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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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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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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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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사막민民의 회의

DUMMY

거리는 멀었으되, 리비아의 이야기는 이시기르의 수장에게 명료하게 닿는다.


카우 데 이시기르는 내심 고개를 끄덕거렸다. 때로는 자신의 아들들에게서 보고싶은 모습이, 남의 아들에게서 엿보일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열린 생각의 소유자였다. 족장, 카우 말이다. 이시기르라는 성을 달고 있는 인간만이 이시기르 부족의 족장이 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리타분한 소리였다. 장년의 사내, 카우는 그리 여겼다.


모든 것은 부족을 위해 결정되어야 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그의 명철이 다할 때까지 후계자 결정을 위해서 아들들의 공적을 셈할 텐데. 만일 부족을 위하야 도저히 아들놈 중 누군가를 족장 자리에 세울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면. 자신의 아들, 이시기르의 피를 이은 놈들보다 그 외의 젊은이가 더욱 훌륭하며 압도적이라고 하면.

그는 후계자의 위치를 그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있었다.


물론 근 몇 세대 간은 적어도 전례가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족장으로서 알게되는 이시기르 부족의 긴 역사를 따지자면. 아예 예가 없는 경우도 아니고. 사막에서 민족들의 삶은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한 법이었다. 능력 위주로 후계자를 뽑고, 가리는 게 도리어 좋을 지도 모른다. 그게 옳은 일일 지도.


리비아가 이야기를 고하는 동안 다른 자들이 말을 얹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양상이다. 기세라는 게 있는 법이다. 최근 마을을 뒤흔들려고 했던 외부인에 대해, 카우 데 이시기르와 리비아 이시기르스의 생각이 같았던 것도 영향을 미치리라.

곧 그에 관해서, 타부족 간의 분쟁에 파견되어 전투를 치르고 온 것도 이유가 될 테고. 이시기르스는 토미 졸탄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가서, 훌륭하게 싸움을 치르고 돌아왔다. 스스로의 몸에는 조금의 상처도 없었고.


멜기스-하룬 간의 전투의 승자를, 이시기르스 부족이 의도한 바대로 만들어주고 돌아온 것이다. 누구라도 평범한 전사의 역량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테다.


"감히, 이 자리에 계신 원로분들과 마을의 여러 어른들··· 족장님과 그 후계자들을 제치고 말씀을 드리는 게 송구스럽습니다만···

외부인의 손에 마을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민족의 운명은, 민족 내의 자들이 결정을 해야 하지··· 불확실한 것에 의해 큰 결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복면을 쓴 외부자들은··· 어디로부터 온 자인지, 그들의 세력과 소속이 어느 곳이고 어떤 규모인지 제대로 밝힌 바가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있다!"


늙은이, 중에 한 명이 꼬장꼬장하게 외쳤다. 원로 중 한 명이었다. 눈이 먼 작자였다. 리비아에게는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체격은 조금 왜소하다. 나이가 들고, 근육이 줄고. 허리가 굽으면 그렇게 되기 마련이었다.

전쟁의 승리, 그로 인한 부족의 득세와 영광. 거대한 화신 사막 땅의 주권을 가진다는 꿈은 비단 원로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막인들의 꿈일 테였다. 늙은 자들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꿈에 취하기 쉬운 것일 테고.


그러나 리비아는 젊기도 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앞장서,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리비아가 그런 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고 명료한 태도를 가지는 건 뭐 여러가지 이유도 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는 자기 손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인 탓도 있었다.

늙은이들이 이상한 외부자들에게 헛바람이 들어 전쟁을 벌이자느니 소리를 지껄이면. 그 뒤처리를 해야 하는 게 리비아의 자리라는 뜻이다.


어찌보면 리비아 이시기르스가 사나워질 수 밖에 없기도 하다.

부족민들의 생명과 안위를 위하는 그 자체로서의 이유도 있지만.


"선생님. 외부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입니까."

"그,"

"아티팩트와 강대한 초인병. 세력, 병력을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그 전부를 본 것이 아니잖습니까.

사막을 통일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들이 가진 세력이 그 정도라고 한다면··· 부러 이 작은 민족을 선택할 이유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시기르 부족과 무엇이 아쉬워서, 그런 강대한 세력이 손을 잡겠습니까."

"이 부족의 가능성을 알아본 게지!"


선생, 이라고 불린 원로는 머리가 벗겨진 자였다. 리비아에게 말이 끊겼음에도 그로 인해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꿈을 부정하는 일에 대해서만 강하게 반박을 한다. 늙은이의 망상은 그 자신의 사상이 되었나 보다.

리비아는 누군가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야 한다면, 행동이야 해야겠지만. 그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다.


훗날을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언제나 자신이 옳은 편에 설 수 없지 않을까. 언젠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질타를 받는 날이 올 수도 있을 테였다. 만약의 일이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누군가로부터 지나치게 가학적인 대접을 받는 건 그로서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한 종류의 상상 탓에, 그는 늘 반 걸음 정도는 물러선 마음으로 말을 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노인, 원로의 입장에서는 적잖이 충격적일 수 있다.


“원로님.”


선생님, 이라는 말은 조금 더 보편적인 표현이었다. 원로가 아닌 자에게도 존경의 의미로 쓸 수는 있다. 리비아는 원로를 똑똑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전한다.


“이시기르 부족은 융성하나 최고는 아닙니다. ···최강의 민족, 부족을 거론할 때 나올 수 없는 이름이지요.

그들이··· 정말 세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 민족을 사막 일통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리비아의 말은 단도직입적이다. 그 말에 원로마저 입을 다물었다. 현실이다. 감정론은 아니고. 단순하며 지독한 것이다. 현실적인 주제 파악이라는 건. 눈 앞의 승리만을 바라본다면, 외부 세력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이겨낼 수 있으리라.

이 민족의 뛰어남을 이야기하자면, 분명 뛰어난 구석이 많이 있기는 하리라. 좋은 문화, 따스한 분위기. 현명한 지도자. 그런 것들이 융화되어 이 민족들 간의 생존 경쟁에서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적어도, 몇 세대 정도는 지난 후에야.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 민족이 과연 화신 사막 위 난전 속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리비아는 늘 아껴왔던 제 본 실력을 전부 내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게 절대로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기는 하지만. 빤히 보이는 어둔 구덩이 속으로 민족이 굴러 들어가는 것 정도는 막아야지 않겠는가.


외부 세력이 만일 정말로 모종의 이유가 있어, 이시기르 부족만을 전적으로 후원하고 그 세력이 가진 힘을 전부 투사한다고 하더라도.

화신 사막 전체의 규모는 만만치 않았다. 마을 하나하나를 따졌을 때나 백 단위, 천 단위의 민족이지. 그것들을 전부 합치고 또 거대한 부족들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국가 단위의 수가 나온다.


그에, 이 화신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언제 어디서 싸움이 벌어질 지 몰랐고. 왕국 따위가 자리잡아 사람의 영역이 큰 나라와는 달리. 몬스터들의 흉포함 역시 훨씬 자주 마주치는 땅이다.

화신 사막민 전체의 수에 비해, 싸울 수 있는 전사의 수가 아주 많다는 뜻이다. 제대로 나라를 세운 뒤 각자의 업에 종사하는 왕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만한 수의 전사들이 이성을 잃고 무차별적인 전쟁이 벌어질텐데. 과연 외부 세력이 그러한 상황을 통제할 수나 있겠는가?

그건 근처에 있는 다른 왕국, 한 개 세력이 전부 동원된다고 하더라도 가능할까 싶은 일이었다. 가장 예를 들기 좋은, 가까이 있는 산슈카 왕국을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산슈카에는 산슈카의 일이 있지 않겠는가. 절대적인 대제국, 강국이 화신 사막 근처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 나라의 일에 집중하기만 하더라도 바쁠 텐데. 추가적으로 화신 사막의 일을 그렇게까지 제대로 돕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외부의 정체를 숨긴 세력이 화신 사막의 사람들을 충동질 하는 이유와 목표는 하나 밖에 없다.

통제할 생각이 없는, 그저 혼란을 바랄 때 뿐이다. 그것만이라면, 소수의 인원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계획이었다. 이미 불이 붙여지고, 폭탄이 터져버리면.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굴러갈 테니까. 피를 본 사람들은 원한을 잊기가 힘들 것이며. 그 때부터 시작한 원인을 잊어버린 채 칼을 휘두를 테였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막민이라고 달리 다를 것도 없고. 전쟁에 익숙하기에, 오히려 평야민들보다 더욱 깊이 전쟁에 심취하며 수많은 부족들이 망해버릴 수 있었다.


“산슈카 왕국이 총력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아래, 위에 있는 벨베르 공화국이나 안단이 온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 사막의 일에 전군을 보낼만한 왕이 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조금 더 강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만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속으로 리비아는, 좌중을 바라보면서 아차 싶기도 했다. 별로 나서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 역시도 말이다.

후계자들의 선발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적어도 십 년, 혹은 그 이상을 모습을 감춘 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리비아인데.


토미의 꾐에 넘어간 이후부터 계속 안하던 짓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 변화가 자신에게 득이 될 지, 실이 될 지. 알 수는 없다.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고수하고자 하던 게 리비아라는 인간인데. 그도 결국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시기르 족族을 노리는 자가 있다면 리비아 이시기르스는 언제든 가장 먼저 뛰쳐나가 검을 들 자였으니까.


“사막의 일은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사막민들의 일입니다.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와서 그것을 바꿀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만한 변화가 있었다면, 이런 방법으로 알지 않고. 모든 사막민들이 공공연하게 알았을 겁니다. 화신 사막 근처 나라가 어마어마한 강대국이 되었다거나, 하는 소식이라면.”


리비아의 정론에 원로들은 입을 다물었다.

제법, 통찰력이 있는 소리였다. 후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시기르스를 바라보는 눈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랐다. 어떤 이는, 리비아를 제 것으로 삼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궁리를 하는 눈빛이다. 족장에게는 언제나 좋은 부하가 필요한 법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후계자는, 리비아를 위험한 녀석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보다 배포가 좁은 작자이다. 아래에 그만한 부하를 둘 깜냥이 없으니, 쳐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이다.


그런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서, 리비아는 원래는 마을의 회의에는 잘 참여를 하지 않는다. 제 자리를 지키고. 지금 대전사의 자리에 있는 ‘투스 밴’이라는 사내의 말만을 잘 들으면 대부분의 일들은 잘 해결이 되었었으니까. 물론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맡겨만 둔다고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나서는 중이다.


후계자들에게 눈총이 사는 게 두려운 것도. 이시기르 족이 멀쩡하게 자생을 할 때에나 고민을 할 일이었지. 부족이 씨몰살을 당할 상황에서는 별로 고민거리도 되지 못할 사소한 일이다.


흠.


카우 데 이시기르.


이시기르 족 중에서, 부족의 이름과 같은 성씨를 쓸 수 있는 건 족장의 가계 뿐이다. 제법 유서가 깊은 마을이었고, 민족이었기에. 그 긴 시간 동안 정말로 부족을 만들었던 이시기르 족의 피가 흐려지지 않았는가 하는 건 알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쨌건 이 민족의 왕은 그런 성을 사용한다.


왕. 몇 천 정도 되는 사람들을 거느리는 이였지만. 그 어깨에 있는 무게감은 평야족들의 왕과 비교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 자신을 믿고 따르는 민족의 생명이라는 건 그런 법이다.

리더Leader는 아둔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평범한 자가 되어서도. 타인보다, 뛰어난 자가 서야만 한다. ‘공감’ ‘이해’ ‘배려’라는 것도. 사실 그만큼 힘이 남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기에. 타인을 무척이나 배려할 수 있다는 건. 그 인간이 그 정도로 남들에 비해 뛰어난 역량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것을 소화하지도 못하고, 다른 이에게 몸을 기울여 넘어지는 이는 제대로 된 의미에서 리더라고 할 수 없으리라.


뛰어난 물리적 능력과, 감정적 능력. 양쪽 모두가 필요한 법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에게는.


이시기르 족의 소왕小王, 족장 카우는 작게 군소리를 냈고.


그것이 족장의 자리에서 난 소리였기에 다른 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리비아가 말을 마치고 몇 마디인가 더 오가던 중의 일이었는데.


카우 데 이시기르는 일단의 결론을 내린다. 회의를 지지부진하게 끌어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


“···아직 어리고,”


그렇게 시작한 족장의 말이다.

그는 리비아와 자신의 아들들, 다른 마을의 중역과 원로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러며 얘기한다.


“모자란 리비아의 말이다. 경험이 많은 이들의 조언처럼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겠지.

······.

그러나 나의 생각과 우연히 일치를 하는군.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덤덤하게 족장은 좌중을 압도했다. 체격이 두터운 사내였다. 목소리 역시 낮게 깔리고. 눈빛 또한 흔들림이 없다. 제법 긴 시간 이 부족을 잘 이끌어온 족장이었다. 그가 그만큼 능력을 보여줬기에, 다른 자들 역시 족장에게 큰 불만이 없이 따르곤 한다.


“외지인에게 부족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그리고 아주 거대한 변화라는 건, 필연적으로 전조가 있게 마련이다. 갑작스럽게 밤과 어둠을 타고 숨어 들어온 객客들이··· 필리아 대륙을 변화시킬 세력이라는 건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 정상적인 방법으로.

나 또한 필리아 대륙에서의 다른 정세적 변화를 들은 바가 없다. 아직은.

······.

무엇이 되었든, 수상쩍은 녀석들의 바람대로 놀아나 줄 생각은 없다. 나, 카우 데 이시기르는. 그러나··· 그들이 우리 부족만이 아니라 다른 곳까지를 회유한다면, 우리 역시 싸움에 휘말리게 되지.”


카우 데 이시기르는 그것이 고민이었다. 누구를 믿어야 하고, 믿지 말아야 하고-, 의 문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점이었고.

그런 결정과 상관 없이 닥쳐 올 상황 앞에서 그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가 주요한 고민거리였다.


“다른 부족들이 전부 들고 일어나 전쟁을 벌인다면, 이시기르 족 역시 그 화마火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좋은 의견이 있나, 모두들.”

“······.”


리비아의 연소함을 두고 거칠게 입을 열었던 중역이나 원로들도 입을 다문 상태였다. 카우 데 이시기르는 좌중을 훑는다. 눈빛으로.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도 했다.


“없다면 반드시 생각해내야 하네.

······.

리비아의 말이 맞아. 검은 복면을 썼던 외지인들은 꿍꿍이를 알 수 없지. 그리고··· 원로 켈러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리비아 이시기르스의 말처럼, 그 작자들은 우리를 돕기보다 전쟁을 벌이길 원한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치에 맞지.

······. 앞으로 화신 사막의 이쪽 지역 전부가 전쟁을 위해 들고 일어선다고 했을 때. 근처에 있는 3개 부족과 그 이상의 부족에게서 이시기르가 포위를 당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해보는 게 더 건설적이겠군.”


카우 데 이시기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굉장히, 상황을 극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지휘자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올바른 생각의 속도일 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나누기에는 조금 빠를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단정적인 카우의 예측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꿈같은 일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원로들의 표정이 특히 가관이었다. 그들은 이시기르가 근처 지역을 전부 먹어버리고, 또 강대한 부족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기대했을 텐데. 카우가 예측한 것은 그와는 정확히 반대가 되는 이야기였으니.

진격하는 이시기르 족의 군대가 아니라. 반대로 근처의 모든 부족들이 이 마을을 향해 공격을 해온다면.


전투와 함께 살아가는 민족이었으니. 최소한의 작전 계획 정도는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주변 마을에 있는 모든 부족민들은, 식량 등 소모품 등만 챙겨서 중앙 마을로 모이게 되어 있었다. 부족의 전사들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온갖 가구들 따위를 이용해서 주변 마을을 분해하여, 그 주위에 바리케이트를 친다. 농성전을 펼치는 셈이었다. 좁디 좁은 느낌의 생활 공간이 되기야 하겠지만. 사람이 죽는 것에 비한다면 훨씬 나은 일이었다.


마을 바깥에 있는 짐승들은, 따로 담당하는 전사들이 움직여서 끌어올 수 있는 만큼만 끌어와 죽인다.

부족의 중앙 마을에는 훈연을 위한 기구와 장소, 그리고 염장을 위한 도구들이 다량 갖춰져 있어서. 그렇게 된다면 아마 가축들을 잡아 보존식을 대량으로 만들 테였다.


중앙 부족 마을로 피신을 온 마을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사들이 싸울 동안.


그렇게 주변 부족, 적군의 공습을 피해 최대한 많은 가축들을 옮겨서 식량화 시키고. 그러지 못하고 남는 것들이 있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베어 죽이거나 끈을 풀어 최대한 멀리 도망가도록 한다. 적군에게 잡힐 염려가 있다면 그냥 죽이고 불태운다. 혹은, 만약 가능하다고 한다면 짐승들을 잘 몰아서 적군 부대에 들이받게끔 하는 수도 있었다.


이시기르 족에게 전해져 오는 짐승 몰이법도 따로 있기는 했다. 꼬랑지에 끈을 달고 불을 놓는 식의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짐승들 몇 마리의 정신을 패닉 상태로 만들어놓고, 길을 막으면 가축들은 적에게도 돌진을 할 테였다.


기름을 이용한 화공도 있었고. 여러모로 준비한 계획들은 있었다. 더군다나 중소 규모 부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대로 된 워메이지라는 전력 또한 이 마을에 있었으니. 더욱 살아날 확률이 높을 지 모른다.


살아날 확률을 따져야 하는 시점에서 이미 상황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토미 졸탄을 불러오겠습니다.”


리비아 이시기르스가, 고뇌에 빠진 좌중들 사이로 족장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마을 내부적인 이야기를 할 때라면 모를까. 의제가 정확하게 정해진 상황에서는. 토미라는 전력을 빼놓을 수 없었다. 일개 기력술사보다도. 제대로 된 원소술사인 토미는 마을 방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그래.”


카우는 굵은 손을 대충 들어, 휘적거렸다.


족장의 게르. 넓은 천막의 내부에서 리비아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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