 건 분명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턴 가 쪽으로도 못갔던 거고···. 일단은 여기를 거점으로 삼아서······.”


제냐가 라이엔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었다. 산슈카 전역을 무대로 사용하려면. 그만한 거리를 감당할 수 있는, 발이 필요했다. 이동용의 스킬이나, 탈 것이.


“일단 라이엔이 고생을 조금 해줘야 할 것 같네요. 바깥에 나갈 때는 라이엔을 통해서 나갔다가 로그아웃 하기 전에 늘 이곳으로 돌아오고···. 추이를 지켜봐얄 것 같습니다. ······일단,”


제냐는 그렇게 말하면서 퀘스트 창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했다. 미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고 문지르는 것이었다. 체감상 1, 2초만에 켜진다. 아마 실제 시간도 그 정도이리라.


퀘스트 로그에는 달리 변화가 없었다. 플레이어들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하고 상황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다음 퀘스트 씬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때가 종종 있었다.


그건 플레이어들의 선택과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외 가변적 요소들의 변화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경우에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예컨데 대공이 아직 어떤 행동을 할 지 다 정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식이다.

NPC들의 선택에도 시간이 걸리고. 또 NPC들과 맞물려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행동이나, 그도 아니라면 단순히 오브젝트적 변화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자연적인 기후의 변화라던가 말이다. 그런 것들은 예측할 수도 없다. 이 게임이 서바이벌 게임이 되었을 때, 괴랄한 난이도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였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그 제목과는 참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에서 개연성이 없는 재해가 많이 일어나고는 했으니까.

어찌 보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며 또 개연성이 있는 변화일 지도 몰랐다. 현실에서도 사고는 늘 갑작스럽게, 혹은 무정하다싶을 정도로 뜬금없이 일어난다.


자신에게만 온갖 재해가 피해가고, 모든 불운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건 어린아이의 망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현실적인’ 가상 세계를 구현하길 원하는 게임에서는 어쩌면 꼭 필요한 요소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 무작위적 요소 때문에. 사실 랭커들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내에서 마음을 놓고 플레이할 수 있는 입장들은 아니었다. 도리어, 랭커들이기에 더욱 처절하게 생존과 게임 오버 사이의 기로에서 플레이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을 지도 모르고.


제냐는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푸른색의 반투명한 창을 주욱 훑으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퀘스트가 갱신되면, 상세 페이지의 내용이 변하게 된다. 이전 로그 역시 저장이 되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볼 수도 있었고.


가장 마지막에 띄웠던 퀘스트의 상세창이 바로 뜨게 되어 있었다. 로그는 변함이 없고. 뒤로 백스페이스를 눌러 리스트를 확인해도 새로운 건이 없다.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 길지도 않을 테였다. 리얼 타임으로 전개되는 이 세계의 변화는, 아주 급속도로 일어난다.

말했듯, 현실 시간과 게임 내 시간이 1:1비율로 진행이 되고 있었으니까.


게이머들의 인생을 저당 잡고 수십 여 년을 날려먹을 생각이 있지 않은 이상. 게임사, 태Tae는 역사의 전환점에 플레이어들을 던져두고, 거대한 변화를 관측해야만 했다.

서바이벌 게임으로서 난이도를 높이는 여러 재앙들이 뜬금없이 벌어지고 하는 것도 사실 그런 연유도 있다. 콘란드 대륙이라는 실제 세계와 비슷한 규모의 초대륙 위. 억 단위의 인구가 꾸려나가는 역사가 지금 바로 바뀌어야 하니까. 그 시점을 관찰해야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여러 ‘우연’들이 드라마틱하게 몰려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련시 온라인은. 극劇이었다. 드라마Drama. 그건 사람들에게 ‘현실’을 비유하여 전달하는 작법이다. 100년짜리 극을 이용해서, 100년사를 전부 보여주는 미치광이는 세상에 없었다. 중요한 지점만을 사람들에게 짧게 보여주고, 현실에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게 정상이지.


거대한 세계를 구현했고. 사람과 거의 흡사한 NPC를 만들었다. 크기와 규모 면에서, 그리고 여러가지 현실적 요소들에서 실제와 같으나. 단지 ‘시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급박하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이 마주하는 시간은. 콘란드 대륙사史에 있어서 특별한 순간이다.

아마 지금 제냐 일행이 필리아 대륙에서 깨나가고 있는 퀘스트에 못지 않은 사건들이,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을 테였다. 제냐가 메인 스토리에 가장 가까운 인물도 아니었고. 심지어 레벨적으로도 랭커조차 아니었으니까.


그런 유저들의 분석이 또한 인터넷에 나와 있었다. 그걸 본 건 아니었으나. 제냐는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놈의 게임을 만든 제작자들의 심리를 말이다. 사실 명료한 의도이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다지 어렵잖게 알 수 있을만치.

거대한 게임을 구현하는 기술력에 압도되어, 제작자들의 생각을 한 눈에 담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새로운 퀘스트 로그는 없습니다.”


제냐가 퀘스트 로그 창을 살펴보며 이야기 했고. 다른 사람들도 끄덕였다.


퀘스트를 이끌어가는 메인 플레이어는 제냐 킴이었지만. 어쨌든 파티원員으로서 함께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퀘스트에 속해 있다. 그들에게도 퀘스트가 나타날 수 있었는데. 제냐를 제외한 네 명에게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당분간, 근처에서 벗어나지 말고···. 다음 계획을 생각하면서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날이 맞는 때를 또 정하죠. 금방 다음 씬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저지를 수도 있고.”


호아킨이 말을 받았다. 제냐는 고개를 끄덕거림으로 자신의 말을 그가 대신 했다고, 티를 냈다.


“예. 일단 대공이 생각하는 바를 다는 모르지만···. 일단 아는 것만 추려도 전쟁을 일으키려는 속셈인 것은 확실합니다. 자세한 사정을 파악할 수 없지만요.

라이엔과 시간을 맞춰 조금 활동을 하다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일정 맞춰서 다시금 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대공의 속내를 알아내는 것도 필요하고···. 왕실 측에서도 움직일 시간을 줘야겠지요.”

“왕실이 돕는다는 건 확실할까?”


최태현이 의문을 제기했다. 제냐는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고민하던 바를 말했다.


“음.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 저번에도 그랬지 않습니까. 어차피 알사드 대공과 우리가 정면으로 싸울 수는 없어요. 게임인 이상 클리어 가능한 루트를 만들어둘 수 밖에 없을 거고···. 외부의 조력은 꼭 필요합니다.

그리턴 가와 로멜리아 가는 우리와 단단한 관계이고···. 또 왕실과도 연이 있으니까. 아마 움직일 겁니다. 그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우리 역할이 아닐까 해요.”

“나도 동감은 해.”


릿샤 애드윈이 말했다. 제냐의 생각에 대해서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녀였다. 제냐는 그녀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을 했다.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추론들을 진행시키다가, 이미 말을 했나 착각을 할 정도로 제냐의 속내를 들여다 본다. 추론, 논리 전개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남들보다 머리가 훨씬 빨리 돌아가고.


제냐는 그런 릿샤를 보면서 AI 컴퓨터를 생각해냈다.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면 분명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릿샤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면, 그녀가 NPC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러고 싶다면 감성적인 부분을 칭찬하는 게 차라리 나은 일이었다. 그녀는 감정을 제어하려고 늘 애를 쓰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항상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이성적인 능력은 이미 천재적인 기능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 그 부분을 칭찬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과하게 칭찬을 하면, 도리어 싫어하기까지 했고.


“전체판을 그려보면 그렇게 되긴 하지···.

아마도 알사드 대공이 움직이고 있는 속 검은 말들이 이 근방을 다 휘젓고 다닐 테고···. 산슈카와 그 인접국들 말야.

아마 우리가 모를 뿐이지. 어딘가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그럴 조짐이 커지고 있을 수도 있을 걸.

뭐, 테러같은 거 말야. 정치적으로 소란을 일으킨다거나. 결국 뒤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놈이 있다는 걸 알아채는 게 퀘스트의 시작이었고···. 그 ‘누군가’가 대공이라는 것까지 알아챘으니···. 놈의 모든 일을 방해하면 되는 거지.”


릿샤가 명쾌하게 이야기를 정리해주었다. 대공의 계획을 상세하게, A부터 Z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일은 간단하다. 대공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막고 방해하면 된다.

가능하면, 그를 납치한 뒤 구속하고 신문이라도 해서 속내를 알아내면 좋으리라. 물론 그러기가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첫 번째 습격은 대공의 허를 찌른 일이었을 테니 거기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제냐가 파악한 알사드 대공, 적의 성격은 치밀한 사이코패스였다. 자존심이 아주 높고. 강박적이다. 한 번 틈을 보였으니. 그 다음은 절대로 자신의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 더 꽁꽁 싸맬 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흔드는 것이, 헌터즈 길드 일행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로멜리아 가의 재흥을 위한 퀘스트를 할 때와 똑같았다.


판이 조금 더 커졌을 뿐이다.


산슈카 전체의 안위가 지킬 대상이었고. 적은 백작에서 대공이 되었다. 헌터즈 길드의 전체적 레벨은 아주 많이 올라갔지만. 그 때처럼 다소 부족했다. 정면에서 싸우기에는 말이다. ‘다소’ 부족한 정도로까지 레벨을 끌어올린 것 자체가 특수한 케이스일 지도 몰랐다.


헌터즈 길드원들이 강해지는 속도는 확실히 비정상적이었다. 비련시 온라인의 맥脈이라는 걸 잘 찾아낸 걸지도 모른다.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남들이 달성 못할 위업을 달성하라. 아무리 사소한 재능이라도 좋으니.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십분 발휘해서 말이다. 게임 오버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그 근처에서 도전을 하라. 이겨냈을 때, 무엇보다 큰 보상치가 기다릴 테다.


역설적인 게임이었다. 도전에 리스크를 걸어 몸을 굳게 만들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찾고 있는 게 이 게임이었다.

물론 ‘만용’이었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게임 오버가 될 뿐이겠지만.


“간단하군요.”


제냐도 일단은 수긍을 했다.


다른 일행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릿샤의 정리는 일행에 있어서 늘 필요한 지점이었다.


헌터즈 길드원들은 모두 현업과, 현실의 삶이 있었다.


이 게임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또 굉장히 딥deep한 취미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정은 하지만. 현실의 생애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을 맞춰서 또 한 번 레이드Raid를 떠나야 했다. 보스 몬스터, 를 잡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적은 인간이었다.

몬스터를 잡으라고 만들어 둔 게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똑같이 생긴 인간마저 조심하라고, 경계를 하고 있는 게임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었다. 웃으면서 옆에 있는 자가, 어느 순간 칼을 빼어들 지도 모른다.


참으로 현실적인 게임이다,


라고.


최태현은 생각을 했다.


일행은 고단한 플레이 기록을 뒤로 하면서.


차례차례 로그아웃을 하거나 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어둠숲을 탐험하며 캠핑 장소를 다지고. 또 몬스터 사냥을 하면서 몸을 풀다가 로그아웃을 한 게 라이엔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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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307. 파고 들기 24.05.10 6 0 21쪽
307 306. 제 몸 살라먹기 24.05.10 4 0 12쪽
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4 0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5 0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7 0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3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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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299. 걸음(2) 24.05.04 5 0 14쪽
299 298. 걸음 24.05.04 5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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