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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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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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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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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5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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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02. 앞니와 검날

DUMMY

*


파지지직.


전류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며 폭음이 연달아서 울리는 것이다. 에너지라는 건 늘 요란스러움을 동반한다. 절제된 에너지는 고요하지만. 가만히 있더라도, 그것에는 강렬한 운동성이 내재되어 있다.


제냐가 쏘아낸 화살은 함부로 에너지를 뻗치지 않았으나. 목표물의 앞에서는 담긴 모든 힘이 방사되었다.


늑대의 눈깔은 감기지 않았다. 검은 늑대는, 오후의 잠 중에 갑자기 자신한테 날아온 화살을 보고 당황을 했다. 사실은.


눈을 뜨자마자 본 첫 장면이 화살촉의 따끔한 말단末端이었다면 누구나 그랬으리라. 늑대는 짐승이었으나 본능이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MP를 움직였다.


몬스터들도 초상술사형이 있고, 기력술사형이 있다. 정확하게 분류를 하기에는 애매하긴 하지만. 어느 쪽으로 힘을 사용하길 즐기는지, 갈리는 경우가 더러 있기에 플레이어들이 정리를 해두었다.


‘늑대’는 근거리와, 중거리 정도에서 전투를 즐기는 편인 몬스터였다.


다른 괴물들을 잡아먹고 더욱 강해진 녀석이었다. 최근 어둠숲 최심부에 있던 괴물들은, 오롯이 인류 캐릭터들에 의해서 토벌된 게 아니었다. 두어 마리는 검은 늑대에 의해서 잡아 먹혔다.


몬스터들이 경험치를 얻는 방식은 플레이어의 그것과 비슷했는데. 약한 몬스터를 잡아 죽인다고 그리 큰 힘을 얻을 수는 없었다. 사투를 벌이고 사선을 넘어서, 자신보다 강력한 놈을 해치웠을 때 더 큰 경험치를 얻는다.


그리고, 몬스터에게는 레벨업으로 인한 일시적인 회복이 없었다. 이는 NPC라면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른 인류 NPC들도 레벨업을 한다고 고양감을 느낀다거나. 상처가 그 자리에서 즉시 회복되고 기력을 새로이 얻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레벨’이라는 개념을 가시화해서 볼 수 있고, 인식하는 건 오롯이 플레이어들 뿐이다.


그래서 NPC들, 몬스터들의 강함을 설명할 때 ‘플레이어 기준에서의’ 레벨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 플레이어 레벨 기준은 해당 레벨의 평균 전투력을 의미하는 바였고. 제냐와 같은 인물들은 평균을 벗어난 객체였다.


보스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HP나 MP등 기본적인 스텟이 격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야수로 태어난 놈들의 생명력은 인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것들이 특별한 스킬을 갖고 있다거나, 대단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서 강한 건 아니었고. 보통 스탯치가 높아서 무식하게 강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다 약한 여러 명의 플레이어들이 뭉쳐서 안정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몬스터들의 공격이 패턴화가 되어 있고, 그 이상의 영리함을 보일 수 없었으니까. 힘만 센 무식한 놈들은, 전략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소리이다.


그런 고로, 몬스터들의 강함은 단순히 레벨로 설명하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사냥 난이도’로 표현을 하는 것이었고.


검은 늑대는 보통이라면, 160정도의 평균 전투 클래스가 모여서 잡을만한 놈이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다른 늑대 한 마리와. 용은 되지 못한 뱀 한 마리를 잡아먹고 성장을 해버렸다. 한 마리는 사투를 벌였으나 죽이지는 못했고. 그 놈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와서 죽였기에, 늑대에게 돌아간 경험치는 일부에 불과했다.


어쨌건 늑대는 몇 번의 사투를 거치고 살아났다. 회복 아이템도 없는 몬스터들은, 스스로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조그마한 상처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문명이 없는 야생 속에서 살아가는, 자연물들이었으니까.


검은 늑대, 시스템 AI인 만물박사가 부여한 별명은 ‘그르렁’인 녀석은 회복력이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강하지 않다’라는 건. 회복력, 재생력을 강점으로 하고 있는 데슈칸의 검은 용 따위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지. 어느 정도는 갖고 있었다.


적정 사냥 레벨의 플레이어와 비교하자면 어마어마한 양의 MP를 갖고 있었고. 그것들을 평소에 축적해두고 있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기력술사들의 전투법처럼 활성화시키며 고속 이동을 하고, 상대를 물어 뜯고 할퀴는 식의 싸움을 한다.


중, 근거리에서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탄환을 날리기도 했고.


번개가 튀는 소리는 강렬했고, 계속해서 들렸다. 늑대의 반응이 조금 늦었으면, 늑대는 왼쪽 눈을 잃어버렸을 테다.


한쪽 눈을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검은 늑대는 여전히 강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제냐의 화살에 특수한 이펙트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머지 않아 재생을 했겠지만.


제냐의 화살은 늑대의 눈동자 표피 바로 앞에서 멈추었고. 불투명한 늑대의 기력이 그것을 막아섰다. 흑마력이 강하게 저항하면서, 미사일처럼 쏘아져 날아온 화살을 밀어낸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화살의 힘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단순한 초고속탄이었다. 일직선으로 깔끔하게 날았고. 늑대의 뇌수를 탐하는 것처럼 화살은 계속해서 그 촉을 들이민다.


“그릉.”


늑대가 성대를 떨었고, 불편한 자세에서 몸을 뒤틀며 일어서려고 한다.


쌔애애액.


하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늑대는 몸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의 누워 있던 왼쪽 옆구리에 화살 하나를 더 맞이해야 했다.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철판에 쇠못을 대고, 거대한 망치로 찍었을 때 날법한 소리였다.


검은 늑대의 몸이 조금 뒤로 밀렸다. 마찬가지였다.


눈 쪽으로 향해서 온 화살처럼. 늑대의 옆구리를 맞춘 화살 역시 계속해서 뻣뻣하게 굴며 늑대를 노린다.


“그르르르르르.”


검은 늑대는 양눈을 오롯이 떴고. 그것의 몸에서 흑마력이 넘실거렸다. 검은 연기같은 것이 검은 늑대의 몸뚱이 근처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기분 탓은 아니었다. 아마 실제이리라. 주변에 생물, 동물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느꼈을 테다.


검은 늑대는 피어Fear 류의 스킬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놈이었다. 고수급 이상의 사냥 레벨을 가지고 있는 보스 몹이라면 있는 편이 더 흔한 스킬들이기도 했다. 존재감만으로도. 의지력으로 MP를 움직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멈추게끔 만드는 힘이었다.


그건 수의근과 불수의근不隨意筋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었고. 본인이 느끼지 못하나 호흡이 둔해지며 움직이는 게 어려워진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대기가 밀도가 높아지고, 무거워졌다고 비유하게 되리라. 검은 늑대의 앞에서 사람들은.


사람은 없었고. 또 눈에 띄는 동물도 없었지만. 마치 식물들도 그것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어둠숲이 울었다는 말도 그럭저럭, 좋은 표현이리라.


제냐의 화살에 의해서 술렁인 것처럼 말이다. 늑대의 MP가 일렁거리면서 주변의 분위기를 바꾼 건. 그보다는 조금 더 범위가 넓은 일이었다. 제냐보다는, 늑대의 MP가 더 많다. 체력 역시 말이다.


체력이 높다는 건, 생명력이 질기다는 뜻이다. 똑같은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욱 길었다. HP가 100,000이 넘으면, 목이 잘리더라도 그럭저럭 유의미한 시간동안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회복 스킬을 받아서 치료가 될 지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될 지를 가르기도 한다.


HP나 MP에 의한 변화는 NPC나 플레이어나 비슷했다. 몬스터들 역시 비슷하다는 뜻이다. ‘재생력’ ‘회복력’을 가진 놈들은. 힐Heal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와 같은 셈이었다. 그리고 HP가 높은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플레이어가 HP포션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었고.


HP가 높아지면서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부가적인 효과들에는 상처가 빠르게 아무는 것 역시 있었다. 늑대 정도의 HP가 된다면. 특별히 출혈을 유발하는 상처를 입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상처일 때 순식간에 지혈이 되어 버린다. 출혈이 더 이상 나지 않고,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면. 추가적으로 HP가 떨어지지 않고, 최초의 데미지에 의해 깎인 만큼만 잃어버리고 끝나는 셈이다.


거기에 회복력과 재생력이 몬스터 특성으로 들어가 있다면 HP가 차오르게 되는 것이었고. 대신 MP는 소모가 되리라.


검은 늑대의 HP는 470,000정도였다. 괴물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고. 아마 오장육부가 전부 손실되고. 대가리가 잘려도 살아 있을 테였다. 뇌가 박살이 나도 잠깐 정도는 생명이 떠나지 않고 머물 수준이었다. 그 찰나에 MP가 움직여서 올바르게 재생력이 발휘된다면, 사는 것이다.


결국 요지는 늑대의 MP를 최대한 소모시키고, 의지력을 깎아 먹은 뒤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다. 그래도 검은 늑대는 고등 동물을 모체로 하고 있는 몬스터였고. 특별히 재생력을 강점으로 하는 종류가 아닌 데다가. 데슈칸의 검은 용처럼 어디를 베고 터뜨려도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는 부류는 아니었다. 데슈칸의 검은 용은 결국 지렁이를 어마어마하게 크게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단순한 구조의 생물이 그럴 수 있듯 비상식적인 재생력, 회복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신 방어력이 조금 강력할 테였다. 이 게임 속의 몬스터들은 모두 장단이 있게끔 설정이 되어 있었고. 또 데슈칸의 검은 용보다도 고레벨의 몬스터였으니. 더욱 잡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지금은 검은 용을 홀로 잡을 수 있을까. 자답을 하자면. 아마 가능할 테였다. 제냐로서도. 다만 릿샤가 없다면 조금 골치가 아프기는 할 거다. 단순하게, 거대한 생물을 분해하는 일이 어려우니까 말이다.


체적이 거대한 생물을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초상술사가 있는 편이 낫다. 제냐 역시 마스터 마기아이기는 하지만. 릿샤가 있는 편이 더 좋다. 그녀는 워메이지로서의 능력만을 계속해서 갈고 닦은 스페셜리스트였으니까.


꾸욱, 하고


제냐는 잡고 있는 화살의 궁둥이 부분을 더욱 꽈악 눌러 고정한다. 화살을 당길 때는 아귀힘으로 당긴다. 활대와 시위에 걸리는 장력, 궁술가가 감당해야 하는 힘의 양이 어마어마해지다보니. 손아귀의 악력 역시 비례해서 강력해져야 한다.

근력만을 높이는 플레이어는 적어도 궁술가는 될 수 없었다. 둔기류를 거칠게 다룬다고 한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세밀한 조정으로 세미한 컨트롤을 해내는 일류 검술가도 될 수 없을 테였고.

대근육이 아닌 신체 각 부위의 소근육에 영향을 크게 주는 건 순발력이었으니.


제냐는 아낌없이 MP를 쏟아붓고 있었다.


검은 늑대는 멈추어 있다. 마치 시간이 멎은 것처럼 말이다.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반항하고 있는 중이었다. 검은 늑대의 주변에 넘실거리는 검은 연기의 양이 점차 많아진다. 단순하게 연기가 새는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고밀도를 자랑하는 MP의 증거다.


저것들은 흑마력이었고, 마기이다. 인간에게는 독기로 작용하는. 저런 것들을 없애는 데는 힐 계열의 스킬을 익힌 초상술사가 있어야 조금 편하다. 없다고 해서 잡을 수 없다는 건 아니었고.


제냐는 수도꼭지를 점차 열듯이. MP를 쏟아낸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제냐가 그만큼, 정확한 양만을 쏟아내어 화살에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겉으로 과한 이펙트가 드러나는 건, 무지막지한 양의 힘을 다룬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달리 말하면 완벽하게 자신의 힘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지력과 플레이어가 한 번에 다루는 MP의 양은 늘 엎치락뒤치락 하는 관계였다. 더 많은 MP를 다뤄버릇해야, 의지력에 부하가 걸리고. 그 부하의 반복과 휴식을 통해서 의지력이 강해진다. 근력力을 키울 때나 큰 차이는 없었다. 의지력 역시 뒤에 힘 력자가 붙은 것이었으니.


단순히 MP가 흘러나온다거나, 아니라거나. 그런 겉모습으로 초상술사의 수준을 완벽히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제냐가, 저기에 있는 검은 늑대보다 미숙한 수준의 컨트롤 능력을 갖지는 않았다.


정면에서 싸워도, 무조건 밀린다거나 하지 않았고.


물병에 정확한 양의 물을 담듯이.


제냐의 MP는 그 몸 전체에 충만하게 있다가. 일부가 이전되어 화살로 흘러 들어간다. 활대와 시위에도 역시 일정량이 들어가 강화를 시켜주어야 했다.


결국 화살을 쏘아 날리는 건 활이었으니. 포신 자체를 강화해야. 더욱 강한 탄환을 쏘아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연장해서 생각해보면, 제냐의 몸까지다.


제냐는 최대한 컨트롤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자칫해서 충격량이 다른 데로 이전되면. 나뭇가지가 꺾일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굳이 몸을 나무의 몸통부에 최대한 가까이 한 상태에서 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왼발은 앞으로 조금 나간 상태였고. 오른발은 뒷발로 나무의 몸통에 붙인다.


몸을 틀듯이 회전을 걸어 힘껏 당겼고, 다시 놓을 때였다.


툭,


하고 시위에 걸렸던 화살이 날아간다.


고목보다 위의 하늘은 밝은 태양이 자리한다.


그 아래, 평균적인 나무들의 머리 아래 높이로는 어둠숲 특유의 진득한 어두움이 깔려 있었고.


검은 늑대는 계속해서 날아드는 화살 때문에. 자신의 MP를 최대한 일으켜 막느라 정작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늑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프다. 제냐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강력한 공격을 날려야만 했다.


연사 속도에 있어서 초상술보다 화살이 훨씬 나았기에. 최초의 공격 방식으로 화살을 택한 셈이다. 초상술로 늑대가 있던 주변을 지져봤자. 대단한 상처도 만들지 못하고. 늑대의 화만 돋궜으리라.


지금 이렇게 화살로 늑대의 몸을 쑤시려 하고 있으니 저것이 그나마 가만히 있는 것이지.


제냐가 놓은 화살이 다시금 시위를 떠났고.


잔심殘心이라고 하는 말처럼. 잠깐 멈춰 그 여운을 떨쳐낸 뒤에 곧바로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들었다.


움직이는 모든 속도는, 바깥에서 다른 이의 눈으로 보자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보다 빠르게 전통에서 화살을 뽑아들고. 시위에 걸고. 다음 화살을 쏘아내기 위해서 물리 스탯을 그만큼 올린 것이기도 했다.


덜걱,


하면서 뽑아든 화살은 두 발이었고.


변함없이 시위에 걸어 당기고,


늑대의 눈빛에 요사스런 살기가 감돌고 있을 때.


한 번 더 쏘았다.


두 발이니, 두 번 더라고 해도 좋으리라.


쇄애애애액.


파공성이 울린다.


늑대의 몸으로부터 뻗어나온 검은 연기들은 이내 넘쳐 흘러서, 그 주변의 지면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마냥, 그 연기들이 벌떡 일어나 촉수처럼 움직였다.


제냐가 쏘아낸 두 발의 화살이 늑대의 몸에 닿기 전에, 일어난 검은 연기의 촉수에 한 번 맞았다.


그것들을 뚫고 지나가면서, 제냐가 담아낸 MP가 일부 깎였고.


“크아아아아아아!”


늑대가 괴성을 질렀다. 거대한 괴물 늑대의 몸이 떨어 울렸고.


그 몸뚱이를 파고들려고 애쓰고 있던. 미사일같은 기세의 화살들이 멈칫, 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늑대가 움직였다.


늑대 역시 순발력이 상당히 높은 모양이었다. 제냐가 감지하고 있는 범위가 반경 12~3m 정도의 범위였는데.


늑대의 흔적은 그 반경 내의 범위에서 일순 사라졌다. 그 터럭 조금이라도 느껴졌으면 곧바로 따라갔을텐데. 빌어먹게 빠르다.


“망할.”


제냐는 늑대의 기운을 살폈다. 이토록 저릿하게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고 있는 흉수兇獸이다보니.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실 감지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까처럼 자고 있다거나 하면, 찾아내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피차 전투 모드에 들어간 상황이었기에. 서로의 위치는 파악이 되었으리라. 늑대 역시 제냐가 어디에 있는지 얼추 감은 잡았을 테다. 제냐가 최대한 자신의 MP를 불필요하게 흘리지 않으려 했다고 하더라도.


늑대 역시 최소한의 지능은 있었다. 몬스터들 중에서는 인간과 닮은 것들, 비현실적이고 환상에 가까운 것들도 많이 있었다. 애초에 10미터가 넘는 길이의, 집채만한 늑대 역시 비현실적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영리함의 차원이 다르다.


흉성, 마성. 귀신 속성을 갖고 있고. 또 레벨이 높은 괴물일수록 소름이 끼치도록 머리가 좋은 모습들을 잘 보인다. 말했듯 몬스터의 지능 자체는 아무리 잘 쳐줘봐야 짐승의 수준이었지만. 그것을 컨트롤하고 있는 악신의 존재로 인해서 말이다.


전투 모드에 들어갔고, 흉성을 일깨운 검은 늑대의 지능은 일반적인 짐승의 수준과는 다를 테다.


화살의 발사각을 보고 어렴풋이 제냐의 위치를 셈했을 것이다.


제냐는 1초 정도, 잠깐 늑대의 위치를 놓쳤지만. 곧 다시 좌표를 잡아 감지술로 따라붙었다.


자다 일어나 옆모습으로 제냐를 마주하던 늑대였는데. 이번에는 아주 곧은 자세로. 정면으로 노려보는 흉흉한 늑대 대가리가, 제냐를 향하고 있었다. 제냐가 어느 정도 높이에 있는 지도 가늠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놓친 것. 제냐는 전통에서 화살들을 꺼냈고,


마구잡이로 날리기 시작했다.


최태현의 궁술보다는 한 수 떨어진다.


그러나 검예劍藝의 수준으로 보자면 헌터즈 길드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나리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원래는 초상술, 궁술, 검술을 골고루 익히려는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인 이상 한쪽 분야에 집중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팀플레이를 하다보니 자신이 적절하게 사용할만한 능력이 제한되는 탓도 있었고.


최태현이었다면 아마 조금 더 정밀하게 유도 사격을 해서. 움직이고 있는 검은 늑대 수준의 생물체라고 해도 제법 맞췄겠지만.


제냐는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는 검은 늑대의 형상을 향해서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날리는데.


한, 두 발 정도를 간신히 그 등허리에 쑤셔 박는 게 한계였다.


마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연기처럼. 바람처럼.


나무들 사이를 유령마냥 홀연히 지나서 달려오는 검은 늑대다.


화살이나 총알의 속도라고 비유를 해도 좋지 않을까.


제냐는 철컥, 하고 벨트와 전통의 끈을 연결해둔 것을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 화살을 대강 쏘아날리곤. “IV."


인벤토리창이 열리자마자 활대를 쑤셔넣었다.


넣는 것은 꺼내는 것보다 더욱 간단하고, 제스쳐가 별로 필요 없었다.


허리춤에 걸렸던 비스트 슬레이어의 칼자루를 슬쩍 쥐면서, 제냐는 나뭇가지의 옆으로 슬쩍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무게를 무겁게, 그리고 아래 방향으로 내리 누르면서 더욱 빠르게 떨어졌고, 3, 4미터 즈음 떨어졌을 때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려 발바닥으로 나무의 몸통을 밟았다.


떨어지는 나무에 수직으로 딛고 선 것이었고. 그와 동시에 박찼다.


아래로 쏘아날린 화살처럼.


제냐가 곧장 떨어지고 있었다.


검은 늑대는, 제냐가 있는 곳을 완벽하게 알았는지. 그 거목의 아래로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고.


10, 20여 미터 계속 떨어지던 제냐는 마지막으로 나무의 몸통을 콱, 짓밟고.


아주 잠깐 멈추더니 다리를 구부렸다 펴면서.


아래로, 앞으로.


대각 방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투수가 전력으로 내던진 야구공의 궤적처럼도 보인다.


아무튼.


그만한 속도에서 제냐는 허리춤에 달렸던 비스트 슬레이어를 뽑아들었고.


몸을 회전시키면서 외날검으로 허공을 질렀다.


제냐의 감각에 딱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크허헝!“


심장이 떨어질법한 소리를 내는 검은 늑대가 곧 앞으로 다가왔다.


제냐는 팽이처럼 온 몸을 회전시키며 비스트 슬레이어의 날을 휘두른다.


벤다, 라기보다 갈긴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거친 베기였고.


비스트 슬레이어는 그 이름처럼 강맹한 짐승을 향해서 날을 번뜩였다.


어느새 외날검의 검신이 푸르게 빛나며, 견고한 검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크헝,


늑대가 소리치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쾅!


앞니와 외날검이 부딪히는데,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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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318. 전쟁(3) 24.05.18 7 1 16쪽
318 317. 전쟁(2) 24.05.15 8 1 14쪽
317 316. 전쟁 24.05.15 7 1 16쪽
316 315. 호출 24.05.14 7 1 14쪽
315 314. 건너가는 24.05.14 10 1 11쪽
314 313. 로그, 아웃. 24.05.13 10 1 11쪽
313 312. 요식업자 24.05.13 8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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