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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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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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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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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25. 전쟁, 한창(3)

DUMMY

*


릿샤는 시선을 집중했다.


“젠장.”


그녀는 입이 걸었다. 쌍욕을 뱉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이 힘들어지면. 가벼운 욕설 정도는 종종 내뱉는 편이었다.


그런 식으로 구는게 인간관계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뭐 가끔은, 도리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릿샤 애드윈은 거칠게 굴어야 친해질 수 있는 사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라거나, 전우戰友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인연들은 그렇게 만나기도 하는 법이다.


“더 빠르게 날까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라이엔 핑, 이란 여자는 그런 부류라고 볼 수 있을까.


릿샤는 깐깐한 편이었고. 쉽게 진한 친구를 사귀지는 않는 편이었다. 진한, 혹은 친한. 그런 인연들. 그런 사이는 넓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쉽지만은 않은 인생이었고 삶이었다, 참.


그러나 어쨌든.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라는 취미를 즐기면서 만난 몇 명은, 그래도 제법 친구라고 할만했다. 이 취미에 쏟는 시간들이 제법 많아지면서. 연구소 실험을 위해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휴일을 받아 쉴 때도 종종 게임에 들어오곤 하면서.


실제로 사귀고 만나는 어느 친구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고 지내는 사이들이 되기도 했다.


어지간한 인터넷 속 만남이라고 한다면 뭐, 그렇지 않겠지만.


이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보아야만 알 수 있을 정도의 미묘한 비언어적 제스쳐들까지 동시에 정밀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같은 시간을 보더라도 어지간한 메신저로 소통을 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이감 있는 교제가 된다.


릿샤는 자신의 눈이 그리 믿을만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틀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꽤 긴 시간 헌터즈 길드원들과 마주하면서, 그럭저럭 믿을만하다 여겼다.


“응. 조금만 더 빠르게.”


릿샤가 중얼거렸다. 전음 스킬로 길드원들과 모두 연결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3가지 모드로 다루고 있었다.


아래에 내려간 호아킨과 제냐까지 포함한, 5명 모두가 공유하는 것. 그리고 같은 썬더스, 매에 타고 날고 있는 태현-릿샤-라이엔이 공유하는 모드. 그리고 Off 모드.


지금 사용하는 건 라이엔과 태현만 들을 수 있는 대화였다. 전장의 상황이 다르니. 그에 따른 말들을 굳이 전달할 필요가 없었으니.


태현은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썬더스의 아래에서 부지런히 화살을 쏘아 날리고 있었다. 그가 쏴대는 화살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중이었다.


태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그가 쏘는 화살들은 잘 보인다. 거대하고 선명한 궤적을 남기면서 검은 하늘을 찢었고. 빛을 내는 궤적의 끝에는 언제나 워메이지들이 있었다.

대공가의 본격적인 전력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에 참여한 워메이지들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으로 마스터 마기아는 넘는 이들 같았다. 플레이어들 기준으로 고수급이었고. 전쟁터를 호령할만한 인물들이다, 모두.


태현과 릿샤, 라이엔이 그보다 더 강할 뿐이었다, 다만.


이전에 대공령에서 암살자들과 싸웠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기도 했다. 헌터즈 길드원들은 소수였고.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들은 많았으나.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헌터즈 길드가 압도하고 있었다.


간부급이 참전을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전장의 이 부근에는 없는 것일지 알 수 없지만. 라이엔과 릿샤, 태현은 적들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대공가에서 간부라고 할만한 인물들. 플레이어 기준 레벨 2-300 즈음 되는 이들이 나왔으면 그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강함이라는 건 언제나 상대적인 법이었으니.


릿샤와 태현, 라이엔이 타고 있는 썬더스의 주변으로 검은 선들이 많이 그어져 있었다. 가시가 튀어나와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마치 띠처럼 원형으로 두르고 있는 형상이다. 하나하나의 굵기는 체격이 작은 사람의 몸통 정도. 릿샤 정도 될 것 같았다.


수십 여 개는 될법한 가시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상태로 썬더스는 고속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기이한 형상이었다.


가시에는 관절이 있었다. 삐죽이 솟아난 검은 선들은, 거미의 다리처럼도 보인다.


여러 개의 관절로 이루어져서, 릿샤의 뜻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썬더스의 근처로 적군이 쏘아낸 탄환이 다가오면, 가시가 움직여 요격을 해내거나.

그 폭발력이 지나치게 강해 마땅치 않을 것 같을 때는, 가시 자체가 발사되어 공중에서 상쇄를 해내기도 한다.


릿샤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팔이 수십 개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Ball."


릿샤는 짧은 단어를 좋은 발음으로 뱉었다.


허공에 검은 공이 생겨난다. 그녀는 마스터 수준의 기력술사는 아니었지만, 어떤 것에 몸을 붙이고 설 수는 있었다. 기력술이 아니라 초상술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릿샤는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썬더스의 위에 일어서서, 뒤를 돌아본 채다. 손에는 흑각을 쥐고 있었고.


검은 지팡이를 쥐고 흔드는 그녀의 근처로 거대한 MP의 흐름이 움직이고 있다.


검은 공은, 다른 가시들과 마찬가지로 허공에 생겨났으나 썬더스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간다.


릿샤는 계속해서 MP를 쏟아부었다.


MP 포션을 마시는 것은 적절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양을 조절하고 있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포션을 소비하면, 위장에 자리가 남아나질 않는다. 상당히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는 그녀였고. 땀으로 쓸데없는 수분을 배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은 했는데. 결국 인간이 먹거나 마실 수 있는 음식물의 양은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MP 포션 자체도, 그것이 고급 단계의 물건으로 올라갈수록 한계 역시 명확하기도 했다. 사용자의 체질이나 의지력에 관한 문제였는데. 어쨌건 무한한 MP라는 건 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계속해서 단시간에 MP 포션을 들이키면. 나중에는 효율이 점차 떨어져 같은 용량이라 할지라도 별다른 회복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된다.

텀Term을 두고 천천히 마시는 게 장기전에 있어서는 차라리 훨씬 나은 일이었다.


포션만이 MP를 충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었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초상술사들은, 허공에 있는 SP를 MP처럼 부릴 수도 있었다.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으나, 임시로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었다.


자연계에 있는 SP는 정련된 MP처럼 결코 움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MP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아주 강력하고. 또 그 양도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주변에 있는 SP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각종 아티팩트들 따위를 MP 배터리 삼아 쓸 수도 있었다. 다회용의, 반영구적으로 쓸만한 아티팩트는 상당히 고가이기는 했지만. 결국 릿샤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 그런 것이다보니. 보스 몬스터 사냥으로 인해 얻게 되는 전리품 중에 그러한 아이템이 나온다면. 모두 릿샤의 차지가 되기도 했었다.


그네들의 사냥으로 직접 얻지 못했다면 그냥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방법도 있었고 말이다. 아주 비싼 값이었지만. 없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이전에 녹림원, 포레스트 오브Forest Orb를 소모했던 건 확실히 어마어마한 지출이기는 했다. 그만큼 위력은 확실했지만.


라이엔은 썬더스를 곡예 비행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면서 몰았다. 저공 비행을 했다가, 아주 고도를 높여서 까마득한 지점까지 올라갔다가. 트위스트를 췄다가.

일반적인 비행이라고 한다면 그 위에 서거나 아래에 탄 두 사람이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겠지만.

라이엔이 펼쳐낸 역장은 다양한 관성 작용을 완화해주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매의 움직임은 고속으로 움직이는 비행기보다는 UFO의 그것마냥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궤적을 읽기가 힘들었고, 까다로웠다. 그들을 요격하려는 워메이지들도, 어지간히 동선이 정상적이어야 맞추기가 쉬울텐데. 계속해서 스킬들을 토해내고 있었지만 근처에 닿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근처에 오더라도, 릿샤가 모조리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었고.


릿샤와 태현이 죽여 떨어뜨린 워메이지들의 수만 손가락을 다 채우고 넘길 정도가 된 듯하다.


릿샤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매의 위에서 스킬을 천천히 완성시켜 나갔다.


검은 구체는 시커먼 색이었다. 빛을 빨아들이는 듯. 굴곡과 형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었고.

갖가지 조명탄 스킬이 켜진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밤의 어둠 가운데서 더욱 배경과 어우러져 기이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검은 것은, 단순히 색깔을 그렇게 칠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밀도가 높을 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물질과 빛깔들을 다 모으다보면 검은 색이 되게 마련이었다.

릿샤가 만들어낸 검은 구체는, 원래 빛깔도 그러했고. 밀도도 높았다. 높은 질량과 강력한 중력을 상징하는 것도 같은 모양새다.


‘그럴법한 모양새’라는 건 초상술에 있어서 깨나 중요한 요소였다. 사람이 상상을 하는 힘이, 초상술을 발휘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곤 하니까. 이미지적으로 개연성을 갖는 형태를 만드는 게, 초상술사로서 더욱 쉬웠다. 자신이 보지 않고 어떤 수식이나 문장을 외워서 생각해내는 일이나 비슷했으니 말이다. 초상술을 발휘하는 일은.


사람의 뇌는 스토리를 따라가게 되어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근거나 개연성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릿샤가 만들어내는 건 강력한 질량을 가진, 어떤 물질이었다.


블랙홀을 이미지로 떠올리기는 했으나. 그와 같은 걸 만들어낼 힘은 전혀 없었고. 그냥 모티브만 가져온 다른 무언가였다.


그녀의 MP가 계속해서 들어갔고. 라이엔이 마침 넓은 범위를 빠르게 움직여주고 있어, 다양한 장소의 SP들과 마주칠 수 있었는데.

지금 발휘하는 스킬에서는 에너지의 양이 중요했으므로. 자연계에 있는 SP들을 가능한한 마구잡이로, 스킬 내부로 밀어넣었다.


검은 구체의 크기는 릿샤보다 조금 더 작은 정도였다. 아주 멀리, 수 백 미터나 수 키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는 입장에서. 적군 워메이지들이 육안으로 보기에는 뭔가, 싶을 정도의 크기이리라. 그러나 그것에 담긴 MP가 심상치 않았기에. 민감하게 주변을 살피는 이들이라면 대응은 빠르게 시작할 지도 모른다.


릿샤는 자신이 평소에 착용하고, 사용하는 장비들에서 MP를 조금씩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검은 망토, 로브자락 안 쪽에 있는 여러 개의 악세사리들이었다. 기본적으로 흑각을 들지 않아도 릿샤의 초상술을 증폭시켜주는 보물들이었다.


붉은 빛을 발하는 영롱한 보석들이, 완벽에 가까운 곡선으로 조형되어 붙어 있었다. 릿샤는 그것들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빛을 내보이겠노라 하면 강렬한 붉은 빛을 뽐낼 수도 있었다. 그녀의 명치 부근. 배꼽. 양 팔. 다리. 허리 벨트 부근. 어깨 부근. 다양한 부위에 찰 수 있게 만들어진 아티팩트들이었는데.


그것들은 배터리 용도로 만들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일정량 MP를 머금을 수는 있었다. 저장용이 아니라 활용 용도로 쓰는 전자 단말기에서, 전력을 뽑아다 다른 물건을 충전하는 일과 같았다. 썩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급한대로 써먹기에는 좋다.


릿샤는 어지럽게 비행을 하는 와중에, 검은색의 공을 완성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차이가 없어졌지만. 그녀 스스로가 느끼기에는 확연한 차이였다. 내부의 밀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MP들 사이의 반발 역시 커지는 중이다.


여러 곳으로 뻗어 나가려는 MP들의 성질은 그만큼 강력한 폭발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겉면, 외곽부를 이루는 릿샤 자신의 MP들은 단단한 구조를 이룬 채 안쪽으로 계속해서 터져 나오려는 에너지들을 밀어넣어야 했다. 릿샤의 의지력이 강력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스킬이다.


어지럽도록 비행을 하는 와중에도. 릿샤는 결국 초점을 맞춰서 상대를 정확히 바라보았고. 육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더라도, 적군들을 향한 감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위치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세 명의 워메이지가 모여서, 진형을 이룬 채 공중에 떠있는 곳으로 검은 공을 날리기로 했다. 그녀가 선 채로 흑각을 휘둘렀다.


마침, 1, 2초 정도 라이엔이 허공에 썬더스를 멈춰 세운 순간이었다.


썬더스는 생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궤적의 비행을,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빠르게 해냈다. 그것도 거의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이다.


기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만. 라이엔이 ‘역장’을 만들어내는 스킬을 익힌 이후에 얼마든지 가능해진 일이었다. 거대한 갈색 매 자체도 바람의 영향과 관성의 부담을 거의 받지 않으니까. 마치 진공 상태에 걸리는 것 없는 공간을 유영하는 것처럼 굴 수 있었고. 가속도를 냈다가 선회를 하는 것도 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다.


라이엔이 자신의 MP를 펼쳐서 타고 있는 두 마리 매를 확실하게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불가능했으리라.


역장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썬더스와 브라운의 체내에 MP를 집어넣고, 온갖 강화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가능했겠지만.


릿샤의 휘두름에 검은 구체는,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굴던 물체였는데. 그대로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간다.


검은 하늘이었다. 어둔 밤에 조명을 켠.


빛이 있었다는 말이고, 허공을 문득 바라본 병사들은 신기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진한 먹물로 허공에 선을 긋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색의 변화도 없이,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며 순식간에 긴 선이 그어졌다.


릿샤와 목표로 삼은 워메이지간의 거리가 2km즈음 되었는데. 그만한 거리를 눈 깜빡할 사이에, 닿아버렸다.


릿샤로서도 상당히 많은 MP를 소모하는 기술이었고.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달리 이야기하면. 그녀 정도 되는 수준의 초상술사가 부담을 느낄만치 강력한 기술이었다는 이야기이고. 그런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어.”


라고 입을 벌려 소리를 낸 건 릿샤 측이 아니었다. 대공가의 전술사단에 속해 있는 워메이지. 존, 할레이, 미카는 세 명의 사내였고. 미카가 보호막을 펼치고 있으며 할레이가 그들의 움직임을 도맡았다.


할레이가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허공에 그어지는 선의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빨랐고. 짧은 순간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휘기까지 했다.


결국 푸른 색의 구체형 방어막을 만들어낸 채, 허공에 떠 있던 세 명에게 검은 선이 닿았다.


마지막에 닿을 때 그 선은, 사람의 키보다 더 큰 지름을 갖고 있는 형상이었다. 아주 굵은 선이었고.


그리고 그대로 푸른 보호막을 관통해서, 찢어발겼다.


거대한 질량과 운동 에너지를 갖고 있는 무언가처럼 보였다. 그것에 닿지도 않았으나, 압력만으로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몸까지 부서졌으니 말이다.


보호막을 책임지고 있던 미카 역시 마스터 마기아 수준의 워메이지였고. 셋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간신히 넘는 레벨이며, 플레이어로 따지면 레벨 100 근처의 인물들이다.


삼각 대형으로 모여 있던 세 명은 순식간에 몸이 꿰뚫리며 목숨을 잃었다.


검은 선은, 그대로 뒤까지 이어지며 허공에 그림을 그렸고. 릿샤는 찰나의 순간에 의지력을 발휘해서 움직임을 조정했다.

흑각의 대가리가 조금 흔들거렸고.


몇 키로미터 바깥에 떨어져 있는 릿샤가 움찔하자, 검은 선이 허공에서 선회하여 다른 워메이지들을 찾았다.


대공가의 전술사단은 상당한 엘리트 집단이었고. 마스터 마기아에 근접하거나, 혹은 그 이상이랄만한 인물들로 거진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 자체로 초월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릿샤의 스킬을 앞에 두고서는 겁에 질린 표정들을 지어보였다.


항거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초라해지는 법이었으니. 릿샤가 절대자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 워메이지들은 그런 상상을 떠올렸다. NPC였고, 그들에게 생물로서의 뇌는 없었지만. 정교하게 빚어내는 AI 시스템으로서의 표현력은 있었다.


빛살, 이라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마치 그런 정도가 아닐까 싶은 빠르기를 가진 검은 선이 크게 한 바퀴 돌아 다른 워메이지 집단의 뒤를 치려고 한다.


발리, 투드, 혼, 제이니, 의 네 명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진형이었다. 허공에 제각기 위치에 떠서 스킬샷을 쏘아내던 워메이지들 중 한 무리다.

보호막을 펼치는 투드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 찰나의 순간에 반응을 했고. 최대한 두텁게 보호막을 보강하며 자신의 MP를 쏟아낸다. 혼, 제이니의 두 사람도 원래는 공격기를 끊임없이 사용하여 바깥으로 투사체를 날려보내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모든 MP를 보호막에 쏟아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한 변화였다. 녹색깔의 보호막이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의 두께가 덧대어졌고.

발리는 그들의 보호막을 빠르게 움직여서 피하기 위해 이동 기술을 다급하게 운용했다.


네 명의 고수급 초상술사들이 MP를 움직였고. 나름대로 방대한 양이었다. 그러나 날카롭게 날이 세워져 만들어진 릿샤의 스킬은 그 MP들을 찢어발길만한 공격력이었다.


발리가 구체의 보호막을 아래로 뚝, 떨어뜨리며 검은 선의 진격을 피하려 했으나.


그 속도가 훨씬 느려서 결국 보호막에 정통으로 맞을 수 밖에 없었고.


가장 앞장서서 보호막을 조절하고 있던 투드는 양 손을 뻗은 채, 믿고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릿샤는 현장의 상황을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MP는 릿샤의 또 다른 손이나 마찬가지였고. 보호막을 찢는 감각이나. 그 내부에 있는 워메이지들의 목숨이 사그라드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MP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었다.


검은 선은 최초의 일격처럼, 아직도 힘이 줄지 않아서 보호막을 순식간에 찢어버렸다.


여러 명의 힘이 덧대어졌으나 크게 무리는 없다.


다만 그러고 여력이 아주 많이 남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방비하게 노출된 네 명의 신체를 부술 정도는 되었다.


릿샤는 그 지점이 블랙 볼, 에 담긴 MP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여력이 없다. 그래서 의지력을 발휘해 MP를 조절했고.


복부가 꿰뚫렸음에도 아직 의식이 남아있던 워메이지들을 덮치는,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콰앙-.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폭음이란 선명하다. 그 부근에 있던 아래쪽의 병사들은 일순 검이나 창을 휘두르는 걸 멈출 정도였다.


보호막 내부에서 MP가 온전히 폭발력으로 전환되어 쓰였고.


삽시간에 녹색 보호막은 사라졌으며.


플레이어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빛의 입자가 주변으로 흩어지는 모습만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NPC들의 눈에는 조금 더 끔찍한, 혈육의 파편이 보였으리라.


전쟁이란 그런 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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