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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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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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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4,406

작성
24.05.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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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14. 건너가는

DUMMY

청년은 몸을 일으켰고, 캡슐에서 나와 걸었다. “on."


가볍게 소리를 뱉자, 음성인식 기능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우스운 소리를 하자면. 원룸의 가전기기 제어 시스템에도 아이디를 등록하게 되어있는데. 그가 등록해둔 닉네임은 제냐였다. 어릴 적부터 쓰던 닉네임이었고.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어감이 좋아서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제냐의 목소리를 알아본 원룸의 전등이 빛을 밝혔다.


”씁······.“


그는 입맛을 다셨다. 조금 출출하다. 게임을 하다가 일어나서, 늦은 저녁에 뭔가를 집어먹는 생활 패턴이라···. 최악의 몸매를 만들기에 딱 좋은 방식이었다.

원룸 거실에 선 채로 스트레칭을 조금 했다. 기지개를 펴고. 각종 방식으로 관절의 가동범위를 한계까지 사용하고. 허리를 굽혀서 땅바닥을 짚고 잠시간 있었다가 일어났다.

어질거린다. 현기증. 으.


서원은 아찔한 시야에 눈매를 문지르며 잠깐 있다가 다시금 움직였다. 어차피 밥을 먹기는 먹어야 한다.

대학 생활은 말년에 다가갈수록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어차피 1, 2, 3학년 때 모아둔 학점이 대부분이다. 졸업 요건만 맞추면 되는 것이기에. 그 무렵에는 적당한 취업 자리를 알아보는 게 능사였고, 그것만 해내면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괜찮아진다. 제냐의 경우에, 그리 썩 미래가 밝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늘 하고는 있지만. 별달리 답이 나오진 않았다.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고 봐도 좋기는 했다. 그러고 싶었다. 지나치게 머리가 아픈 것을, 일부러 싸매듯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힘들 때는 조금 놓아두고 걸어도 좋지 않은가. 시간이 자연스레 흐르면서 조금 나아지는 것들도 있는 법이었다. 사람의 기분도 그러하다.

왜 기분이 좋지 않으냐, 에 대해 묻는다면.

뭐, 별로.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김서원은 이 소설 내에 묘사되었던 사건들로 인해서 우울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 이전에 벌어졌던 사연들로 인해 그런 성격이 되었겠지.


“으어···.”


서원은 우스운 군소리를 냈다. 혼잣말이 늘지는 않는데, 이상한 추임새가 많이 늘었다. 아저씨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뭔가 답답해서, 소리를 내야만 참을 수 있는 걸지도. 입을 꾹 다문 채로, 스트레스를 견디기만 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 따위는 없었다. 없다고 해도 좋았다. 가장 체력이 좋고, 혹은 정신적인 맷집이 좋다고 할 수 있는 나이대의 남성, 아저씨들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힘이 들기 시작하는, 늙어가는 사내들은 그렇게 혼자서 쓸데없는 소리를 내고. 말에 음을 붙여서 노래를 하면서 시간을 때울 지 모른다. 누군가한테 하소연할 구석이 없으니 혼잣말로 대충 처리하는 지도.


어쨌든 요지는.

누구나 힘들다는 것이다.

정신력에도 한계라는 게 분명히 있어서. 무한하게 피로감을 견딜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없다는 말이었고.


현대인들은 대부분 그럴지 모른다.

각박한 세상이었다. 김서원 역시 그런 각박한 세상의 한 귀퉁이를 담당하고 있는 몹쓸 구성원이기도 했고.


서원은 냉동고를 뒤졌다. 자취생의 필수품. 냉동 밀키트를 찾기 위해서였다. 대충 레인지에 돌리고 프라이팬에 볶으면 완성되는 요리가 있었다.


“흠흠.”


콧노래를 부르면서, 아저씨가 되어가는 서원은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


삐리리리리리리리.


핸드폰이,


울었다.


제-


아니 김서원은 손을 더듬거리면서 단말기를 쥐었다.


“으으으으어······.”


달칵,


하고 폴더폰을 열었다.


내밀어진 혀처럼 생긴 모양의 핸드폰이었다.


정말 그렇게 괴랄한 생김새를 묘사하고 있는 건 아니었고. 아래가 뭉툭한, U자형 외곽선을 지닌 평범한 녀석이다. 폴더폰을 한 번만 열어서 물리적인 디스플레이로 사정을 확인했다. 놈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


[아버지]


라고 텍스트가 떠 있었다.


“······.”


제냐는 잠시간 그것을 바라보다가.


잠이 깰 즈음이 되어서야 패널 아래 버튼을 눌러 수신을 했다. 알람이 울렸는가, 했더니 전화였다. 아침부터.


“예.”


제냐는 금방 일어나서 잠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어···. 아들.]

“······.”


제냐는 뚱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 정도 늦게 대답을 한다. ‘네.’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자식아.]

“······그냥요.”


아직 잠을 다 떨어내지는 못했다. 감겨오는 눈꺼풀을 오른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면서 매만졌다. 눈꺼풀이 덮여 어둔 와중에 핸드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내냐. 어때. 취업은.]

“······.”


서원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목구멍 근처에 덜컥, 뭐라도 걸린 것처럼 잠깐 말을 멎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을 한다.


“킁. 음······. 네. 뭐······. 잘 안되고 있어요. 근데··· 알아보고 있고··· 잘 되겠죠.”

[······그래.]


어쩐지 통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시덥잖은 대답을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프다. 서원은 그리 생각을 했다. 뭐, 딱히 아버지 때문은 아니다. 지금은.


[······. 어디, 회사 들어간다고 했었나. 니가 경영이니까···.]

“······어, 예. 그냥 좀 서울 내의 회사들로 알아보고는 있는데···.”


사실 마땅히 할 말은 없었다. 취업에 관해서는 말이다. 틈틈이 학교를 왔다갔다 하면서. 알아보고 있는 건 사실이긴 했는데.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중앙대 경영학과라고 하면 그리 나쁜 스펙Spec은 아니었다. 게임 속의 제냐마냥 말이다. 아마 전국에 있는 취업 준비생들, 대학생 말엽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따져도 확실히 평균보다 훨씬 위이기는 하리라.


뭐,


의지의 문제였다.


살고 싶으냐, 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을 하면 김서원은 조금 쉬고 싶었다.


그래서 제냐로서 게임 속에 들어가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냥 시간을 허비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고 싶은 날들도 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보면. 뭘 잘못 했는지를 모르겠지만. 머릿속이 어지러워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몸이 영 망가진 건지. 혹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비련의 시나리오는 그럴 때 무언가 몰입감을 가지기에 좋은 대상이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안의 일에만 집중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에.

시간을 좀 때우고 싶었다. 복잡한 일들은 뒤로 젖혀두고.


게임이라는 게, 부정적인 인식으로 보이는 건 알고 있었다. 시간은 21세기 말엽이었고. 지금 ‘어른’이나 ‘노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게임이 익숙한 세대들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놀잇감이라는 건 그런 인식이었다. 아이들이 즐기는 것. 어른이 즐기면 철이 없는 것. 조금 철이 없고 싶기도 했다. 생각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가만히 좀.

현대 사회는 너무 바쁘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이 사회를 돌리기 위해서 대단한 일을 해 본 적도 없고 하고 있지도 않지만은. 그냥.


······.


그래서 김서원은 취업 활동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시기를 놓치면 아주 어려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한 일 년 정도는 그냥 쉬어보고 싶기도 했고. 차라리 휴학을 할까, 도 생각 중에 있었지만.

그런 고민들을 굳이 부모님께서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단한 효심은 아니었고.

그냥 고집이었다.


[······. 그래.]


어쩐지 그리 화를 내시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엄한 편이었다. 언제나 서원에게 말이다.

그게 좋은 때도 있었지만. 지나친 화라고 느낀 적이 많기도 하다. 서원으로서는. 그런 게 트라우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운 적도 많이 있었고. 그런 시간들은 ‘견뎌야’ 했던 시간들로 아직도 남아 있고. 사춘기 무렵에는 거진 이혼을 하셨다가··· 서원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에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하셨다.

김서원의 가정사는 조금 복잡하다. 따지고 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기는 한데. 서원이 느끼는 가정에 대한 인식은 복잡다단했다.


[···아무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

[······. 네 계획대로 알아서 잘 해라. 믿고 있으니까.]

“······예.”


그 뒤로 아주 짧은 몇 마디 인사를 더 나누고,


달칵.


핸드폰을 닫았다.


서원은 핸드폰을 든 손을 옆으로, 털썩 내려놓았다. 침대에서 잔 참이었다.

캡슐형 기기를 산 이후에는 처박아 둘 때가 많았던 조립식 침대를 꺼내서 어제는 잤다. 그리 높지 않은 침대의 위였다. 추욱 늘어뜨린 팔.


약간 틈이 보이도록 쳐두었던 커텐 사이로. 바깥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흘끔, 시계를 처다보았다. 벽면 높은 곳에 디스플레이형 시계가 있었다. 8:02AM.


······.


아침 먹고, 조금 늦게 잡힌 수업에 천천히 가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서원은 그냥 그대로 누워서.


천장만 한 십 여 분 바라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런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굳이 성대를 쓰지는 않았고. 속으로만 생각을 했다.


*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생각해요. 형.”


제냐는 친근하게 태현을 부르고 있었다.


최태현을 직접 만나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정밀성과 현실감이라면, 직접이라고 해도 좋기는 하지만.


“갑자기 뭔 소리여.”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을 했다.


“큼.”


제냐는 손에 화살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비련시 온라인. 접속해 있었다.


학교를 갔다오고, 그 날 밤이었다.


태현은 직장을 다녀오고 퇴근해서 접속을 한 것이었고.


여전히 산슈카 국에는 시한 폭탄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것 치고는, 플레이어들에게는 긴장감이 많지 않지만.

아니-

잘못 되어봐야 게임 오버일뿐 아니겠는가. 그런 점이 게임을 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긴장감 없이, 다양한 상황들을 간접적으로 즐겨보고 누려볼 수 있으니까.

그건 아무리 현실적으로 감각 체현률을 끌어올린 비련시 온라인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었다. 현실과 가상 차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최심부에서 몇 마리의 몬스터를 더 사냥했다. 홀로 할 때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리고 간단했고. 도시에 들러서 물자를 풍족하게 채워와서. 소모품을 물쓰듯 뿌려대면서 화력전을 감행했고. 그런 제냐와 최태현 앞에서 몬스터들은 맥을 못추었다.


제냐는 체감하는 난이도가 확 내려간 것에 조금 의아하기는 했었는데. 처음 솔로 플레이로 잡았던 ‘검은 늑대’가 지나치게 레벨링이 된 개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사실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죠, 전.”

“갑자기?”


최태현은 전통에 남은 화살들을 정리하면서 대답을 했다. 제냐는, 손에서 빙글빙글 돌려대던 자철시矢 하나를, 최태현이 바라보자 휙, 하고 던졌다. 여기저기에 꽂혀 있는 화살들 중에서 부서지지 않고 쓸만한 것들을 다시 추려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현은 꼼꼼하고 또 알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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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337. 쉴더Shielder 24.06.02 8 1 12쪽
337 336. 폭격 세례 24.06.01 1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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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330. 착탄 24.05.30 12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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