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자의 시간 41
삼일 전 나는 활이라는 무기를 만만히 보고 덤볐다가 개 박살이 났다.
어떻게 대충은 만들었다고 해도 정확히 쏘아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그전까지는 몰랐었다. 하지만 이왕 만들어진 활, 내친걸음이었다.
어떻게든 이걸 써먹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활 하면 떠오르는 한 이미지를 통해 방법을 찾아내어 한 참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활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쓰기로 하였고, 화살만은 개조해 새로 만들기로 하였다.
기존의 지지대를 반으로 잘라 한 조로 해서, 에폭시로 붙여 하나의 화살대를 만들었고, 화살촉과 시위가 걸리는 부분은 기존과 똑같이 했으며, 대신 화살 깃은 네 개를 십자가 형태로 달았는데 형태가 꼭 우리나라 전통화살 애깃살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만들었는데 그것은 통아(안에 애깃살을 넣어서 쏘는 우리나라 전통의 활 발사 시 사용하던 보조기구로 보통은 참나무와 대나무로 제작하고 뒷부분에는 고리를 매달아 그 안에 손가락을 끼워서 사용하였다.)였다.
드라마를 통해 내가 처음 알게 된 이것은, 원래라면 대나무를 쪼개서 만드는 게 정상일 테지만, 이곳에서는 대나무를 찾을 수가 없어서 활대를 만들기 위해 가져온 PVC 파이프를 잘라서 만들었다.
쇠톱을 이용해 세로로 자른 뒤 사포로 문질러 다듬었는데, 이게 통이 너무 넓어서 이것마저도 토치로 구워 말랑하게 만든 다음, 안에다가 천장 빨래 건조대에서 예전에 뽑아둔 알루미늄 파이프를 집어넣고선, 청바지를 잘라 만든 끈으로 둘둘 감아, 식을 때까지 가만히 놔두었는데, 한쪽 끝에 구멍을 뚫어 고리까지 매어 달자 왠지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시험적으로 전에 무척 잘 피했던 그 운수 좋은 녀석을 찾아내어 겨냥하고는 바로 쏘았다.
“팍-, 틱-”
짧은 화살 탓인지 재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녀석의 복부를 곧바로 관통했고, 아스팔트 바닥을 스치며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목표인 머리를 정확히 맞춰내지 못했으니, 실패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번 시험사격은 성공이었다.
내가 이번 시험사격을 통해 원했던 건, 목표물을 얼마나 정확하게 맞춰 내냐가 아니었고, 화살이 얼마나 곧바로 나아가느냐였는데, 화살은 곧바로 내가 조준한 방향대로 진행했고, 대신 그보다 낮은 복부에 맞았지만, 관통을 하는 등 의외의 파괴력마저 선보이며 자신의 위력을 나에게 피력했다.
나머지는 다년간의 연습이 동반돼야 해결이 되는 일이라, 머리만 싸맨다고 될 리도 없었고, 또 나의 계획상으로도 이런 훈련은 거치지 않아도, 녀석들을 처리할 방법을, 미리 생각해 뒀기 때문에 이 정도의 결과에도 내심 만족하는 중이었다.
나는 활에서 시위를 풀어내곤 거실로 돌아와 다시금 똑같은 화살을 찍어내듯 만들기 시작하였다.
-. 4월 19일 506호 앞 베란다 PM 02:00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고 있는 이곳,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의 시간에 506호의 앞 베란다 유리창문이 열리며 보통은 밤에나 나타나곤 했던 밧줄 하나가 슬금슬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밧줄은 전처럼 바닥까지는 내려오지 않았고 대신 2층과 3층 어름에서 하강을 멈추었다.
그 옆을 따라 노끈을 꼬아서 만든 듯 부실해 보이는 끈 세 가닥이 따로따로 연달아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끝에는 약 40cm가량의 길쭉한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고, 조금 전의 밧줄보다 약 1m가량 더 높은 곳에서 멈추며, 이리 살짝, 저리 살짝, 뱅글 춤을 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우의 뒷모습이 유리창 밖으로 내보여지기 시작했다.
밧줄에 매달린 동그란 매듭을 밟으며 차분히 내려온 나는 4층과 3층 사이의 경계에서 유리창을 통해 3층 306호의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3층은 앞 베란다 내 유리창 일부가 열려져 있는 상태로 내 시야에 걸리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으나 현관문마저도 열려 있는 관계로 우선해서 처리해야 할 듯싶었다.
“탁-, 달그락~”
작은 볼트 하나를 앞 베란다 타일 바닥에 던져보는 나, 내부에 숨어있는 녀석이 나타나기를 잠시 기다리다가 나타나는 이가 끝내 보이지 않자 열린 유리창을 통해 내부로의 진입을 시작하였다.
손에는 예의 반장갑을 끼고, 이번에 새로 장만한 단창을 손에 쥔 채 306호의 타일 바닥에 내려선 나는, 그대로 진입해 거실의 안전을 확인한 뒤, 현관문부터 닫고 내부를 마저 수색해 306호가 안전한지를 확인하였다.
이곳의 현관문이 열려있었던 관계로, 혹시 요즘 내가 울려대는 벨 소리 때문에 비상계단을 통해 들어온 녀석들이 이곳에 상주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긴장했었지만, 수색 결과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한두 놈쯤 나타났다면 그대로 해치웠을 테고, 그보다 많았다면 밧줄로 도망쳐 406호를 도모하면 되었으므로 크게 겁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곳을 확보한 이유는 내 영역을 넓히거나 이곳에 꼭 필요한 물건이 있어 찾아내려는 것이 아닌, 내가 작전을 시작할 때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점거한 것으로 이제 수색을 통해 안전한 것이 확인됐으므로 이제 계획한 작전을 시작하려 하였다.
거실을 지나가다 거실 한켠에 세워진 통기타에 잠시 시선을 보낸 나는, 무심코 그것을 집어 들더니 한번 쓱 쳐다보고는 통기타를 들고 바로 앞 베란다로 이동했다.
역시나 통기타는 좌측의 헤드(통기타의 머리 부분으로 조율을 위한 헤드머신이 달려있다.)에도 기타 줄에도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상태, 앞 베란다에 그것을 그대로 기대어 두고는 다시 506호로 이동하여 잠시 후 새로운 모습으로 306호에 돌아왔다.
“촤아아악~, 끼익~, 끽-, 끽-, 딩딩~, 딩딩~”
기타 줄에 WD-40을 뿌리고 옷을 잘라 만든 수건을 사용해 줄을 박박 닦아서 녹을 제거한 뒤 대충 조율까지 끝마치자 이제 준비한 작전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번 작전의 작전명은 ‘안전빵’이었다.
통기타를 유리창에 비스듬하게 기대 놓은 나는 1m 30cm에 이르는 활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고, 로프가 달린 안전벨트를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로프 끝에는 은색으로 된 후크걸이가 매달려 있었으며, 안전벨트 좌측에는 보통보다 자루가 긴 망치가, 우측에는 그 속에 화살이 잔뜩 든 역삼각형 모양의 자루마저 함께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살과 반대로 메어진 가죽 벨트에는, 이번에 새로 만든 단창과 세로로 길게 잘린 PVC 파이프가 고리에 매달린 채 나란히 함께 걸려 있었다.
작전을 시작하기 위해, 3층의 앞 베란다 창밖으로 나온 나는, 안전벨트에 달린 로프를 안전울타리에 감고, 로프 끝에 달린 후크걸이를 안전벨트의 고리에 단단히 걸어둔 다음 몸의 중심을 앞으로 살짝 기울여 보았다.
안전하게 허공에 걸리는 느낌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눈앞의 동산이 손안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며, 그곳과 내가 있는 이곳과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대략 가늠해 보았다.
다시 안전울타리를 손으로 잡고, 몸을 돌려 베란다에 몸을 가까이 붙인 나는, 안쪽에 기대어둔 통기타를 집어 들고서 다시금 허공에 몸을 내맡긴 채, 심호흡을 한번 깊숙이 내쉬고는, 기억나는 노래 한 곡을 뇌리에 떠올리며 기타 코드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 너에 침묵에 메마른……”
보통 통기타 학원에 가면 ‘도레미파솔라시도’ 계명을 제외하곤 의례 처음 배우게 되는 이 곡은, 분위기 파악도 못 한 채, 과감히 아파트 단지 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내 목소리에 반한 녀석들은 팬이라도 된다는 양, 내 주위를 향해 금세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봄볕이 화창하게 내리던 오후, 평소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에 안전울타리에 매달린 채 허공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와, 이에 환호라도 한다는 듯 다가오고 있는 좀비들, 어느새 녀석들은 1층 높이로 쌓여진 언덕 위를 단숨에 올라 나를 자신들의 뱃속에 담으려 입과 손을 함께 뻗어대기 시작했다.
한 곡을 쫙 뽑아낸 뒤, 노래가 끝나자마자 통기타를 바로 놓으며 녀석들 머리 위로 그대로 떨구더니, 재빨리 활과 통아를 왼손에 그러쥐고 화살마저 빼내어 쥐며 첫 번째 사격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통아에 매달린 고리를 목장갑을 낀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에 끼운 나는, 화살을 통아 에 집어넣고 화살을 재며 조준한 뒤 그대로 발사하였다.
제일 가까운 녀석과 나와의 거리는 불과 5m, 10m 이내에서도 목표물은 수두룩했다.
쏘아진 첫발은 내가 목표로 했던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고 그 뒤쪽으로 바로 빠져나갈 만큼 파괴적이었고, 그렇게 연달아 쏘아지는 화살들 한 발, 한발은 차근, 차근, 빗나감도 없이 녀석들을 잡아대기 시작하였다.
원래의 내 계획이 이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계획은 급조된 것으로 활이란 원래 원거리 무기, 하지만 오랜 기간의 훈련과 연습이 뒷 따라야만 가능한 것이었고, 여유가 없었던 나는 이렇게 원거리 무기를 단거리 무기로 개량해 녀석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장창이나 단창을 사용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녀석들을 상대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는데, 한번 상상해 보시라 어떤 게 더 쉬울지.
자루에 담긴 화살은 30여 발, 어느새 화살은 다 떨어졌고, 녀석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상태, 나는 허공에 매달아 놓은 뭉치를 풀어 그대로 자루에 쏟아내곤, 잠시 숨을 돌리다가 재차 쏘아 대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을이 한 꺼풀 내릴 무렵, 매달아 놓은 뭉치들이 다 풀리고, 1층 높이의 언덕이 거의 세배 크기에 다다랐을 즈음 나의 무차별적인 발포는 이내 멈추었고, 밖에 돌아다니는 간 큰 녀석은 이제 하나도 내 시야에 걸리지 않았다.
오후 내내 쏘아대느라 저린 팔을 주무르며 내가 만든 참상을 내려 보던 나는, 예의 그 운 좋았던 녀석이 대가리에 화살을 꽂은 채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눈길을 한번 주곤 허리의 고리를 풀며 밧줄을 타고 506호로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501호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이고 팔 아파 죽겠네!~”
501호의 앞 베란다에서 예의 그 밧줄을 타고 내려온 나는 무장을 한 상태 그대로 내려와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그런 건 아니었고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단지 내에 돌아다니는 모든 녀석들을 소탕해선지 이제사 시원스레 소리쳐보는 나였다.
오른손에 낀 목장갑을 거칠게 벗어 내리고 등에서 단창을 빼내 새롭게 무장한 나는 혹시 몰라 활도 사선으로 매어두고 화살도 채비한 상태 그대로였다.
늘 가던 슈퍼에 들러 캔 커피 하나를 까서 쭈욱 들이킨 나는 이내 흐려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잠시 회상에 잠기다 이내 현실로 되돌아왔다.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작가의말
드디어 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과감해질지 아니면 얼마나 찌질해질지는 모르는 일이겠죠?
ps. PM 10:34분 통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듯 싶어 바로 추가했습니다. 못보신 분은 보세요
ps 2. 다음날 AM 11:00분 시점 변경이 두서 없다는 말씀들이 많으셔서 조그 수정해 보았습니다.
본래 의도가 주인공의 모습을 설명하거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표현한 방법이었는데 조금 두서가 없었나 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도 고민이 뒤따를듯 하네요
좋은 글이 될수 있도록 관심 기울여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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