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자의 시간 37
밧줄에 올라 베란다에 도착한 나는 밧줄 끝에 묶어놓은 생수 뭉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두 팔을 안전울타리 밖으로 내밀며 겨드랑이를 안전울타리에 지지한 채 밧줄에 힘을 주며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생수 뭉치가 끌어올려 질 때 혹시나 유리창 등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끌어올린 나는 생수 뭉치가 생각보다는 가볍다고 느껴졌다.
아까는 이동에 시간을 줄이기 위해 두 뭉치씩 나르던 걸 이번에는 끌어 올리는 참이지만 한 뭉치씩 이다 보니 생각보다 가벼워 금세 끌어올릴 수 있었고 이제는 다음 뭉치들을 끌어올리려 밧줄 끝에 무언가를 묶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의 생수 뭉치가 올라가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금 밧줄이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전과는 다르게 밧줄 끝에 ‘S’ 자형 쇠고리가 매달려 있었다.
생수 뭉치에 고리 형태로 묶인 노끈 주위를 잠시 배회하던 쇠고리는 이내 뭔가를 낚았다는 듯 밧줄이 팽팽해지며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생수 뭉치가 무슨 월척이라도 되는 양 손맛마저 느끼며 생수 뭉치를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6kg짜리 생수 뭉치 아홉 마리와 그보다 씨알이 굵은 약 9kg짜리 부탄가스가 든 박스 두 개를 마저 낚은 나는 마지막으로 가장 큰 월척을 낚기 위해 마지막 낚시마저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음식물이 든 마지막 박스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부피가 커서 그냥 손으로 당겨 올리기에는 무리가 따랐고 이동 중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대기까지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자 이내 나는 운반을 포기하였다.
마지막 낚시에 실패한 나는 내려가서 두 뭉치로 나누어 올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급한 물과 연료는 일단 얻는 데 성공했으니 천천히 올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작전 끝인가? 휴 좀 씻고 쉬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생수 뭉치에서 2L짜리 생수 두 개를 꺼내 501호의 화장실로 이동한 나는 자전거 헬멧 등 몸에 작용한 모든 것을 벗어 버린 채 그대로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유통기한도 확인하지 않은 생수 하나를 까서 벌컥벌컥 시원하게 물을 마신 나는 나머지를 그대로 머리 위에서 부어 몸에 묻은 위장의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내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의 감촉,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물, 이 얼마만의 일이던가, 이곳에 갇힌 이후로 이처럼 물을 낭비해보기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던가, 그냥 버리면 벌 받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나중에 이 물을 정수해서 재사용하기 위해 욕조 안에 양동이를 넣어둔 채 그 안에서 서서 샤워를 하는 중이었다.
양동이 안의 물이야 하루 정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지저분한 것들이 절로 가라앉을 테고 나중에 위의 물만 떠서 정수기에 돌리면 식수로 사용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타월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 티셔츠를 잘라서 만든 수건에 물을 묻혀가며 하는 간만의 목욕에 속으로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던 나는 이내 한통을 더 까 몸 여기저기에 부어대며 시원스런 물 낭비를 계속하였다. 아마도 오늘의 성공에 고무돼 다음에도 성공하리라는 자신감이 넘쳐 이렇게 배짱을 부리는지도 몰랐다.
샤워를 마치고 예의 다른 옷가지로 만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나는 미리 준비해둔 옷가지를 주워 입고는 몰아오는 한기와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부탄가스가 든 박스에서 4개들이 부탄가스 한 묶음과 생수 한 병을 들고 502호로의 이동을 시작했다.
오랜만인 듯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부탄가스를 부착시켜 주곤 냄비에 물을 올려 라면을 끓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나는 물이 끓는 중간에 506호로 이동해 맨 처음 늘어놓은 스마트폰을 끌어올리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다행히도 고장으로 인한 게 아닌 배터리가 다 돼서 알람이 멈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배터리의 완방은 안 좋다는 생각에 휴대용 보조배터리를 통한 잠시의 충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502호 화장실 안 타일 위, 이곳에 올라선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간만에 힘좀쓴다며 과감한 화력과 영롱한 파란빛을 뽐내며 보글보글 라면을 끓어대는 중이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라면을 끓이는 이유는 밤이라 거실에서 조리한다면 혹시라도 불빛이 새어나갈까 보통 밤에 음식을 조리할 때는 화장실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었고 라면은 내가 남겨둔 게 있어서 이렇게 야식으로 끓이게 되었다.
아마도 원래라면 라면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워낙 라면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추운 겨울을 한 끼라도 라면을 끓여서 몸을 덥힐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어 주겠는가, 하지만 물이 부족했던 시기와 더 결정적인 땔감의 상태 불량으로 심심풀이 땅콩마냥 뿌셔 먹기만 하다가 혹시나 해서 비상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둔 게 몇 개 남아 있었다.
마지막 박스를 무사히 가져올 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한 번 더 내려가는 수고도 마다치 않은 채 소주와 오징어를 지금 끓이는 라면과 함께 더불어 즐길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난 소주와 마른오징어들 대신 목숨을 건져내지 않았던가, 이렇게 샤워와 함께 두 봉을 한꺼번에 끓여 먹는 라면마저도 호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을 좀 남겨 놓는 건데,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더니...’
겨우내 밤의 마누라 삼아 한두 잔씩 아껴먹던 양주와 소주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런저런 상황에 자꾸 부딪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자주 하게 되는데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운도 운이지만 나쁜 선택들은 이제껏 잘도 피해온 듯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2% 부족하다 느껴지는 것이 내가 배가 불러서인 건지 아니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른 사람의 본성 탓일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그저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이라는 말에 이번에도 손을 들어 주었다.
“후루룩 꿀꺽~”
냄비뚜껑에 꼬들꼬들한 면발을 덜어, 불어가며 흡입하다, 냄비를 든 채 연신 라면 국물을 들이키는 이 순간, 아 아마도 내가 이곳에 처음 갇힌 이후로 맞는 두 번째의 만찬이 아닐까 싶다.
‘아마 처음은 내가 이곳들을 모두 정리했을 때였었지, 그때는 지금의 라면 대신 소주와 마른오징어 뿐이였었지만 말이야.’
그때를 잠시 회상하다 라면 한 젓가락을 냄비뚜껑에 올려 다시금 흡입한 나는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때에는 희망이란 찬이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그저 살려고 발버둥 쳐댔을 뿐, 물론 지금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준비된 것들, 준비하고 있는 것들, 또 그것들을 발판삼아서 성공되고 있는 것들이 하나둘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지금은 라면뿐이라지만 지금처럼 한발 한발 성공이 쌓여간다면 앞으로는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었다. 아니 풍성하게 살아가고 말리라며 속으로 다짐하였다.
‘언젠가는 먹고 말리라!’
어제의 야근으로 인해 발생해버린 때늦은 아침 기상 시간, 민우는 어제 야식으로 라면을, 것도 두 개씩이나 먹어 부은 얼굴로, 머리마저 산발을 한 채, 옆에 놓인 생수병의 물을 게걸스레 마셔대는 중이었다.
‘아 상쾌하다, 이 얼마나 럭셔리한 아침인가, 윽!’
쏟아지는 봄볕을 온몸으로 받아대며 상쾌한 아침이라고 되뇌려던 순간, 간만에 들어간 면발 탓인지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밀어내기 한판을 시전하기 위하여 급격한 기동을 구사해대기 시작하였다.
“다다다다~, 뿌직~, 휴~, 이거 다음에는 검정 비닐봉지도 좀 가지고 와야 되겠다.”
이곳은 나만의 배변장소로 앞 베란다 유리창 부근이었는데 나중에 환기하기에도 편하고, 배변 중에 녀석들을 관찰하기에도, 또 나중에 묶어서 내 대형새총으로 날려버리기에도 안성맞춤인 이곳에서 나는 급했던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이 예전과 다른 게 하나 있다면 항상 애용하던 예의 검은색 비닐봉지가 아닌 속이 비쳐 투명한 비닐에 배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계속되는 배변 활동으로 인해 제일 먼저 검은색 비닐봉지가 떨어지더니, 그다음은 흰색, 노란색 순으로 비닐봉지들이 사라졌고, 이제는 주방용 크린팩이 지금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마저 다 떨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위생 장갑이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그랬다면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똥 바닥을 날려댔을지도 모르겠다, ㅋㅋㅋ.'
손가락 모양을 한 똥 덩어리들이 내 대형새총을 통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키득대다 나중에 필요한 물품의 목록을 작성하기로 하곤 주차장 내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녀석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6개의 구릉으로 그중 506호 아래의 구릉이 누가 도굴이라도 시도한 듯 황폐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밤새 스마트폰의 벨 소리에 이끌린 녀석들의 지랄발광으로 인해 생긴 모양으로 ‘다시금 제대로 쌓아주마’를 내심 다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나였다.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려가며 뭔가 놓친 게 있나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어제 내가 버리고 간 박스가 주차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네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저것도 다음에 꼭 가져와야지!’
술에 대한 미련을 끝내 떨어내지 못하고 다음에 물건을 보충하러 이동할 때 저것만은 꼭 챙겨오리라는 마음을 막 먹던 참이었다.
이 일은 얼마 뒤에 발생한 어이없는 사건으로 인해 공염불이 되고 말았는데 그것은 박스 근처를 지나가던 한 녀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녀석이 박스 근처를 배회하던 중 재수가 없게도 자신의 해진 바지 틈새가 박스 모서리에 걸리며 박스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박스가 자신의 발길을 가로막은 게 녀석은 못내 불만이었는지, 박스에 손을 대 찢어버리는 등 분풀이를 해대기 시작했고 이내 그 소리에 다른 녀석들마저 동조해, 해체된 박스의 내용물들을 주차장 바닥에 쏟아내 버리기에 동참을 하기 시작했다.
“다가가가가가~ , 팍-, 쫘악-. 탕,~ 구루루룩~, 퍼덕-, 팍-”
완전히 찢긴 채 그 안의 내용물마저 모조리 쏟아져 내린 불쌍한 내 박스, 녀석들은 흩어놓은 것만으로는 모자랐다는 듯 그 잔해들마저 탐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곧 주차장 사방에 소주가 담긴 페트병들과 안주로 쓰일 예정이었던 캔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이 이내 펼쳐지기 시작했다.
좀비 한 녀석이 1.8L짜리 소주가 든 페트병을 밟다가 넘어지는 모습도 보였고, 자신이 건드린 골뱅이 캔이 쭈루루 굴러가자 먹이라도 되는 양 쫓아가다 녀석들 하며(이놈은 한창 캔 뒤를 쫓아가다 손으로 잡아내고는, 물어뜯기를 시도하려던 중 다시 놓쳐서 굴러가는 캔을 마냥 쫓아가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한 놈은 마른오징어 뭉치를 밟다가 생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반응해 운 좋게 비닐 포장을 뜯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녀석은 마른오징어 한 축을 통째로 가져다가 오물거리며 씹어대기 시작했고 곧 자신의 식성에 맞았던지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곧 다가온 다른 녀석들에 의해 혼자서 독차지하려던 계획을 못내 이루지 못하고 오징어 대부분을 다른 녀석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녀석은 손아귀에 남아있는 마른오징어 다리 몇 개를 입가로 가져가며 아쉬운 듯 씹어대기 시작했는데, 좀비가 마른오징어 다리를 질겅거리는 모습이라니 한편의 코메디가 아닐 수 없었다.
녀석들이 나의 파티물품들을 망치자 잠시 아까움에 젖어 입맛을 다시던 나는, ‘뭐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그래 먹어라 먹어, 형이 한턱 내는 거야!’를 속으로 외치며 쓰린 속을 달랬다.
이제 저 박스는 물 건너간 상태, 하지만 어제 끌어 올리다 만 박스가 저 아래에 그대로 남아있어 또 녀석들의 손을 탈까 봐 그 전에 얼른 저걸 옮겨둬야겠다며 이곳으로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뭔가 편하게 끌어올리는 방법이 없을까? 앞으로도 이리저리 옮길 물건들도 많아질 텐데 밧줄로 올려대기도 이거 한두 번이고 뭔가 쉽게, 기중기처럼 도르래가 달린 아‥!’
손쉽게 물건들을 끌어올릴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순간 내 눈에 띈 이 녀석이 있었으니 그것은 뒷바퀴가 빠진 채 신발마저 벗겨져 있던 녹슨 자전거였다.
- 작가의말
감기로 인해 오한과 발열이 심합니다.
주인공을 알몸으로 굴려대선지 제가 대신 벌받나 봅니다.
성실연재가 깨진게 아쉽긴 하지만 오늘도 한편 정성스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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