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자의 시간 33
어제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의 어둠이 내린 지금 506호의 앞 베란다 유리창문이 소리도 없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 하나가 지상을 향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자신과 닮은 듯 둥근 물체에 호기심이 생긴 달이 구름 뒤에 숨어있다가 고개를 쳐들게 되자 어렴풋이 물체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 둥그스름한 물체는 다름 아닌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일단 몇 시간 전으로 이동해보자
나는 저녁의 활동을 위해 내 생활리듬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밤에 태양전지판를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각도를 맞추어둔 뒤 휴대용 보조배터리를 연결해 놓고선 잠자리에 들었고 오후 늦게 사 일어나게 되었다.
늦은 아침을 해결한 뒤 남은 두 끼의 도시락을 챙기던 나는 오늘 할 일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오늘 저녁, 나는 내 좀비 시체 중 하나를 골라 506호의 화단에 던져두고 어둠 속에서 잠복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대기하며 기다리다 미끼에 혹해 접근하는 녀석을 처치한다는 일명 ‘스카이 콩콩 작전’은 앞서 말했던 대로 작전수행 이전에 미끼를 선정해야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아이, 여자, 어른, 미끼는 많았고 다양해서 나는 어떤 미끼를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
훨씬 가벼워지고 살짝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5층에서 내리기에는 어른의 몸집은 너무 컸다. 그래서 내 좀비 시체 중 가장 작은 아이의 시체를 미끼로 쓰기로 하곤 501호의 건넛방으로 이동했다.
곰팡이가 가득피어 지저분한 이불을 들치자 한 가족이 나란히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내가 테트리스 작전 때 일가족 상봉을 시켜주었다.)이 보였는데 그 가운데에 끼어있던 아이의 시체를 빼 미끼로 쓰자니 왠지 좀 꺼림직한 것이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겨우 상봉시켜 주었는데 다시 이별시키자니 뭣 같네. 젠장, 그래! 아이 시체 말고도 뭐 시체는 많잖아!’
줬다 뺐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아이 좀비 시체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여 다시금 이불을 덮어주며 501호를 빠져나왔다.
‘자 어떤 것을 미끼로 삼을까 아이 시체보다 작은 것은 없었는데? 체격이 가장 작은 녀석이 누구였??! 아, 대가리! 그래 대가리가 있었지!’
체구가 작은 것만을 생각하다 전에 옮기다가 뿌러 먹은(?) 건장했던 좀비 녀석의 대가리가 생각이 났다.
‘그래 대가리보다 작을 수는 없지, 있는데 새로 장만할 필요도 없고 그걸 가져다 쓰면 딱이네 딱!’
녀석들의 시체는 겨울을 지나오며 많이 마르고 푸석푸석해지기는 했다. 그래도 완전히 바스라진 건 아니라서 대갈통도 어느 정도 형태를 유지한 채 506호의 건넛방에 다른 녀석들과 함께 놓여있었다.
나는 506호의 앞 베란다에 그 대가리만을 가져다 둔 뒤 두 번째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저 대갈통을 내릴 정도의 끈은 있지만 내가 저 주차장 바닥으로 내려갈 때 필요한 밧줄은 없었다.
나는 내 구역에서 밧줄로 만들 만한 천이나 이불커버 등을 모아서 가위로 길게 오려 여자 머리카락을 따듯 꼬기 시작했는데 내 체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한번 꼰 줄을 다시 꼬아서 내 손가락 3개 정도의 굵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30cm 간격으로 동그란 매듭도 지어 두었는데 매듭의 크기가 주먹 두 개만큼 커서 허공에 매달릴 때 발을 디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마무리하려면 며칠 이상이 걸릴 터였고 지금은 겨우 이불을 잘라 첫 매듭을 꼬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밤이 내렸고 대가리까지 지상에 내렸다.
나는 예의 자전거 헬멧을 쓴 채로 혹시라도 빠질까 봐 턱 끈마저 묶은 뒤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전거용 반장갑을 손에 끼었다.
먼저 창대를 사용하거나 이동시킬 때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적당한 길이로 잰 끈을 묶어두었는데 혹시나 창대(더는 만들 재료도 없다.)를 놓쳐 저번처럼 날려버리지 않을까 하여 취한 조치였다.
그 뒤 앞 베란다 울타리에 묶어둔 장창을 풀어 창대를 손에 감아쥐곤 미끼인 머리통이 묶인 끈을 장창의 날로 잘라 끊어버린 뒤 장창을 좌우로 흔들어 소리를 피었다.
흔들린 장창이 화단의 나뭇가지들을 쓸자 몇 놈이 반응을 보였고 곧 소리가 인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해오기 시작했다.
‘빨리빨리들 좀 오지 느려 터져서는!’
마구 몰리는 것보다 한두 마리 정도 꾸준히 와주는 게 작전상 좋을 것이다. 하지만 캠코더의 배터리타임에 의해 작전유지시간이 좌우될 수밖에 없어서 속으로 빨리 오라며 녀석들만 채근하던 중이었다.
캠코더의 액정화면을 바라보곤 두 손에 쥔 창대를 위로 끌어올리다 다가오는 녀석들 중 한 녀석을 골라 조준해 찌르려던 순간,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내가 놓아둔 대가리를 먹기 시작했다.
‘그게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녀석들 냄새라도 맡은 거 아냐?’
공격하려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터라 어깨 근육이 뭉친 듯 목이 뻐근해져 왔지만 갑작스러운 녀석의 움직임에 잠시 의문을 표하는 것도 잠시 다시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먹지도 않고 멀뚱히 서 있는 녀석들 중 하나의 머리 위로 장창을 이동시키어 갔다.
우선 창대와 좀비의 대가리가 일직선이 되게 맞춘 뒤 창날이 녀석의 머리 바로 위에 머무르던 순간 나는 창대를 아래로 찔러 넣었다.
공격은 성공, 성공이었다.
중력과 창대의 무게 덕분인지 창날은 수월하게 좀비의 머리를 파고들었고 곧 녀석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녀석을 해치운 뒤 나는 그 옆의 또 다른 녀석마저 가볍게 해치웠다.
맨 처음 식사를 하느라 목숨(?)을 건진 녀석이 옆에 동족이 죽어 나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방금 죽어 신선(?)한 동족의 시체를 탐하자 나는 조금 더 세심히 조준해 엎드린 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녀석의 뒷머리로 무참한 창질을 선사했다.
아까의 복수라며 힘껏 내리꽂은 탓인지 장창은 녀석의 뒷머리를 통과해 입 밖으로 빠져나왔고 녀석이 먹어대던 좀비마저 관통한 뒤 화단의 흙바닥에 꽂히며 멈추었다.
작전개시 후 첫 시도에 세 마리의 좀비를 해치우게 되자 의기양양해 있던 내게로 더욱 많은 수의 녀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조금 전 내가 녀석들을 처리할 때 생긴 소음 탓에 모여드는 것 같았는데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장창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녀석들을 위주로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캠코더 액정화면이 땀으로 얼룩져 번들거렸는데 액정 시그널 배터리 부분이 깜빡이고 있는 것이 작전의 종료를 알리는 듯하였다.
나는 천천히 장창대를 끌어올려 지상 2.5m 높이에 위치시킨 뒤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앞 베란다 안전울타리에 묶어 거치시키며 오늘의 작전을 마무리하였다.
오늘 잡은 녀석들의 숫자는 스물둘, 내 피해는 피곤해 절은 몸뚱이 정도?
이 정도면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며칠만 고생하면 이 근처의 녀석들을 모조리 소탕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생각이 들자 기쁜 마음에 ‘앗싸~’를 속으로 외쳤는데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고 길고 무거운 창대를 이리저리 흔들며 찔러대다 보니 이것도 은근 중노동이었는지 온몸이 결리기 시작하는 게 이거 장난이 아니었다.
노가다로 단련된 몸이라 그동안 체력에는 자신했던 나였는데 여기에 갇힌 지도 오래고 그동안 먹은 게 부실하다 보니 이 모양이 꼴인 듯했다.
‘아 녀석들의 후각도 실험해야 하는데 배터리도 얼마 없고, 아이고 삭신이야 이제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
야간 활동을 위한 시차적응훈련도 무색하게 작전이 빨리 끝나 버린 터라 시간도 어중간해서 식사하며 쉬던 중이었는데 배터리가 다 되자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보여야 뭘 하지!’
한참을 멀뚱히 앉아 있다 자는 게 남는 거라며 녀석들의 후각실험은 내일로 밀어둔 채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저녁 온몸에 배긴 알들로 인해 좀비사냥은 당분간 연기되었고 대신 어제 못한 후각실험만이 진행되었다.
실험체는 이미 절단된 몸 한 놈으로 다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목이 없는 녀석의 팔목을 잘라서 전의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진행했는데 여러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해보니 녀석들의 후각 유무와 범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녀석들은 후각이 존재했다. 그러나 청각처럼 대단하지는 않아서 그저 시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야간에 녀석들은 일정 거리 이내에 먹이가 나타나면 시각 대신 후각으로 알아채며 대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인식하지 못한다는 걸 좀 전의 실험으로 알아냈다.
‘이거 아래에 내려갈 때 녀석들 가까이 가면 큰일 나겠네!’
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내려갈 뻔 했다. 미리 알게 되었으니 이거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소리를 내서도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나는 언젠가 저곳에 내려갈 때를 대비해 조심해야 할 대목들을 머릿속에 되뇌이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지나 한계에 다다를 때쯤 나는 또다시 한 작전을 계획하곤 바로 준비단계에 돌입했다. 이 작전은 후에 이렇게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명 ‘톰과 제리’였다.
- 작가의말
댓글의 힘을 빌어 한편을 급하게 써서 올립니다.
참고로 비축분이 없어 매일 매일 분량이 되어지는 대로 올리고는 있는데 앞으로 바뻐질듯 하여 시간텀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올릴테니 느긋하게 즐겨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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