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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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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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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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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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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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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로그, 아웃.

DUMMY

“최근에 각 대도시에서 정규군의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네.”

“호오.”


제냐는 푸른빛의 음료수를 홀짝거리면서 작게 흥미롭다는 듯 소리를 낸다. 바깥에서 잘 팔리는 이온 음료와 비슷한 색깔이었다. 점성이나 그에 비롯한 식감. 목넘김 따위는 전혀 다른 음료이다. 쉐이크와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음료수의 중간 정도 질감. 간편하게 간식거리가 되거나 식사 대용을 할 수 있을법한 포만감이 있었다. 맛도 제법 좋았고.

사르삿 근처에서 채집할 수 있는 여러가지 열매들을 배합해서 만드는 쥬스라고 한다.


“수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나와 같은 작자들··· 자기 사업을 하는 인간들은 늘 그런 태세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네. 영 불안하지. 최근에 저 서북쪽 대공령··· 알사드슈트에서도 일이 많았다고 하네. 알사드 대공이 경을 칠 노릇이 있었고···. 우리같은 작자들은 잘 모르지만 뭔가 큰 폭발이 있었다고 하더군. 대공가의 부지에서. 어떤 미치광이가 갑자기 고관대작을 암살하려고 하기라도 한 건지···.

거기에다가···.”


거기에다가,


그 다음 말에 제냐는 집중했다. 앞에 건 그가 저지른 일이었으므로. 중년의 사내, 아이젠 하우드의 앞에서 제냐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조금도 티를 내지 않는 건 늘 중요하다. 약간의 연기력마저 필요한 일이다. 제냐는 일부러 상관이 없는 다른 생각을 조금 했다.

NPC들은 모두 사람과 같다. 사람은 아니었지만. 초고도의 정밀함을 가지고 제작되었고, 반응하는 AI들이다. 실제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은 정도의 세심함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게임 내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이었다.


“이슈칼, 그리고 벨베르 공화국 쪽의 동태도 심상찮다고 하네. 계속해서 외부에서 사르삿으로 사신단이 오고 있는 모양이고···. 산슈카국의 왕실과 어떤 문제라도 있는 것인지···.

외교관들이 계속 파견되고 있다고 하네. 양국 쪽으로도.

변방의 귀족들 중에는 난데없이 영지전을 일으키는 작자들이 많아서 상위hierarchy 귀족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데다가···.”

“총체적으로 난국이로군요.”

“그렇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사르삿 내에서도 대놓고 공화국과 이슈칼국의 관리들이 들쑤시고 다니고 있어. 다른 대도시들도 그렇다고 하고···.

거기에 화신 사막까지 부족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하더군.”

“······.”


제냐는 입을 다물었다. 대체적으로 듣던 이야기들이기는 했다. 호아킨이나 릿샤, 라이엔. 최태현. 모두 인터넷 페이지의 정보들을 능숙하게 긁어오는 인물들이었으니까.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에 대한 정보는 접근성이 좋게 정리가 되어있기도 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게임이자 동시에 최고의 게임이라고 불리고 있는 타이틀이 비련의 시나리오였다. 그와 관련한 여러가지 커뮤니티, 인터넷 페이지, 다양한 플랫폼들이 즐비해 있었다. 조금만 컴퓨터 앞에서 발품을 팔듯 시간을 보내면. 거진 실시간 상황에 가까운 정보들을 지역별로 얻어낼 수 있었고.

이곳 중부 대륙, 필리아의 어느 지방은 극동 아시아 지방에서 스타팅 포인트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에. 태현이나 라이엔이 더욱 손쉽게 정보 수집이 가능했다. 산슈카국의 동태에 관해서는 다른 플레이어들간에도 이야기가 많았다. 거시적인 이야기라고 한다면 제냐 역시 건너서 듣기는 했다.


그러나 직접, 게임 내에 있는 NPC를 통해서 재확인을 받으니 무게감이 조금 다르기는 했다. 이들은 이 콘란드 대륙에 살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게임 내에서는 무엇보다 진실에 가까우리라. NPC들도 거짓말을 하고 착각을 하기는 하지만. A라고 말하는 걸 곧이 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바, 제스쳐. 의도 따위를 생각하여 정보를 잘 분석해서 듣는 기술이 필요했다. 제냐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었고.

아이젠 하우드는 굉장히 선명하게 근시일 내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쟁’. 중부대륙, 필리아 지방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아릿시안 제국의 일이 가장 마지막이었으니까 말이다.


필리아의 북부 지역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제국에게서 독립하기 위해서. 지금의 중남부 지역, ‘자유 연맹’이라는 게 생겨났고. 치열한 전쟁의 시기 끝에 지금은 오랜 평화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연맹 내에서, 여러 국가들이 협조를 하며 순조롭게 국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북부에 있는 제국은 남부 연맹을 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힘도, 의지도 있었으니까. 지난 시기와 달리 최근 시대에 온갖 공학적, 초상학적 기술들 따위가 발전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발전상 때문에 섣불리 먼저 손을 쓰지 못할 뿐이었지. 아마 중남부 지역에 거대한 혼란이 생긴다면. 그 틈을 타서 아릿시안 제국이 움직이는 시나리오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젠 하우드는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설정값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지능이 좋은 사내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NPC이다.


중년의 사업가, 요리사는 사르삿의 번화가 어느 한 구석에서 그런 미래까지 그리며 불안감으로 떨고 있었다.


“뭐.”

“응?”


제냐는 나무잔에 들어 있는 약간 걸쭉한 음료를 들이켰다. 맛이 좋았다. 고된 전투를 치르고나면, 밥을 먹는 편이 좋았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불편함을 강요하고, 강조하는 게임이었으므로.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신체에 적절한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하고. 솜씨 좋은 요리사가 만들어둔 양질의 음식들은 그런 에너지 보충에 참 쓸만하다. 어둠숲에 지내는 며칠동안. 라이엔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면서 식료를 비롯한 물자들을 길드원에게 보급하기도 했고. 또 혹은 몬스터를 잡아서 해독시켜서 고기를 먹기도 했다. 하급의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대단한 절차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제냐는 툭, 하고 나뭇잔의 밑둥으로 목재 바 테이블을 두드리듯 건드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십쇼.”

“허허.”


아이젠 하우드는 그냥 웃고 말았다. 청년의 말이었다. 그러나, 예사로운 놈은 아니었다. 아이젠의 눈에 제냐는. 자신이 힘들 때, 우연찮게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만난 인연에 불과했지만. 그리고 한참이나 젊은 모습의 청년이었지만. 생각보다 솜씨가 좋은 용병이었고, 그 이후로도 적잖은 모험을 거친 사내이기도 했다. 아이젠 하우드가 자신의 영역과 분야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만큼. 눈앞에 있는 제냐라는 청년도 그럴지 모른다. 그 이상일지도 몰랐고.


“아무튼 정규군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로군요.”

“그렇지. 이런 대도시의 경우에는···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 있어서 수비 병력이 꼭 필요한데···. 치안에 관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면도 있고.”

“흠.”


제냐는 일단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 더 상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아이젠 하우드도 대단한 소식을 전해들은 바는 없는 모양이었다. NPC의 시점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은 건 뭐, 좋은 소득이었다.

대공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또 어떤 꿍꿍이를 하고 있을까. 그리턴 가로 갔었던 로웰 드버는, 이야기를 잘 전달을 했을까. 왕실은 제냐 일행이 파악한 정보를 잘 전달 받았을까.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었고. 다 알기는 어려운 물음들이었다. 천리안이라도 있어서 주변의 상황을 계속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 게임은 친절하지 않았다. 거대한 규모의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는. 직접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이 된 것 마냥 친콘란드 대륙적인 방식을 통해서 진행 상황을 알아내야만 했다.


일단, 그들이 대공가를 친 이후로. 짧은 시간동안 대공이 큰 일을 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과연 누구의 편일까.


“뭐···.”


아이젠 하우드가 운을 뗐다.


“자네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중년의 사내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보겠네. 잘 되지 않겠는가, 대강.”

“하하하.”


제냐는 넉살스런 NPC의 이야기에, 웃음을 흘리며 동의를 표했다.


입 안에 남아 있는 과실의 껍질이나, 과육의 씹히는 맛이 좋았다. 기왕 온 김에 아이젠이 만든 음식이나 잔뜩 포장해서 돌아가야겠다.


*


원룸 방 안.


조용하고, 어둡다.


원룸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잘 꾸며진 곳이었다. 대단한 미적 감각이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기는 했다만. 있을만한 인테리어는 모두 있었고.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창문 바깥은 어느새 어둑하다.


네모난 방의 한 켠에 캡슐 기기가 있었다. 매끈하게 잘 빠진 디자인이다. 유선형으로 외곽선이 잡혀 있었고. 위로는 반구형의 둥근 유리막이 있다. 그냥 유리는 아니었고, 특수하게 제조된 것으로 디스플레이 역할도 겸할 수 있었고. 튼튼하고 탄성이 있어 잘 깨지지도 않는다.


얼핏 보면 관처럼도 보이는 캡슐이다. 내부에는, 마침 사람 하나가 누워 있었고. 유리막 안쪽에는 청년 하나가 누워 있다.

검은 더벅머리. 곱게 감고 있는 눈. 평균 정도의 체격과 키였다. 가지런하게 누운 상태에서, 그가 눈을 번뜩 떴다.


“······.”


제냐,


라는 닉네임으로 게임 속에 있었던 김서원은 어둔 방의 천장을 직시했다.


“큼.”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아 약간 잠겨 있는 목을 푼다.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여서, 누운 상태 그대로 캡슐 내부의 벽면을 더듬었다. 팔을 늘어뜨렸을 때 손이 닿을만한 곳. 허벅지 즈음 오는 자리의 벽면에 개폐開閉 버튼이 있었다. 부드럽게 눌리는 버튼의 감각과 함께 투명한 캡슐의 뚜껑 한 쪽이 위로 올라가며 열린다.


“······후우.”


서원은 왠지 낯선듯도 싶은 방 안을 바라보았다. 게임 중독인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원룸 방 안이 낯설 정도라면. 게임 내에서의 몰입감이 상당했다는 뜻이다. 그만큼 플레이를 잘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삶의 관점에서 보자면 순조롭게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과연 옳은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할 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늘 간신히 살고 있을 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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